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집안의 몰락 ( 22 농민문학 봄호)
앞뒤가 훤히 트이고 북한강이 흘러가는 것을 항시 볼 수 있는 마을! 남쪽에는 춘천의 진산
이라고 하는 봉의산을 뒤로 하고 춘천호수가 바라다 보인다.
춘천을 중심으로 촤근에는 아프트도 많이 들어섰지만 이곳 서면의 신매리는 변한 것이 별로
없는 마을이며 지금도 이른 봄이면 옛날의 소가 밭을 가는 대신 경운기가 밭을 갈고 농부들
은 한 결같이 씨앗뿌리고 김을 매며 일 년 농사를 짓는다.
마을길은 옛날에 비하면 승용차가 다닐 수 있도록 시멘트나 아스팔트포장이 되어 날 궂은
날에도 진흙탕을 걷지는 않으나 시골의 풍정은 별반 변한 것이 없다.
마을집의 형태도 몇 몇 집은 빨간 벽돌로 번듯하게 지어서 보기도 좋고 살림살이하는 면에
서도 편리하지만 그것과는 거리가 비교되는 나무기둥을 세우고 흙으로 외를 엮고 진흙을 바
른 집이 있으니 밭 가운데 덩그러니 서 있는 장 기임네 집이다.
다섯 간 들이 이 집의 구조는 6.25 직후에 지은 집으로 안방과 사랑 사이에는 마루를 놓아
농사를 짓게 되면 그 수확물을 쌓아 놓기도 한다.
이집의 원래 임자는 장 기임의 큰 시아버지 되시는 홍 종하씨가 살던 집인데 큰아들이 청와
대 이사관으로 승진되면서 서울로 이사를 하게 되자 이 집보다도 더 오래전에 지어 낡을 대
로 낡은 무광(無光)집에 사는 동생 종갑의 며느리 (장 기임)에게 들어와서 살라 하여 살게
되었다.
사실 홍 종하씨의 동생 종갑씨는 작은 아버지가 아들이 없자 일곱 살 때에 양자로 입적
이 되어 들어가서 살게 되었다.
종갑은 그것이 싫긴 하였으나 어쩔 수없이 작은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르게 되었다.
삼촌(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배운 포자라고는 농사밖에 모르는 분으로 농사만은 열심히 지
었지만 워낙 논밭전지를 많이 갖지 않다보니 살림이 넉넉한 편이 되지 못하였다,
종갑의 아버지는 마음씨는 비단결같이 곱고 누구에게도 싫은 소리 한번 하지 않으면서 살아
가는 마을에서는 모범청년이었다.
아버지가 지으시는 농사는 매년 도지를 얻어서 지었는데 일기가 제대로 뒷받침을 해주면 그
래도 살림이 나아질테지만 하루해 건능큼 가뭄이라도 들게 되면 어떤 때는 봄이 오기 전에
쌀이 떨어지는 경우도 생기었다,
종갑은 아버지의 보살핌으로 잘 자라 열일곱 살이 될 무렵부터는 집안의 어려움을 타개하고
자 일감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가서 일을 하니 차츰 집안의 형편도 나아지고 소를 사
서 먹이면서 재산을 불리게 되었다.
한편 종갑이 스무 살 되던 해에 장가를 들어 첫딸을 낳고 다음 해에 연년생으로 아들 둘을
낳아서 큰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군에 입대를 하게 되었다.
종갑씨는 입대하는 아들을 위해 동네잔치까지 벌렸으니 다른 마을 사람들은 아들 군대를 보
내는데 잔치를 하는 집은 처음 본다면서 모두가 부러워하였다.
한편 아들 순교의 친구 일곱 명은 친구의 입대를 축하하기 위해서 시내 중국집에 모여 저
녁을 먹었는데 순교는 잘 먹지도 못하는 술을 많이 마신 탓으로 술이 취해서 어떻게 헤어
졌는지 모르는데 뒤에서 오빠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그는 여고 2학년으로 경기도에서 얼마 전에 순교네 동네로 이사를 온 순희였다.
“ 어. 네가 여긴 어쩐 일이냐.”
" 오빠가 군대에 가신다는 소리를 듣고 오빠를 눈이 빠지게 이제껏 기다리고 있었어요. “
“ 뭐야. 나를 기다렸다고. 왜 그랬는데.”
순교가 말을 하자 순희의 눈에서는 순간 눈물이 줄줄 흘러내려 깜짝 놀랐다.
‘얘가 왜 그러지.’
