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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 나무 의자
박경선(http://cafe.daum.net/packgungsun)
1. <무서운 개>
“맴맴, 치르륵 맴맴!”
매미가 이 나무 저 나무속에서 시원한 소리를 쏟아내며 노래하는 여름 날 오후, 방학을 맞은 쟈니는 신났다. 놀이터로 달려갔다. 미끄럼틀이 ‘야, 반갑다!’ 웃으며 반겨주었다. 광산촌에서 도시 가까운 아파트 동네로 이사 온지 한참 되었는데도 놀이터에 나와 놀아보지 못한 한을 오늘부터 풀게 되었다고 축하해주는 듯 했다. 자세히 보니 철재로 만든 미끄럼틀이 사람 얼굴을 하고 있었다. 몸 위쪽에 둥그런 얼굴 모양이 달려 크게 웃어주었다. 다가가서 보니 미끄럼틀은 날개를 두개 달고 있어 큰새가 날개를 활짝 펴고 친구를 부르는 것 같았다. 한쪽 미끄럼을 타고 내려오다 보니 미끄럼대에도 작은 얼굴 조각이 매달려 웃어주었다. 반대편으로 갔다. “왔니?” 반대편 미끄럼대에 달렸던 조그만 아이 얼굴도 반겨주었다. 쟈니는 기분이 좋아 철봉에도 매달려보고 시소에도 올라 타보았다. 차차 아이들이 놀이터에 조금씩 모여들었다. 쟈니는 다시 미끄럼을 타려고 미끄럼틀 계단을 올라갔다. 그런데 낯익은 남자애가 쟈니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야, 깜상, 비켜!”
쟈니 엄마가 일하는 식당집 아들 강철이였다. 강철이는 쟈니보다 한 학년 위인 5학년인데 학교에서 마주칠 때도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었다. 얼른 보고 피해도 뒷통수에 대고 “야, 깜상!”하며 한 번 불러주곤 가는 아이였다. 그래서 오늘도 쟈니는 얼른 비켜가고 싶어 반대편 미끄럼을 타려고 다가갔다. 미끄럼틀 밑에서부터 기어오르던 남자애가 쟈니를 올려다보며 외쳤다.
“으이, 깜상! 이것 타지 마.”
강철이와 늘 붙어 다니던 아이였다.
“왜?”
쟈니가 목소리에 힘을 주며 눈을 치떠보였다.
“모르냐? 너가 타면 미끄럼틀이 까매지잖아.”
쟈니는 오늘도 ‘참아 내면 돼!’하며 자기를 달래며 미끄럼틀 계단을 내려왔다. 곧장 집으로 가려고 빨리 걸었다. 놀이터를 돌아 나오는데 목줄 맨 개가 저만치 보였다. 덩치가 커서 주춤하는데 쟈니를 보더니 짖어대었다. 개와 함께 걷던 덩치 큰 아이가 개를 끌어안으며 간드러지는 소리로 말했다.
“우리 장군이 놀랐구나.”
쟈니는 덩치 큰 아이가 사나운 개를 끌어안는 바람에 고마워하며 발걸음을 내딛는데
“살갗이 새까매서 도둑놈 같지?”
하는 남자 아이의 말소리가 심장에 돌을 던지는 것 같았다. 발걸음이 그 자리에서 굳어버려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자기 개한테 하는 말일까? 내가 들으라고 하는 말일까?’
쟈니는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를 앙 버티고 서있었다. 깜상이라고 아이들이 놀려도 참아내면 된다고 늘 스스로 위로해 왔지만 이 말만은 분했다.
‘뭐, 내가 도둑놈 같다고?’
쟈니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참을 수 없는 말이었다. 덩치 큰 남자 아이와 목줄 맨 개가 멀리 사라진 뒤에야 쟈니는 천천히 발을 떼어 놓았다.
‘엄마는 나를 왜 까맣게 태어나게 했어? 내가 놀림 받을 줄도 모르고.”
엄마가 보기 싫었다. 살색이 검은 아빠는 더 보기 싫었다. 쟈니와 다른 살색을 하고 태어난 동생은 더 더욱 보기 싫었다. ‘확 죽어버릴 테야!’
