|
제 목: 종말/하나님의 사람 다니엘
주 제: 종말
교 회: 지구촌 교회
설 교 자: 이동원 목사
본 문: 다니엘서 6장
논 지: 다니엘은 끝까지 순결함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다.
설교요약
1.다리오 왕도 교만하게 자기 권세를 의지했다.
2.새 정권에서 관리가 되었으나 음모를 받는 다니엘
3.다니엘의 총명과 지혜는 성령에 의해서 였다.
4.다니엘은 충성되고 순결한 사람이었다.
다니엘서 6장은 다니엘이 어떠한 유형의 신앙인이었는가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 주는 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다니
엘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장입니다.
1장에서부터 저는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다니엘서의 주제를 계속적으
로 강조해 왔습니다. 역사도 변하고 정치 지도자도 변하고 체제도 변하고
권력은 한 제국에서 또다른 제국으로, 한 왕에게서 또다른 왕으로 계속 옮
겨 가지만 하나님은 변함없이 역사의 주인이 되십니다. 역사 위에 나타난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을 가장 선명하게 증거하는 것이 바로 다니엘서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6장에 들어가기 전에 5장의 마지막 부분인 30절 이하를 먼저 보시기 바랍
니다.
“그날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 메대 사람 다리오가 나라
를 얻었는데 때에 다리오는 육십이 세였더라”(30,31절).
한 제국이 몰락하고 또다른 제국이 역사의 표면에 떠오르는 모습과 함께 6
장이 펼쳐집니다. 6장은 다리오의 통치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렇게 상황
이 바뀐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은 계속하여 그분의 나라를 지상의 역사 속에
확장시켜 나가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의 나라를 위해서, 어느 시대 어느 역사 속에서나
자신의 사람들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 다니엘서 6장에서도 하나님은 여전
히 하나님의 사람 다니엘을 역사의 격동기 속에서도 쓰셔서 자신의 일을
계속 하시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마도 성경에서 다니엘서 6장처럼 널리 알려진 부분도 없을 것입니다.
주일학교 시절부터 우리에게 퍽 익숙했던 이야기가 본문에 나오기 때문입
니다. 성경을 잘 모르는 사람도, 성경을 깊이 연구하지 않는 사람도 사자
굴 속에 던져졌던 다니엘의 이야기를 다들 알 것입니다.
그러나 어쩌면 이 다니엘서 6장은 성경에서 가장 연구가 덜 된 부분일지
도 모릅니다. 익숙한 것은 으례 잘 알고 있다는 선입견으로 묵상을 게을리
하는 우리의 성향 때문입니다.
다리오의 정체
다니엘서 6장은 1절에서부터 우리에게 중요한 역사적 문제를 제기합니다.
“다리오가 자기의 심원(心願)대로 방백 일백 이십 명을 세워 전국을 통치
하게 하고”(1절).
바벨론 제국이 무너지면서 새롭게 등장한 대제국의 첫번째 통치자는 다리
오였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의 마지막 왕이었던 벨사살처럼 다리오 역시 세
속 역사 속에 전혀 그 이름이 등장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쉽게 성경
의 권위에 도전하려 드는 사람들이나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바로 이 구절에
근거하여 다니엘서의 역사성에 문제를 제기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바벨론 제국이 무너지면서 등장한 바사(페르시아) 제
국의 지도자를 고레스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본문에는 고레스
가 등장해야 하는데 대신 다리오라는 인물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습니다만 대표적인 견해 두 가지를 우선
소개하겠습니다.
첫째 견해/다리오는 고레스와 동일한 인물이다.
이것도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고대 왕들은 여러 개의
명칭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같은 왕에 대해서도 통치력이 미치
는 범위에 따라 각기 다른 이름으로 왕을 부르는 관습이 고대에는 있었습
니다.
그러나 다리오와 고레스가 동일 인물이라 생각할 때 가장 문제시 되는 구
절은 6장28절입니다.
“이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하
였더라.”
첫번째 견해를 따른다고 하면 이 구절을 어떻게 해석해야겠습니까? 그런데
도 첫번째 견해를 따르는 사람들은 이 구절에 대해 나름대로의 대안을 제
시했습니다. 즉,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에서 접속사 “와”를 “그리고”로 해석하지 말고 히브리 문법에
따라 동격을 나타내는 콤마(,)로 보게 되면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시대
곧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듯 첫번째 견해는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많은 성경학자들의 지지를 받아 왔습니다.
둘째 견해/다리오는 고레스 왕의 휘하에 있던 장군 중에 하나였다.