그러고 생각을 하니 순희는 만날 때마다 반갑게 인사를 했던 기억이 생생하였다.
언젠가 아침 일찍 서상리 배가 배터를 떠날 때에 “같이 가요” 하는 소리가 들려 순교가
보니 30m 밖에서 순희가 달려오기에 사공아저씨에게 배를 돌려 달래서 태운 적이 있었다.
한 배를 놓치면 학교에 지각을 하기 때문에 배터가 가까우면 누구나 달음박질을 쳐야 했다.
“오빠. 나 짜장면 좀 사줄 수 있어요.”
“ 왜. 짜장면 먹고 싶으냐.”
“그게 아니라 오빠 얼굴 좀 싫것 보려구요.”
그 말을 한 순희는 자신이 언제 그렇게 대담해졌는지 스스로 놀랐으니 지금까지 누구에게
선뜻 먼저 말을 거는 성격이 아닌데 그렇게 용기를 내서 말을 하였기 때문이다.
“ 벌써 시간이 7시인데 막배 놓치지 않을까 몰라.”
“ 오빠 막배시간이 문제가 아니에요. 늦으면 아무데서나 자고 가면 안 돼요.”
“ 그래도 된다고 정말이야. 그래 좋아."
이날 순교는 순희가 자기를 사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짜장면을 먹다 말고 급하게
그를 안았다.
중국집을 나온 시각은 밤이 꽤 늦은 시간이었다.
순희는 고량주 한잔만 먹었을 뿐인데 맥을 못 추고 순교에게 매달린 채 걸음마다 헛방아를
찧었다.
“ 오빠. 이다음에 면회 가도 돼요.”
“ 면회. 글쎄다.”
종갑 씨네 집은 지은 지가 하도 오래 되어서 마루위의 천정은 시꺼멓게 그을리고 아래 윗방
이며 사랑방 천정은 쥐의 소굴이 되어 저녁마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더구나 집안이 비좁아서 사랑채에다가 새 기둥을 세우고 또 한간의 방을 만들 계획이었다.
종갑씨는 아들이 군에 입대한 뒤에 일을 하기로 하고 슬슬 소나무 기둥을 손질하고 있을 때
였다.
마침 종갑씨 친구 황 환영씨가 지나가다가 무얼 하느냐고 물었다.
“ 사랑채 한간 붙이려고 그래 하도 집안이 비좁아서.”
“ 무광 집에다가 새 기둥을 세우면 집 안이 안 좋은 일이 있다던데.”
“ 누가 그런 소리를 해. 그것 다 미신이지 뭐 .”
한철이 가는 것은 엿 장사가 가위질을 몇 번해야 되는지 모르지만 어느 결에 11월로 접어
들었는데 군에 간 아들이 모처럼 휴가를 나와서 아버지의 일을 거들었다.
사랑채가 다 된 것은 그로부터 열흘 만인데 아들은 모처럼 할아버지 할머니 곁에서 자고 싶
다면서 하룻밤을 자고난 뒤에 전방 부대로 복귀를 하였다.
원래 아들은 논산훈련소의 훈련을 이수한 뒤에 부관 주특기를 받았으나 일선고지 복무를 희
망하여 강원도 최전방으로 부대 배치를 받았으니 남아로서 군대 생활을 하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최전방은 사실 초년병에게는 인민군과 마주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어떤 중압감 같은 것을 느
끼면서 잠을 설치는 경우가 있었지만 얼마간을 지나자 새로운 각오가 생기는 것이었다.
순교는 학교 다닐 때만 해도 나라사랑 정신이 투철하고 6.25 행사웅변대회에 출전하게 되
면 자주 입상을 하는 등 모범청소년이었다.
그런데 부대 배치 후에 선임병인 융 상등병이 훅닥하면 순교를 불러 세우고는 내무반에 관
물 정돈이 잘못 되었다면서 수시로 원산폭격 같은 강한 기압을 주었지만 군대니까 그러려니
하면서 극복하였다.
융 상병은 인간미라고는 조금도 없는 사람처럼 부대에서도 문제를 일으키곤 하였지만 본부
중대장님에게는 깍듯이 잘 하는 바람에 소대원만 죽어나는 것이었다.
한번은 박 일병이 휴가를 갔다가 떡을 해서 가져왔는데 소대원들은 다 좋아하였지만 융 상
병은 떡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술을 먹고 들어와서는 취침시간에 박 일병을 불러내드니
손을 내밀었다.
박 일병은 무슨 뜻인지 몰라서 엉거주춤하자 따귀를 한 대 갈기고는 "나를 무시하는 거야."
