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대략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내러티브' 방식으로 나열해 전체를 그려 보아야 합니다. 내러티브란, 단순한 이야기를 넘어 사건들이 시간적, 인과적 연결성을 통해 하나의 구조를 형성하며 전달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로써) 현대의 크리스찬들이 가장 가길 원하는 '천국'을 논하거나, '하느님'의 속성 중에서 예수의 '신성'을 논하려면 창세기로부터 계시록에 이르기까지 논리적 일관성과 사건의 연결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번 장에서는 예수의 '신성'에 대해 이 방식을 사용해 논하고자 합니다. 예수의 '신성'에 대해 우리가 흔히 접하는 '신학적 논쟁' 또한 이 내러티브 방식 내로 끌고 들어와 일관성과 연결성을 통해 하나의 스토리를 형성해야 합니다.
[1] 예수의 '신성(神性)' 즉 예수가 가진 '신의 본질'을 논하려면 먼저, 예수께서 왜 이 지상에 왔는지부터 알아야한다.
전제조건 : 그 분은 모든 창조물의 탄생에 관여했다. (요한복음 1장). 따라서 첫 인간 아담과 하와의 탄생 또한 예수의 개입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첫 인간 아담과 하와는 사탄에게 속아 하느님의 우주적 섭리에 오류(bug)를 발생시킨다. 결과는 하느님의 선언대로 인간은 본래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하느님의 우주적 섭리는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우주 창조 법칙에서 첫번째 원칙이, 하느님의 섭리 즉 우주적 프로그램은 절대로 변경될 수 없다는 것.
"이제 엄청난 문제가 발생했다."
사탄의 주도로 인간이 하느님의 섭리에 도전함으로서 우주 최초로 무형계와 유형계가 합쳐진 인간계와 우주적 질서가 깨어질 위기에 처했다. 그렇다고 우주적 섭리를 다시 뒤돌릴 수는 없다.
사탄이 노린 게 바로 이것이었다. 하느님의 우주 창조 프로그램을 어긋나게 하는 것! 아니 감히 사탄이란 피조물이 창조주인 하느님의 우주 섭리를 망치게 할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우리 인간의 관점에선 사실 상 불가능한 사태였다. 이것에 대해 나 또한 정확한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런데 .... (사탄의 이 행위에 대해선 '에티오피아 정경'에 등장하는 '에녹서'와 '아담과 하와의 서'에서 그 시말에 힌트를 준다. 이 스토리는 다음에 다시 규명할 것임)
하느님께선 이 사태를 바로 잡기 위해 준비하신 것이 있는데 ... 바로 창조에 참여한 예수를 통해 우주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후, 하느님은 다음처럼 선언하신다.
` 여자와 뱀(사탄) 사이에 적의를 둘 것
` 여자의 '씨'와 뱀(사탄)의 '씨' 사이에 적의를 둘 것
` 여자의 '씨'가 결국 뱀(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
` 인간은 에덴에서 추방돼 유위적 삶에 처해질 것
하느님은 여자의 '씨(후손)'이 지상에 나타나 창세의 사태를 회복시키도록 하기 위해, 아담의 계보로부터 시작된 "씨(후손)의 계보"를 마련하셨다. 그 '씨(후손)'이 바로 예수였다. 하느님은 이를 위해 모세를 통해 지상에 거대한 퍼포먼스를 구성하셨다. 즉 하늘 일의 그림자를 미리 펼쳐 보이신 것이다. 그것이 바로 ...
` 약속의 땅
` 이스라엘 12지파
` 율법
- 제사장과 대제사장 제도
- 대속과 희생제
- 안식일 제도
등을 마련하셔서 장차 일어날 회복 프로그램을 보여 주셨다.
` 약속의 땅은 회복된 낙원과 천국(하느님의 통치)
` 이스라엘 12지파는 영적 12지파
` 제사장 제도는 대제사장인 예수와 그를 도울 144,000제사장
` 대속과 희생제는 예수의 '대속'을 위한 간접 퍼포먼스
` 안식일 제도는 7째 날을 완성하기 위한 퍼포먼스
등이 평행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제 문제는 예수께서 지상에 오실 때 어떤 격 즉 위(位)로 오실 것이냐다. 이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구약에선 이것이 비밀로 다뤄진다. (비밀과 신비는 다르다. 비밀은 장차 일어날 일을 임시로 감추는 것이므로 결국 때가 이르면 밝혀지지만, 신비는 무언가 인간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감추는 무엇이다. 삼위일체를 신학자들이 스스로 '신비'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래서 성서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2] 예수는 '순수한 인간'으로 오셨을까 아님 하느님의 신성을 보유한 채로 오셨을까?
