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순함 속에 감추셨다가 같은 방법으로 자신을 나타내시는 하나님
(God Hiding Himself In Simplicity, Then Revealing Himself In The Same)
이곳에서 인용된 성경은 GOOD TV 다번역 영어 킹 제임스(흠정) 역이며
메시지 책자에서 말씀하고자 하는 주제에서 최대한 벗어나지 않도록
편집하였음을 미리 알립니다.
네빌 형제님,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형제님을 축복하시길 바랍니다. 친구분들, 안녕하십니까?
오늘 아침 다시 성전에 와서 아름다운 구조를 보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주의 집에 질서정연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보게 됨은, 정말로 제 인생의 절정기중의 하나인 것 같습니다.
어제 여기에 와서 건물 모양을 보고 저는 무척 놀랐습니다. 저는 그것이 이런 식으로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들이 그린 청사진을 보았을 때, 한 쪽에 작은 방이 있는 것을 보았는데, 지금 보니까 그 방은
아름다운 곳이군요. 그리고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이 아름다운 곳을 주신데 대하여 감사드립니다.
오늘 아침, 저는 아내와 아이들의 안부를 전합니다.
그들은 이번 이 헌당예배와 이번 주간 동안 그리스도께 헌신하기 위하여 이곳에 무척 오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고 있어서 결석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들은 옛날에 살던 집에 대한 그리움을
거의 다 잊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여러분들을 그리워하는 마음만은 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럴 수가 없습니다. 친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저는 도처에 있는 친구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오래된 친구는 뭔가 다릅니다. 아무리 새 친구들을 사귄다 해도, 새 친구는 그래도 오래된 친구만은 못합니다.
제가 어디를 가더라도, 이곳은 항상 신성한 곳이 될 것입니다.
약 삼십 년 전 여기가 진흙투성이의 연못 바닥이었을 때, 저 는 이 땅을 예수 그리스도께 바쳤습니다.
이곳은 전체가 연못이었습니다. 그래서 도로들이 거기서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이곳에 있었던 연못을 피하기 위해서 길이 빙 둘러서 나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곳 연못에선 연꽃이 폈었습니다.
그런데 연꽃은 아주 이상한 꽃입니다. 비록 진흙 속에서 태어나지만 그 꽃은 진흙을 뚫고 물을 통과해서 자신의
아름다움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꼭대기까지 빠져나와야만 합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바로 그 일이 이곳에서 일어난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 때 이후로, 작은 연꽃이 위로 계속 올라
왔습니다. 그리고 물 꼭대기까지 다다랐을 때, 그것은 날개들을 펼치고, 그 작은 꽃잎들이 나와서 저 산 밑의 백합
꽃을 반영했습니다. 그것이 오래토록 서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완전히 봉헌된 집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막 자체는 1933년 봉헌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헌당 예배를 간단하게 다시 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고,
특히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과 헌신으로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 사람들에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러분 각자 모두에게 이 교회를 그리스도께 바치기 위하여 헌금과 기타 등등을 내 주신데 대하여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저는 무척 감사를 드리고 있는데, 저는 이 일에 헌신적으로 봉사한 여기 계신 우리 교회의 훌륭한 형제들,
우리의 고귀한 형제인 뱅쓰 우드형제, 로이 로버슨 형제,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전심을 다해 이곳이 예전에 있던
식으로 올바르게 지어지고 있나 보려고 여기 머물면서, 건축하는데 몇 달을 보낸 다른 여러 형제님들을 위해서
이런 말을 할 수 있게 되어 성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제가 이 설교단을 보려고 들어왔었는데, 제 평생 늘 원했던 것이었습니다! 저는...우드형제는 제가 어떤 설교단을
좋아하는지 알고 있었던 겁니다. 그는 자기가 만들어 주겠다고 한 번도 말하지 않았는데, 만들어 주셨습니다.
저는 건물과 구조가 어떤지 살펴봤는데, 그것은 그저, 오, 최고입니다. 지금, 제 마음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군요.
아시겠지만, 말로는 할 수가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이해하실 겁니다. 이 장소를 주님의 집인 현재의 건물로 만들기
위하여 하신 모든 일과 공헌으로 여러분 각자가 상을 받기를 바랍니다. 이제,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안팎으로 아름답기 그지없는 이 건물은...제 아내의 형제인 주니어 웨버가 벽돌 공사를 맡았습니다.
저는 이 보다 더 잘 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완벽하게 해냈습니다.
여기에 계신 형제님, 저는 그 분을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그 분이 음향장치를 했습니다.
음향효과에 있어 이와 같이 낮은 건물에서도 소리가 되울리지 않습니다. 음향 기기들은 여기 천정 속에 여러 가지
다른 방식들로 장치되어 있습니다. 제가 어디에 서든지, 똑같습니다. 각 방에는 확성기가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듣고 싶으면 어느 방향에서나 들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일들을 행하신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이었다고 믿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 분을 경배드릴 수 있는 건물을, 약 삼십 년 전 것보다 훨씬 좋은 건물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진흙 바닥, 톱밥 위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 오래된 석탄 난로 옆에 앉아 있었습니다.
건설업자인 우드형제와 한 형제와 로버슨 형제가 제게 말을 할 때, 그 벽기둥들이 있는 곳에 그 오래된 난로들이
놓여 있었는데, 건물을 가로지른 서까래에 불이 붙어 약 60 내지 90 센치가 타 들어갔습니다.
왜 그 서까래가 타서 무너지지 않았는가 하면 오직 하나님께서 그것을 막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때 서까래가 탄 후 성막의 무게가 다 그것 위에 놓여 졌을 때, 서까래가 떨어져 내려오지 않은 이유는
다만 하나님의 손길이 있어서 였습니다. 지금 건물은 철근으로 기초가 되어 있고,
튼튼하게 지어져서 땅 위에 서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 깊이 감사드리는 뜻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내부를 올바르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곳이 우리가 찾아오는 아름다운 건물이 될 뿐만 아니라, 이곳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이 들어와
계신 분들 모두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성품을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곳이 우리 주님께 구별하여 바쳐진 장소가 되기를, 성별된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구조가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우리는 정말로 그것을 감사히 여기지만, 교회의 아름다움은 사람들의 성품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곳이 항상 아름다운 하나님의 집이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그런데, 처음 모퉁이 돌을 놓았던 헌당예배 때는, 위대한 환상이 왔고, 저는 교회를 봉헌하던 날 아침에
모퉁이 돌 안에 그것을 써 넣었습니다.
여러분은 몇 분 전에, 제가 나오는데 왜 그리 오래 걸리나 궁금하셨을 지도 모릅니다.
제가 이 새 교회로 오기 전에 저는 먼저 사무실 안에 서서 어떤 젊은 남녀를 결혼시켜야만 했습니다.
그 일이, 제가 그리스도의 신부를 그 날의 예식에 준비시키는,
그리스도께 충실한 목사가 될 예표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우리가 처음에 했던 대로 합시다. 우리가 교회를 처음 봉헌하여 시작했을 때, 저는 젊은이에 불과했습니다.
제가 모퉁이 돌을 놓았을 때 저는 스물 한 살인가 스물 두 살이었습니다. 그 때 제가 결혼도 하기 전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경배할, 하나님께 정말로 질서가 잡혀 있는 장소를 늘 보기 원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일을 아름다운 건물로가 아니라 성별된 생활로 할 수 있습니다.
성별된 생활로만 우리가 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자 봉헌을 하기 전에, 봉헌 기도를 드리고 성경을 좀 읽고 하나님께 교회를 다시 바치겠습니다.
그리고서 저는... 오늘 아침에는 복음 전도에 대한 말씀을 전해서 앞으로 있을 제 설교들과 연결시키려고 합니다.
그리고 오늘밤에는, 일곱 교회 시대로부터 일곱 인으로 섞여져 들어가고 있는 요한계시록 5장을 다루고 싶습니다.
월요일 밤에는 흰 말을 탄 자, 화요일 밤에는...검은 말을 탄 자, 그리고 계속 내려가면서 네 말 탄자들에 대해서
설교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섯째 인이 열리고.
그리고서 일요일 아침에는, 주님의 뜻이라면 다음 주 일요일 아침에는, 나중에 가서 알아보고 그것에 대해
광고하겠습니다. 아마 다음 주 일요일 아침에는 교회 안에서 환자들을 위해 기도 모임을 열 것입니다.
그리고나서 일요일 저녁에는 다 끝내고...주님께서 우리가 한 절 밖에 안 되는 짤막한 일곱째 인을 열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간구합니다. 그 절은 이렇습니다. “하늘이 반시 동안쯤 고요하더니,” 그 침묵으로 인해서.
그런데, 저는 이 인들이 무슨 뜻인지 모릅니다. 어쩌면 오늘 아침 이곳에 계신 분들처럼 저도 그것들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고 있습니다. 인간이 내놓은 교회의 이론들이 있지만 그것은 일곱 인을 절대로 다루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보시면, 그 뜻은 영감에 의해서 와야만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이어야만 합니다.
그 분이 그 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인데, 그 분은 어린 양입니다.
그래서 오늘 밤 그 구속의 책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픈 분들을 위한 기도 모임을 말씀드리지 않는 이유는 제가...저는 친구 몇몇과 함께 있으면서 시간을 전부
공부와 기도에 바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여길 떠나서 서부로 가기 전에 일곱 천사가 날아오는 것을
환상으로 보았음을 아십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나중에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교회 건물 안에서, 제가 생각하기로는, 교회 건물이 봉헌되었다면, 잠시 후에 하나님께 경배드리기 위하여
봉헌될텐데, 우리는 교회 건물을 그런 식으로 지켜야만 합니다. 우리는 이 건물 안에서는 절대로 사거나 팔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예배당 안에서는 절대로 어떤 장사도 해서는 안됩니다.
이 곳 안에서는 결코 해서는 안됩니다. 말하자면, 목사들이 들어와 책이나 기타 등등을 팔게 허락해서는 안됩니다.
그 일이 무슨 일이든지 간에, 그 일을 할 수 있는 다른 장소가 있을 겁니다. 우리는 우리 주님의 집에서 팔거나
사지 않아야 합니다. 주의 집은 예배드리는 장소이고, 거룩한 곳이며, 그 목적을 위해서 구별된 장소입니다.
그렇죠? 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좋은 장소를 주셨습니다.
이곳을 하나님께 바치고 아울러 우리들 자신도 하나님께 바칩시다.
그런데, 이 말은 좀 무례한 말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예배당은 방문하는 장소가 아닙니다.
예배당은 예배드리는 장소입니다. 이 곳 안에서는 예배드리는 말이 아니라면 절대적으로 필요한 말 외에는
한 마디라도 중얼거려서도 안 되고 서로 속삭여서도 안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절대로 우르르 모이면 안 됩니다.
건물 내에서 절대로 뛰어다녀서도 안 되고 아이들을 뛰어 돌아다니게 해서도 안 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면서,
얼마 전에 이렇게 해야겠다고 느껴, 우리는 그런 모든 일들을 관리할 수 있었기 때문에 건축을 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것을 여기에 정착시켰습니다. 물론, 처음 나오신 분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 교회 성도들은 이 건물이 전능하신 하나님께 예배드리려고 바쳐진 장소임을 아실 것입니다.
우리들 자신을 바치면서, 우리가 성전으로 들어갈 때는, 서로 조용히 하고, 하나님을 경배한다는 걸 명심합시다.
여러분이 서로 만나고 싶다면, 만날 수 있는 장소는 얼마든지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절대로, 여기저기 걸어 다니지 마십시오. 그런 곳에서는 듣거나 생각할 수도 없고, 다른 사람이 들어오면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게 만드니까요, 아시겠죠. 너무나 소란하고 그렇습니다. 소리를 내는 것은 인간적인 것입니다.
저는 그런 일들이 여러 교회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아 왔는데 기분이 몹시 안 좋았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주님의 성전에 서로 만나러 온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곳에 하나님을 경배하러 왔고
그리고는 집으로 갑니다. 이 성전은 예배드리는 데 바쳐진 곳입니다. 밖으로 나가서는 올바르고 거룩한 대화라면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지 말하십시오. 서로서로의 집엘 가십시오. 서로서로를 방문하십시오.