하더니 “들어가 자빠져 자”라고 소리를 질렀다.
박 일병이 잠자리로 돌아오자 옆에서 자던 구 일병이 하는 말이었다.
“ 야. 너 저 사람 인간미가 되게 없는 것 몰라. 동그라미 안주어서 그런 거야 알아둬.”
이날 밤 박 일병은 맞은 볼따구니가 얼마나 아픈지 그 후 치과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런데 정작 대형 사고는 그 다음날 일어났으니 야간에 보초교대를 해야 할 홍 순교가 속이
좋지를 않아서 화장실을 들락거리다보니 10여분이나 늦게 교대가 되었는데 융 상병이 그것
을 트집 잡아 홍 순교에게 엎드려 굽혀를 시키더니 배트 방망이로 궁둥이를 10여 차례나
때려 그 자리에서 실신했던 것이다.
그런데 한 20여 분이 지나도 일어나지를 않자 동료병사들이 그를 일으켰을 때에는 이미 그
는 숨을 거둔 후였다.
“ 세상에 이런 일이 군대에서 일어나다니.”
신문사의 기자들이 몰려와서 취재경쟁을 할 정도로 홍 일병의 죽음은 온 사회를 들끓게 하
였다.
이 소식이 가족에게 전달이 되자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면서 아빠가 울부짖는가 하면 엄마
는 까무러치기까지 하였다.
“ 얼마 전에 휴가를 왔을 때에도 멀쩡하던 아이가 왜 갑자기 죽느냐 말이야 .”
“ 젊은 청년 데려다가 죽이는 것이 이 나라의 군대라니.”
“ 이 어굴함을 어디 가서 하소연을 해야 해.”
누구보다도 홍씨네 대소가들이 모인 자리에서 울분을 토로한 절규들이었지만 사람 목숨 끊
어진 뒤에 무슨 소용이랴!
“아이고 불쌍해 우리 아들. 네가 뭘 잘못했다고 죽는단 말이냐.”
순교의 어머니는 남편과 함께 통곡을 하였고 할아버지 할머니도 넋을 잃고 계실뿐이었다.
홍 순교가 그렇게 억울한 죽음을 당한데 대하여 마을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홍씨 집안에
대한 이야기가 끊이지를 않은 중에 무광 집에다 헌 재목을 들이게 되어 사람이 죽었다는 말
이 돌았다.
“ 그 말에 일리가 있는 것이 방동에 윤가네도 안채에다가 퇴를 단 후에 수영을 잘 하던 아
들이 멱을 감다가 죽었다고 하더라고.“
“ 미신이라고 하기에는 믿기지를 않는다니까.”
사랑하던 손자를 잃고 나서 할머니는 그렇게 잘 다니시던 마을사랑에 마실도 발길을 끊으시
었다.
음식도 마다하시고 1년 만에 세상을 하직하시니 그렇게 활달하시던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것이야말로 손자 때문이라며 상여가 나갈 때에는 온 동네사람들이 눈물을 흘리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누구보다도 슬퍼한 사람은 아들인 종갑씨로 양자로 들어와 친 부
모처럼 잘 모시던 아들이기에 그 정은 깊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언제나 그렇듯이 두 분이 사시다가 한쪽이 먼저 가시게 되면 그 한쪽도 오래 사시
질 못한다더니 할아버지도 반년을 넘기시지 못하고 돌아가시었다.
사실 두 분은 생전에 몹시 의가 좋으셨으며 인척간에도 신망이 두터우신 편이었다,
다만 늦도록 자식을 갖지 못하자 대를 끊을 수 없다면서 인척들이 젊을 때 자식을 보아야
한다고 자주 말들을 하자 왜 남의 일에 간섭을 하느냐며 들은 척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중에는 다시 문중에서조차 양자를 들이라고 하자 할 수없이 아내에게 그 사정을
말하자 자기도 그런 생각을 한바가 있다며 권고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막상 양자를 들인 후에 살아보니 집안에 생기가 돌자 그제야 후회가 되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기쁘게 살아가는 중에 뜻밖에도 손자를 잃는 불행을 당하게 되니 삶도
희망도 다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던 것이다.
종갑씨는 한동안 상심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다가 그래도 가족이 있으니 다시 마음을 가다듬
으면서 살아가기로 하였다.
한편 종갑씨의 아내는 아들이 그렇게 된 이후에 오랜동안 외부출입도 하지 않고 상심을 한
것이 병이 되어서 사흘돌이로 약을 지어다 자실 정도가 되자 종갑씨는 걱정이 태산 같았다.
