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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도서 1장> 4 같은 믿음을 따라 된 나의 참 아들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5 내가 너를 그레데에 떨어뜨려 둔 이유는 부족한 일을 바로잡고 나의 명한 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
이것이 어떻게 하여 직접 지배인가? 라고 되물을 수 있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각 지역에 편지를 보낼 때 사람들을 천거했습니다. 그 때 마다 천거의 목적으로 각 교회를 지배하기 위함이 아니다 혹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가지않겠다며 각 교회의 의심에 해명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아들에게는 각 성의 교회에 장로를 세우겠다고 말 합니다. 이는 각 교회에 자신의 사람을 장로로 세우고 그 세운 사람은 바울을 따르는 사람들이기 바울의 세력을 넓히겠다는 것이 됩니다. 이는 곧 사도바울이 각 교회를 직접 지배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따라서 다른 편지에 작성한 바울의 천거목적은 모두 거짓이 됩니다.
그렇다면 사도바울이 각 교회를 지배하게 되면 무엇을 하는 것일까요? 이젠 모두 짐작하실 수 있어야 합니다. 답은 돈을 각 교회로 부터 받는 것 입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이유는 이미 앞에서 보았듯이 사도바울이 로마황실의 힘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 한 것이고 이것이 변화된 예수교의 흐름이였습니다. 이 때 가장 큰 손실을 보는 사람은 베드로 입니다. 그러나 베드로 보다 사도바울의 힘이 강했으므로 어쩔 수 없는 구조 였습니다. 이와 관련된 내용들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바울이 자신의 천거의 목적을 숨기려 했다기 보다는 편지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으므로 그 진실을 숨겼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 편지를 보는 당사자들은 어쩔 수 없이 사도바울을 따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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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장> 13 형제들아 ... 15 ...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로마서 15장> 20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 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21 기록된 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16장> 1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천거하노니 |
먼저 사도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 보듯이 로마에 있는 교회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15장에서 말하기를 첫번째 그리스도의 복음 전해 진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두번째 남의 터 위에 건축을 하지 않는다는 것 입니다. 그러나 로마서 16장에는 자매 뵈뵈를 천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여자가 교회에서 하는 일이 없고 오히려 여자들은 남자와 교회의 말을 들어야 했기에 장로가 되지는 않았을 것 입니다. 그러나 짐작 할 수 있는 것은 자매 뵈뵈를 통해 사도바울의 사람들을 포섭하거나 새로운 사람들을 로마교회에 침투 시킬 수는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도바울의 장로들을 세워야 했기 때문 입니다. 이 사실을 로마교회에 감추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로마교회를 처음 부터 장악 한 것은 아니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로마황실을 등에 업고 조금씩 천천히 장악해 나갔다는 것을 추측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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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6장> 10 디모데가 이르거든 너희는 조심하여 저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이는 저도 나와 같이 주의 일을 힘쓰는 자임이니라 11 그러므로 누구든지 저를 멸시하지 말고 평안히 보내어 내게로 오게 하라 나는 저가 형제들과 함께 오기를 기다리노라 12 형제 아볼로에 대하여는 저더러 형제들과 함께 너희에게 가라고 내가 많이 권하되 지금은 갈 뜻이 일절 없으나 기회가 있으면 가리라 |
사도 바울은 고린도의 교회에도 사람을 천거 했었습니다. 그 사람이 디모데 입니다. 또한 12절에 보면 아볼로를 고린도교회에 보내려 했으나 지금은 일이 있어서 못가고 기회가 생기면 고린도에 가게 될 것임을 이야기 해 놓고 있습니다. 따라서 고린도교회에 한 명이 아니라 여러명의 사도바울의 사람들이 있음을 짐작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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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도서 1장> 4 ... 나의 참 아들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 5 내가 너를 그레데에 떨어뜨려 둔 이유는 ...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
디도서 1장 5절의 내용은 이미 살펴 보았습니다. 여기에서 혹시나 싶어 다시 설명 합니다. 사도바울이 자신의 친 아들을 그레데에 떨어 뜨렸다는 내용입니다. 이 이야기는 그레데교회에 디도를 천거했음을 이야기 하는 것이고 그 교회의 장로가 되었음은 분명 합니다. 왜냐하면 각 성에 장로를 세우기 위함이라고 분명히 밝혔기 때문 입니다.
