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아버지」
내 기억 속의 아버지는 이제 얼굴마저 희미하고 별로 추억도 많지 않다. 내가 여덟 살이던 해 봄 하얀 아카시아 꽃이 바람결에 날리던 무렵 돌아가셨기 때문이었다. 그 후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신 어머니는 우리 6남매를 홀로 키우셔야 했다.
어려서부터 홀어머니의 아픔과 고난을 옆에서 지켜보며 일찍 철이 들었던 내게 있어, 그리하여 아버지는 때로는 원망과 미움의 대상이었고, 때로는 막연한 동경과 그리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어느 해 장마철 고향에서의 무너지는 논둑이 떠올랐고, 암흑 같은 소년시절에는 흔들리고 방황하는 나를 두들겨 패줄 아버지의 매가 그리웠으며, 내가 아버지가 되어서는 세상풍파에 무너지지 않고 주저앉지 말아야 한다는 굳센 의지와 의무감의 상징이 되어 갔다.
신,
주번 근무를 하다가 문득 라디오를 켜고 가곡을 들었어. 그렇게도 못 견디게 듣고 싶었던 우리 가곡을. 신은 얼마 전에 「기다림」을 들었다고 했었지.
오늘 나는 김성태곡 「동심초」를 들었어. 첫 소절만 들어도 아련한 추억과 함께 간절한 그리움이 온몸을 사로잡는 그 곡을 만든 이는 얼마나 아름다운 감성을 지녔기에 그토록 듣는 이의 마음을 전율케 하는 것일까. 참고 참다가 나는 마침내 2절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을 들으며 눈시울이 젖고 말았어.
바람에 꽃이 지니 세월 덧없어
어둠을 향하여 흐르는 그 선율이 온통 내 가슴을 훑고 지나가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었어. 바람에 꽃이 지니 세월 덧없어... 정말 어느새 그렇게 세월이 흐른 것일까.
오늘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4년째 되는 날, 어릴 때 보던 그대로 아카시아 꽃들은 설움에 겨운 나를 두고 서서히 지고 있어. 아무리 기다려도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음을 알면서도 나는 왜 그렇게 해마다 아버지를 기다렸을까, 한 잔의 술을 마시고 밤늦게 집에 돌아갈 때 나는 그 분이 그리웠어.
가엾은 어머니는 언제나 문을 열어주며 어서 오너라. 하고 말씀하실 뿐 아무런 책망도 질책도 없으셨어. 나는 그때 가장 아버지가 그리웠어. 내가 술에 취해 밤늦게 돌아가면, 방문을 박차고 나와 어린놈이 어디서 술 먹고 정신 못 차리고 다니느냐면서 몽둥이를 휘둘러 나를 때려주실 아버지가 가장 그리웠어.
아, 나는 그때 얼마나 아버지에게 두들겨 맞고 싶었던가, 죽도록 나를 패주실 그 아버지의 몽둥이가 얼마나 그리웠는지 몰라. 그러면 나는 무릎을 꿇고 아버지에게 잘못했다고 빌고, 아버지는 나를 와락 끌어안고 그래도 자식이라고 품어 주셨을 거야. 그랬어. 나는 늘 이맘때면 잃어버린 아버지의 그 품안이 그리웠어.
(1978.5.26.)
< 무너지는 논둑 >
내가 어렸을 때 고향에는 우리 집에서 한 5분정도 떨어진 마을 한 귀퉁이에 조그만 논이 있었다. 위아래 논의 높이가 차이가 나 남북으로 두 개의 논이 중간에서 논둑으로 나뉘어져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우리 집 논 위에는 다른 사람 소유의 논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위에 있는 논에서 물이 내려오지 않으면 우리 논에는 물이 도달하지 못하고 논바닥은 말라버릴 것이다.
따라서 논에 물을 대고, 소를 빌려 논을 갈고, 볍씨를 뿌려 모종을 만들고, 모내기를 하는 모든 과정이 남의 손을 빌어서 해야 했을 테니 홀어머니에게는 벅찼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 논에 벼를 심어 키우지 않으면 우리는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 그래서 어머니는 비가 오는 날이면 그 위아래 남북으로 갈라진 삼팔선 같은 논둑이 무너져 내릴까봐 노심초사하셨다. 비가 오지 않으면 논바닥이 갈라질 것이요, 비가 너무 많이 오면 논둑이 무너져 애써 심어놓은 벼가 묻힐까봐 걱정을 하셨던 것이다.
어머니는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걱정근심을 하다가 도저히 참지 못하고 불과 열한 살이던 나를 깨우셨다. 어머니는 비가 오는 한밤중에 가마니를 어깨에 둘러메고 후레쉬 한 개와 삽을 들고 논으로 나가셨다. 나는 어리둥절하여 어머니를 따라 나섰는데 밖은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웠고 장대같은 비는 금방 온몸을 적셨다.
우리 집 논에 가보면 윗논에서 빗물이 흘러넘쳐 벌써 어린 벼들은 많이 잠겼고, 내가 기억하던 윗논과 아랫논에 가로놓인 삼팔선 둑은 위태롭기 그지없었다. 둑이 무너져 내리지 말라고 아래쪽에 박아놓은 나무말뚝은 부러질 듯 위태로웠으며, 높이가 낮은 구석진 둑 사이로 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어른들 말로 정말 손바닥만 한 작은 논이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는 그 논이 우리 가족의 식량줄이었으리라. 아직 올망졸망 어린 자식들을 거두어 먹여야 할 소중한 논이었기에 어떻게든 무너지는 둑을 막고 벼를 살려야 한다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비가 내리던 저녁, 캄캄한 밤하늘, 잘 보이지도 않고 미끄럽기만 하던 논둑길에서 어머니는 발을 동동 구르며 아이구 어떡하나 아이구 어떡하나 하실 뿐이었다. 얘야, 아무개야 어떡하면 좋으냐 하실 뿐이었다.