최근 복음주의적 신학자들은 이 견해를 상당한 역사적인 근거가 있는 의견
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한글성경에는 그 의미가 선명하게 나타나 있지
않지만 “메대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었는데”(단 5:31)라는 구절은 영
어 성경의 경우 “다리오가 나라를 받았는데”로 번역된 판이 많습니다.
“다리오가 나라를 받았다.”
즉, 다리오라는 인물이 바벨론을 무너뜨리고 자기 나라를 새로 일으킨 것
이 아니라 바벨론을 무너뜨린 고레스 왕에 의해서 바벨론 지역을 다스리는
통치자로 임명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서 9장1절을 보십시오.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입던
원년 곧 그 통치 원년에... ”(1,2절).
여기서도 다리오를 메대 바사 제국 전체를 다스리는 제왕이라고 하지 않고
방금 무너진 갈대아 지역, 즉 바벨론의 통치자로 임명된 자였다고 기록하
고 있습니다. 아하수에로의 아들이라는 사람은 “다리오”라고 불리워졌는
데, 성경학자들은 “다리오”라는 이름도 어쩌면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그
당시 통치자에게 붙여진 독특한 명칭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합니다.
다리오의 본명은 나보니도스에 관한 역사적인 문서에 의해 우그바르(혹은
구바르)로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본래 구티움이라는 지역을 다스리던
통치자였다고 합니다. 일종의 도지사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사람이 주
전 539년에 벨사살의 연회 잔치를 기습하여 바벨론을 함락시키는 일에 결
정적인 역할을 했던 장군이었다고 합니다. 그 후, 함락된 바벨론을 둘러보
고 떠나면서 고레스 왕이 그 지역을 다스리는 통치자로서 우그바르를 임명
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저도 이 견해가 좀더 역사적 진실에 가깝지 않나
생각합니다.
“다리오가 자기의 심원대로 방백 일백 이십 명을 세워 전국을 통치하게
하고.”
바벨론은 굉장히 광대한 제국이기 때문에 많은 도지사를 세워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관리하기 위해서 그 위에 다시 총리를 두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또 그들 위에 총리 셋을 두었으니 다니엘이 그 중에 하나이라 이는 방백
들로 총리에게 자기의 직무를 보고하게 하여 왕에게 손해가 없게 하려 함
이었더라.”
바벨론 제국 황혼기에 다니엘은 이미 그 제국에서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통치자가 한 지역에 들어와서 그곳을 부분적으로 다스릴
또다른 인물을 임명할 때는 그 지역을 아주 모르는 사람보다는 어느 정도
잘 아는 사람으로서 참신한 인물을 택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렇
기 때문에 정권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다니엘이 선택될 가능성이 많았다는
것은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제 또다시 다니엘은 바벨론 지역을 통치하는 정부 고위 관리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이것은 다니엘에게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즉, 번영과 출세가
보장되며 생이 순조롭게 풀려 갈 마지막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는 좋은 기
회가 생긴 것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번영과 위기는 상존하기 마련입니다. 다니엘은 다시 위기
에 처하게 됩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말처럼 이 행운의 시간 속에
다니엘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무서운 음모가 꾸며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니엘의 그릇된 행동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정당한 행동을 했기
때문에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이런 것을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핍박이
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저지른 잘못 때문에 당하게 되는 어려움은 엄격히 말해 핍박이 아닙
니다. 순교도 아닙니다. 순교 컴플렉스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핍박받는 것
을 순교로 간주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은 순교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의 정당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나의 정당한 행동 때
문에 내가 어려움을 당한다면 그것은 의(義)를 위해서 받는 핍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니엘은 이러한 유형의 핍박을 그의 생애의 황혼기에
한번 더 맞이하게 됩니다.
다니엘에게 찾아온 위기
다니엘에게는 두 가지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첫째로, 다니엘의 개인적인 삶을 조사해서 흠을 잡으려는 무리들이 있었
습니다.
그 무리들은 다니엘을 마치 천적처럼 생각했던 당시의 정치 지도자들이었
습니다.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얻고자 하
였으나 능히 아무 틈, 아무 허물을 얻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다니엘이 새로운 나라에서도 또다시 출세하게 되니까 자연히 그를 시기하
는 사람들이 그 주변에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고소거리를 찾으려고
그의 삶을 샅샅이 조사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흠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우리도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사람들에게서 이런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요?
둘째로, 다니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법률 개정이 착수되었습니다.
첫번째 계교가 실패로 돌아가자 다니엘의 적들은 이번에는 한걸음 더 나아
가 그를 함정에 몰아넣기 위한 법률 개정에 착수합니다. 7절을 보십시오.