사도바울은 각 교회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각 교회로 부터 돈을 걷기 시작 합니다. 또한 이 내용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첫번째로 각 교회가 걷은 돈은 그 교회의 교인들을 위해 쓰이지 않았다는 것 입니다. 두번째 그 돈은 고린도의 국민을 위해 쓰이지도 않았습니다. 세번째 그 돈의 크기가 무척 컸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돈을 걷고 예루살렘으로 이동 시키는 과정을 조심스럽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고린도 교회의 사람들이 아는 사람으로 하여금 돈을 이동 시키겠다는 것을 밝혔다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고린도 교회의 사람들이 아는 사람들이 누구일까요? 당연히 사도바울이 포섭한 사람들임을 알 수 있고 그 명단이 아래에 나타납니다. 그 첫번째 사람이 위의 [2번]에서 설명한 고린도전서 16장 10절과 12절의 디모데와 아볼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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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6장> 1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2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3 내가 이를 때에 너희의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 4 만일 나도 가는 것이 합당하면 저희가 나와 함께 가리라 |
먼저 위에서 말하는 연보는 헌금을 의미 합니다. 그리고 3절에 보면 '내가 이를 때에'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는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도착했을 때를 의미하는 것 입니다. 이는 2절에서 '내가 갈 때에'를 통해 사도바울이 직접 고린도 교회에 방문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목적이 매주 마다 모은 헌금을 예루살렘으로 가져 가기 위해서라고 명시 하였습니다. 아마도 이 때에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에 있었거나 혹은 사도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돈으로 무엇인가를 하려 했음은 분명 합니다. 이러한 돈을 바치는 교회가 고린도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6장 1절에 보면 갈라디아 교회에도 이와 같이 하고 있음을 적었으니 대다수의 교회가 이렇게 했음은 분명하며 현재의 모든 교회들이 헌금을 거두고 있으니 그 전통이 지금까지 내려 온 것 입니다. 다만 교회가 분열하여 그 돈이 집중화 되는 것으로 보이지 않을 뿐 입니다. 혹은 현재의 교회도 그 돈을 어디론가 보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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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도서 1장> 4 ... 나의 참 아들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 5 내가 너를 그레데에 떨어뜨려 둔 이유는 ...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
다시 한번 디도서 1장을 보면 '각 성에'라고 적혀 있습니다. 각 성은 영문판에서 모든 도시라고 적혀 있습니다. 따라서 정확히는 성이 아니고 도시입니다. 모든 도시 마다 교회를 만들고 그곳에서 매주 마다 벌어들인 돈을 걷어 들이고 있었다는 것 입니다.
따라서 처음 예수교도가 만들어진 그 순간 부터 각 도시 마다 교회를 만드는 목적이 돈을 걷어 사용하기 위함이였습니다. 이 일의 앞잡이는 베드로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부터 이 일을 사도바울이 하고 있음을 우리는 인식해야 합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사도바울이 사도이기 때문이 아니고 모든 사도들이 사도바울을 따랐기 때문이 아니라 사도바울 뒤에 로마황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문서 제5장에서 베드로와 사도들이 사람들로 부터 모든 재산을 빼앗은 행동을 이해 할 수 있습니다. 그 행동은 그 돈을 모아서 누군가에게 바치기 위함이였습니다. 그 돈을 받는 사람이 예수이거나 헤롯이였음은 분명 합니다. 그래야만 돈을 더 걷고 남자들을 죽여 과부가 된 여자로 법망을 피해 창기장사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문제는 그 돈들이 로마가 아니라 예루살렘으로 모이고 있었다는 것 입니다. 이는 두가지로 해석 가능 합니다. 첫번째 아직 모든 핵심 권세가들이 예루살렘에 있었거나 두번째로 예루살렘에서 모아서 로마에 일부를 정치자금으로 바쳤던 것 입니다. 헤롯의 시대에는 세금의 형태였고 사도바울의 시대에는 불법 정치자금이 아니였을까 생각해 봅니다.