급기야 어머니는 가마니고 뭐고 내팽개치고 아랫논으로 내려가셨다. 삽으로 흙을 퍼서 논둑 위로 올리고 삽 등으로 탁탁 두드리며 둑을 견고히 하고자 하셨다. 그러나 이미 물에 젖은 논흙이 둑에 붙을 리 없었다. 비에 젖어 자꾸만 흘러내리는 윗논의 흙을 퍼서 둑에 올리며 어머니는 얼마나 각다분하셨을까. 그때 아직 어린 나는 어머니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그저 어머니가 든 삽을 빼앗아 어머니와 비슷한 동작을 되풀이 했을 뿐이었다.
아, 어둠속에서 눈물과 빗물로 범벅이 된 채 부르짖던 어머니의 음성과 그 어둡던 밤의 빗소리, 그리고 속절없이 흘러내리던 그 논둑처럼 무너져 내리고 있었을 어머니의 가슴을 생각하면 나는 늘 울음이 났다. 그 논둑이 뭐라고... 그것이 생명줄인 양 그것을 지키려고 한밤중에 찬비를 맞으며 울부짖던 어머니의 처절한 사투가 너무 못 견디게 가엾어서 나는 얼마나 돌아가신 아버지를 원망하였는지 모른다.
무책임하게 술만 퍼마시고 혼자 일찍 가버린 아버지, 혼인을 하고 아이들을 낳고 한 가정을 이루었으면 마땅히 술을 절제하고 가족의 안위를 돌보면서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였어야 할 것이 아닌가. 나는 그래서 지금도 아버지를 생각하면 무책임하다는 말이 먼저 떠오른다. 당신인들 그렇게 일찍 가실 줄 모르셨겠지만 나는 그 후 그 비 오던 날 밤의 무너져 내리던 논둑을 생각할 때 마다 아버지를 쉽게 용서하지 못하였다.
그렇게 비 오던 밤의 논둑에서 겪었던 어머니와의 일은 살면서 가장 잊혀지지 않는 극적인 장면이자 아버지를 향한 원망과 한의 씨앗이 되었으며, 이후 내 평생을 관통해 온 생의 의지와 투혼의 상징같이 되었다.
나는 결코 무너지지 않으리라. 나는 결코 무책임하게 내 아내와 자식들을 두고 일찍 떠나지 않으리라. 내 아내와 자식들을 비오는 밤에 찬비를 맞게 하지 않을 것이며, 속절없이 절망케 하지 않으리라는 다짐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나는 비오는 날 밤이면 어디선가 어머니의 부르짖는 절규가 들리는 듯하여 얼마나 혼자 가슴 속으로 오열하였는지 모른다. 내가 만일 그때 장성하였더라면 밝은 날 그 논에 가서 아주 튼튼하게 둑을 쌓고 아무리 비가와도 끄떡하지 않으며, 언제든 물이 마르지 않고 벼가 잘 자라서 어머니의 가슴을 빈곤하지 않게 하는 그런 논을 만들어 드리고 싶었다. (2021년 여름)
아비
타이탄트럭 이삿짐 속에 쪼그리고 앉아
도심 속 간판 사이로 스쳐가는 별을 보았다.
무릎 위 잠든 어린 딸의
차가운 종아리를 쓰다듬으며
다짐했다.
지켜주마
이 세상 다하는 그날까지
내 너를 지켜주마
(첫 시집 ‘그리움을 향한 평생보고서’)
2024. 10. 20. 나는 21번째 가곡 「아버지」의 멜로디를 완성하였다. 그러나 이 노래는 우리 아버지를 생각하며 만든 곡은 아니었다. 나를 포함하여 이 세상 모든 아버지들의 고단한 생애와 그런 아버지를 생각하는 딸의 마음을 노래한 것이었다.
아버지
(1절)
새벽별을 바라보며 길 떠나셨죠
등짐을 지고 홀로 걸으며
얼마나 힘드셨나요?
그래도 가셔야 했나요?
사막을 지나 혼자 외로이
언덕을 넘으셔야 했나요?
지금도 걸어가고 계신가요?
고단한 어깨 위로 해는 저무는데
아직도 짊어지고 계신가요?
어두운 밤길에 이슬도 차가운데
이제는 그 짐을 내려놓고 별을 보아요
아버지,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아버지,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하지만 1절의 가사를 완성하고 곡을 붙이고보니 2절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2절은 우리 어머니를 생각하며 가사를 새로 썼다. 그러므로 2절은 우리 어머니를 포함하여 이 세상 모든 어머니를 위하여 쓴 것이었다.
(2절)
새벽부터 하루 종일 분주하셨죠
어린 6남매 홀로 키우며
얼마나 힘드셨나요?
그래도 고향은 아늑했죠
꽃피는 마을 푸른 보리밭
당신의 품안에서 행복했죠
하지만 떠나야만 했던 고향
도시의 하늘은 차갑기만 했죠
눈물로 얼룩진 모정의 세월
애달픈 인생길 해는 저무는데
가슴에 비바람 뿌려놓고 어디 계신가요
어머니,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어머니,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그리하여 이 가곡은 2024. 11. 8. 구광일작곡가의 편곡을 거쳐 2025. 6.20. 장충레코딩스튜디오에서 소프라노 임청화의 가창으로 녹음되었다.
https://youtu.be/MJci42kqc-g?si=bIkQd-Y3GRsD8lIN
첫댓글
아버지의 좋은 곡
들으면서
이젠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도
진정 희미해집니다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