하지만 여러분이 저 문을 들어오실 때는, 조용히 하십시오.
여러분은 여기에 주님께 얘기를 하러 옵니다, 그렇죠, 그러니 주님이 여러분에게 말씀하시게 하십시오.
기도의 문제점은, 우리는 말을 너무 많이 하고 잘 듣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여기 들어오시면, 주님을 기다리십시오.
그런데 옛날 성막 안에서, 봉헌하는 그 날 참석하셨던 분이 오늘 아침에는 한 분도 안 계실지 모릅니다.
그 날 얼리히시장이 음악을 연주했었습니다. 저는 그 장소를 봉헌하려 여기 세 개의 십자가 뒤에 서 있었습니다.
안내인들은 저 문에 서서 아무도 얘기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밖에서 얘기를 다 했으면,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만약 여러분이 기도하고 싶으면, 가만히 제단으로 나와서 조용히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좌석으로 돌아가서 성경책을 펴십시오. 옆에 있는 사람이 무엇을 하든지, 그것은 그 사람의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아무 할 말이 없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 사람에게 말을 하고 싶어지면, 속으로 이렇게 말하십시오,
“나는 나중에 밖에서 그를 볼 것이다. 나는 이곳에 주님을 경배하러 와 있다.”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든지 아니면 조용히 앉아 계십시오.
다음, 음악은, 거티자매는, 오늘 아침 깁스자매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래된 피아노가 제가 기억하기로는
이 구석 뒤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구주의 십자가 보혈로”를 부드럽게 연주하곤 했습니다.
아주 부드럽고 조용한 음악을, 몇 곡 연주하고, 그런 다음 예배드릴 시간이 되면, 찬송 인도하는 분이 나와서
회중들이 찬송을 두세 곡 부르고, 그 다음에 노래 잘 하는 분이 몇 분 있으면 특송을 불렀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법썩을 떨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나서 계속 음악을 연주했습니다.
그 다음 제가 그 소리를 들으면, 저는 제가 나올 시간이 됐음을 알았습니다.
회중들이 기도하고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고 있는 가운데, 목사가 걸어 들어오면,
여러분은 틀림없이 천국으로부터 말씀을 들을 것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아무도 그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혼란스런 가운데로 걸어 들어오면, 너무나 혼란스러워져서, 성령이 근심하게 되고,
우리는 그런 것을 원치 않습니다, 절대로. 우리는 이곳에 예배드리러 오길 원합니다.
우리는 좋은 가정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잠시 후에 그것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집으로, 우리는 친구를 방문하기도 하고, 친구를 데리고 오기도 합니다. 이곳은 주님의 집입니다.
이제, 어린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제, 어린 애기들이 있습니다. 애기들은 아무 것도 모릅니다.
애기들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원하는 것에 대해서 우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마실 물을 원하고 어떤 때는 관심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방 하나를
바쳤습니다. 목록에 보면 그 곳은 “울음방”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바로 저의 정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 곳은, 다시 말해서, 어머니들이 애기들을 데리고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여기 강대상에 있는 저를 절대로 방해하지 않을 겁니다. 아마 기름부음을 받고 있으므로,
저는 그것을 알아차리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가까이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런데 그들은 여기에 설교를 듣기 위해 온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어머니들은... 애기들이 칭얼대기 시작하면,
여러분은 애가 칭얼대는 걸 막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그것은... 여러분은 애기를 데리고 와야 합니다.
진정한 어머니라면 자기 애기를 교회에 데리고 오기를 원할겁니다. 그리고 그것은 여러분이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저기에 이 예배실의 네 모퉁이와, 예배실 전체를 볼 수 있는 방이 하나 있습니다. 확성기가 거기에 있어서
원하는 대로 음량을 조절할 수 있고, 한 쪽에는 조그만 좌변기와 세면대가 있고 어머니들이 편리하도록 완벽하게
모든 것들이 있습니다. 앉을 수 있는 의자와 그런 것들이 있고 애기의 기저귀를 갈 필요가 있으면 거기 앉아서
갈아 채울 수도 있고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모든 게 다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 다음에, 대부분 십대 아이들이 때로는 어른들까지도...아시다시피, 젊은이들이 교회 안에서 쪽지를 주고받거나,
장난을 치거나 다른 짓을 교회에서 합니다. 여러분들은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 정도의 나이는 되었습니다.
그렇죠? 여러분들이 그래선 안 된다는 걸 더 잘 압니다. 아시겠죠?
만약 여러분이 언젠가 진정한 남자가 되길 원하고 하나님의 왕국에다 가정을 이끌려면, 처음부터 잘 시작하십시오,
아시겠죠, 그리고 올바른 행동을 하시고 바르게 행하십시오,
그리고 안내인들은 구석에 서 있다가 소란이 일어나면, 그들은 임명이 되어 그러한 임무가 주어졌는데,
이사들은 이 앞 쪽에 앉으시고, 누군가가 그른 행실을 하는 경우에, 그들은 그 사람에게 조용히 하라고
당부할 사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앉았었던 것이 더 좋았을 것입니다.
듣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주의 말씀을 듣기 위한 그 목적 때문에 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도 이곳에 그 목적으로 왔습니다, 주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그러므로 누구나가 다 말씀을 듣기 원하니까
될 수 있는 대로 조용하게, 될 수 있는 대로 조용하게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즉, 과다한 말과 소란을 삼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주님을 경배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야만 합니다.
여러분이 이곳에 온 이유는 주님을 경배하기 위함입니다. 그렇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싶어지고,
소리를 지르고 싶어지면, 그냥 하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이 여기에 온 이유이며, 자신의 방식으로 주님을 경배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얘기를 하거나 쪽지를 건네거나 다른 사람이 주를 경배하지 못하도록 하면 아무도
주님을 경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이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우리 교회에서, 우리 회중들 가운데에서 규칙으로 세우고, 그것을 이 건물에 따른 규칙으로,
이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와 말씀을 전하는 목적에 바쳐질 것입니다. 기도하십시오! 경배하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이 여기에 와야 하는 이유입니다. 경배드리려고, 그리고나면.
그리고 또 한 가지, 예배가 끝났을 때 사람들은 대부분 교회 안에서... 저는 항상 이 곳에 없기 때문에, 아시겠죠,
떠나 있기 때문에, 저는 ...않습니다--그런 일이 이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개, 저는 설교할 때에도, 기름부음이 오고, 환상이 나타납니다. 그러면 저는 탈진상태가 됩니다,
저는 방 안으로 걸어 들어가고, 아마도 빌리나 다른 누군가가 절 태워 집으로 데려가서 제가 그것에서 벗어날
때까지 저를 잠시 쉬게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대단한 긴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저는 여러 교회들을 보았는데, 성전에서 아이들을 이리저리 마구 뛰어 다니게 놔두고, 어른들도 서서
저쪽 끝에 있는 사람을 소리쳐 부르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것은 그 날 저녁이든지, 시간이 언제든지 간에, 그날 밤 예배를 망치는 좋은 방법입니다. 아시겠죠?
예배가 끝나자마자, 예배당을 나가십시오. 그 때는 여러분은 경배를 끝마쳤습니다.
그 다음에는 밖으로 나가 서로 얘기하고 여러분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하십시오. 만약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거나 만나고 싶다면, 그들과 함께 가든지 그들의 집엘 가든지 어디로 가든지 간에,
그러나 예배 실에서는 말하지 마십시오. 이곳을 하나님께 바칩시다.
이곳은 우리가 그 분을 만나는 주님의 만남의 장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법이 성전으로부터 나갑니다,
물론. 그래서 저는 그렇게 하는 것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리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와서 여러분들 가운데 은사들이 내리기 시작하는 것을 보게 되면... 그런데, 대개 그런 일이...
저는 그런 일이 결코 여기에서는 없으리라고 믿는데--사람들은 새 교회를 갖게 되면, 여러분이 먼저 알아야
할 것은, 회중들은 형식을 차리며 굳어지기 시작합니다. 여러분은 결코 그렇게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이곳은 예배드리는 곳입니다. 이곳은 주님의 집입니다. 그런데 만약 영적인 은사들이 여러분들 가운데 오게 되면...
제가 없을 때 사람들이 이곳을 그들의 가정으로 삼고자 제각기 다른 주(州)로부터 이곳으로 이사를 했다는 걸
전 압니다. 저는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감사드립니다.
청년으로서, 헌당예배를 드리고, 정초식을 올렸던 그 날 아침에, 저는 정초가 서 있을 동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을 보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제가 성막을 바쳤을 때, 수천 달러의 빚을 졌습니다.
여러분이 이 정도의 회중들에게서 헌금을 걷는다면 30내지 40센트를 모으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갚아야할 빚은 한 달에 150 달러에서 200달러였습니다. 제가 어떻게 그 일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저는 직장에 다니고 있었으므로 제가 빚을 갚아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목사로서 17년간 봉급을 일 센트도 받지 않았고, 오히려 제 생활가운데서 나오는 제가 가진 모든 것을
주었습니다. 저 뒤에 있는 조그마한 상자에 들어가는 돈은 다 하나님의 나라의 일로 썼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언하고 예고하기를 일 년이 되기 전에, 이곳이 차고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 번은 사탄이 흠을 하나 잡아, 소송으로 사기 쳐서 그것을 빼앗아 가려고 했습니다. 어떤 남자가 일하다가 발을
다쳤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그냥 내버려 두었다가 고소를 했고 성막을 뺏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몇 주 동안 저는 골치를 앓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모든 오해들과 예고들과 사람들이 말했던 것에도 불구하
고, 이 교회는 가장 아름다운 예배실 중의 하나로서, 미국에 있는 좋은 교회들 중의 하나로서 오늘날 서 있습니다.
여기에서 전 세계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나가고 있습니다.
전 세계로, 그것은 계속 하늘 아래 우리가 아는 모든 나라로부터 전 지구를 돌고 있습니다.
세상을 돌고 있습니다. 이 사실에 대해서 고맙게 여깁시다. 이 사실에 대해서 감사히 여깁시다.
그런데 우리가 거할 수 있는 장소와 지붕 아래 머리를 둘 수 있는 장소를 가지고 있는 이상, 앉아 있을 수 있는
깨끗하고 좋은 교회를 가지고 있는 이상, 우리들 자신을 새롭게 임무에 바쳐 우리들 자신을 그리스도께 바칩시다.
우리의 귀하신 형제이자 진정한 목사이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종인 네빌형제는. 그는 메시지를 아는 한, 전심으로
그것을 꼭 붙듭니다. 맞습니다. 그는 온화한 사람입니다. 그는 약간 무서워하는데,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 제 뜻은
그게 아닙니다. 그는 너무나도 온화해서 언성을 높이지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날카롭고 절단하는 것 같은 말들을.
예를 들어서 “앉으시오!”라든가 “조용히 하시오!”같은 말들을. 저는 그 사실을 알아차렸고 테이프에서 나는 소리를
열중해서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 그것은 제가 한 말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이 말은 모두 테이프에 녹음이 되고 있습니다. 모든 것들이 녹음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발, 집사들은 모두 자기 임무의 직책을 잘 담당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았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그 직책을 신성하게 지키십시오. 아시겠죠? 모든 이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는...을 전해야 합니다.
그런 말을 해야 하는 것은 목사가 아닙니다. 집사들입니다, 왜냐하면 집사들은 교회의 경찰이기 때문입니다.
즉, 만약 젊은 연인들이 밖으로 나가서 차 경적을 울리거나, 여러분은 아실 겁니다, 그들이 대개 어떤 짓을 행하고
아니면 그와 비슷한 짓을 하는지, 예배 중에 그러건 바깥에 나가서건. 그런데 어머니들은 딸을 이 교회로 가라고
보냈는데, 딸은 어떤 믿지 않는 청년과 함께 빠져나가, 차를 타고 달아나고, 그녀의 엄마는 딸이 교회에 있을거라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집사는 그런 일을 처리해야만 합니다. “너 여기로 들어와서 앉아 있든가 아니면 내가
널 내 차에 실어서 엄마에게 데려다 주겠다.” 아시겠죠? 여러분이 그렇게 해야 합니다.