2. <까만 새>
쟈니는 기분이 언짢아서 터덜터덜 둘레길을 따라 가다가 집으로 가지 않고 마을 뒤편에서부터 산 쪽으로 난 자드락길로 올라갔다. 산에서 부는 골바람이 확 안겨왔다. 쟈니는 두 팔을 벌려 바람을 맞았다. 훨훨 날아가고 싶었다. 계속 걸었다. 어디든지. 쟈니를 놀리는 아이들이 없는 곳. 엄마도 아빠도 동생도 없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요란하게 매미 소리를 품고 있던 나무들이 햇빛에 반짝이는 이파리를 팔랑이며 쟈니를 불렀다.
“그늘에서 쉬어 가!”
“다 싫어!”
쟈니는 나무숲을 지나 자꾸 자꾸 위로 올라갔다. 앞이 확 트인 전망 좋은 곳에 다달아서야 나무 의자에 털썩 쓰러졌다. 불어오는 바람을 누워서 맞으며 생각해 보았다. ‘어떻게 죽으면 아프지 않고 죽을까?’ 죽는 것은 괜찮은데 죽기 전에 아플 것이 더 겁이 났다. 오래도록 눈을 감고 궁리해보았다. 꼬박꼬박 졸음이 밀려와도 계속 생각에 잠겼다. 무엇이 쟈니의 눈앞을 가렸다. 머리에 뭐가 덧씌워진 듯해서 두 손으로 얼굴을 더듬어보았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까만 세상에 들어온 것 같았다. 쟈니를 덮어씌운 까만 물체가 갑자기 확 떠올라 높다란 참나무 꼭대기에 앉았다. 그 바람에 쟈니는 검은 봉지 세상 속에 갇혀버렸다.
“햐, 이 검은 비닐봉지에 죽고 싶은 아이를 담았다. 여기를 봐!”
쟈니를 품은 바람이 친구 바람에게 다가서며 이야기를 하였다. 친구 바람도 쟈니가 담긴 검은 봉지 속을 들여다보았다.
“햐, 이제 이 아이는 까만 새가 되었어. 저 꼭대기로 날려 보내자.”
“난 까만 새가 아니야.”
바람들에게 소리쳤다. 그러나 쟈니의 목소리는 검은 봉지 속에 갇혀 웅얼거렸다.
바람들은 순식간에 쟈니를 높다란 소나무 꼭대기에 훅 걸쳐놓고 가버렸다.
“여기 걸쳐 놓으면 어떡하라구. 난 뛰어내리지도 못하는데…… .”
쟈니는 검은 물체 속에서 내다볼수록 용기가 나지 않았다. 주위를 돌아보니 빼죽빼죽 나와 있는 잔가지들이 침을 잔뜩 달고 있다. ‘저 침에 이 물체가 찔려 터져버리면?’ 그대로 나뭇가지에 걸려버릴 것만 같았다. 이젠 아득한 땅보다 옆에 있는 작은 나뭇가지들이 더 무서워졌다.
“어머, 여기 까만 새가 사네.”
또 다른 작은 솔바람이 지나가다 쟈니의 세상 속으로 쏘옥 들어와 앉았다.
“어디 어디. 까만 새라고? 귀엽다!”
뒤 따라오던 솔바람도 까만 세상 속에 들어앉으며 말했다. 쟈니가 들어있는 까만 세상은 더 부풀어 올랐다. ‘옆의 잔가지에 닿아 터져버리면 큰일인데.’ 쟈니는 간이 바들바들 떨렸다.
“까만 새가 왜 여기에 앉아있지? 혼자서!”
뒤에 들어와 앉은 바람이 친구 바람에게 물었다.
“내가 도술로 보니까 이 까만 새는 아주 중요한 일을 할 새야. 까만 새 눈을 잘 들여다 봐! 눈 안에 흑진주가 담겨 있잖아.”
“내가 보기엔 흑진주가 아니라 외로움이 가득 담긴 눈빛 같은데…”
뒤 따르던 바람이 입을 삐죽거리며 대꾸하자 도술하는 바람은 더 큰소리로 말했다.
