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대화상(布袋和尙)
포대화상의 참 모습은?
포대화상(布袋和尙)은 환한 미소(微笑)로 배가 볼록 튀어 나온 인자(仁慈)한 얼굴에 친근한 모습으로 알려졌으나 당(唐) 나라때 스님인데, 생몰 년대는 알수가 없다. 본명(本名)은 계차(契此)이고 호(號)는 정응대사(定應大師)이다. 부처님 제자라는 뜻으로 석자(釋字)를 붙여 석계차(釋契此)라고 했다. 항상 포대(헐렁한 주머니)를 짊어지고 다녔기 때문에, 포대(布袋)라는 속칭이 붙었다. 석명현(四明縣) 출신이라는 설도 있지만, 출신지도 속성도 불분명하다.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나오는 전설에는 땅을 방(房)삼고 하늘을 이불 삼아서 엄동설한(嚴冬雪寒)에도 눈 속에 누워 포대 자루 베게 삼아 잤다고 한다. 열반할 때는 봉화현(奉化縣) 악림사(岳林寺)에서 천화해서 매장했는데도 사망 후에도 다른 곳에서도 볼 수가 있어서 사람들은 그림을 그리는 관습이 생겨서 오늘날까지 사찰에는 포대화상 탱화나 소조상(塑造像)을 볼수가 있다. 중국인들은 복을 주는 스님으로 알려져 있다. 사람들의 길흉화복(吉凶禍福) 점(点)도 쳐 주었는데 말한 대로 틀림이 없었다고 한다. 맑은 날은 짚신을 신고, 비가 오려는 날에는 나막신을 꺼내 신으면 꼭 비가 내렸다고 한다. 장마철에는 나막신을 신다가 짚신 신은 날에는 장마가 그치고 해가 쨍하고 맑았다고 한다. 포대화상 행적으로 보면 상달천문(上達天文)하고 하통지리(下通地理)에 중통인사(中通人事)까지 도통(道通) 선승(禪僧)이 틀림이 없다. 한평생 천성(天性)대로 땅을 방(房) 삼고, 하늘을 이불 삼아 대자유(大自由) 해탈인(解脫人)으로 살다 간 것 같다. 경덕전등록에 보면 임종(臨終)을 앞두고 게송(偈頌)을 남겼는데 다음과 같다. 밤마다 부처를 보듬고 자고, 아침마다 함께 일어나네, 앉건 일어나건 함께 붙어 다니며, 말을 하건 말하지 않건 같이 머물고 눕는다. 털끝만큼도 서로 떨어지지 않으니, 몸의 그림자 같구나! 부처가 어디 있는지 알고자 하거든 다만 말하는 이놈 이니라.<夜夜胞佛眠 朝朝還共起 起坐鎭相隨 語默同居止 纖豪不相離 如身影相似 欲識佛居處 只這語聲是)
자기 본성(本性) 자성(自性)을 꿰뚫어 보고 읊은 오언율시(五言律詩)다. 동가식(東家食) 서가숙(西家宿) 자유분망(自由奔忙)한 삶을 살면서 읊은 게송(偈頌)도 백미(白眉) 게송이다. 발우 하나로 천 집의 밥 얻어먹으며, 외로운 이 몸 만 리길 떠다니네, 맑은 날에도 사람 만나기가 어렵고 길을 묻는 사이 머리에는 백발이 내렸네, 나에게 포대가 하나 있으니, 허공처럼 걸림이 없어라. 열어 펴면 우주에 두루 하고 오무려 들일 때도 자재하여라. 미륵불 중에 진짜 미륵불인데, 백 천억 가지로 몸을 나누어 때때로 사람 앞에 나타나도 사람들이 모두가 알지 못하는구나! 늠름하고 자재(自在) 로와 하는 일 없으니, 한가롭고 한가로와 출가한 장부일세, 눈앞에서 참된 도를 본다, 하여도 티끌만큼도 기이하게, 여기지 않으리, 공 가운데 색 이것을 공이라 하고, 공 가운데 색 이것을 색이라 하니, 웃을 일이로다. 이것이 색이요, 이것이 공이라 설함은 모두가 끝이 없으니, 공과 색 모두가 눈앞(알음알이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다. <一鉢千家飯 孤身萬里遊 靑日觀人少 問路白雲頭 我有一布袋 虛空無罫碍 展開邊宇宙 入時觀自在 彌勒眞彌勒 分身百千億 時時示時人 時人自不識 騰騰自 在無所爲 閔閑究竟出家兒 若覩目前眞大道 不見纖毫也大奇 一笑空中色是空 如斯之爲空乎色 是色是空說不窮 相俱無眼界中>> 이 게송은 칠언절구(칠言絶句) 게송(偈頌)과 오언배율시(五言排律詩)로 게송도 무애자재(無礙自在)하다. 게송(偈頌)에 담긴 뜻으로 보면 미륵(彌勒)을 보고도 사람들이 진짜 미륵(彌勒)이 세상에 왔어도 보고도 못 본다고 했다. 미륵 화신임을 밝힌 것이다. 포대화상은 평생을 포대 하나 짊어지고 천하를 떠돌며 살다 갔다. 포대화상을 보면 넉넉하고 풍성한 몸매에 천진난만(天眞爛漫)한 미소(微笑)는 중생의 때가 탈탈 다 떨어진 얼굴이다. 쳐다보기만 해도 업장(業障)이 녹아내린다. 게송(偈頌)으로 보면 오자(悟者)의 소리다. 속진(俗塵) 속탈(俗脫) 다하고 법탈(法脫) 다한 무애자재(無礙自在)한 해탈(解脫) 고승(高僧)의 외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