사도바울에게 있어서 베드로는 사라져야 할 인물이였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가 이 모든 일의 핵심이였기 때문에 아마도 예수교도들의 돈은 베드로와 사도바울에게 양분되었을 것 입니다. 따라서 베드로파와 바울파로 나뉘어 지게 된 것 입니다. 그렇다면 베드로는 사도바울을 사도로 인정하지 않았거나 로마황실로 부터 목숨을 지키기 위해 바울에게 머리를 숙였을 것 입니다. 그러나 많은 돈을 베드로는 빼돌렸을 것 입니다. 마치 예수의 설교에서 본 옳지 않은 종과 같았을 것 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베드로가 관리하는 교회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했을 것이 분명 합니다. 이제 베드로를 비판하는 사도바울의 모습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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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1장> 2 ...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 6 ...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8 ...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의 교회에 편지를 보냈는데 그 내용이 사도바울과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입니다. 바울과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그들은 유대인이 아니고 베드로 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다른 복음을 전하는게 아니라 저와 같이 예수교의 실체를 전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것은 아니였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8절에서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저주를 받은 사람은 죽어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사도바울이 편지를 통해 분명히 예언을 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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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2장> 8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에게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한글판) <갈라디아서 2장> 8 For God, who was at work in the ministry of Peter as an apostle to the Jews, was also at work in my ministry as an apostle to the Gentiles. (영문판) |
먼저 베드로를 저주하는 내용을 보기전에 베드로와 게바의 관계를 이해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2장 8절을 보면 'Peter'를 베드로라 칭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베드로의 영문 이름이 피터였습니다. 헷갈리시죠? 그렇다면 예수시대에 베드로를 어떻게 부르는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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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6장>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한글판) <마태복음 16장> 16 Simon Peter answered, "You are the Christ, the Son of the living God." |
위의 마태복음 16장 16절을 보면 '시몬 베드로'라고 적혀 있습니다. 영문판을 보시면 'Simon Peter'라고 적혀 있습니다. 분명히 Peter를 베드로라고 부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다시 갈라디아서로 돌아가서 이야기 하겠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8절에서는 분명히 Peter를 베드로라고 적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아래 9절에서는 게바라는 이름으로 바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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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2장> 9 또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나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 이는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저희는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한글판) <갈라디아서 2장> 9 James, Peter and John, those reputed to be pillars, gave me and Barnabas the right hand of fellowship when they recognized the grace given to me. They agreed that we should go to the Gentiles, and they to the Jews. (영문판) |