명심하십시오, 사랑은 잘못을 고쳐주는 것입니다, 그렇죠, 언제나. 진정한 사랑은 잘못을 고쳐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 고침 받는 것을 참을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어머니들은 이제 저기에 애기들을 위한
장소가 있다는 걸 압니다. 어린이 여러분들은 예배실을 뛰어다녀서는 안된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렇죠?
어른들인 여러분은 예배실에서 말하고 대화를 해서는 안됨을 아셨습니다. 아시겠죠? 그러지 마십시오.
그것은 잘못하는 일이니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기록된바, 내 집은 예배하는 집, 기도하는 집이 될 것이며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사고팔고 있었으며, 예수님은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사람들을
성전 밖으로 쫓아 내셨습니다. 우리는 정말로 이 곳 성전 안에서 그런 일이 생기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생활과 우리의 교회와 일과 봉사와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하나님의 나라에 바칩시다.
이제, 저는 봉헌 기도를 드리기 전에 성경 몇 구절을 읽고 싶습니다. 그런데, 사실 재 헌당입니다.
왜냐하면 30년 전에 이미 봉헌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그리고나서, 우리가 이 성경 구절을 읽고 그것에 대해
몇 분 동안 얘기를 하고나면,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제가 말하려고 했던 게 있었는데. 네! 녹음기와 그런 것들이 있었던 곳에, 우리는 지금 녹음하기를
원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특별히 녹음기들을 연결할 수 있고 주 마이크에서 직접 들려오는 모든 것들이 설치되어
있는 방이 있습니다. 방도 여러 개 있고, 침례식을 위한 침례복과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항상 좋지 않은 감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성경을 정말로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말입니다. 교회 안에 그리스도가 달린 십자가를 가지고 있는 점에 대해서.
그것으로 인하여 여기에서 일이 있었던 때를 저는 기억합니다. 세 개의 십자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형제가
다른 교파가 그리스도가 달린 십자가는 카톨릭을 의미한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서는 무척 흥분했습니다.
저는 어떤 성경을 연구하는 분이든지 누구든지 아니면 어떤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든지 카톨릭은 그리스도가 달린
십자가에 대해 선택권을 가졌다고 말할 사람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은 카톨릭교를 나타내는게
아니라 하나님을, 나라를 나타냅니다. 그런데 성자는 카톨릭교를 나타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한분의
중보자가 있음을 믿습니다. 그 분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나 카톨릭교인들은 온갖 종류의 중보자를 믿고 있는데,
수천 명의 남자와 여자 중보자들이 있습니다. 착한 카톨릭교인이면 누구라도, 죽으면 거의 중보자가 됩니다.
자,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초대교회에 대한 고대 역사에 따르면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자신들을 그리스도인으로서 알리고 증명하기 위해
어디를 가든지 등에 십자가를 지고 다닌 사실을 여러분 아십니까? 이제 와서, 카톨릭교인들은 그 사람들이 바로
자기들이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자기네가 초기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 카톨릭교회는
조직도 되지 않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를 지고 다녔습니다. 사람들이 “십자가등(crossback)”이라고
말하는 것을 여러분은 들으셨을 겁니다. 여러분은 그 말을 카톨릭교인에게 붙입니까?
십자가등이 진짜 카톨릭교인이며 세계의 보편적인 성령교회입니다. 맞습니다. 우리가 카톨릭교인들입니다.
우리가 최초의 카톨릭교인들, 성경을 믿는 카톨릭교인들입니다. 그들은 조직된 로마 카톨릭교인들입니다.
우리는 조직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 침례를 유지하며, 초대교회가 갖고 있었던 모든 것들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로마 카톨릭교회는 그런 것들을 하나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죠?
그래서, 사람들이 그 십자가상을 여기에다 걸어 놓았습니다. 그 십자가상은 예수님께서 그 나무 아래서 기도하셨던
감람나무로 조각된 것인데, 수년에 걸쳐 만들어졌고 아갠브라이트 형제가 제게 준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이 교회와 함께 바치고 싶습니다.
누가 걸었는지 얼마나 적절한 장소입니까. 저는 누가 그것을 저기에 걸어 놓았는지 모릅니다.
제--제 왼쪽에다. 그가 오른쪽에 있는 강도를 용서하셨더라. 그 강도는 접니다.
그리고 또 하나 그것이 나타내는 것은 예수님의 머리는 숙여져 있는데, 여러분은 그 분의 고통을 볼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그 머리는 제단 위를 쳐다보고 있고 그 분은 죄인인 여러분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내려다보실 것입니다. 나중에 제단 앞으로 죄인들을 부르는 시간에는 여기에 있는 조그마한
불을 켤 것이고, 그 불은 그 얼굴 위를 비추고...사람들이 여기에...할 때에.
여러분은, “왜 그게 필요합니까? 우리는 우상을 가지고 있어서는 안됩니다.”하고 말할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너희를 위해 새겨진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룹 둘을 만들고 날개가 스치게 하고 그것들을 사람들이 기도하는 속죄소에 두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것은 몰라서 하는 소리입니다. 그렇죠?
그것은 영감을 받아 제자리에 달려 있습니다. 저는 제가 오른 쪽에 있는 사람이 된 것을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용서해 주셨다고 확신합니다. 제가 아는 한, 제 평생에 한 번도 훔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시간을 너무나 잘못 사용해서 그런 식으로라면 훔쳤다고 할 수도 있겠죠.
그리고 전 제가 하지 말아야 했던 일들을 많이 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제 죄를 용서해 주신 것에 대해서 오늘 아침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저는 역대상17장을 읽고 싶습니다.
저는 봉헌 예배로 약 오 분간만 얘기를 하고 기도하고 그 다음에 설교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1.이제 다윗이 자기 집에 앉아서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보라,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나 주의 언약궤는 휘장
밑에 머무는도다. 하매
2.그때에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하나님께서 왕과 함께 계시오니 왕의 마음속에 있는 바를 행하소서. 하니라.
3.바로 그 밤에 하나님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4.가서 내 종 다윗에게 고하기를,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는 나를 위해 거할 집을 건축하지 말라.
5.내가 이스라엘을 데리고 올라온 날부터 이 날까지 집에 거하지 아니하고 장막에서 장막으로, 한 성막에서
다른 성막으로 옮겨 다녔나니
6.내가 온 이스라엘과 함께 걸은 모든 곳에서 내가 내 백성을 먹이라고 명령한 이스라엘의 재판관들 가운데 어느
누구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해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 하고 한마디라도 말하였느냐?
7.그런즉 이제 너는 내 종 다윗에게 이같이 이르라. 만군의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너를 양 우리에서 곧
양들을 따르는 일에서 취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릴 치리자로 삼았고
8.네가 어디에서 걷든지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으며 땅에 있는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은 이름을 네게 만들어 주었노라.
저는 여기서, 다윗은 우리가 본 것과 똑같은 것을 보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다윗은 말하기를,
“백성들은 나에게 백향목궁을 지어주었는데, 내 하나님의 언약궤가 여전히 휘장 아래 있는 것이 옳지 않도다.”
그 휘장은 양과 동물들의 가죽을 꿰매어 만든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나는 좋은 집에서 살고 내 하나님의 언약궤는 장막 안에 있음이 옳지 않도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마음에 성전을 지을 생각을 넣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랑이 많고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이었지만, 너무나 많은 피를 흘렸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당시의 선지자 나단 앞에서 말했습니다. 그리고 나단도,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랑하심을 알고는
“다윗이여, 하나님이 왕과 함께 계시니 무릇 마음에 있는 바를 다 행하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이 얼마나 위대한 말입니까!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 계시니, 무릇 마음에 있는 바를 다 행하소서.”
그런데 그 날 밤...다윗이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보여준 후.
그리고 그 날 밤, 하나님께서는 그가 그 일을 하라는 허락을 받지 않고 실수했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내려오셔서 나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항상 이 말씀을 좋아합니다: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내가 너를 목장에서 취하였다.”
그저, 다윗은 중요한 사람도 아니었고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잠시 동안 그것을 적용시키고 싶습니다.
“내가 너를 아무 것도 아닌데서 취해서 내가 너에게 이름을 주어, 세상에서 위대한 사람과 같은 이름을 가졌다.”
저는 그것을 제 자신에게 적용시키고 싶습니다, 요지를 설명 드리기 위해서. 저는 ...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몇년전에 제가 이 곳 도시에 서 있을 때, 아무도 절 관심 있게 돌봐 주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절 사랑하지 않았었습니다. 저는 사람들을 사랑했지만, 집안내력 때문에 아무도 절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제 소중한 부모님을 무시해서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저는 어머니께서 살아 계셔서 오늘 아침 이 성전으로 걸어 들어오실 수 있다면 하고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
모릅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께서 이곳에 이 교회를 짓기 위해 헌금을 낸 옛날 분들이 계단 난간 위에서 내려다
보게 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브래넘 집안은 술 마시는 것 때문에 이 곳 주위에서 그다지 평판이 좋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저와는 상관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얼마 전에 제 아내에게도 말했지만 저는 아무도 제게 말을 걸어주지
않았던 것을 기억합니다. 아무도 제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이라도 휴식을 갖기 위해서 숨어야 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제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이런 좋은 장소를 주셨고 위대한 일들을 행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제게...나쁜 이름뿐만 아니라, 위대한 사람의 이름과 같은 이름을 제게 주셨습니다.
제가 어디를 가든지 제 대적들을 멸하셨습니다. 아무 것도 그것 앞에 설 수가 없었습니다,
어디에서든지. 그러나 저는 그 사실을 얼마나 감사히 여기는지 모릅니다.
누더기 옷을 입은 조그마한 애로서, 여기서부터 두세 블락쯤 떨어진 잉거빌 학교에서, 저는 너무나 옷을 허름하게
입고 오래된 연못에서 스케이트를 탔기 때문에 학교에서 놀림감이었던 제가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그 연못 바로 아래에 이와 같이 피어날 수 있는 연꽃 씨가 놓여 있었다는 것을 제가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아무도 제게 말을 걸지 않았는데, 주께서 제게 그분의 사람들 사이에서 존경받을 한 이름을..--
한 이름을 주실 거라는 것을 제가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자, 그런데 다윗은 성전을 짓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길, “내가 네 씨(자손)에서 일으킬 자가 성전을 건축할 것이며, 그 성전은 영영한
성전이 되리라. 그리고 네 아들에게, 다윗의 아들에게, 그는 영영한 왕국을 다스릴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의 육신의 아들인, 다윗의 육신의 힘으로부터 나온, 솔로몬은, 주님께 집을, 성전을 지어 드렸습니다.
그러나 진짜 다윗의 아들이 오셨을 때, 다윗의 아들인 그 분은 그들에게 그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을
때가 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만 그 분은 그들에게 다른 성전을 지적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계시록에서 계시자인 요한은 이 성전을 보았습니다. 계시록21장말씀 에서 그는 보았습니다,
“새 성전이, 신부가 그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같이 단장하여 하늘로부터 내려오더라.
그리고 한 음성이 그 성전으로부터 나와서 말하여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리라. 다시 배고픔이 없고 슬픔도 없고
고통이나 사망도 없으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라.’”
그러면 진실한 다윗의 아들이, 우리가 이번 주에 있을 설교들에서 배울 텐데,
그 때 하나님의 성전인 그 분의 성전으로 오실 것입니다, 그는 지금 그 진짜 성전을 지으러 가셨습니다.
그가 요한복음14장에서 이렇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mansions)이 많다. 내가 가서...”
예수님은 무슨 뜻으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그 일은 이미 미리 정해진 일입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다시 돌아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리라.”
물론 우리는 그 일이 다가올 위대한 시대에 일어날 일이라는 것을 압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진정한 다윗의 씨인데
그는 보좌를 취할 것이고 그의 집에서 신부와 함께 이스라엘 열두 지파와 교회를 영원토록 다스릴 것입니다.
그런데 몇 군데에서, 다윗은 그 일을 하기로 예비된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하나님의 진짜 성막을 지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인간이었고 피를 흘린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짜 성전을 짓기로 예비된 사람이 아닙니다.