“ 어디가 아파서 그래요.”
“ 이무 데도 아프지를 않아요.”
“ 왜 그런데 만날 누워만 있어요.”
“ 일어나서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몸이 말을 안 듣는 것을 어떻게 해요.”
“ 어머니 아버지와 순교를 따라가려고 그래. 그래도 둘째가 있으니 걔를 믿고 힘을 내요.
아니 할 말로 당신이 만약에 죽으면 나야말로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되는 거요.“
순교 밑으로 다섯 살 아래인 동생 순호가 어느 듯 대학교를 졸업하고 철원에 있는 농촌지도
소 시험을 보아 합격을 하여 발령을 받게 되었다.
순호도 형처럼 말없이 공부를 잘 하여 쉽게 시험에 합격을 하자 엄마는 무엇보다도 아들이
자랑스러웠다.
그가 임지로 떠난다고 하자 엄마는 아들에게 발령이 난 곳으로 쫓아가면 안 되느냐고 물으
시었다.
그러자 자리가 잡히면 어머니를 모셔가겠으니 당분간은 마음 편히 계시라고 하더니 어린 아
이처럼 어머니에게 안기었다.
"어머니. 이제는 형 생각 고만하시고 아버지와 재미있게 사셔야 해요.“
아들의 그 말을 들으신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시면서 가벼운 미소를 띠셨지만 순간 큰 아들
생각에 목이 메시고 눈물이 얼굴을 적시었다.
어머니의 그 모습을 보게 된 아들도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는 마찬가지였다.
순호가 철원으로 발령이 나서 가게 된 것을 뒤늦게야 알게 된 인호엄마는 불이 나게 순호네
집으로 들이닥쳐서 방문을 활짝 열어 제켰다.
“ 아이구 깜짝이야. 누군가 했더니 깜찍한 것. 간 떨어질 뻔 했지 뭐냐. 사람이 집엘 왔으
면 인기척이라도 해야지 그냥 문을 열면 어떻게 해.“
“ 왜 내가 어때서. 대낮에 거시기는 할 것 같지 않아서 안심하고 문을 열었다. 왜.”
“ 세상에. 나중에는 별 소리를 다 하는구나. 우리 시어머니라도 계셨다면 큰일 날 소리를
하다니.“
“너와 나 사이인데 무슨 말을 한들 허물이 있겠냐. 그건 그렇고 아들이 철원으로 발령이
났다면서. 우리 여사님이 오래간만에 아들 덕에 말 타고 경마 잡히게 생겼네 그려.“
“ 너 우리 아들 소식을 누구에게 들었냐.”
“ 호호. 그 얘긴 나중에 하고 우선 우리 순호 장가부터 보내자.”
“ 우리 순호하니까 누가 어멈인지 헷갈리네 .그런데 장가얘기는 왜 나온대.”
“ 얘. 언젠가 내가 얘기했지. 순호는 내가 주인을 이른다고 말이야.”
‘ 얘는 언제 내게 그런 얘기를 했지. 통 기억이 없네. 혹시 학교 다닐 때부터 후라이를 잘
놓는다는 소문이 났었는데 거짓말로 꾸며대는 말 아니야 .‘
인호 엄마는 가평에 좋은 혼처가 있으니 놓치지 말고 순호 장가를 들이자는 것이다.
“ 아직 어린 나이인데 무슨 장가를 보내.”
“ 너. 아들을 몰라도 한참을 모르는구나. 저 나이가 되면 대 가을에 논바닥에 벼이삭이 다
여물듯이 아닌게 아니라 (귀 좀 잠시 빌려)하더니
“부랄이 대그락 소리를 낼걸. 호호.”
“ 맙소사. 헛소리 고만하고 부엌 솥에서 고구마나 꺼내 와라.”
인호 엄마는 순호 엄마의 학교 다닐 때부터 단짝 친구로 네 것 내 것이 없이 지나는 사이였
는데 중학교부터 학교가 갈리고 졸업 후 결혼을 하고 나서는 자주 만나지를 못하였다.
그러다가 친구의 아들이 좋은 직장에 발령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는 시집을 보내야 할 조
카 딸을 친구의 아들에게 소개를 하려고 왔던 것이다.