“나라의 모든 총리와 수령과 방백과 모사와 관원이 의논하고 왕에게 한
율법을 세우며 한 금령을 정하실 것을 구하려 하였는데 왕이여 그것은 곧
이제부터 삼십 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나 무
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니이다.”
이것은 일상적으로 다니엘이 참되고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분에게만 기도하는 시간을 구별하여 갖고 있음을 안 적들이 그것을 가지
고 다니엘을 모함하기 위해 추진한 교묘한 함정이었습니다.
이렇게 자신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무서운 음모가 진행되는 와중에서
드러난 다니엘의 사람됨은 어떠했습니까?
위기 가운데 드러난 다니엘의 사람됨
저와 당신은 80세쯤에 과연 어떤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될까요? 저는
다니엘의 모습을 묵상하면서 다음의 시편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의인은 종려나무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같이 발육하리로다 여호
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궁정에서 흥왕하리로다 늙어도 결실
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여 여호와의 정직하심을 나타내리로다
여호와는 나의 바위시라 그에게는 불의가 없도다”(시 92:12-15).
저는 이 말씀이야말로 노년의 다니엘의 인품에 대한 가장 적절한 묘사가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의인 다니엘은 종려나무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같이 발육하리로
다.”
80세가 되어서도 다니엘은 여전히 하나님의 쓰임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아직도 할 일이 많았습니다. 아마 할 일이 없다는 것보다 더한
비극은 없을 것입니다.
세월이 갈수록, 하나님 앞에 서야 할 순간이 가까워 올수록 더욱 청청한
빛을 발하는 견고한 나무인 다니엘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는 여호와의 정
직하심과 영광을 선포하는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다니엘의 인품을 다섯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다니엘은 성령의 사람이었습니다.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방백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3절).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를 우리 말 번역대로만 읽으면, “다니엘은
굉장히 뛰어난 지성을 가진 사람이며”라고 이해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
러나 원문에는 이 『마음이 민첩하다』는 말이 “아주 놀라우신 영을 소유
하였으므로”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아주 놀라우신 영이란 하나님의
영을 가리킵니다.
“아주 놀라우신 하나님의 영이 그 안에 있었으므로.”
다니엘의 지혜와 탁월한 판단력은 다니엘 자신 속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
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성령에 사로잡힌 성령 충만한 사람이기 때문이었습
니다. 다니엘의 총명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했기에 주(主)의 영이 그
속에 역사하여 이루어 낸 놀라운 결과였던 것입니다.
다니엘은 무엇보다도 성령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젊었을 때에도 성령
충만했고 늙어서는 더더욱 성령 충만했습니다. 젊어서도 그의 지혜의 근원
은 성령이었습니다. 늙어서도 여전히 그가 쓰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근본
적으로 그가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하나님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다니엘은 순결한 사람이었습니다.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얻고자 하여 그의 개인적인 삶을 조사했던 사람들은
“능히 아무 틈, 아무 허물을 얻지 못하였습니다”(14절).
유명한 전도자인 D.L. 무디가 한창 부흥 운동을 일으키고 있었을 때에
“저 사람 말만 잘할 뿐 자기 삶은 형편없을 것이다”라고 전제하고 집요
하게 무디의 사생활을 파헤쳤던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무디의
삶에서 그 어떠한 결정적인 허물도 발견하지 못하자, 도리어 무디의 그러
한 삶에 감동받아 회심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당신과 저
의 삶을 조사한다고 해 봅시다. 흠이 전혀 없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러나
적어도 하나님의 영광을 파괴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나를 무너뜨릴 만한
결정적인 흠은 없어야 합니다.
다니엘은 순결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훼방할 만한 결정적인
흠이 그의 삶 속에는 없었습니다. 순결함이야말로 어쩌면 다니엘이 늙어서
까지도 주님의 손에 붙들려 쓰임받을 수 있었던 비결이었을 것입니다.
셋째로, 다니엘은 충성된 사람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4절을 보십시오.
“... 능히 아무 틈, 아무 허물을 얻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
무 그릇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다니엘은 임무를 충성스럽게 수행했던 것입니다. 정치가로서 그는 얼마나
높은 위치에 있었습니까? 그런데도 그는 매사에 충성스러웠습니다. 자기에
게 주어진 어떤 일도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과제로 알고 주께 하듯 성실
하게 감당했던 다니엘. 그는 진실로 충성된 사람이었습니다. 작은 것에 충
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된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이 충성스러움이야말
로 하나님이 다니엘을 쓰신 비밀 중에 하나였을 것입니다. 나라가 바뀌어
도 정치 체제가 바뀌어도 충성스런 다니엘은 여전히 필요한 사람이었습니
다.
넷째로, 다니엘은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다니엘이이 조서에 어인(御印)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
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10절).