갈라디아서 2장 9절 영문판을 보면 'James, Peter and John'이라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제임스는 야고보이며 피터는 게바이고 존은 요한으로 적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마태,마가,누가복음 모두 공통입니다. 게바가 베드로를 의미하는 이유는 요한복음 때문 입니다. 그래서 게바와 베드로를 혼용하여 사용하는 것 입니다. 제가 설명하는 영문성경은 NIV이고 한글판은 NIV와 KJV를 혼용하여 번역 한 것으로 보입니다. KJV에는 게바로 나와 있고 NIV에는 피터로 되어 있습니다. 물론 NIV에도 게바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름이 다른 것은 갈라디아서 2장 9절만 다르게 표시되어 있습니다. NIV와 KJV는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습니다. 다만 게바가 베드로를 지칭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KJV는 8절에서 피터(베드로)를 사용하다가 9절에서 피터를 게바로 바꾸어 부른 것이고 이를 그대로 한글판에서 사용한 것 입니다. 따라서 NIV가 더 정확히 기록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또한 NIV와 KJV의 차이점은 NIV가 좀더 명확하게 설명하고 KJV는 불분명한 단어를 사용하여 그 뜻을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글판이 더 어렵게 느껴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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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장> 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
요한복음 1장 42절을 보면 예수가 시몬 베드로를 게바라고 칭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베드로의 이름이 게바로 바뀌었던 것 입니다. 이것은 예수시대의 일이 아니며 예수가 죽고 헤롯이 사라지고 나서 베드로가 스스로 이름을 바꾼 것을 의미 합니다. 그 이유를 짐작하여 설명 할 수 있지만 토론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이 문서에서 중요한 부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베드로가 이름을 바꾼 이유는 베드로로 활동하면 안되는 이유가 있다는 뜻이고 유대인을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 이며 또는 로마황실로 부터 보호 받기 위함이 아닌가 하는 추측 입니다. 베드로는 예수와 헤롯이 사라지고 나서는 도망다니며 활동하고 있었다는 뜻이 됩니다.
긴 설명이지만 베드로와 게바는 동일 인물임을 우리는 확인하였습니다. 따라서 갈라디아서에서 사도바울이 게바를 혼내는 행위는 분명히 베드로를 혼내는 행위 입니다. 이는 성서학자들도 인정 할 것 입니다. 이제 사도바울이 베드로를 비난하는 내용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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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2장> 11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할 일이 있기로 내가 저를 면책하였노라 <갈라디아서 2장> 11 But when Peter was come to Antioch, I withstood him to the face, because he was to be blamed. (KJV 영문판) <갈라디아서 2장> 11 When Peter came to Antioch, I opposed him to his face, because he was clearly in the wrong. (NIV 영문판) |
위 11절을 보면 KJV, NIV 모두 Peter로 호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글판에서는 계속 게바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따라서 게바는 베드로를 의미하는 것임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한글판에서 바울이 베드로를 면책하였다고 합니다. 이 의미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NIV에서는 명확하게 바울이 베드로와 대립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clearly in the wrong'을 사용하여 베드로가 '분명하게 잘못되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래서 'I opposed him'을 사용해서 나(바울)이 그(베드로)와 대립 혹은 적대관계에 있다고 적는 것 입니다. 이는 사실상 베드로를 비난하는 것을 넘어서 베드로와 적대관계에 있음을 분명히 밝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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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2장> 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저희가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13 남은 유대인들도 저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저희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
바울은 계속해서 베드로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베드로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도망갔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래서 남은 유대인들이 외식을 하게 되었으니 바나바도 외식에 유혹되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할례자는 유대인들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베드로가 유대인들이 무서워 도망다니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는 것 입니다. 이제 베드로가 게바라는 이름으로 바꾼 이유를 짐작 할 수 있습니다. 이 정도면 베드로가 죽음이 두려워 복음을 제대로 전하지 않고 있음을 짐작 할 수 있으며 베드로가 결코 예수의 사도로 칭송 받을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물론 예수교도들 전체가 비난받아야 마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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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2장> 14 그러므로 나는 저희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을 좇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