“ 웬만하면 아들이 나이 들기 전에 장가를 드리는 것도 좋을거여. 그러면 일찍 손자도 보
게 되고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격으로 한시름 놓을 수도 있으니 그렇게 해보자.“
순호 엄마는 친구의 모처럼의 부탁을 저버릴 수가 없어서 바깥이에게 상의를 해 보겠노라
하고는 점심을 먹여서 돌려보냈다.
그날 바로 순호 아빠에게 친구가 왔다간 이야기를 하자 남편은 기다렸다는 듯이 친구들이
며느리를 보는 것을 보게 되면 부러웠는데 친구의 말대로 하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하여 속
으로 깜짝 놀랐다.
감히 남편이 그런 생각을 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상상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다음날 바로 인호 엄마에게 연락을 하자 그는 “하하하” 웃으면서 그러면 그렇지 즉각 반
응이 올 줄 알았다고 하더니 내일 시내 다방에서 만나자고 하였다.
“ 얘. 다방은 무슨 다방이냐. 우리 집으로 한 번 더 오면 안 되냐.”
" 어쩌면 그전에 학교 다닐 때부터 너는 내 마음에 쏙 드는 말만 골라서 하더니 지금도 어
쩌면 똑같냐.“
“ 너 그게 무슨 말이냐.”
“ 사실은 말이야. 내가 다방이야기를 했지만 우리처지에 무슨 얼어 죽을 다방이냐. 속으로
너 네 집에서 감자밥이라도 해먹었으면 했거든. 하하하.“
“ 그럴 줄을 알았으면 다방엘 간다고 할 걸 잘못했구나. 다 취소야.”
“ 호호호. 그럼 그렇게 하시지요 마님. 얘. 너 .딴 소리하지 말고 내일 11시에 집에 갈 것이
니 그렇게 알고 준비해. 알았지.”
“으이구, 능구렁이 같으니라구. ”
친구가 소개하는 색시의 집은 가평에서 농사를 짓는 집안의 맏딸로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에 지금은 보건소에서 임시직으로 근무를 하지만 결혼하면 고만둔다고 하였다.
신부짜리의 이름은 장 기임이며 성격은 조용하면서도 재주가 많은 일등 신부감이라고 토를
달았다.
순호가 철원에서 집으로 오는 토요일 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엄마가 좋은 신부 감이 있어서
선을 보아야겠다고 하자 아들은 잠자코 있더니 신식 사람답지 않게 어머니 마음에 들게 되
면 마음대로 하시라고 하였으니 엄마는 그날 이후 하는 일 없이 바빠지는 가운데 양쪽 집의
혼수가 오가고 잔치 날을 받아 잔치를 치르게 되니 아닌게 아니라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다
는 격으로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니 동네사람들도 잘 되었다고들 좋아들 하였다.
장 기임이 시집을 와서 보니 시아버지나 시어머님이 얼마나 사랑해 주시는지 눈으로 보일
정도여서 오히려 몸가짐을 더욱 조심을 하였다.
남편인 순호는 철원 그 먼 곳에 가서 근무를 하다가도 매주 토요일이 되면 어김없이 집엘
오자마자 부모님께 잘 다녀왔다는 인사를 드리고는 신부 방으로 들어왔는데 그때마다 신부
를 향해서 씩 웃는 것이 전부였다.
장 기임은 그럴 때마다 다른 신랑들은 어떻게 하는지가 궁금해지는 것이었으니 너무도 신랑
이라는 사람이 무덤덤하고 사랑의 표현이라고는 전혀 할 줄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나 혹은 길거리를 지나다 보면 남녀가 손을 맞잡고 자유롭게 오가는 것을 보게 되
면 자기도 한번 그렇게 하고 싶은데 남편은 그런 것은 담 너머 집의 일일 뿐이었다.
남편이 한 가지 잘 하는 것이라고는 시아버지가 하시는 농사일을 한시도 빼놓지 않고 거들
어 드렸으니 어려서부터 그렇게 자란 것이 사람을 그렇게 습관을 들이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저녁을 먹고 나면 팔이 아프다고 하여 좀 주물러 준다고 하면 괜찮아 하고는 잠
에 골아 떨어졌다.
‘ 잠을 더 있다가 자면 안돼요. 아니면 팔이라도 좀 주물러 주던가.’
사실 신부는 시집오자마자 집안의 일을 자기 혼자 도맡아서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시누이가 하나 있긴 하지만 그는 공직에 취직이 되어서 딴 살림을 나가 하고 있기에 그에게
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았다.
어쨌거나 그런 신랑과의 사이에서도 아들 둘을 낳아서 기르다 보니 아이들로 해서 웃을 수
있는 것이 하나의 위안이 되기도 하였지만 아기자기한 신랑의 사랑을 받고 싶은 것이 그의
욕망이기도 하다.