오직 한 분이 그 일을 하실 수 있는데, 그 성전을 지금 짓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이 자그마한 성막과, 솔로몬이 하나님께 지어드린 성전과 또 다른 성전들과 함께, 진짜 성막이 이 땅 위에
세워질 그 날이 오기까지는 임시 예배장소일 뿐입니다. “그러면 의가 이 하늘에서 저 하늘까지 다스릴 것이고
슬픔이 더 이상 없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막에서는 장례식 설교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결혼식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때에는 영원한 한 위대한 결혼식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얼마나 좋을까요!
그렇지만 오늘 우리 마음속에, 장차 올 그 성막을 기념하고 소망하는 뜻과, 성령으로 우리가 그 성막 안에
있는 것처럼 이곳에서, 장차 올 그 곳을 기다리면서, 경배하겠다고 다짐해 봅시다.
자, 제가 성경을 읽을 동안, 잠깐 일어섭시다.
계시록20:1.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으니 이는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사라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나 요한이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신부가 자기 남편을 위하여 단정한 것 같이 예비한 채 하늘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더라.
3.내가 하늘에서 나는 큰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성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고 그분께서 그들과
함께 거하시리라. 그들은 그분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리라.
이제 머리를 숙입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는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 있습니다. 우리는 공경과 거룩한 존경심을 가지고 서
있습니다. 주님, 우리의 선물을 받아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사 당신을 위해 예배드릴
수 있는 장소를 준비하도록 자금도 주셨습니다. 이 땅 위에서 저희들이 준비할 수 있고 하나님의 영이 거하기에
합당한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당신을 향한 우리의 사랑과 마음의 표시로써 이곳을 당신께
바칩니다, 주님. 그리고 당신이 우리를 위하여 해 주신 모든 것들에 대해서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오래 전에 바쳐진 건물과 땅과 지금까지 있어왔던 일에 대한 추억들을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이제, 주 하나님, 몇 년전에, 이것을 나타내는 환상이 터졌을 때, 저는 사람들이 앉아 있던 옛날 건물이
수리되고 새롭게 되는 것을 환상으로 보았고 강 건너로 다시 보내졌습니다.
그런데, 주 하나님, 하늘과 땅의 창조주시여, 우리는 당신의 양 우리 사람들로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나라의 백성으로 서 있습니다. 저와 목사님과 교회와 사람들 우리는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전능하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목적으로 이 건물을 바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존경을 위해서. 복음이 이 자리를 차고 넘치게 되어서 지구의
네 모퉁이에 있는 세상이 이곳으로부터 나오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러 오게 하옵소서.
과거에 당신이 행하신대로, 앞으로는 그보다 여러 배 더 많이 행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지금 우리는, 전력을 다해, 말씀으로 드리는 예배에 우리들 자신을 바칩니다.
주님, 회중들과 사람들, 그들은 오늘 아침 말씀을 듣는데 그들 자신을 바칩니다.
그리고 저희들은 목사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범사에 오래 참음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는데” 우리들 자신을, 바칩니다. 삼십 년 전 모퉁이돌 안에 써 넣은 대로. 당신은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을 때가 오리라”고 하셨습니다. 주님, 우리가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려 애쓸 때, 우리로 영감을 얻게 하옵시고
두 배의 힘을 내게 하옵소서. 주님, 성령이 이 자리에 두 배나 내리게 하시며 성령께서...
솔로몬이 성전을 바치는 날 기도했을 때처럼 성령이, 그 때 불기둥과 구름 기둥의 형태로 성령이 앞문에 와서
그룹들 주위와 위에 있다가, 성소로 가서 그 곳을 안식처로 삼으셨습니다.
오 하나님! 솔로몬은, “만일 당신의 백성이 어느 곳에서든지 어려움을 당할 때 이 성소를 바라보고 기도를
드린다면, 하늘로부터 그 기도를 들으시옵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주님, 오늘 아침 성령이 모든 마음과 이 곳 안에 있는 성별된 모든 영혼들 안으로 들어오시옵소서.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의 영광이 너무나 커서 수종드는 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인하여 수종을 들지도 못했다”
고 말했습니다. 오, 주 하나님, 교회와 함께 우리들 자신을 예배를 위해서 당신께 바칠 때에 그 일이 다시
되풀이되게 하옵소서. 성경 말씀에,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당신께 예배를 위해 이 교회를 바치면서 저희들 자신을 맡깁니다, 저물녘에 있을 빛을 위해서,
종말의 빛을 위해서, 주 예수께서 신부들을 받으시도록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옷 입히기 위하여,
신랑이 오는 걸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안과 믿음을 갖다 줄 빛을 위해서, 저희들을 맡깁니다.
저 자신과 네빌 형제와 회중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바칩니다. 아멘. 앉으십시오.
다윗은, “사람들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이 언급될 때 언제나 주님의 집으로 모이는 일을 기뻐하는 것이 지속되기를 바랍니다. [회중이 “아멘”한다.]
이제, 짤막한 봉헌식 이후, 저는 지금 한 시간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전을 어디에 바치는지를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성전을 주님 앞에 경외와 거룩함과 고요함에
바칩니다. 주님 앞에서 경배하시고 주님의 집 안에서는 될 수 있는 한 가장 정중한 태도를 취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배가 끝나자마자, 예배실에서 나가십시오. 아시겠죠? 그래서 관리인이 들어와서 다음 예배 시간을 위해서
청소하고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주님의 집에서는 혼돈이 없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 장소는 예배가 끝나고 난 뒤 약 15분 후에는 깨끗하게 되어 있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람들에게 친절히 대하고 모든 사람과 악수하고 모든 사람들을 다음 예배에 초청하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우리는 이번 주 내내 있게 될 예배가 이 성막에서 드렸던 예배 중 가장 경건한 예배가 되리라 기대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생각은 긴, 늦은, 제가 이른 새벽 시간에 기도할 때 떠올랐는데,
그 때 저는 뭔가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주간은 아주 위대한 시간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신다면, 그런 시간을 가지리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제가 “위대한 시간”이라고 하는 뜻은...
이제, 저는, 오늘 아침, 그것에 대해서 뭔가를 말할려고 합니다. 여러분 그거 아십니까? 인간이 “위대하다”고 하는
것은 때때로 보면 위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위대하다”고 부르는 것을 인간은 어리석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리석다”고 하는 것을 인간은 위대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그 점을 명심합시다, 모든 말씀을 깊이 헤아리십시오.
그런데, 예배 시간은 깁니다. 사람들은 예배 때 많은 것을 가르침 받고 정신을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예배드리는 것이 힘들어 기운이 빠져 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냥...
제가 머물고 있는 곳에서, 사람들은 저에게 뭐든지 많이 먹게 하고 싶어 합니다.
그들은, “아니, 브래넘 형제, 살이 너무 빠졌습니다.”라는 등등의 말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예배를 계속 드려오고
있습니다. 다음 주 일요일 밤에는, 멕시코에서 다른 설교를 해야 하기 때문에, 곧바로 이곳을 떠나야 합니다.
그러니, 참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식사를 많이 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설교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주니어 잭슨형제와 러들형제, 그리고 또 여러 목사님들을 뵈니 기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자, 적어온 몇 가지 것들을 보면서 오늘 아침 저는 어떤 주제에 대해서 여러분께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우선 이사야서53장을 읽고자 합니다. 여러분들이 말씀을 찾는 동안에, 한두 가지 광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오늘 저녁, 저는 마지막 교회 시대와 일곱 인의 개봉 사이를 연결하는 이 책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상당한 틈이 벌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전에 제가 일곱 교회 시대에 대해 끝마칠 때, 저는 거기에서 곧장 이어지는 다니엘의 칠십 주에 대해서도
역시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일곱 교회 시대와 잘 맞아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때, “만일 제가 일곱 인을 다루게 된다면, 저는 일곱 인 안에 맞추기 위해 이 다니엘의 칠십 주를
먼저 설교를 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한 군데만 빼놓고, 그런데 그것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일곱 인으로 봉해진 책의 계시록5장이었습니다. 오늘 밤에 우리는 그것을 알아보겠습니다.
오늘 밤에는 좀 일찍 시작했으면 합니다. 제가...일찍 시작하겠다고 이미 말씀드렸죠?[네빌형제가, “네”한다.--주]
모두 다 여기에 7시경에 올 수 있겠습니까? [회중이 “아멘”한다.] 좋습니다. 정규 예배를 6시 30분에 시작합시다.
찬송 예배를요. 그리고 저는 이곳에 7시에 나오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 내내 좀 일찍 시작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들만큼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마 없을 겁니다.
우리는 노래 부르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우리는 그런 것들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다른 뭔가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 속에 있습니다. 그렇죠, 그러니 이제 그것에 완전히
매달립시다. 우리는 그렇게 할 겁니다. 우리는 강해식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여러분은 그것이 저에게는
얼마나 엄청난 긴장이 되는지 깨달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아시겠죠, 왜냐하면, 제가 뭔가 잘못 가르치면,
저는 그것에 대해서 해명을 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죠. 아시겠죠? 그러므로 저는 다른 누군가가 말하는 것을 받아
들여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저는 반드시...그것은 영감을 받은 말씀이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일곱 우뢰를 쥐고 있는 일곱 천사들이 그것을 허락해 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아시겠죠?
자, 이사야서53장1절과 2절입니다. 저는 이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자, 이것은 일곱 인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이것은 그냥 별개의 설교입니다.
왜냐하면, 봉헌 예배 때문에 시간이 허락치 않아 일곱 인에 대한 설교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이 교회를 위해서, 짤막한 봉헌예배와 간소한 기념식을, 아니 간소한 봉헌예배를, 생각했었고,
그러면 제가 이 책의 개봉에 대한 설교를 할 시간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말씀을 오늘 저녁에.
그런데, 이것은 짧은 예배입니다--그러나 이 말씀은 앞으로 있을 말씀과 그대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 모든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말씀을 이해하십시오. 그리고 만일 여러분이 이 설교 말씀을
테이프나 다른 것으로 듣는다면, 그 테이프에서 가르치는 것과 늘 함께 하십시오. 테이프가 말하는 것 외에는
다른 말을 하지 마십시오. 테이프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말하십시오. 아시겠죠?
왜냐하면, 그 일들 중의 몇 경우는, 우리는 왜 말씀이 오해를 받는지를 확실히 이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꼭 테이프가 말하는 것만 말하십시오! 그 외에 다른 말은 하지 마십시오. 아시겠죠?
저는 제 생각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 말을 하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아시겠죠.
너무나 여러 번, 혼동이 생기고, 사람들은 일어나서, “글쎄, 아무개는 그것이 이러이러한 뜻이라고 했습니다”하고
말합니다. 그냥--그냥 그 테이프에 있는 말씀 그대로 두십시오.
아시겠죠, 성경도 그런 식이 되기를 우리는 원합니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그대로, 그런 식으로 우리는 성경을
원합니다. 바로--바로 그렇게. 그 말씀에다 자신의 해석을 붙이지 마십시오. 그 말씀은 이미 해석된 말씀입니다.
이사야53:1.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제가 다시 한 번 자세히 읽겠습니다.
1.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다시 말해서, “만약 우리의 전한 것을 여러분이 믿었다면, 여호와의 팔이 여러분에게 나타내어진 것입니다.”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자, 또 마태복음11장25~26절을 읽읍시다. 그런데, 여러분은 종이와 쓸 것들을 준비하십시오.
왜냐하면 계속해서... 만약 녹음기가 없으시면, 말씀을 이해하시기 위해서 종이를 준비하십시오.
좋습니다.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기도 가운데 말씀하시는 구절입니다.
25.그때에 예수께서 응답하여 이르시되, 오 하늘과 땅의 주이신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이것들을 지혜롭고
슬기(분별)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기들에게는 드러내셨사오니 감사하나이다.
26.과연 그러하옵나이다. 아버지여, 그리하심이 아버지 보시기에 좋았나이다.
그 두 군데 성서 구절의 뜻을 파악하십시오.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그 다음에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에게는 비밀들을 숨기시고, 배우려고 하는 어린 아이들에
게는 나타내심을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읽은 구절에서 이런 주제를 뽑았습니다.