그리고 바울은 베드로가 복음의 진리를 행하지 않는다고 이야기 합니다. 예수교도들은 월래는 유대인을 이방인의 종으로 만들려고 했는데 이방인을 유대인 처럼 만들고 있다고 비난하는 내용이 위의 14절 내용 입니다. 여기에서 이방인은 갈릴리가 아니고 로마로 보이고 로마에 대항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 입니다. 아마도 베드로는 사도바울을 인정하지 않고 혹은 바울에게 돈을 바치지 않았거나 많은 돈을 빼돌렸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미움을 받고 있는 것임을 생각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베드로와 바울이 명백하게 적대관계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헤롯파이냐 혹은 로마파이냐가 첫번째 이유가 될 수 있고 이 관계에 돈이 매우 큰 역활을 하고 있음을 생각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돈을 거두는 모습을 확인 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바울은 어떻게 돈을 거두었을까요? 이를 추측 할 수 있는 내용이 바울의 편지에 있습니다. 이를 이해하기 전에 생각해 봅시다. 만약 베드로가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죽이는 내용이 없었고 그렇게 죽어간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내용이 없었고 또한 그것이 사도들의 표적과 기사라는 내용이 사도행전 5장에 없었다면 우리는 사도행전 2장과 4장에서 설명한 삼천명의 사람들이 어떻게 전재산을 바쳤는지 이해 할 수 없었을 것이며 그들이 무엇 때문에 사도들을 무서워 했는지 알 수 없었을 것 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피지배층이 사도들을 무서워 하여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다는 진짜 의미를 예수가 했음을 모두 보았고 그 진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사도바울과 그의 아들을 무서워 하여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행위를 본다면 그 의미가 무엇인지 짐작 할 수 있습니다. 그 내용을 자세히 편지에 기록하고 있으니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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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7장> 6 ... 디도의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7 저의 온 것뿐 아니요 오직 저가 너희에게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고함으로 나로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 |
바울은 고린도후서 7장에서 디도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디도는 사도바울의 아들이라고 설명 했습니다. 고린도의 교회 사람들이 디도에게 위로를 주었다고 합니다. 위로라는 것은 돈을 의미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로 인해서 고린도교회가 애통해 하는 것이고 이는 사도바울을 위해 열심히 일하기 때문이며 이를 아는 바울이 기쁘다고 7절에 적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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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7장> 13 ... 디도의 기쁨으로 우리가 더욱 많이 기뻐함은 그의 마음이 너희 무리를 인하여 안심함을 얻었음이니라 ... 15 저가 너희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떪으로 자기를 영접하여 순종한 것을 생각하고 너희를 향하여 그의 심정이 더욱 깊었으니 16 내가 너희를 인하여 범사에 담대한 고로 기뻐하노라 |
바울은 디도로 인해 안심하였다고 적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15절을 보면 고린도 사람들이 바울과 디도를 영접하고 순종했기 때문이고 그들이 순종하는 이유가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하고 떨고 있다고 적고 있습니다. 이는 고린도사람들이 고린도교회를 무서워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그 이유는 사도행전 5장을 통해 충분히 짐작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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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8장> 2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 13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평균케 하려 함이니 14 ... 너희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평균하게 하려 함이라 15 기록한 것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 ... 23 디도로 말하면 나의 동무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요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니라 |
위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했다라는 내용입니다. 극한 가난은 예수교도들이 겪고 있는 것이지 예수교도에게 헌금을 바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가난하지 않기 때문에 헌금을 바치는 것 이고 예수교도가 가난하기 때문에 헌금을 받는 것 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돈을 받으러 갈 때에는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고 한 것 입니다. 다시말해서 가난한 척하라고 예수가 말 한 것 입니다. 이와 같이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가 극한 가난에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고 그래서 연보(헌금함)이 넘치도록 부유해 졌다는 것 입니다.