“맞아. 바로 그거야. 외로움이 단단해지면 큰 일을 할 수 있는 도술이 생기는 거야.”
‘뭐, 그런 도술이 다 있냐?’
뒤 따르던 바람은 혼자 궁시렁거렸고 쟈니는 쟈니대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 눈 속에 서려 있는 건 친구들한테 놀림 받을 때마다 느끼는 외로움이야. 그게 뭐 도술이 된다고? 그렇다면…….’
쟈니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깜상이라는 말로 가슴에 돌 맞을 때마다 참으면 돼 하고 마음 단단하게 먹어온 것이 흑진주로 변하는 도술이 될까? 그렇다면 내가 만든 흑진주로 무슨 중요한 일을 할 수 있을까?’
쟈니가 갇힌 까만 세상은 양떼구름 위를 지났다. 햇빛에 눈부시게 빛나는 양떼 목장은 쟈니가 여태껏 보지 못한 아름다운 환상의 세상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살맛나는 감동이 밀려왔다. 이제는 죽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져버렸다. 집에 돌아가서 식구들에게 양떼구름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야기 해주고 싶었다. 그런데도 바람들은 저네들 마음대로 쟈니를 안고 더 높이 날아올랐다.
“어머, 새다. 까만 새!”
이번에는 뭉게구름이 까만 것을 처음 보는 양 신기해하며 따라왔다.
“나 까만 새 아니야.”
쟈니는 까만 세상 속에서 힘껏 소리 질렀다.
“뭐라구? 내가 까만 새를 아느냐구? 알고말고. 너처럼 까맣게 날아다니는 새들을 엄청 좋아 하는 걸.”
“난, 쟈니야, 쟈니!”
쟈니가 부르짖자 뭉게구름이 따라오며 대꾸했다.
“자느냐구. 안 자. 너랑 놀고 싶어 따라가고 있잖아.”
하긴, 쟈니도 옛날부터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구름을 바라보며 노는 걸 좋아했다. ‘그럼, 그러던지!’ 쟈니는 지쳐 입을 닫았다.
“자, 여기 내려놓자! 흑진주 찾아 가기에 딱 좋다.”
두 바람이 순식간에 까만 세상 속에서 쏘옥 빠져나가버렸다.
“아니, 여기는……”
바람이 내려준 곳을 이리저리 돌아보던 쟈니는 숨이 멎는 것만 같았다. 바닷가 벼랑 위 바위틈에서 비틀릴 대로 비틀린 나무 가지 위였다.
‘어쩌면 흙도 없는 바위 틈새에 서서 살아 버텼지?’
쟈니는 나무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비리(절벽)길 낭떠러지에서 바다가 내려다보이자 오줌이 질끔거렸다.
“아, 나는 수영도 못하는데…”
여기서 떨어지는 순간 그대로 바다에 풍덩 빠져 숨 한번 못 쉬고 팍 죽을 것 같았다. 그 바람에 까만 세상 속이 출렁거렸다. 벌써 바다의 파도를 탄 듯 어지러웠다. ‘내가 까만 새로 보였단 말이지. 어쨌든 좋아. 나는 집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되니까.’
<3. 돌고래 아저씨>
쟈니가 들어있는 까만 봉지가 뒤집어지며 쟈니는 기절을 했다. 한참 뒤에 깨어나보니 쟈니는 등이 까맣게 반들거리는 돌고래 등 위에 올라타고 있었다.
“돌고래 아저씨, 제가 왜 아저씨 등에 올라타고 있지요?”
물 속 파도를 가르던 돌고래의 귀에 쟈니의 목소리가 들릴 리 없었다.
“아잉, 엄마!”
쟈니는 무서워 소리 내어 울었다. 돌고래 등을 치며 엄마 보고 싶어 울었다.
“야, 까만 비닐봉지야, 내 등에 타서 망정이지, 내 목에 들어오기만 하면 넌 죽을 줄 알아 라.”
“예, 제가 비닐봉지라고요, 그것도 까만 비닐봉지라고요?”