“단순함 속에 감추셨다가 같은 방법으로 자신을 나타내시는 하나님.” 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와 같이 그런 일을 하실까 하고 생각해 볼 때 참으로 이상스럽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너무나 단순한 것 속에 숨기시기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이 그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게
하고 그리고나서 되돌아서, 그 안에서, 그의 일하시는 방법인 단순함으로 어떤 단순한 일들 가운데서, 다시금 자기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저는 우리가 일곱 인의 위대한 가르침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것을 공부할 수 있도록 주제를
삼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시는 방법 때문에 하나님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어야 하며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실 것이다. 라는 자기들 자신의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전에 여러 차례 말했던 것처럼, 인간은 여전히 인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인간은 항상 하나님께서 과거에 행했던 일에 대해서 찬양을 드리고, 항상 하나님께서 현재 하시고 계시는 일은
무시하고, 앞으로 하실 일을 기대합니다. 그렇죠? 아시겠죠? 그런 식으로 그들이 그것을 놓칩니다.
그들은 과거를 돌아보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위대한 일을 하셨는가를 알지만,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시려고 얼마나
단순한 것을 사용하셨는지는 깨닫지 못합니다. 아시겠죠? 그리고나서 그들은 앞을 내다보고 앞으로 일어날 다가올
위대한 일들을 보지만, 십중팔구는, 그 일은 이미 바로 그들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중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은 너무나 단순한 일이어서 그들은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아시겠죠?
옛날 유티카에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그런데 그를 아는 분들이 여기 계시면, 저는 그분을 나쁘게 얘기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는 남북 전쟁의 노장이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그렇습니다... 어느 쪽에 가담했었는지 잘 모르지만,
제가 믿기로는 그는 남군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무신론자였고 하나님 같은 것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유티카에 살았고 그의 이름은 짐 도씨였습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그 분을 아실지도 모릅니다.
그는 제가 어렸을 때 제게 수박을 많이 주셨었습니다. 그는 저 강 밑에서 수박을 재배했었습니다.
그는 제 아버지의 친구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느 날 지금껏 들어본 말 중 제일 멋진 말을 들었노라고 했습니다.
그 때 저는 어린 소년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믿고 있던 것과는 너무나 대조되는 그 말은 그가 저쪽으로
걸어가서 고개를 숙이고 울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그 일로, 그가 여든 다섯의 나이에 영광스럽게도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어느 날 주일 학교에서 돌아오고 있는 어린 여자 아이에게 왜 그렇게 그런 일을 하면서 시간 낭비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여자 아이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도씨씨는, “얘야, 네가 그런 것을 믿고 있다니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구나.”하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어린 여자 아이가 허리를 구부리더니 땅에서 작은 꽃을 꺾어 꽃잎을 하나 따더니,
“도씨씨, 이것이 어떻게 사는지 제게 말해 주실 수 있어요?”하고 말하더라고 했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그가 거슬러 가면서 연구하기 시작했을 때, 그는 그 아이에게, “글쎄, 그것은 땅에서 자라고 있지.”하고 말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 다음에는 질문이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겁니다.
“지구는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그 씨는 어떻게 여기에 당도했습니까? 어떻게 그 일이 생겼습니까?”
그렇게 계속 계속 계속해서 그가 깨달을 때까지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아시겠죠?
우리가 생각하듯 위대하고 매력적인 일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참으로 실제 하심은 단순한 일, 단순함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나타내고 그리고나서는 자신을 숨기고, 자신을 숨겼다가 단순한 작은 일들 가운데서
자신을 나타내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입니다. 그 일은 사람의 머리 꼭대기 위에 놓여 진 일입니다.
만약, “공평하신 하나님이 왜 그런 일을 하시겠습니까?”하고 여러분이 말하신다면.
그것은, 처음부터, 인간은 자기 힘으로 꾸려 나가지 못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린 양이나 양으로 비유되는 것입니다.
양은 자신을 이끌 수 없습니다. 양은 인도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이 우리를 이끌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런 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그의 피조물들을 너무도 단순하게 만드셔서, 단순한 사람들이 그것을 이해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순한 자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단순한 일들을 가지고 단순하게 만드십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서35장에서, 제가 믿기로는 거깁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매한 자라도 그 길을 범치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단순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은 너무도 위대하신 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위대한 뭔가라고
기대하다가, 단순한 것을 놓치고 맙니다. 우리는 단순함 때문에 걸려 넘어집니다. 그래서 우린 하나님을 놓칩니다,
단순함에 걸려서 하나님을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단순하셔서 오늘날의 학자들과 지금까지의 모든
학자들은 하나님을 아주 저 멀리 놓쳐버렸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지능으로는,
세상에서 하나님처럼 그렇게 위대한 분은 없다고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계시가운데서,
하나님은 그것을 너무나 단순하게 만들어, 그들은 그것을 곧장 넘어가고 그것을 놓칩니다.
자, 그것을 연구해 보십시오. 그것 모두를 연구해 보십시오. 이곳을 방문하고 계신 분들, 묵고 계시는 모텔방에
가시거든, 그것들을 가지고가서 곰곰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그것을 하나하나 쪼개어 알아봐야 하지만,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니 저는 여러분이 그 일을 해 주시길 바랍니다.
모텔이나 호텔이나 여러분이 묵고 계신 어느 곳이나 집에서 말입니다. 그것을 다 모아서 연구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시는 방법 때문에 사람들은 하나님을 모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너무나 위대하셔서,
하지만, 자기 자신을 가장 작은 자에게 알리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단순함 속에 감추시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뭔가 큰 것을 얻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그것 꼭대기로 넘어가시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단순함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그 단순한 방법가운데서 바로 하나님을 발견하실 겁니다.
뻔쩍 뻔쩍 광을 내는 세상적인 지혜와 교육은 언제나 하나님을 놓칩니다. 지금, 저는 이곳에...학교 선생님들이
이곳에 두세 분 앉아 계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학교와 교육에 반대하고 무식을 지지하려고 이곳에
오지 않았습니다. 그럴려고 이곳에 온 게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들이 그것에 너무나 집착하고 있으므로
해서, 심지어는 신학교에서나 기타 등등에서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들 코앞에 두신 것조차도 놓친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교파 안에 있는 형제들을 반대하지는 않는 겁니다, 저는 교파의 체제를 반대합니다.
체제는 그것 자체를 확대하려 하고 이러이러한 장소 안에서 그들의 목사들을 교육시켜서, 만일 사람들이 적당한
학기를 수료하지 못하거나 교육을 받지 못했다면, 그들을 쫓아내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정신병 의사의 시험과 기타 등등을 치뤄야 합니다. 저는 목사에게 정신 의학 시험을 치르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말씀으로 목사를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죠?
그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가지고 말씀을 전하라고 보낸 하나님의 사람인데 그를 시험하는 하나님의 방법은
오직 말씀으로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전하라!”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철학을 설교하고, 신조를 설교하고, 교파주의와 다른 많은 것들을,
설교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은 빠뜨립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말씀은 이해할 수 없다고 그들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께 그렇게 해 달라고 구하고 있습니다.
이제 여기서 몇 분 동안 몇 인물들을 살펴보기로 합시다.
노아의 시대를 알아봅시다. 노아의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세상적인 지혜가 너무나 강조되고 존중되는 것을 보시고,
자신의 위대함을 그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단순한 한 사람을 통하여 단순한 말씀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노아의 시대에, 사람들은 그 당시의 문명은 너무나 높은 수준이었기 때문에
우리의 현대 문명에서조차도 그 지점에 결코 이르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주님께서, “노아의 날과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고 하셨기 때문에 마침내는
그 지점에 도달하리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은 설명을 약간 덧붙였습니다.
이집트인은 피라밋과 스핑크스를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오늘날 우리가 만들 수도 없는 거대한 것을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향료와 향유로 시체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보이게 만들어서 오늘날까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못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미이라를 만들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만들 수 있는 재료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흡착력이 뛰어난 색채를 4-5천 년 전에 갖고 있었는데, 그 색은 옛날 색과 똑같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아시겠죠? 오늘날 우리는 그런 것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 문명의 많은 위대한 것들은 그들의 문명이 우리의 현대 문명보다 우수함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그러한 문명이 있었다고 우리에게 남겨진 그러한 위대한 표적의 교육과 과학이 어땠었는지를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유적들이 있던 당시에 얼마나 위대한 문명이 있었겠습니까.
얼마나 그 과학과 현대 문명과 교육이 그 사람들에게 필수였겠습니까.“ 그것들은 틀림없이 그랬을 것입니다.
그래야만 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 당시에는 글자를 못 읽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시대에 그들의 체제 속에 있는 그 위대한 조직을 샅샅이 찾으시면서, 하나님께서는 한 무식쟁이인
노아라는 이름의 어쩌면 농부나 양치는 사람이었을 사람을 발견하기까지는 적당한 사람을 찾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그의 메시지를 주어 사람들에게 전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너무나 단순한 말씀이어서 그 당시의 학자나 사람들은 그 메시지의 단순함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그렇지만, 그 말씀은 과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급진적이군! 하늘에 비가 없는데 어떻게 하늘에 비가 있을 수
있습니까?” 였습니다. 아시겠죠? 그런데 방주를 지으라는, 뭔가를 만들어서 그리로 들어가라는 단순한 메시지,
그 배를 띄울 물도 없는 상태에서. 정말로, 노아는 광신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광신자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부르곤 하는, 오늘 이 표현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괴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은 거의 다 “괴짜들”입니다, 아시겠죠. 정말로 그렇습니다.
저는 그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된 것을 기쁘게 여깁니다. 그래서 알다시피, 그들은 현대 문명의 경향과는 다릅니다.
그래서 그들은 괴상하고 이상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독특한 즉 괴상하고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영적인 제사장이며, 왕의 나라이며, 하나님께 영적인 제물을 드리는 사람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영적제물은 그의 이름을 찬양하는 그들 입술의 열매입니다. 얼마나 위대한 사람들입니까!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갖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제, 보십시오, 그 당시에 한 광신자가 그 교회로 나와서, 겉으로 보기에 그들이 믿는 것과는 전혀 다른
복음을 전하는 것은 얼마나 굉장한 일이었겠습니까. 그런데 그 당시 과학자들은 “아니, 그것은 한마디로 미친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거기 하늘 위에 비가 없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다 증명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단순한 노아는 “하나님께서 비가 내리겠다고 하셨으면 비가 내리리라”고 믿었습니다. 아시겠죠?
그래서 우리 한 번 그것을 오늘날 병 고침을 받은 사람과 비교해 봅시다. 사람들은, “그것은 감정일 뿐입니다.
저는 암이나 그 실상이나 그것은 아직도 그 자리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다.”하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믿는 자에게는, 그 병은 사라졌습니다. 그렇죠?
왜냐하면, 그는 그 실상을 보지 않고, 노아가 그랬던 것처럼 약속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이제는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한 말을 아시겠죠?
과학적으로, 아무도...의사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여기 보십시오, 당신의 혹은 아직도 그대로 있쟎아요.
당신의 암은 그대로 있는데요. 당신의 팔은 옛날처럼 굽은 상태 그대로인데요. 당신은 돌았군요.”
그런데, 명심하십시오, 그것은, “저 위에는 비가 없습니다. 우리는 달에다 위성을 쏘아 올릴 수 있습니다.
거기에 비는 없어요.”하고 노아 시대 때부터 말했던 똑같은 영이라는 것을. 하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면,
과학자들이 뭐라 하든지, 지혜로운 신학자들이 뭐라 하든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비가 올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것의 마지막 안식처로 삼습니다. 믿음의 안식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해하시겠죠?
[회중이 “아멘”한다.--주] 믿음의 안식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노아가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에서 쉰 것처럼. 그렇게 되면 문제는 끝난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다시 한 번 주의해 보신다면, 그런 것을 믿은 노아는 광신자였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성령의 침례를 믿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들은 광신자들입니다. 그들은 흥분하고, 감정적이고, 공포에 질린 사람들일 뿐입니다.”라고.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걸 가르치고 있음을 전혀 알고 있지 못합니다. 그것은 약속입니다.
