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회고록 3막17장 (1부)
1974년
17세
벌써 내가 17세가 되였다.
고등학교 1학년이 된것이다.엄마손 잡고 국민학교 입학한지가 얼마전 같은데 벌써 9년이란 세월이 흘러 고등학생이 된것이다.
휘문고등학교는 지금으로 말하면 헌법재판소 옆에 있었으며 풍문여고가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리고 학교 건너편에는 동양방송(TBC,삼성그룹의 계열사이나 1980년 전두환 정권때 언론 통폐합으로 폐업됨)이 있어서 방송국을 찾는 방청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봉천동에 살던 나는 오전 7시경 집을 나와 봉천동에서 333번 버스를 타고 4~50여분을 간후 종로1가에서 내려 학교까지 20여분 걸어가어야 하였다.
사대문 안에 있는 학교라 전교생의 대다수가 버스를 타고 등하교 한것이다.
버스는 항상 만원이었고 4~50분 버스를 타고 다니는 것도 큰 곤욕 이었다.
1906년 고종황제가 본교 설립자인 민영휘의 끝자인 "휘"자와 학문의 "문"자를 합쳐 "휘문고등학교"로 학교명을 하사하셨다.
휘문고는 고교야구의 명맥을 유지하였고 국내에 몇개 없는 아이스하키부를 가지고 있었다.
모자는 국내유일하게 뒷부분에 흰테를 둘러 멀리서도 휘문고 학생임을 알게 하였다.
선생님은 역사가 있는 학교라 그런지 특이한 선생님이 많으셨다.
"코끼리 빤스"의 별명을 가진 화학 선생은 큰덩치에 둥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으며 수업시간에는 말한마디 없이 화학공식을 암기하여 빼곡히 칠판에 적고 지우며 50분을 공식만 쓰다 수업을 끝나기도 하였다.
대단한 암기력이였다.
50분 분량의 화학공식을 암기하다니 감탄이 나올 뿐이다.
학교는 많은 인재를 양성하여서 그런지 아늑하고 포근하였다.
나는 휘문고의 입학한 기념으로 고1때는 책을 많이 읽기로 하였다. 고학력으로 가면 책을 읽을 시간이 없을테니까...
도스토옙스키의 "죄와벌"을 읽었고, 특히 모교의 대선배인 월탄 "박종화"의 번역본인 "삼국지"를 읽으며 유비 관우,장비,조조,동탁,제갈량,여포,초선 등을 알게 되였다.
지금도 기억 나는 삼국지 어귀는 "술을 먹었다,고기를 먹었다,"이며 인원수도 보통 백만명 숫자가 흔하게 나온것이다.
박종화 선배님의 글은 표현력이 절제되여 있었고
기교는 없었으나 교과서처럼 간단 명료하게 스토리를 전개해 나가는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나는 그때부터 글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글은 나에게 평생 우상이 된 "최인호"의 만남 이전에는 박종화 선배님의 필력을 최고로 알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