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심었던 자리에
배추모종을 심었습니다.
장마 지나고서는 풀이 허리만큼 올라온것을
비온 다음날로 날을 잡아서는 다 정리를 하고서
온수리에서 사온 모종 두판, 백사십포기.
퇴비도 미리 듬뿍 주었고, 그 전에 고랑도 새로 내고
나름 정성을 많이 들였지요.
그날.. 윤수하고 윤수어머님도 오셔서
함께해주셨습니다.
땅은 정직하다, 라는 말씀은
나에게 '그래, 심으면 난다, 그리고 거둔다'는 단순한 이치였습니다.
적당히 물을 주고, 나중에 끈으로 포기를 감싸주는 정도의 일이면
하늘은 농부를 도울거라는.
콩심은데 콩나는 거고, 배추심으면 배추가 크는 거고.
농사만큼 일관된 것이 어디 있을까, 그렇게
쉽고 편하게 여겼던거 같습니다.
모종을 다 심고 물까지 퍼주고 나서는 뿌듯했더랬지요.
강화에 자주 있을 수가 없어
윤수가 자주 와서 물을 주게 되었습니다.
고라니가 자주 들어오는 것이라 유집사님이
망도 쳤습니다. 거의 완벽한 조건이지 않나.. 싶었지요.
그러고 나서 한주 후.
벌레가 보이시나요?
마치 갑옷을 두른 것처럼 딱딱한 외피에 반짝거리는 감청색의 벌레.
들끓기 시작했지요. 길다란 애벌레나 달팽이 같은 것들은 좀 보았지만
저런 것들은 여기와서 처음 보는 거였습니다.
모종 하나에 한마리도 아니고 두 서너 마리가 붙어 있어
아작을 내고 있었던 거지요.
손으로 잡으면 되지 않을까, 했지만
소용 없었습니다. 한번 훑고 지나서 뒤 돌아보면 어느새 또 들어와 있었고
또 잡아내면 어디서 왔는지 또 야금야금 먹어대는 겁니다.
속수무책이 되었지요.
한주 넘어서니 거의 모든 배추모종은 이렇게 되었습니다.
사진으로 보이는 건 그래도 나은 편.
대부분 고사되었고, 살아도 겨우 연명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땅에 문제가 있다고 하는데,
보시다시피 몽글몽글해서 좀 떠 있습니다.
지렁이가 많아서 그렇지요. 땅이 좋긴한데
아무래도 뿌리가 안착을 하기는 힘들고, 그래서
모종이 자리를 잡지도 못하는 처지에
벌레들한테 수모를 당하면서 다 죽어가게 되는 거였습니다.
어쩌나..
가을김장은..
이분저분한테 물어보니,
거의 비슷한 답을 하십니다.
약을 주어야 한다. 약을 주지 않고서는 어렵다.
그리고 땅에도 미리 약을 쳤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약을 주지 않고 김장배추를 기대하는 건 어렵다는 것.
물론 유집사님이 유기농약도 주고
목조액도 뿌려주었고. 하지만 꿈쩍도 안합니다, 벌레들은.
하루가 멀게 말라가더군요.
며칠전 텃밭 모습입니다.
그래도 기특하게 살아남은게 있네요. 여전히 벌레들은
먹어대고 있는 중이고요.
배추농사 망쳤다, 라고 말할수 있겠습니다.
백사십포기중 남은건 서른 포기 정도. 그것도 어찌될지 모르는.
농약을 주지 않고서는 농사를 하기 어렵다는 사실.
아.. 약을 주면 해결(?)이 되는데 약을 주느니 차라리..
너무 쉽게 생각했던 거였고,
실은 땅은 정직하다는 말은 수많은 변수를 갖고 있다는 사실.
땅을 살려 제대로 농사를 짓기까지 몇년이 걸렸다는 말들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실험'이라는 단어를 싫어하실지 모르지만
결국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은 '실험'이지요.
누구는 사는 것을 '진리 실험'이라고 했고.
첫댓글 으악ㅡ..ㅡㆀ
안타까워 해야하는데...왜이렇게 웃음이날까요^^ 어쩌죠...고생하셨는데... 원하던 배추를 얻기위해 한걸음 나아갔으니..언젠가 성공 하겠죠^^ 도와드리지도 못하고 응원만 합니다 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