지금도 옛날처럼 동네에 공동우물이 있거나 빨래터라도 있다면 아낙네들끼리 모여서 별 수
다를 다 떨어 혹시 비밀스런 남녀 간의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어 회포를 풀 수도 있을 지
모르지만 어딜 가나 빨래터는커녕 방문을 열면 밭 두럭이나 논배미만 눈이 모자라게 펼쳐
져 있으니 장 기임의 팔자는 애당초 그런 저런 세상이야기도 제대로 듣지 못한 채 한평생을
흙에 묻혀 살아야 하는 운명이었던가 보다.
남편이 월요일 새벽 철원으로 출근하면 한주일이 왜 그리도 더디게 가는지 남편을 기다리는
세월은 더 느리게 느껴졌다.
시어머님은 날마다 며느리가 새벽 일찍 부엌엘 들어가려면 한사코 말리시면서 내가 밥을 할
터이니 애나 보라고 하셨다. 시아버님 또한 며느리가 밭에서 김장 무를 뽑거나 다듬으면 그
것은 내가 할 터이니 어서 들어가서 잠시 쉬라 하시는 등 도무지 시아버지 어머니는 며느리
를 극진히 아껴주시려 애를 쓰시었다.
좁은 소견으로는 신혼 초에 신랑을 쫓아가서 살고 싶기도 하였지만 농사철에 힘들여 일하시
는 시부모님을 생각하면 감히 그 말을 한다는 것은 불효를 저지르는 것이기에 입 밖에 내지
를 못하였다.
어쩌면 장 기임으로서는 시부모님의 사랑을 극진히 받으면서 신랑을 기다리며 살던 그 시기
가 일생 중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는 것을 오랜 후에야 알게 되었다.
사실 토요일 오후가 되면 시어머니가 안 계실 때에 대문 밖엘 나가서 남편오기를 꽤 많이
기다린 적이 있었다.
그런데 한 번도 남편을 맞이한 적이 없고 기다린 끝에 잠시 일이 있어서 부엌에라도 들어가
면 때를 맞춘 듯 그때 나타나곤 하였다.
“ 대문 앞에서. 방금까지 기다렸는데.”
“ 그래. 밥이나 줘 배고파.”
‘ 지나가는 말이라도 보고 싶었다는 말 한마디 하면 안 되나.’
가을이 되어 대문 앞 대추나무에는 빨갛게 대추가 익어서 추석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럴 때 마다 친정어머니 생각이 났으니 어머니는 익은 대추를 보시면 그것을 먹
어야 늙지 않는다며 따서 주시었다.
시집온 이후에 친정어머니가 자주 뵙고 싶지만 일 년에 한두 번 뵐까말까 하니 출가외인의
비애라는 것이 너무도 가혹하였던 것이다.
그날은 토요일 남편은 다른 어느 때보다도 저녁 늦게 집으로 왔는데 기분이 몹시 상한 모습
이었다.
지금까지 남편은 직장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한 번도 이야기를 한 배가 없는데 그날은 여
느 때와 다르게 부인을 보고 ‘나 아무래도 다 집어치워야 하겠어.“ 하는 한마디를 하였다.
여느 때와 달리 기분이 몹시 언짢은 표정이기에 바짝 다가서며 물어보았다.
“ 왜 무슨 일이 있었어요. ”
남편은 그러자 묵묵부답으로 한참을 서서 있더니 아내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저녁을 먹고
나서는 밖에 잠시 나갔다오겠다 하고는 슬며시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장 기임은 하루 종일 밭일을 한 탓인지 고단하여 잠이 깜박 들었다가 깨서 보니 밤 12시가
지났는데도 신랑이 보이지를 않았다.
마음이 불안한 장 기임은 무슨 일이지 하다가 또 다시 잠이 들었다가 새벽에 깨어보니 여전
히 신랑이 들어오지를 않았다.
그래서 마음이 불안하여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서 솔가지울타리 밖을 내다보다가 대추나
무가지에 허연 것이 매달린 것 같아 섬뜩함을 느끼며 대문을 열다가 “엄마야 ”하고는 소스
라쳐 놀란 채 까무라치고 말았다.
그 시각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는 막 잠이 깨셨는데 갑자기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서 문을
박차고 나오셨다.
“이게 무슨 소리야.”
대문이 활짝 열려 있어 한 다름에 나가시다가 며느리가 쓰러진 것을 보시고 대추나무에 매
달린 허연 물체를 보신 것이다.