쟈니는 화들짝 정신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쟈니가 문구점에서 실내화를 사서 담아 올 때 쓰던 그 검은 비닐봉지가 쟈니를 담아서 검은 세상을 만들었던 게 분명하였다.
“그래서 바람들이 검은 비닐봉지의 어두운 속을 들여다보며 나를 까만 새라 했구나!”
쟈니는 용기를 내어 자신에게 씌워진 비닐봉지를 벗겨서 팔로 감쌌다.
“자, 보세요. 돌고래 아저씨, 저는 까만 비닐봉지가 아니고 아이에요. 사람이라고요.”
“흥, 까만 비닐봉지든 사람이든 다 나쁜 것들이지! 우리와는 서로 해치기도 하지.”
그 말에 쟈니는 바들바들 떨며 물었다.
“혹시, 돌고래 아저씨도 저를 잡아먹을 수 있겠네요? 흑흑!”
쟈니는 눈물이 났다. 까만 비닐봉지에 쟈니의 눈물이 떨어져 담겼다. 겁먹은 쟈니가 싼 오줌도 함께 담겼다. 그 비닐봉지는 돌고래가 물살을 가르는 바람에 흔들리더니 쟈니의 눈물과 오줌이 돌고래 입속으로 쭈르륵 미끄러져 흘러 들어갔다.
“툇. 툇! 이 고약한 지린내!”
돌고래는 쟈니의 눈물과 오줌을 거듭 거듭 뱉어 내었다.
“돌고래 아저씨, 저를 잡아먹을 거지요? 흑흑! 저는 깜상이라고 늘 놀림만 받았어요. 하지만 그래도 이제, 좋은 일 좀 해보려고 마음먹었는데 죽게 되다니…….”
쟈니가 질질 울며 이야기 하였다. 그러자 돌고래는 ‘허허허!’하고 물분수를 하늘로 쏘아 올리며 콧방귀를 뀌었다.
“깜상이면 어떠냐? 난 까만 돌고래지만 얼마나 귀한 몸인데. 그리고 우리 바다 깊은 곳에 사는 흑진주는 얼마나 귀한 몸인데. 너도 보니 까만 몸이네, 귀한 몸이야. 너를 깜상이라고 놀리는 사람아이들은 자기가 가진 것 밖에는 볼 줄 모르는 바보들이라서 그런 거야.”
그 말에 쟈니는 용기를 내어 흑진주를 찾아내어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흑진주라. 흑진주는 기껏해야 사람들 목에 매달려 다니는 장식품이잖아. 그보다 우리 고래들에겐 바다에 떠다니는 까만 비닐봉지를 주워내는 일이 더 좋은 일이야. 비닐봉지를 먹는 건줄 알고 먹다가 목에 걸려 죽은 고래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아냐?
쟈니는 그 순간, 돌고래아저씨한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흑진주를 찾기보다 바다에 떠다니는 비닐봉지들을 주워내는 일을 먼저 해야겠다고 진심으로 말했다.
“그래, 내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을 줄 아는 걸 보니, 너도 나쁜 녀석은 아니구나. 내 등에 납작 엎드려 견뎌라. 내가 육지 가까이 데려다 줄 테니.”
“정말이죠? 돌고래 아저씨! 고맙습니다.”
“고맙긴, 너 같은 지린내 나는 물건을 바다에 버려두면 우리 사는 바다가 더러워져서 육지로 내 보내려는 것뿐이야. 뭐!”
돌고래는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어쨌든 쟈니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희망이 생겨, 고마워서 울었다. 계속 눈물이 났다.
“너 계속 울면 내가 등을 확 털어 버릴 테다. 그러면 넌 어떻게 될지 알겠지?”
‘어떻게 되긴. 그대로 바다에 빠져 꼴깍이지!’
이제 쟈니는 참기로 했다. 정신 차리고 엄마한테 돌아가야만 하니까. 쟈니는 엄마한테 돌아가는 꿈을 꾸었다.
4. <까만 성모상>
돌고래는 육지 가까이서 쟈니를 물 밖으로 밀어 보내주었는데 바닷바람이 확 불어오더니 쟈니를 막아서며 말했다.
“까만 새! 아직도 죽고 싶니? 어떻게 죽고 싶니? 내가 도와 줄게.”