예수께서 '신성'이란 본질을 내재한 채 오신다면, 그분은 인류를 대속할 수가 없다. 대속은 하나의 원칙을 준수한다.
- "이에는 이, 눈에는 눈"
- 대속제는 반드시 동일한 희생을 강제한다.
삼위일체 교리에 의하면 예수는 '신성'이란 본질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는 아담을 대속할 수 없다. 만약 예수께서 신성을 내재한 채 오셨다면 아담도 창조될 때 '신성'을 내재했다고 봐야 한다. 아담에게 신성이 내재됐나? 그는 하느님에 의해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라고 선언 받았다. 따라서 아담에겐 신성이 내재되지 않았다.
따라서 아담을 대속해 그 후손들을 값을 치루고 사기 위해선 예수 또한 동일한 아담같은 육체로만 오셔야 한다. 그리고 아담을 대신해 반드시 죽어야 한다. 그것이 하느님의 우주 섭리다. 그래서 예수는 아담을 대신한 "마지막 아담"이 된 것이다.
[3] 예수, 하느님의 위치에서 사람으로 오신 마지막 아담
빌립보 2:6
"그는 하나님의 '본체'시나..."
본체 - 헬라어 '모르페' - [본질] 또는 [외적형태] 라는 2가지 개념으로 대립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취한다'(하르파그몬)는 것은 도적질한다는 말이다. 즉 그리스도는 하느님과 분명히 구별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느님과 같이 되려고 하는 의도를 부인하는 것이다. 이것은 신인(神人) 사상을 주요 종교 주제로 삼고 있는 헬라적 해석을 거부하는 것이다. “동등됨”은 절대적 유일신과 같은 위치를 말하는 것이다.
예수는 분명히 하느님께서 자기 복제를 해 존재케 된 독생자다. 그래서 예수 또한 "하느님"이라 칭해질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하느님/ 하나님"으로 칭할 때는 창조주이신 유일신(야훼 하느님)을 의미하기 때문에, 예수는 '신'으로 불리운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에 등장하는 로고스는 'The God'이 아닌 'a god'으로 표현된다.)
예수는 분명히 '사람'으로 오셨기 때문에 자신에 대해 늘 인자(人子, 사람의 아들)이라 스스로 칭했다. 그래서 그분이 형주에 달려 돌아가시자 사흘이란 기간이 필요했다. 그분은 야훼 하느님에 의해 영으로 회생하신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 예수께선 자신과 함께 천국(하느님의 통치)에 부름을 받은 사람들은 "다시 태어남(거듭남)"이란 절차가 필요하다고 니고데모에게 말씀한다. 니고데모는 "다시 태어남"이란 의미를 처음 들어보기 때문에 "어머니 자궁에 다시 들어 갔다가 태어나느냐?"고 묻는다.
왜 '거듭남'이 필요할까?
인간은 유형계인 물질로 창조됐지만, 하느님이 생명의 호흡을 불어 넣어준 관계로 물질체이면서 무형계(영계)처럼 무한한 사유와 함께 신들과 소통할 수 있다. 그래서 인간만이 '유무형의 결합체'라고 한다. 그렇지만 일부 인간이 예수와 함께 하느님의 왕국(천국)에서 통치를 하려면 반드시 육에서 영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과정이 '거듭남'이다. (예수께선 영에서 육으로 오시기 위해 반대의 과정을 거쳐야만 했고, 그 과정은 온전히 하느님의 주관적 분야다.)
이런 성경적 구도를 이해하면 성경이 훨씬 이해가 쉽게 전달됩니다. 삼위일체라는 성경에 없는 말을 애써 변호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순수 인간으로 오셨기 때문에, 인간적 고통과 고난을 극복해야만 했고 그 분은 잡히시던 밤에 피땀을 흘리며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를 합니다.
이런 장면은 여과없이 그대로 우리 마음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예수께서 겪었을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그분은 하느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않고, 하느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왕으로 임재해 계십니다. 예수께선 당연히 신성이란 본질인 채로 ....
우리나라는 유별나게 자신들의 '종단'과 다른 성경 이야기를 만나면 "이단"으로 정죄해 차단하려는 관성이 강합니다. 진정한 크리스찬은 교회가 아닌 하느님과의 관계를 가장 우선에 둬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