잠시 후 시어머니의 아이고 우리 아들 하는 울부짖음과 동시에 시아버님의 울부짖음이 온
마을로 번지자 울타리 사이에 있는 집들의 방문이 열리면서 남정네들이 홍씨네 집 앞으로
모여 대추나무에 매달려 있는 시체를 보고는 모두 놀라 침착하게 사다리를 이용해 시체를
안아 눕히니 그때까지도 몸은 산사람과 같았다.
동네에서 궂은일에 앞장서는 홍 종갑씨의 조카가 되는 마을이장 운표씨가 시체를 수습하면
서 눈물을 흘리며 말을 하였다.
" 엊저녁에 동생을 만났는데 다른 때와 달리 생전 하지 않던 말을 하더란 말입니다.
“형님 술 한 잔 하실래요.”
“동생이 오늘 술 한 잔 살라고.”
그랬더니 “그럼요.” 하기에 가게에서 막걸리를 마셨는데 술을 주는 대로 받는 거에요. 그래
서 무슨 속상한 일이라도 있느냐고 하자 그렇다 하기에 살다 보면 별일이 다 있으니 너무
신경쓰지 말라 달래주고 헤어졌는데 그것이 마지막이 되다니. 아이고. 불쌍해. 내 동생.“
장 기임은 남편이 왜서 인생을 포기했는지 아무리 생각을 해도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시집을 오고 나서 신랑의 형님 되시는 분이 최전방 근무를 하시다가 선임 병
의 폭력에 의해서 젊음의 포부도 펼쳐 보지 못하시고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는 늘 마음속
으로 저승에서나 많은 복력을 누리시기 바란다고 기원을 하였는데 이제는 신랑마저 이 세상
을 하직하였으니 그것도 장 기임의 기구한 팔자 때문인가.
신랑의 장사를 지내고 나자 누구보다도 시아버님께서 며느리를 부르시고는 탄식을 하시면서
말씀을 하시었다.
“ 며늘 아가. 네 남편이 이번에 죽은 것은 네가 잘못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부모가 잘못해
서도 아니다. 그 녀석이 올바른 정신에서 그렇게 자기를 버리지는 못하였을 것이야.
말을 안 해서 모르지만 아무래도 직장에서 무슨 탈이 난 모양이지만 우리로서는 알 수가 없
으니 그저 운명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귀신이 그를 붙들
고 늘어지지 않았다면 어찌 그런 일을 저질렀겠느냐. 어느 누구도 그 이유를 알지를 못하니
모든 것을 팔자려니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만 같다. 그래도 후세를 남기고 갔으니 그것 하
나만이라도 위안으로 삼고 굳세게 살아야지 어쩌겠냐.“
신랑의 죽음이 너무도 억울해서 눈물도 많이 흘렸지만 시아버님의 말씀에 며느리는 드릴 말
씀이 없었다.
아들을 잃으신 후 눈에 띄게 시아버님이 진지를 잘 잡수시지 않으시고 시어머님 또한 평소
와 다르게 말씀이 없으셔서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시아버님이야 말로 음식이라고는 가리는 것 없이 아무거나 잘 잡수시고 시어머님 또한 치아
는 없으셔도 음식을 우물우물 잘도 잡수셨는데 때가 되어 긴지를 차려드리면 두 분 다 수저
를 드는 둥 마는 둥 하시니 며느리는 그것이 늘 마음을 상하게 하였다.
" 아버님. 긴지를 잘 잡수셔야지 저도 밥을 먹지요.“
“ 그러게 말이다. 수저를 들지만 밥이 그리 먹히지를 않는구나.”
“ 아버님 안 잡수신다고 어머니마저 잡수시지를 않으니 찬밥만 자꾸 쌓여가고 있어요.”
시아버님은 그런 중에도 긴지를 잡수시다가 무엇이 자꾸만 목에 걸리는 것 같다고 하시면서
수저를 놓으시곤 하였다.
“ 아버님. 오늘은 영긴지를 잡수시지 않으시네요.”
“ 글쎄다.”
그래서 며느리는 다음 날 약국에서 식욕증진제와 소화제를 곁 들여서 시아버님께 사다가 드
리자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시었다.
그날도 점심을 차려드리자 시아버님께서 수저를 드시고 몇 숟갈을 드시는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억 하시더니 시아버님의 눈동자가 하얘지시고 수저를 떨구시면서 다시 컥
컥 하시는 것 같더니 온몸을 비트시면서 숨을 제대로 쉬시지를 못하시는 것 같았다.