문제는 13절입니다. 이러한 행동이 평균케 하는 것이라는 것 입니다. 다시말해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 입니다. 헌금을 내는 사람은 부유하고 받는 사람은 가난했는데 연보(헌금함)를 통해 모두가 평균케 되었다는 것 입니다. 그리고 15절에 기록한 것 같이 많이 거둔자도 남지 않고 적게 거둔자도 모자라지 않게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 기억하십니까? 예수 입니다. 그러면 정말 고린도교회가 부유해 졌을 까요? 그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거둔 돈을 사도바울이 걷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그 중 일부만을 남겨 먹고 살았던 것 입니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사도바울에게 강한 권력이 지켜주고 있어야 했음은 분명 합니다. 이는 예수와 베드로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리고 23절에서 디도가 그리스도의 영광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중요한 것은 고린도교회가 돈을 위해 일하고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교회의 돈이 결코 작지 않음을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보호하고자 조심하는사도바울의 모습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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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8장> 16 너희를 위하여 같은 간절함을 디도의 마음에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17 저가 권함을 받고 더욱 간절함으로 자원하여 너희에게 나아갔고 |
바울은 디도를 높여 주고 있습니다. 디도가 고린도에 갈 것을 권함을 받아 간절해서 고린도에 갔다고 적습니다. 디도는 자원해서 간 것이 아니라 권함을 받았고 설명을 들어 보니 좋았던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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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8장> 18 또 저와 함께 한 형제를 보내었으니 이 사람은 복음으로서 모든 교회에서 칭찬을 받는 자요 19 ... 여러 교회의 택함을 입어 우리의 맡은 은혜의 일로 우리와 동행하는 자라 |
그리고 바울은 디도 혼자를 보낸 것이 아니라 디도를 도와 줄 사람을 함께 보냈습니다. 그가 여러 교회로 부터 칭찬을 받고 있다고 하니 그가 디도를 대신해서 재물을 거두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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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8장> 20 이것을 조심함은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연보로 인하여 아무도 우리를 훼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21 이는 우리가 주 앞에서만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 함이라 |
바울은 마지막으로 조심하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 이유가 역시 연보(헌금,돈) 입니다. 그리고 그 돈의 크기가 거액입니다. 이 돈을 거두는 행위를 훼방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조심하라고 말을 하고 자신들의 행위가 선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어떻게 사람을 죽이고 재물을 빼앗는 행위가 선한 행위가 될 수 있을까요? 악인에게는 악한 행위가 선이였던 것 입니다. 우리는 20절을 통해 이들을 훼방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이 유대인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유대인이 싫었던 것이고 유대인들을 로마는 탄압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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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9장> 11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저희로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고린도후서 10장> 4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에베보서 6장> 11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
고린도후서 9장 11절에서는 고린도교회가 부유하고 헌금을 하는 것이 신에게 감사하는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들의 신은 누구이기에 신이 돈 때문에 고마워 할까요? 그리고 고린도후서 10장에서는 싸우라고 이야기 합니다. 누구와 싸우는 것일까요? 재물을 거두기 위해서는 싸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와 유사한 내용이 에베보서 6장의 내용 입니다. 이들이 싸운 이유는 재물이고 이를 훼방하는 사람들과 싸운 것 입니다. 이들에게 마귀는 재물을 빼앗는 행위를 방해하는 사람들이니 그들이 유대인이였습니다.
