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마지막날 삼일째 부활
부활은 세상 어떠한 경전에도 기록 됨이 없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만이 약속으로 기록 되어 있다.
사망이나, 애통 하는 것이나 아픈것 이나 곡하는것(지인들 죽음)이 영생하는 부활과 동시에 끝이 난다.
1. 부활 때
부활의 시점은 예수 부활과 나사로 부활을 통해 알아 볼수 있다.
예수 부활과 나사로 부활은 하루
차이가 나는 것도 성경의 기록을
깊이 생각해 보면 알수 있다.
나사로 부활시 사람들은 부활에 대하여 3가지 견해로 나누어져 있다.
첫째로 부활에 관심 없는 제자들이며
둘째로 부활을 비웃는 모인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관중들 이며
세째로 세상 끝날에 일어나는 부활로 나사로의 동생 마르다와 마리아는 믿었다.(=현대 신앙인들 다수.)
예수는 이러한 세가지 견해의 생각들 앞에 나사로를 죽은지 4일 만에 일으켜 보여 주었다.
그러나 자기가 믿던 종말 부활설을 버리고 각 사람의 마지막날로 부활 믿음을 바꾼 것은 마리아 였다.
예수가 죽었지만 오빠와 같이 반드시
4일 만에 부활 할꺼야 믿었던 마리아는 오빠의 부활을 두눈으로
목격한 것과 같이 예수 부활을 목격
하고자 다른 마리아와 함께 예수 무덤가로 찾아 갔지만 예수는 이미 3일째 부활이 다 끝난 시점이었다.
나사로 부활시 하루를 더 유숙함은
예수 부활 시점 보다 하루를 더 늘려
놓아야 이를 믿는 마리아가 예수 부활시점에 못오도록 하려함이다.
하루를 더 유숙하지 않고 나사로의 부활을 3일에 맞추 었으면 마리아가
예수 무덤에 목격 하려 2일전에
오면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부활은 죽은날로
부터 시신 속에서 예수 몸을 덧입은
보이지 않는 다른 몸이 3일째 발인 하는날 빠져 나온다.(=흙 무덤이 열리고 나옴 / 흙 옷을 벗음)
2. 부활 형태
하나님은 만물 창조시 부활하는 형태를 만고 불변의 자연의 진리 속에 그려 주었다.
모든 씨앗들이 껍즐을 벗는 것과
각종 알들이 껍즐을 벗는 것과
모든 유충들이나 번데기나 심지어
구데기 까지 껍즐을 벗고 새로운
모양의 형태가 나옴을 알수 있다.
이와같이 각 마지막날 내 속에 나로
나오는 것이 아닌 다른 형태인 예수의 모습으로 나온다.
떡(몸)은 맛도, 색깔도, 모양도 붕어빵 같이 똑같기 때문이다.
사람이 인생을 살며 물과 성령으로 거듭 나는 날에 하늘로 떡(몸) 조각이 내려와 죽은 속몸에 떡친다.
모든 자연 만물의 생명은 하루 아침에 짠하고 장성 하는 것이 아니며 씨로 부터 시작한 어린 생명이 점점 자라나서 장성함에 이르는 것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씨가 점점 담장을 뒤덮은 넝쿨처럼 죽은 속몸을 덮어 버린다.(=사망의 몸이 예수 생명의 몸에 삼킨바 되나니)
보이는 겉사람 방향에서 보면 >"예수가 내 안에"< 보이지 않는 속사람 방향에서 보면>"내가 예수 안에"<로 있는 형태가 된다.
그의 몸과 피로 10가지를 한가지로 이룬 하나의 명령에 대하여 복종하여 믿고 지키자에게 찾아가 "예수가 내 속으로 내가 예수 속으로"가 이루어 진다.
이와같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부활은
사람의 속몸에 덧입혀진 생명이 죽는
마지막날 삼일째 예수 모습으로
흙 옷=흙 몸 (흙 무덤)이 자궁문
열리듯이 열려져 영생 천국에 새 생명의 하루가 시작된다.
3. 예수를 통해 본 부활의 몸
뼈와 살이 있는 오감이 100%로 열렸다.(오감을 통한 행복 추구.
오감의 무기능은 죽은 식물 인간.)
무덤에서 덮혀진 세마포가 그자리에
있음은 벌거 벗은 채로 나왔기에
선악 열매 먹기이전 에덴에서 벌거
벗은 상태로 살아가는 것처럼 부끄러움 없이 벌거 벗고 산다.
제자들있는 방문을 열고 들어온 것이 아닌 벽으로 들어 오듯이 입체 공간의 지배를 받지 않는 몸이다.
제자들 앞에서 구운 생선을 먹듯이
오감을 즐기는 몸이다.
500명 앞에서 예수의 몸이 시범 운행을 보여 주듯이 속도를 자유
자제로 바꿀수 있기에 우주 공간을 날아 다니는 개인 우주선과 같은
몸이다.
4. 예수의 사랑
예수는 얻은 몸을 한조각씩 몽땅 떼어 나누어준 가시고기 처럼 후에는
어린양과 보좌 뿐이라.
친구들을 위해 아낌 없이 다 나누어 주고 아버지의 보좌 뿐이다.
끝날에 바다가 없더라. 함은 용이 권세 잡은 바다는 세상을 의미하고 세상은 지구를 의미한다.
지구가 불에 소멸 되어야 모든 사람의 옷을 단번에 벗겨 24 보좌의
심판을 받게 하려함이라.(성의 12문은 두짝으로 합이 24 문짝으로 이루어 졌다.24명은 14만 4천의
대표로 장로 형제들임.)
첫째라는 단어로 성경에 기록 되어
있으면 반드시 둘째가 있다는 것이다.
요한 계시록 20:6 에 "첫째 부활"에 참여 하는 자는 복이 있고 거룩 하도다. 둘째 사망이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로 기록 되어져 있다.
이렇게 첫째 부활로 기록 됨은 둘째 부활이 있다는 것이다.
첫째 부활은 각자의 죽는 마지막 날에 씨가 열매로 나오는 생명의
부활이고 또한 세상 마지막 날에 심판의 부활로 나온다.
고린도 전서 15장 23,24절을 보면
세번의 부활이 있다
제일 먼저는 그리그도요.
그다음은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
그에게 붙은 자요.
그리스도(영) 강림은 2000년 동안
사람속으로 오시고 있다.
그다음은 나중이라 함은 세상 종말
때 24 보좌의 결정에 따라 둘째 사망 몸과 둘째 생명의 부활 몸을 나눌때 이다.
그러므로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는
세상 끝날에 심판과는 무관하다.
생명은 씨로 부터 시작 되기에
땅 바닥을 누비는 번데기 몸속에 나비의 씨가 점점 자라난후 번데기 옷을 벗고 다른 모습인 나비로 나와 하늘을 자유로이 비상하는 것과
같이 둘째 사망 권세가 하나도 없는 첫째 부활의 복에 참여 하자!
카페 게시글
2, 은혜의 글
죽는 마지막날 삼일째 부활
문빌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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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6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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