그런데, 노아에게는, 사람들이 아무리, “저 늙은이 정신이 나갔군, 과학적으로 따져볼 때 그는 틀렸고, 정신이 이상해졌다”고 말해도. 그러나, 노아에게는, 그것은 주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노아는 그 말씀과 함께 했습니다.
그런데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은 그 말씀의 단순함 때문에 걸려 넘어지고 목숨을 잃었습니다.
자, 그것은 그 시대를 향한 얼마나 대단한 책망입니까!
그런데 항상 많은 사람들은, “만약 내가 그 때에 살았었다면!”하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여러분은 똑같은 태도를 취했을 것입니다. 왜냐면, 오늘날, 아주 똑같은 일이 다시 재현되고, 있습니다.
단지 다른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그들은 그 당시에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똑같이 그것 때문에 넘어집니다.
그 당시에도, 틀림없이, 설교자들이 많이 있었을 것이지만, 노아는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노아는 밖을 내다본 후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며, 세대가 그와 같이 음란하고 악하며,
하나님께서 참으시지 않을 것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날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다만 똑같은 일을 볼 뿐입니다! 현대판 소돔과 고모라를, 그렇죠, 악하고 음란한 사람들, 사람들은 학문적으로
너무 세련되어, 하나님께서 말씀을 보이면서, 하나님 자신과 그의 말씀을 표명하시는 단순함으로 인해 넘어집니다.
우리는 주위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표명되는 것을 볼 수 없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마지막 시대의 그 약속, 빛을 내기로 되어 있는 저물녘의 빛에 대한 약속을, 우리는 그것을 볼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고도로 세련된 세상에게는 그것은 숨겨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말씀하시길, “그것을 그들에게는 숨기심을 당신은 기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당신은 그것을 숨기셨습니다.” 그들이 지혜로 그대로...하게 두십시오.
아시다시피, 태초에 죄의 진흙탕 속에 공을 구르게 한 것도 지혜였습니다,
이브가 사탄을 만났을 때 이브는 지혜를 찾고 있었는데 사탄은 그것을 그녀에게 주었습니다, 그렇죠.
그런데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과는 반대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더러 지혜를 가지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미 말해진 말씀을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시겠죠?
그러나, 오늘날, 학자들은 그것을 그런 식으로 닦아서 두고 거기에다 자기들 자신의 해석을 덧붙였습니다.
그들은 늘 그래왔습니다. 사람들은 오늘날도 똑같이 행합니다. 항상 같은 범주 속에 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오늘날의 사람들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런 일을 하는 것과 똑같이 말씀을 놓쳤습니다.
똑같은 일입니다. 그 일들은 항상 반복되어 왔는데, 사람들은 항상 똑같이 행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그것을 놓친 이유는, 너무나 영리해서 그 말씀을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자, 하나님이 주신 메시지는 너무나 단순해서 똑똑한 사람들은 너무나 똑똑하여 그 메시지의 단순함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세상에! 하나님은 그것을, 진리가운데, 너무나 단순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똑똑하고 지적인 사람들은 그 메시지가 너무나 단순했기 때문에 그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더욱 위대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위대하시면서도 자신을 단순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인간은, 자기들이 하나님에게서 나오지 않음을 보여 주면서, 그들은 위대하며 더욱 더 위대해지려고 애쓰고
자기들 스스로를 “대주교나 성 교황 박사”니 등등 사실 그렇지 않은 뭔가로 자신을 포장하여 만들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도 위대하시면서 자신을 단순히 낮추십니다. 단순함은 위대함입니다.
우리는 제트 비행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로켓트도 발사할 수 있습니다, 미사일을 궤도 안으로 쏘아 올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모든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풀잎은 하나도 만들 수 없습니다. 아멘.
그건 어떻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되돌아와서 그 풀잎을 만든 분을 알아보려고 그 풀잎을 창조하신 분인 하나님을
영접하지는 않고, 다른 누군가가 만든 것보다 더 빨리 거기에 도달할 미사일을 만들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너무나 똑똑하고 지적이어서 백만 달러나 천만 달러에 달하는 건물을 지을 수가 있습니다.
감리교가 지은 것보다 더 좋은 건물을 지으려 하고, 침례교는 장로교의 것보다 더 좋은 건물을 지으려 하고,
오순절교회도 그 달리기 대회에 참가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겁니다. 우리는 너무나 영리해서 우리 자신의
방법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 자신을 낮추어 모퉁이에 있는 작은 선교회 가운데 계신 하나님을 깨달아
알아보지 못합니다. 아시겠죠? 그렇습니다. 우리는 단순함 때문에 넘어집니다. 사람들은 늘 그래왔습니다.
자, 사람들은 너무나 영리해서 그처럼 단순한 메시지를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가진 과학적인 연구에 비해서 충분히 세련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 메시지는 그들이 그 당시에 가졌던 교육 프로그램에 비해 화려하지가 못했습니다. 그렇죠?
그들은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기 위해 공부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위대하시다는 것을 알기 위해 공부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하나님과 함께 저 위에 두고 위대하게 만들려고 애썼습니다. 위는 언제나 아래인데 말입니다.
자, 누가 북극이 남쪽이고 남극이 북쪽인지 압니까? 어느 쪽이 위이고 어느 쪽이 아래입니까?
우리는 우주 가운데 매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북극은 위쪽입니다”하고 말합니다. 어떻게 압니까?
남극이 북쪽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시겠죠,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니 기억합시다,
여러분은, “그렇다면 브래넘 형제, 어째서 당신은 ‘위가 아래’라고 말씀하십니까?”라고 말할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근거해서 하는 말입니다! 그는 말하길,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임을 받을 것이나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사실상, 위는 아래이고 아래는 위인 것입니다.
시카고에 사시는 어느 연로한 성도가 말했던 것처럼...어떤 조직 출신의 한 목사님이 오순절교인들이 참석하고
있던 곳에 나왔습니다. 그 목사는 모든 지적인 것들을 두루 섭렵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거기서서 오순절교인들은
하나도 알지 못하는 단어들을 사용했습니다, 그는 거기서서 자기의 말을 그 오순절교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가슴을 내밀고 올라갔습니다, 그는 “성 아무개 박사”, 아시다시피, 시카고에 있는
어떤 큰 학교 출신이었습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고 그 오순절교인들은 서로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목사님이 무슨 말씀을 했는지 이해하지도 못했습니다. 그 목사님은 너무나 교육을 많이 받았고,
너무나 영리하고, 너무나 머리가 좋은 분이었습니다. 그들은 몰랐습니다.
그 일은 최근에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어떤 상원의원의 얘기와 들어맞는 뭔가가 있었습니다.
텈 쿠츠씨가 제게 말했습니다. 제가 마마 포드의 장례식에서 설교할 때, 저는 부활에 대해, 부활의 보증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습니다. “태양이 떠오르는 것과 같이, 나도 일어날 것이다. 풀이 가을에 죽고, 나뭇잎이 나무에서 떨어
져서, 땅이 그 궤도를 돌아올 때 풀과 나뭇잎이 다시 나와야하는 것처럼.”
텈은 말했습니다, “빌리, 그 설교 감사합니다.” 네빌형제와 저는 차 안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당신의 설교에 감사드립니다.”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텈, 저는 교육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게 좋다구요.”하고 말했습니다. 아시겠죠?
그런데, 그는 말하기를 글쎄요, 저는 그 분이 절 용서해 주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고의로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애들레이 스티븐슨, 여러분은 그를 아실 겁니다. 텈은 그가 말하는 것을 15분간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지만, 스티븐슨씨는 아주 훌륭한 연설가입니다. 텈은 말하길, 그는 대학 교육을 받은 사람일 겁니다,
자기가 거기에 앉아 있다가 잠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15분 후에 그 사람의 설교를 들으면서 잠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대학 교육을 받은 저이지만, 그가 말하는 것 중 아주 몇 마디밖에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설교는 너무나 세련된 설교였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당신이 설교하는 중에 제가 자는 것을 한 번도 못
보셨죠?”라고 말했습니다.
아시겠죠, 그것은 말씀의 단순함입니다, 그것은 단순합니다, 바로 거기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당시에 너무나 영리해서 하나님의 일하시는 단순한 방법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는 세련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말씀은 세련되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위 있게 옷 입혀져야 했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그들은 그 말씀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자, 그러나 그 위대한 여호와는 그의 말씀 속에 숨겨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고 단순한 말씀, 노아의 단순한 메시지를 이루어지게 함으로써
그의 말씀을 믿었던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리셨습니다. 자, 그것을 주의하십시오.
그 다음엔 다시금 모세의 시대입니다, 또 다른 구원의 때임을 주의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구해내기 위해서 어떤 일을 막 하려하실 때,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그 메시지의 말씀은 너무나 단순했습니다, 우리가 이 일곱 인을 뗄 때에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 말씀을 먼저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인들을 떼는 것이 너무나 단순해서, 똑똑한 사람들은
저 멀리 그것을 놓쳐 버리게 될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아시겠죠?
저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위해 절 기름 부어주시길 바랍니다. 아시겠죠? 그것은 그저 꼭대기로 넘어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오늘 아침에 이 메시지가 기초를 놓기에 적절하리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단순하심에 대해서, 아시겠죠, 하나님이 어떻게 자신을 단순함 속에 숨기시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좀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원자를 쪼갤 수 있고, 또 다른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지만, 생명에 대해서만큼은,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지도 말할 수 없습니다. 단순한 풀잎 속에, 하나님은 그 안에 숨어 계십니다.
사람들은 로켓트를 달에 발사할 수도 있고, 저기 위에다 레이다를 쏠 수 있고 더한 일도 할 수 있으면서도,
풀잎 속에 있는 생명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합니다. 맞습니다. 그렇죠?
그 이유는 그것은 설명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너무나 단순하기 때문에 그들은 그것을 간과해 버립니다.
잘 보십시오. 모세는,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에 따라 이스라엘 자손들을 구원하려고 하던 날에.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은 한 단순한 가족을 선택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들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그렇죠,
우리가 아는 것은 모세의 아버지가 레위 자손이라는 것뿐이며, 우리는...그의 아내 역시 레위인이라는 것뿐입니다.
그저 평범한, 아마, 세상이 생각하듯이, 거기서 적을 위해서 벽돌을 만드는 진흙 바르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에서 그렇게 평범하기 짝이 없는 노예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가족을 구원자를 만들기 위해서,
그 평범한 유대인 가족을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가서 왕족이나 귀족이나 그런 사람 또는 어떤 제사장을
취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보통, 평범한 가족을 취하셨습니다. 아시겠죠? 단순함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셨는지 보십시오, 하나님은 한 아이, 한 단순한 인간을 데리고 나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을 구하기 위해서 원하셨다면 태양을 부리실 수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구하라고 바람을 부리실 수도 있었고, 하나님은 그들을 구하라고 천사를 부리실 수도 있었습니다.
오, 할렐루야! 하나님은 하시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습니다.
“아니, 브래넘 형제, 그것을 당신이 어떻게 압니까?”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에서 떠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그것은 단순해야 한다고 우리가 아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자, 하나님은 항상 단순하게 일을 하십니다. 하지만 태초에 태양으로 하여금, 아니면 바람으로 하여금,
아니면 천사로 하여금 복음을 전하도록 하실 수 있었던 하나님께서는, 그 일에 인간을 정하셨고 결코 그것을
변경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정하지 않으셨는데... 교파들을 정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결코 사람들의 단체를
정하지 않으셨습니다. 기계나 기계조작이나 천사가 아닌 인간을 정하셔서 복음을 전하게 했습니다.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셨을 때, 하나님은 노예들 무리가운데 한 단순한 가정에서 태어난
한 단순한 인간을 보내셨습니다. 오, 세상에! 얼마나 위대한 하나님이십니까! 자기 자신을 단순하게 펼쳐 보이시는.
자 보십시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세상적인 지혜를 교육받게 하여, 그가 실패함으로써 우리가 구원을
얻을 것은 세상에서 배운 지식과 지혜로가 아님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애굽의 지혜를 가르칠 수 있을 만큼 그 곳으로 들어가서 그러한 교육을 받게 내버려 두셨습니다.