쟈니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래, 아이들한테 깜상이라고 놀림 받을 때는 자드락길로 올라가 산에서 그냥 눈 감고 죽고 싶었지. 그런데 지금은 …….’
“아니야. 죽기 싫어. 그리운 우리 식구들이 보고 싶어 못 죽겠어. 집에 갈 테야.”
“진작 그러시지. 변덕쟁이!”
바닷바람이 쟈니를 끌어안는가 싶더니 바닷가 동굴 앞으로 밀어붙이며 말했다.
“엄마 잘 찾아 가. 이 변덕쟁이야!”
바람이 가버리자 쟈니는 무작정 동굴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우리 엄마가 이 동굴 속에 있다고?’ 동굴 속을 걸으며 생각해도 이제는 분명히 죽고 싶지는 않았다. 더 보람 있게 살고 싶었다. 동굴의 시원함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깊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곡예사> 책에서 본 성모님이 거기 기다리고 계셨다.
“성모님, 곡예사 책 속에서 어떻게 빠져나왔어요?”
쟈니가 물었지만 성모님은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계셨다. 쟈니는 서러워서 성모님께 울며 일러바쳤다. 아이들이 깜상이라고 놀린 이야기며 까만 피부색이 싫어 화장실 문을 잠궈 놓고 하루 종일 땟솔로 문질러 봐도 살갗이 벗겨져 피만 났다는 이야기까지. 그래도 성모님은 그냥 듣고만 계셨다.
“혹시 벙어리 성모님이세요?”
성모님께 별별 욕을 다해대며 울었다. 세월이 흐르긴 많이 흘렀나 보다. 쟈니 앞에 서있던 성모님 모습이 까맣게 변해서 계셨다.
“성모님! 피부가 나처럼 까매졌네요.”
그제야 성모님이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까만 피부를 놀리는 아이들을 마음에 두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그렇게 말씀하시고 걸어가는 뒷모습이 꼭 쟈니의 엄마를 닮은 것 같았다.
“엄마! 엄마아~!”
쟈니는 사라져가는 엄마를 따라잡기 위해 달렸다. 한줄기 파란 바람이 쟈니를 태워주었다. 쟈니는 파란 바람을 타고 엄마 뒤를 따라갔다. 귀에 익은 노랫소리도 따라가고 있었다.
“바람의 빛깔이 뭔지 아나요/바람의 아름다운 저 빛깔을/얼마나 크게 될지 나무를 베면/알 수가 없죠/서로 다른 피부색을 지녔다 해도/그것은 중요한 게 아니죠/바람이 보여주는 빛을 볼 수 있는/바로 그런 눈이 필요한 거죠/아름다운 빛의 세상을 함께 본다면/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어요.”
쟈니가 눈을 떠보니 나무 의자에서 잠들었던 모양이다. 옆으로 기울어져 잤던 몸을 바로해서 앉자 오카리나를 부는 아저씨가 보였다. 아저씨 얼굴이 꿈에서 본 성모님 얼굴과 닮았다.
“얘, 날씨가 덥긴 덥구나. 이런 데서 낮잠을 다 자고…”
쟈니는 침을 질질 흘리며 잔 모습을 들켜버린 것이 부끄러워 얼른 둘러대었다.
“아저씨, 저 그 노래 좋아해요. 오연준 아이가 부른 바람의 빛깔이지요?”
“그래 나도 좋아해. 바람의 빛깔!”
몸집이 자그맣고 얼굴이 새까만 아저씨가 씨익 웃는데 하얀 이빨이 멋있어 보였다. 아저씨는 ‘바람의 빛깔’을 다시 오카리나로 연주하셨다. 쟈니는 숲속 나무 의자에 앉아 ‘바람의 빛깔’ 노래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빨려 들어갔다. 성모님과 엄마 뒤를 따라가는 기분이었다. 마음이 편안해져 왔다. 쟈니 눈 속에 담겨있던 외로운 흑진주는 세상에 좋은 일을 하며 살아야겠다는 쟈니의 꿈으로 아름답게 빛났다.
20180719. 43쪽
작가 약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