“ 아버님. 왜 그러셔요.”
그렇지만 아버님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리시더니 두 손을 허우적거리시다가 그냥 방바닥 뒤
로 벌렁 나가떨어지시었다
그리고 미처 손 쓸 사이도 없이 움찔움찔하시던 시아버님은 그대로 척 늘어지시었다.
이런 돌발의 사고!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런 일이 벌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 아버님. 아버니임.”
아버님은 다시는 움직이지를 않으셨으니 단 몇 분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며느리는 사람이 음식을 먹다가 기도가 막혀서 죽는 경우가 있다는 말을 들은 바가 있어서
시아버님의 입을 벌리고 손을 집어넣으려 하였으나 손이 떨려 미처 들어가지를 않았지만 억
지로라도 입을 벌리고 손가락을 목구멍으로 집어넣었으나 이미 숨이 막힌 상태인지 아무 반
응을 보이지 않았다.
" 아! 이 노릇을 어찌하면 좋아요. 아버님,"
통곡을 하면서 며느리가 그 황망한 순간에도 119를 부르고 난 뒤에 20여분 후에 구급차가
도착을 하여 우선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한참동안 하였지만 숨이 되살아나지를 않는 것 같
았다.
119의 소방관이 환자의 상태를 다시 점검하더니 음식이 기도에 막혀서 이미 숨을 거두었다
고 하였다.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며느리는 가슴을 치면서 통곡을 하였다.
“ 아버님. 저만 남겨두시면 어떻게 살아요. 아버님.”
너무도 갑작스럽게 슬픈 일을 당한 집안 식구도 그렇지만 동네사람들 또한 망연자실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사랑하던 아들이 간지 불과 2년도 채 되지 않아서 시아버님마저 돌아가시다니 감히
어느 누구도 이런 괴변이 일어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를 못하였는데 시아버님은 긴지를
잡수시다가 기도가 막혀서 기어코 세상을 등지시니 이런 망극한 일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시아버님이야말로 날마다 깨어 계시는 상태에서도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을 잊지 않고 계셨
을 것이니 어찌 밥 한 끼를 제대로 드실 수가 있었으랴.
사람이 음식을 먹어도 즐겁게 먹어야 소화가 잘 된다는데 그렇지를 못하신 상태였기에 인체
의 기관들이 정상적으로 활동을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시아버님의 장례를 모시고 나니 이제 집의 어르신은 시어머니 한 분만 남으시었다.
시어머님도 사실은 농사일 하시느라 허리가 꼬부라지셨는데 2년 사이에 전보다도 더 꼬부
라지셨으니 그 모습을 보고 있어야 하는 며느리의 마음은 날마다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것
처럼 불안이 가시지를 않았다.
시어머님께서라도 오래 사셔야 하는데….
오늘도 장 기임은 낡은 대문을 바라보다가 문득 남편의 무덤덤하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그러고 생각하니 벌써 남편과 사별한지도 30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그동안 장 기임은 아비 없는 아들 둘을 기르느라 노심초사하였으며 시어머니가 그래도 오래
도록 살아 계셨기에 아이들을 제대로 기를 수가 있었다.
이제는 시어머니도 몇 년 전에 세상을 뜨신지라 가만히 앉아서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다가
거울이라도 보게 되면 얼굴에는 주름살이 펴져있고 평생을 논밭에서 일을 하느라 손가락 마
디마디는 나뭇가지처럼 휘어져 있다.
그런 것이 보기 싫은 험이고 고달팠던 인생의 자국이지만 장 기임을 오늘까지 벋히게 한 원
동력이었다.
‘ 이따금 장 기임은 진작 아주버님이 청와대로 전근을 가시고 다 쓰러져가는 무광 집을 떠
났다면 집안에 그런 변고가 연속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망상을 해보지만 이미
물은 다 엎질러져 흔적도 없이 살아졌으니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루가 시작되는 아침 일찍 동쪽 하늘에 밝은 해를 바라보며 장 기임은 팔을 길게 벌리고
깊은 숨을 내쉬어 본다.
동쪽하늘의 꽃구름 속으로 남편의 얼굴이 잠시 나타났다가 살아져 허전한 마음으로 방안으
로 들어서는데 전화 벨 소리가 울린다.
“ 엄마 잘 주무셨지요. 아침밥을 엄마와 같이 먹고 싶어서 갈게요.”
큰 아들의 반가운 목소리다. 끝.
金 斗 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