그는 너무나도 영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쩌면 자기들 이름도 쓰지 못하는 그 단순한 가족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가장 높은 교육을 받았고, 이 지혜를 선생님들에게 가르칠 수가 있을 만큼 되었습니다.
그는 천재를 가르칠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지혜는 그 일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겸손함 가운데 있는 자신을 나타내시려고, 모세가 그 길로 접어들도록 그냥 내버려 두셨습니다.
모세는 무참하게 그의 좋은 머리로 실패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실패하도록, 그래서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모세를 그런 식으로 놔두셨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정말로 실패했습니다, 자신의 세상 지혜로 넘어졌습니다.
그래서, “권능으로 아니요, 힘으로 아니요,” 애굽의 지혜로가 아니요, 우리의 학교의 지혜로가 아니요,
우리들의 신학교의 힘으로가 아니요, 우리의 조직의 수로가 아니요, 우리의 학문적인 가르침으로가 아니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되, 내 영으로” 됨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모세가 타는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
모세가 배운 세상 지혜는 사라졌고 그렇게 끝나버렸습니다.
그는 신발을 벗고 자기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고 자신의 모든 지혜를 잊어버렸습니다.
구원을 가지고 오시면서, 하나님은 여러분이 자신의 아는 것이나 다른 누군가 아는 것에 의지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모세를 지혜롭게 훈련하시고, 그로 넘어지게 하셔야만 했습니다.
자신의 손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모세가 넘어지게 두셨습니다. 그것을 아시겠습니까? [회중이 “아멘”한다.—주]
그렇게 한 하나님의 의도는, 겸손한 자기 자신을 나타내 보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세가 바로에 이어 왕이 될 위치에 이르기까지 모세를 제일 높은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모세는 막강한 장군이었습니다. 역사에 의할 것 같으면, 모세가 직접 그 주위에 있는 여러 나라를 정복했습니다.
그 후 모세가 자기의 모든 재능을 갖고 이제 돌아서서 주님의 일을 하려고 했을 때, 하나님은 그의 머리가 땅으로
곤두박질치게 해서, 저 광야로 쫓아 모든 그런 것을 때려서 없애시고, 그런 다음에 겸손한 모세에게 나타나시고,
주의 백성을 구원해 내라고 손에 지팡이 하나를 들려서 내려 보내셨습니다.
모세가 군사 훈련으로, 교육으로, 과학적인 교육으로 할 수 없었을 때. 그는 무력으로 그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에게 광야에서 자란 낡고 구부러진 지팡이를 하나 주시고, 모세와 함께 그 일을 행하셨습니다.
겸손하신, 하나님, 단순하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지팡이 안에, 그리고 모세 안에 계셨습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가지고 있는 한, 하나님은 모세 안에 계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지팡이를 가진 게 되었습니다. 정말입니다.
보십시오,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내 신(영)으로 되느니라.”
오로지 단순한 믿음으로 됩니다!
모세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아, 자기는 구원자가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기 위해서 군사적인 힘으로 자신을 훈련시켰습니다, 그러나 실패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는 깨닫고 있었고, 교육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모든 것들을 잊고 하나님 말씀에서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단순한 것으로 와야만 했습니다.
그런 다음에야 백성들을 구원해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으로?) 구원하시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으로 구원하십니다. 항상 그래왔습니다.
시간이 있다면 우리는 좀 살펴볼 수 있겠는데요. 아직 이십 분이 남았군요.
우리 한 번 가인과 아벨을 봅시다. 어떻게 가인이 아름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고 했는지를 봅시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사람들은, “옷을 아주 멋있게 입은 신도들이나, 가운을 입은 목사와 성가복을 입은 성가대와
말쑥하게 차려입은 것으로,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지 아시겠습니까?
가인은 똑같은 일을 시도했습니다. 그리고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는 틀림없이 제단을 아름답게 만들었을 겁니다.
그리고 가인은 매우 진지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는 경배 드렸습니다. 가인은, “내가 마음이 진지하기만 하다면,
아무 상관이 없어”하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틀린 생각입니다. 여러분은 진지하지만 매우 잘못될 수도 있습니다.
보십시오, 그는 제단을 쌓고, 꽃을 갖다 놓고 잘 정리해서 예쁜 과일도 갖다 놓고는, “정녕, 위대하고, 거룩하고,
정결하고, 아름다운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예쁜 내가 드린 그 제물을 받으실거야.”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그는 자기 자신의 지혜로 그렇게 했습니다. 자기 자신의 생각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지혜로, 학교에서 배운 걸로, 자기들이 배운 교육과 윤리로 그렇게 합니다.
“하지만 아벨은, 오직 계시로, 계시된 믿음으로, 하나님께 훨씬 훌륭한 제물을 바쳤습니다.” 인간적으로 말한다면,
그 희생 제물은 눈으로 보기에 전혀 아름답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가엾은 동물의 목을 나무줄기를 목에다 둘러서
제단 앞에까지 끌고 옵니다. 거기엔 아름다운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을 제단 위에 올려놓고, 날카로운 돌칼로
작은 목을 따면 피가 가엾은 양의 털 전체로 튀기고, 고통스럽게 매에, 매에 하며 신음 소리를 내면서 죽어갑니다.
그것은 보기에 너무나도 잔인하고, 처참한 장면이었습니다, 그렇죠.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간단했습니다.
단순함 가운데서, 그는 자기가 부모님의 피로부터 탄생했음을 알았고, 타락을 초래한 것은 피였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그것을 초래한 동물의 피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벨은 그것을 계시로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더욱 더 훌륭한 제물을 받쳤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어떤 형제들은 그들이 사과와 배를 먹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요전 날 신문에서 정말이지
과격한 기사를 보았습니다. 신문에 실리기를, “지금 그들은 이브가 먹은 것은 사과가 아니었음을 증명했습니다.”
그들은 “그것은 살구였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 그 영이 어디에서 왔는지 보십시오!
그리고 그들은 “모세는 결코 실제로 홍해를 건너지 않았다.
그 아래 갈대가 울창한 바다를 건넜다. 모세가 이 갈대 바다를 통과해서 이스라엘 자손을 데리고 왔다.
저 바다 하류에, 갈대가 모여 있는 곳이 있는데, 모세는 그러한 바다를 건넜으니, 모세가 건넌 것은 갈대 바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튤리 같은 풀을 헤치고 건넜다”고 합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말입니까!
성경이, “물이 좌우로 갈라지고 하나님께서 강한 동풍으로 하여금 물을 가르게 하셨다”고 말하는데도, 아시겠죠?
그들은 자기네 식대로 그 말씀을 해석하고는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런 식으로 그들은 항상 실패해 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실패할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이런 모든 일들은! 아벨에게 온 것처럼 계시에 의해서입니다.
그런데 가인은 오늘날의 외형적으로는 종교적이지만 계시 받지 못한 인간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의 원형입니다.
그는 겉으로 뭔가를 하고 싶어 합니다. 그렇지만 그는 교회엘 가고 건물을 위해서, 여러 가지 일들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는 단 하나가 있는데 여러분은 거기 가입하는 게 아니라 태어나야 합니다..
이런 우리들 눈으로 보이는 교회 건물들은 교회가 아니라 예배를 드리는 집회소입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은 감리교 집회소, 침례교 집회소, 장로교 집회소, 오순절교 집회소에 모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물과 성령에 의해 태어나야만” 교회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그렇죠?
이 모든 것들은 예배를 드리는 집회소들입니다. 그것들은 교회가 아닙니다. 그것들은 집회소입니다.
감리교 “교회”나 오순절 “교회” 따위는 없습니다. 절대로,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것들은 아닙니다,
그것은 다 잘못된 것입니다. 그렇죠? 그것들은...맞습니다. 그것들은, 그것들은 사람들이 모이는 집회소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 안으로 태어나야하며 그 몸의 지체가 됩니다.
그 몸은 지금도 형성되어가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한 몸입니다.
자, 아벨에게 하나님의 비밀을 흘린 피에 대한 단순한 믿음에 의해서 나타낸 것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였습니다.
오, 저는 그것에 대해서 잠시 동안 좀 더 설명할 시간이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렇죠?
그러나 온갖 지혜를 가진, 똑똑한 사람 가인은! “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당신은 가인을 교육받은 천재로
만들려고 애쓰고 있습니다.”하고 말할 것입니다. 그는 천재였습니다. 그는 똑똑한 사람이었죠? 그의 혈통을 따라
내려가 보십시오. 그의 자손들을 보십시오. 그 자손들은 다 과학자요, 의사요, 똑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모두 다.
그러나, 셋의 세대를 따라가 보십시오, 그들은 멸망 때까지 계속해서 겸손한 농군이며 농부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인의 자손들은 똑똑하고 지적인 부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스스로 동을 불릴 수도 있다고 하였으며, 금속을 만들고 건축자들이었고, 영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쪽 사람들은 그저 장막 안에 거하고, 양을 치고, 하나님의 약속 위에 안주하고 있을 때 말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자, 그냥 쭉 혈통을 따라 내려가 보십시오,
그리고 그것이 맞지 않는지 보십시오. 아시겠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 위에 안주했습니다.
그렇게 노아가 그런 종류의 사람들 중에서 택함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바울이 그 무리들 중에서 취해졌습니다.
아시겠죠? 그렇게 요한 웨슬리와 마틴 루터와 기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게 여러분이 현재의 여러분의
모습이 되기까지 이르렀고, 아시겠죠, 똑같은 일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단순한 약속을 믿는, 겸손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잘 보십시오, 증명하는 것은 하나님을 즐겁게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항상 그것이 진리인지 아닌지를
입증할 것입니다. 그렇죠?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은 수천 리 밖에 계시는 분으로 생각하고자 애를 씁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뒤쪽으로 가까이 오셔서...강조하여 말씀하시고,
“그게 맞다, 그게 맞다, 그게 맞다.”라고 말씀하시면, 그 때 여러분은 그것이 진리라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제물들이 제단 위에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에 대한 가인의 지적인 개념을 거절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벨을 보셨을 때, 그건 들에서 나는 사과나 열매가 아닌 피였다는 것을 믿는 단순한 믿음으로,
아벨은 그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였고,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아 그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제물을 받으심으로써 아벨을 입증하셨습니다. 그렇죠?
우리가 아픈 자를 위해서 기도하는 거라든지, 그 어떤 것들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쭉 내려와서, 이제는 서둘러서, 20분 남았습니다.
잘 보십시오. 엘리야의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한 단순한 사람 속에 자신을 감추기로 선택하셨습니다.
자, 그걸 좀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선택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들은 랍비나 제사장들이 있었고, 그 시대에는 위대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유대인의 왕인 아합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 그 땅에는 위대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한 단순한 사람 속에 자기 자신을 감추셨습니다.
어떤 학자 안에가 아닙니다. 아닙니다. 위대한 군사적 천재나 거물이나, 세상에 명성을 떨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엘리야의 부모가 누군지도 모릅니다. 그의 혈통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는 선지자가 될 목적을 위해서 어딘가에서 양육된 평범한 늙은 농부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광야에서 혼자 살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이라곤, 엘리야가 어딘가에서 갑자기 뚜벅 뚜벅
걸어와, 들어와서 전 교회 체제를 정죄했다는 것뿐입니다. 세상에!
그런데 그들이 엘리야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여러분 아십니까? “그는 어떤 학교를 나왔습니까?” 아시겠죠?
“그는 어떤 교파에 있습니까?” “그는 바리새인들과 아니면 사두개인들과 함께 지냅니까?”
아니면 그들이 가진 더 많은 교파들과? 엘리야는 그 어떤 것에도 속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전체를 다 정죄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려고 선택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한, 한 단순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엘리야가 어떤 교육을 받았다고 말하는
성경구절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엘리야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성경구절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는 그저 단순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단순한 사람 속에 숨으시는 것을 좋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한 인간 속에, 이 단순한 사람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것을 이해하시겠습니까? [회중이 “아멘”한다--주]
하나님은, 세상이 보기에는 “무식한 괴짜” 속에 숨어 계셨습니다. 그런 이유로, 아시다시피, 사람들은 엘리야를
별별 소리로 다 비난하고 심지어는 “마법사”라고까지 했습니다. 선지자들은 다 그런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렇죠?
