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사람은 마음 속으로 "하나님이 없다" 하는구나.
그들은 한결같이 썩어서 더러우니, 바른 일 하는 사람 아무도 없구나.
[시편 53:1]
하나님의 실존 인정여부에 따라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가 나뉜다.
하나님, 절대자, 신비, 진리, 빛, 길, 생명, 도...
이름을 붙여 규정할 수 없는 '그 존재'를 다 알 수 없지만, 그 분의 실존을 인정하는 것은 지식의 차원과는 다른 지혜의 차원이다.
지혜의 으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잠 1:7)'이다.
계몽주의 이후 인간에 대한 무한긍정은 자유주의 신학을 태동시켰다.
자유주의 신학은 인간의 노력(율법)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믿었지만,
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인간의 한계를 처절하게 체험한 결과 자유주의 신학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다윗의 고백에 따르면 '어리석은 사람'은 "하나님이 없다"(1)고 주장하는 자다.
하나님은 지혜로운 사람이 있는지, 하나님을 찾는 자들이 있는지 살펴보신다(2).
유진 피터슨은 '어리석은 자'를 '비루하고 거만한 인간들'이라고 번역했다.
오늘날, 비루하고 거만한 인간들이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들은
하나님을 인정한다하고,
하나님을 거들먹거리지만,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
그래서
그들의 주인은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이다.
하나님을 모른다는 이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안다는 자들에 의해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조롱당하는 시대를 산다.
자기가 모르는 것을 안다고 확신하는 어리석은 자들,
자신이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지를 모르는 자들이 넘쳐난다.
그래서 우리는 지혜로워야 한다.
사실, 많이 알면,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무지의 지', 도덕경 1장에서도 결국 이 진리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마치 '道'의 발치에도 가보지 못한 이들이 "도를 아십니까?"하며 도를 전하는 모습을 본다.
그들은 한결같이 썩어 있어서 자신들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알지 못한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믿음은,
내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행위다.
하지만,
하나님이 계시다는 믿음을 가졌다고 거들먹거리는 어리석은 자들이 도처에 있으니 경계해야 한다.
제 아무리 그들이 제 풀에 꺽여나갈 존재들이지만, 충분히 해악을 끼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