간교하고 음흉한 사람들에 의해서 다니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새로운
법률이 제정, 공포되었습니다. 그 나라의 왕 외에 다른 누군가를 향해서
기도하면 사자굴 속에 넣겠다는 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10절에서 우리에게 충격을 주는 사실은 다니엘이 그 조서에 어
인이 찍힌 것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즉, 그는 자기가 그 법을 어겼을 때
사자굴 속에 던져져서 죽게 될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것을 알고도 다니엘
은 집에 돌아가 전에 행하던 대로 주께 기도하고 감사드렸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마지막 순간에 한번 이름이나 남기고 죽자는 식의 소위 순
교적 명예심 때문에 나온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평소 습관이 그랬던
것입니다. 자기 생명을 위협하는 음모 앞에서도 이 경건의 습관만큼은 결
코 변경될 수 없었습니다. 다니엘은 진실로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경건은 타협을 거절하는 경건이었습니다.
사실은 쉽게 타협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의 경우처럼 우상 숭배를 하라는 위협을 받은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다만
기도를 공개적으로만 안 하면 그만인 상황이었습니다.
“30일간이니까 그 동안에는 마음 속으로만 기도해도 하나님이 들어주실
것이다.”
이렇게 합리화하고 적당히 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단 하루라
도 경건의 습관이 허물어지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다니엘에게는 기도와 감사와 찬양이 늘상 끊이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바
뀌어도, 환경이 바뀌어도, 누군가가 생명을 위협해도 다니엘이 절대로 포
기할 수 없었던 삶의 보배는 “내 주님과의 교제”였습니다. 하나님을 향
해서 창을 열고 교제하며 그분만을 바라보는 것이 얼마만큼 다니엘의 일상
적인 일이었는가를 보여 주는 구절이 있습니다. 본문 16절을 보십시오.
“이에 왕이 명하매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굴에 던져 넣는지라 왕이 다니
엘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하니라.”
다니엘이 하나님을 주일에만 예배 시간에만, 혹은 일이 잘 풀릴 때에만
섬긴 것이 아님을 불신자인 왕조차 인정해 주었습니다. 다니엘은 항상 하
나님을 섬겼습니다. 밤에도 낮에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봄에도 가을에도,
세월이나 상황의 변화에 아랑곳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지킨 경건
한 다니엘의 모습을 주목해 보십시오.
다섯째로, 다니엘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왕이 심히 기뻐서 명하여 다니엘을 굴에서 올리라 하매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 하나
님을 의뢰함이었더라”(23절).
흔히들 다니엘서를 대할 때마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서 사자의 이빨이 다
니엘을 물지 못한 극적인 사건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보다 더욱 놀
라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다니엘의 사람됨입니다.
다니엘이 상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을 의뢰하였기 때문입
니다. 자기를 잡아먹기 위해 으르렁거리는 사자들이 있는 굴 속에서도, 즉
참으로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에서도 다니엘은 쓰러지지 않고 하나님을 의
뢰했습니다.
“하나님, 당신을 신뢰합니다. 비록 상황은 이래도 하나님을 신뢰합니
다.”
이런 다니엘을 어찌 하나님이 지키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은 이
믿음을 귀하게 보셨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을 영화롭게 하시기 위해 기적
을 베푸셨습니다. 결국 그의 사람됨이 기적을 부른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 내 사업과 인간 관계가 번창하기만을 하나
님께 요구할 뿐, 자신의 사람으로 빚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에는 별 관심
이 없지는 않습니까? 당신은 다니엘 같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만
한 사람됨을 사모하십니까? 이제 고개를 돌려 인생의 황혼기를 맞은 위기
속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사람의 이 놀라운 인품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날이 갈수록 해가 더할 수록 더욱 주님을 닮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내 인생의 젊은 시절보다 내 인생의 황혼의 때에 더욱 순결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주님 앞에 서고 싶습니다. 젊었을 때 뿐 아니라 내 인
생의 기력이 쇠잔하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쓰임받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내 생애에서 일어나는 이 놀라운 풍성한 기적은 주를 신
뢰하는 이 믿음을 주께서 친히 귀하게 보셨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의 삶이
우리에게 던진 도전은 참으로 충격적입니다. 하늘을 우러러 참으로 한 점
부끄러움이 없었던 그의 생애, 원수조차도 그에게서 아무 틈도, 아무 허물
도 발견할 수 없을 만큼 순결했던 다니엘. 오 주여 또 하나의 다니엘이 되
어 남은 생애를 주의 거룩한 성령으로 불붙임 받아 이 악한 세대를 믿음과
충성과 순결로 살기를 원하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