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평/ 조미순
나무판자로 대충 구분 지은 칸막이 같다. 그 공간에 들어앉은 할머니들은 소쿠리에 파, 콩나물, 도라지, 우엉, 마늘, 감자 등을 담아 내놓는다. 3.3제곱미터도 안 되는 공간에서 백발의 억새꽃들은 분주하다. 각종 팔 것을 다듬거나 쪼개는 게 부가가치를 높이기 때문이다. 욕심부리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부지런함이 억새꽃들의 천성이다.
집 근처 골목엔 작은 시장이 형성돼 있다. 버스회사가 이전해 간 공터 주변에 난전을 폈던 이들이 가건물을 지었다. 잡곡 파는 할머니가 막걸리 한 잔으로 무료함을 달래고, 비녀로 쪽을 찐 할머니가 연방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파 다듬기 삼매경이다. 도라지를 까다가 오수午睡에 빠져들거나, 행인에게 도토리묵을 권하는 노인도 있다. 1천 원어치에도 덤이 후한 땅콩빵 할머니 앞에는 학생들로 북적인다. 억새꽃들이 시장 풍경의 중심이다.
길모퉁이나 사거리 한켠의 가장자리, 혹은 시내 중심가의 골목길에도 한 평 남짓한 공간들이 활용된다. 구두 병원이나 옷 수선집, 열쇠나 액세서리 파는 곳, 교통카드 충전과 즉석복권을 취급하고, 호떡이나 붕어빵 등 먹을거리를 팔기도 한다. 철학관이나 점집도 있다. 이런 곳엔 시장 통로 할머니들에게서 느끼던 여유를 찾을 수 없다. 커가는 자녀가 진공청소기처럼 돈을 빨아들이고, 살아내야 할 날들이 도전적으로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한 평쯤 되는 공간에서 현재를 태우는 사람들은 고시원에도 있다. 하루 종일 책과 씨름하다 누우면 책상 밑에까지 발을 뻗어야 몸이 온전히 펴진다는 곳, 젊은이들이 바늘구멍만 한 취업 기회를 잡으려고 다시 수험생이 된다. 몇 차례 시험에서 떨어지면 부모 뵐 낯이 없어 생활비 달란 말도 못 하고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굶으면서 책을 본다. 고시원의 그들은 한 평 공간에 대해 무관심하다. "먹고, 자는데 문제없으면 되는 거지요." 하며 희미하게 웃는다. 진실로 젊은이들을 힘들게 하는 건 꿈을 빼앗아가는 암울한 미래다.
일본의 유명한 공동주택 중에 벽장 집이 있다. 가로 2미터, 세로 1미터로 집 전체가 벽장인데 어떤 벽장에는 두 사람이 거주한다. 일어서기는커녕 비좁아서 몸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으나 "만족스럽다."는 이들이 거기 있었다. 정신적으로 불만을 갖지 않는다면 물질적, 환경적 부족함이 문제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무엇이 작다거나 크다고 인식하는 건 욕망이 반영된 거울을 실체로 착각하는 오류에서 온다.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에서 바흠은 '하루 1천 루블'이라는 바시카르 인의 땅에 욕심을 낸다. 하루 동안 돌아보는 곳 전부를 갖되 해지기 전까지 출발 장소로 돌아와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빠르게 멀리까지 가려는 바흠 앞에 갈수록 좋은 땅이 나타나 탐욕을 자극했다. 해가 서쪽으로 떨어질 무렵에야 출발 지점으로 돌아갈 생각을 했으나 늦었다는 절망감과 후호에 사로잡혔다. 바흠에겐 2미터짜리 구덩이가 주어졌다. 욕심을 줄이면 그 밑에 가려져 있던 행복이 보인다는 걸 알면서도 탐욕이란 악마에게 굴복한 우리네의 자화상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 한 평쯤 되는 공간에서 "응애!"라는 첫 호흡을 하고, 또 그만한 땅에 빌려 쓰던 육신을 묻는다. 요즘처럼 친환경 장례인 애코다잉(eco-dying)을 한다면 분골粉骨로 나무 밑이나 바다, 강에 뿌려짐으로 해서 특별한 공간 자체도 필요치 않다. 어떤 이는 일생 동안 부모나 자기 능력의 성과물로 넓은 공간에서 호사豪奢를 누리지만, 종국에는 빈손으로 떠나기에 누구나 '한 평'의 삶을 산다,
'한 평', 백발의 억새꽃들에겐 용돈을 마련하는 공간으로, 어떤 이에겐 생계를 잇는 밥줄이 된다. 꿈에 다가가려는 이에겐 간이역 역할도 하고, 주머니 가벼운 이에겐 최소한의 의식주 해결 장소도 된다. 또한 영혼의 못인 몸을 갈무리하는데도 부족함이 없다. '한 평'은 작다. 하지만 적당한 비움과 채움의 공간으로 행복을 싹 틔우기엔 좁지 않다. 무엇을 얼만큼 비우고 채울지 그것은 각자의 몫이지만 짧은 인생길에 비움의 이유를 아는 이는 분명 행복할 자격이 있다.
바람이 작다면 채워지기 쉬운 게 삶이라 한다. 그러나 내겐 아직 해내고 싶은 일이 많아 욕망의 부피가 줄지 않고 있다. 미치고狂 미친及 뒤에야 내 맘이 바뀔까? 나는 바흠처럼 어리석다.
[출처] [좋은수필]한 평 / 조미순|작성자 에세이 자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