그래서 예수님도, 아시겠지만, “바알세불이며 미쳤다”는 비난을 받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아니, 당신은 돌았군요. 네. 우리는 당신이 귀신들렸다는 것을 압니다. 당신은--당신은 제 정신이 아닙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렇죠?
바로 그 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마지막 날이 되면 그렇게 하는 것은 신성모독(훼방)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용서하셨지만 이 마지막 날에는 그렇게 하면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영원한 분리라는 값을 치러야 만 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와 올 세상에서 결코 용서받지 못하리라.”
그런데 엘리야는 미친 사람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여러분 상상해 보십시오,...여자들은, 추측컨대, 현대처럼 머리를
자르고 그 나라 왕비 이세벨처럼 화장하고 설교자들은 다 세속화되고 기타 등등. 그 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 때 여기 늙은 엘리야가 이세벨로부터 시작해서 아래에 있는 사람들까지 쭉 전체를 정죄하면서 나옵니다.
“글쎄요, 우리는 당신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어요. 우리에게도 목사님들이 있으니까요.”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들은 들을 필요가 없었죠, 하지만 어떻든 간에 엘리야는 그들의 목사였습니다.
엘리야는 이세벨의 목사였습니다. 이세벨은 그걸 원치 않았습니다. 그녀는 다른 부류의 목사들을 가지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지만, 하나님께서 보내셨고, 그가 그녀의 목사였습니다. 그렇죠? 그는 그녀를 위해 하나님이
보내신 목사였습니다. 그녀는 엘리야를 미워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그는 목사였습니다. 보십시오.
그런데 엘리야는 자신을 낮추었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행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가 좋아서
엘리야로부터 그 영을 취해서 그 똑같은 영을 그 때부터 세 번이나 내려주기로 약속하셨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아멘! 그리고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아멘. 하나님께서는 정말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오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영은 엘리야의 계승자인 엘리사에게 임했고, 그 다음에는 침례 요한 위에,
그 다음에는 말라기4장에 의할 것 같으면 그 엘리야의 영은 마지막 시대에 다시금 오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딘가 저 숲 속에서 나온 단순하고 못 배운 나뭇군에게 임했던 그 영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영은 하나님의 말씀에 너무 순종적이어서, 하나님은 “엘리야야, 이 일을 해라”하고 말씀하실 수 있었고,
엘리야는 그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런 단순함 속에 그 안에 자신을 감추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다 그에게, “저 늙은 괴짜. 저 사람하고는 상종도 하지마.”하고 말했습니다, 기타 여러가지로.
그러나 어느 날 그가 늙어가고, 머리는 대머리가 되고, 하얗게 샌 수염은 치렁치렁 내려오고, 몇 가닥 안 되는
머리카락은 어깨 위에 내려오고, 팔은 늙어 말랐고, 살은 그렇게 그것들 위에 축 늘어지고, 사마리아로 가는 길을
걸어가서, 그 눈은 하늘을 향해 쳐다보고, 손에는 구불구불한 지팡이를 쥐고 있었습니다.
그는 쳐다볼 볼품이 없었지만, 그 시대를 위해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Thus saith the Lord)”을 갖고 있었습
니다. 그는 말씀을 가지고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더듬거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저, 위대하신 아합왕이시여.”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걸어 나가서, “내가 부르기 전에는 하늘에서 한 방울의 이슬도 내리지 않으리라”고
말했습니다. 할렐루야! 아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의 단순함을 존중하셨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그것이 그 단순한 방법으로 있었어도, 사람들이 다 그를 반대했고, 모든 사람들이 그의 목을
조였습니다. 모든 성직자협회와 기타 다른 모든 것들이 그를 대적했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를 없애버리려고
온갖 짓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단순함 속에, 그들이 그의 전도대회와 그가 하는 무슨 일에도 아무 협력도
하지 않으려 해도. 모든 사람들이 그를 괴짜라고 생각했어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숨기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심겨진 그 씨가 익을 때가 되자, 하나님께서는 하늘로부터 불을 내려 보내서 희생제물을 핥아버림으로써
자신을 표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순함 속에 숨으시고 다시금 자기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렇죠?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는 걸 좋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늘 그런 식으로 해오셨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런 것들을 약속하신 것을 압니다.
오늘날,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의 문제는, 우리가 신학교와 교파와 지식을 지나치게 추구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들을 사용하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어떤 일을 하라고 시작하게 하시고 그에게
사역을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먼저 아셔야 할 사실은, 그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에 주의를 기울일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우선 아셔야 할 것은, 그는 커다란 무리들 사이에서 온통 휩싸이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에게서 손을 떼시고 그를 혼자 내버려 두실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아시겠죠?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사람을 찾고자 하실 것입니다. 그 일을 할 누군가를 말입니다. 아시겠죠?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받고, 하나님이 주신 계시를 가지고서 요동하지 않고, 그 말씀 위에 굳게 서서 머무를
누군가를 찾으셔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식으로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런 식으로 일해오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너무나 교육을 많이 받고 똑똑하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에다 자기 자신의 해석을 붙이려고 합니다.
자, 사람들이 말하듯이, “오, 성령의 침례는 이 시대에 해당하는 게 아니라 이 전의 시대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아니면 “그것은 다른 시대를 말하는 게 아니지만, 제 말은, 성령의 침례는 오순절날과 같이 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믿었을 때 성령을 받습니다.” 라든가 그런 종류의 말들을, 아시겠죠. 그리고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 받는 것에 대해서 말해보십시오.
자, 그들은, “음, 하지만 신학교에서는 말하길! 아무개는 말하길!”하고 말할 것입니다.
그것은 타협하는 것입니다. 그렇죠?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아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전국적으로 공격의 대상이 되게 내버려 두시고, 쫓겨나고 비웃음을 당하고 놀림을 당하고
온갖 일을 다 당하게 두실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진짜 마지막 판결을 낼 때가 오면, 하나님께선 일어나셔서 바로
그 똑같은 단순함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입증하실 것입니다.
꽃처럼 우뚝 서서. 그 씨는 완전히 끝이 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 씨가 죽어 땅 속으로 떨어집니다.
그 작은 씨를 파 보시면 그것은 썩고 지저분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거기에서 다시금 다른 꽃을 재생할 수 있는
생명이 터져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순함 속에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와 똑같은 일을 하십니다. 위는 아래입니다, 항상.
여러분 자신을 겸손히 낮추십시오. 절대로, “저는 이것을 갖고 있고 저것을 갖고 있습니다.”하고 말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단지--꼭 기억하십시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를 갖고 있다면,
그 은혜에 대해서 감사히 생각하시고, 그것에 대해 겸손한 마음을 가지십시오. 아시겠죠,
그저 계속 여러분 자신을 겸손히 낮추십시오.
자 시간이 없으니까...서둘러야만 하겠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지치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여러분을 너무 오래 붙들고 싶지 않습니다, 아시겠죠. 하지만 우리는 이번 주 내내 시간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람들이 너무나 영리하고 교육을 많이 받게 되는 것을 압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또 다른 것을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한 쪽으로 너무 멀리 나가, 그들은 종교적이
되려고 애쓰다, 광신자가 됩니다. 자, 우리는 그 사람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죠? 그들은 다른 한 쪽으로 갑니다.
거기서 제가 그 형제님들 무리와 다른 점입니다. 얼마 전에 그들은 빛의 노상에서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한 단체를 만들지 않고는 그 현상이 마무리되는 것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카나다에 모여서 서로에게 사도와 선지자 등등의 직위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완전히 타락했습니다. 언제나 그럴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들은...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느끼기에 자기들이
...이기 때문에. 그들은 다른 것들을 지나치게 비난하여 극단으로 치닫게 되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한쪽은 고도로 지적이고, 냉냉하고, 무관심한 사람들인데, 그들은 거기에서 모든 것을 부인합니다.
또 다른 이들은 다른 쪽으로 가서 감정적이고 과격한 무리들로서, 그들은 말씀을 부인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진짜 교회는 중도에 머무릅니다. 자, 여러분 잘 보시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셨나에 대한
성경지식을 갖고 있고 영적이어서 마음이 따뜻합니다, 바로 그 길입니다.
이사야는 그런 식으로 될 거라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기 한 대로(a highway)가 있다...”고 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강하고 작은 움직임인 나사렛 교회에 다니시는 축복받고, 거룩하고, 고귀한 친구들,
그들이 무엇을 얻었습니까? 하나님이 자신의 교회에서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셨을 때, 그들은 너무나 종교적이고
너무나 형식적이어서 그것을 “마귀”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아시겠죠?
아시겠죠? 그들은, 그들은, “그대보다는 더 성결하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모든 것들이 씨로 되돌아가서 금새 죽어버리는 것을 압니다. 아시겠죠? 그 다른 쪽은.
그런데, 한 쪽은 광신자가 되고, 다른 한 쪽은 냉냉하고 형식적입니다.
자, 이사야는, “거기에 대로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나사렛교인들과 성결을 믿는 많은 나이 드신 분들은, “복된 그 옛 대로로다! 하나님께 영광을! 우리는
그 옛 대로를 걷고 있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그것은 이사야가 말한 것과는 같지 않았습니다.
이사야는, “거기 한 대로가 있다. 그리고(There shall be a highway and.)”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접속사입니다. “...그리고 한 길이 있다.” 그 길은 거룩한 대로(The highway of holiness)가 아니라,
“거룩한 길(The way of holiness)”이라 일컫는바 되리니.
자, 한 거룩한 대로, 사람들은 자신들을 거룩하게 만들려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그렇게 하신다면, 그것은 제가 전에 말했던 것처럼, 그것은 마치... 말똥가리가 본성은 여전히
말똥가리인데 비둘기 깃털을 붙여서 자신을 비둘기로 만들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는, 그것은...그것은 마치 까마귀가 비둘기의 깃털이나 공작의 깃털을 붙이고는,
“제가 얼마나 아름다운 새인지 보세요.”하고 말하는 것과 똑같을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것은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러나 공작은 자기가 공작 깃털을 가질 것인지 안 가질 것인지를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비둘기도 자기가 비둘기 깃털을 가질 것인지 안 가질 것인지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의 본성이 비둘기인 이상, 그는 비둘기의 깃털을 가질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성결교인들은 “여자들은 머리를 길러야 하고 긴 소매를 입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모든 말들,
그리고 긴 치마를 입어야 하고 결혼반지나 어떤 종류의 보석이든지간에 착용해서는 안된다.”라는 이런 말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보십시오, 그것은 스스로 의롭게 여기는 거룩함이 되었습니다. 아시겠죠? 아시겠죠?
그것은-만들어낸 거룩함입니다.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의 진짜 교회는...그런데 교파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십시오. 지금은 성결교인들은 다 오순절 교인들과 기타 등등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다 머리를 잘랐고 그들
모두 다, 거의, 반지나 그런 것들을 끼고 다닙니다. 몇 년 전에만 해도 오순절교인들이 그것에 대해서 얼마나
강조를 했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교회는! 우리, 교회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왕국에 태어난 다른 무리들 가운데 있는 개인입니다.
그것은 몸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여러분들은 양에게 양털을 만들어내라고 부탁하지 않습니다. 양은 자신이 양털을 제조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 양이, “자, 내 주인이 올해 내가 양털을 얼마 내기를 원하시니 난 바쁘겠군.”하고 말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양이 해야 하는 일이란 그냥 양으로 남아 있기만 하면 됩니다. 맞습니다. 양털은 실제, 자동적으로...자랍니다.
양은 양털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럴 것입니다. 양은...양이기 때문에 양털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도 열매를 만들라는 부탁을 받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열매를 맺도록, 아시겠죠, 지니도록 되어 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우리는 열매를 맺도록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하나님의 과실나무라면,
하나님의 말씀이 스스로 입증을 할 것입니다. 말씀이 속에 있기만 하면 그것은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고 말하셨습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은 그것을 만들지 않아도 됩니다. 그곳까지 이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것은 사실상 거기에 그냥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계속, 계속 진행됩니다.
2부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