예수교도들이 유대인들에게 하는 사악한 말들은 모두 예수교도들이 하던 행위 입니다. 그 행위를 유대인들이 했다고 말을 합니다. 왜 예수교도들은 이러한 행동을 했을까요? 이는 사도바울 때문 입니다. 아래에 적은 내용들 이외에도 대다수가 유대인들을 비난하고 희롱하는 내용들이고 유대인의 율법의 무용론을 이야기하는 것이 대다수입니다. 그 내용들은 따로 적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사도들의 편지 아무것이나 아무 장이나 펼치면 나오는 흔한 것이기에 직접 보시면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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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후서 3장> 13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14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치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저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15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지 말고 형제같이 권하라 |
위의 데살로니가후서를 보면 13절에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고 말을 합니다. 왜 낙심을 할까요? 이들의 선은 악행이였습니다. 이 행위가 알려질 것이 두려웠던 것 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14절에서 우리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 사람을 지목해서 사귀지 말고 부끄럽게 하라고 합니다. 이는 자신들의 악행을 그들이 했다고 지목하라는 의미이며 그렇게 해서 그들을 부끄럽게 만들라는 것 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15절로 그렇게 만드는 행위를 그들이 모르게 하라는 것 입니다. 다시 말해서 조심해서 그들이 알지 못하게 자신들의 악행을 뒤집어 씌우고 예수교도들은 선한척 하라는 의미가 됩니다. 사실 위의 말은 이렇게 설명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이미 사악한 교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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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도서 2장> 7 범사에 네 자신으로 선한 일의 본을 보여 ... 8 ...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 |
또한 바울은 자신의 아들 디도에게도 이야기 합니다. 디도서 2장 7절에 선을 행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선은 예수교도들의 악행입니다. 이를 대적하는 자들에게 부끄럽게 하라고 이야기하고 그 이유가 예수교도들이 악하다고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한다는 것 입니다. 우리는 이제 부끄럽게 하는 행위가 자신들의 악행을 숨기기 위함이 명명백백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현대의 예수교도들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봉사를 자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너희는 왜 자랑하느냐고 이야기하며 우리는 아무도 모르게 이렇게 봉사한다며 다시 자랑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선한 행위를 모르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그러한 세상이 되면 예수교도들은 다시 세상이 악하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서로 도와 주지 않고 서로 사랑할 줄 모른다는 것이죠. 예수교도들은 자신들이 이런 저런 선한 활동을 하면서 세상을 사랑한다고 말을 합니다. 이러한 내용들이 바로 예수교도들의 기본적인 사상이며 그 사상이 사도바울의 가르침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교도들은 재물을 빼앗으면서 어떻게 그 죄를 유대인들에게 넘겼을 까요? 아주 쉽습니다. 유대인을 비난하는 것이 자신들의 죄를 떠 넘기는 행위 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은 죄를 짓지 않고 유대인들이 그 죄를 저지르는 것 처럼 보이는 것 입니다. 그 내용을 보도록 하겠으며 이렇게 말하는 내용은 모두 자신들이 악하다 말하는 것을 막기 위함임을 알아야 합니다.
유대인을 희롱하는 대표적인 단어가 할례자라는 단어 입니다. 이 단어가 쓰이는 내용 중에 이미 본 구절을 인용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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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2장> 9 ... 저희는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한글판) <갈라디아서 2장> 9 ... and they to the Jews. (영문판) |
위에 나오는 Jews라는 단어가 할례자라고 한글판이 번역했습니다. 번역자는 Jews라는 단어의 적당한 한글표기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을 의미하는 할례자로 표현 한 것 입니다. 사실 현대의 유럽과 미국에서 Jews라는 단어를 얼마나 많이 사용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뜻은 매우 놀라운 뜻입니다. Jews는 Jew의 복수형이고 Jew는 유대인을 의미하고 고리대금업자를 의미하거나 부당한 방법으로 이익을 얻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다시말해서 위의 뜻은 할례자에게 가게 한다라는 뜻 이외에도 사채업자였던 유대인에게 가게 한다라고 해석해도 됩니다. 유대인이 고리대금업자와 동일하게 쓰였다는 것입니다. 사채업자는 예수교도들이였음은 이미 앞에서 많이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유대인이 사채업자가 되었던 것 입니다.
예수교도들은 신약을 읽으면서 할례자라고 이야기하지만 그 순간 예수교도들이 알던 모르던 유대인을 비난하고 있는 것 입니다. 그러니 유대인들이 예수교도들을 비난하더라도 할 말이 없어야 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사채업자들이 유대인의 이름으로 사채업을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 봅니다. 따라서 사채업자들 중에는 가짜 유대인들이 많았을 것으로 생각되어 집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사채업의 대부이며 세금징수원의 대장이였던 삭개오이며 이미 설명해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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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 3장> 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6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
그래서 위와 같이 사도바울은 자신들이 음란하지 않으며 개인적은 욕심을 챙기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바울은 재물을 거두고 있었으며 여자들이 자신의 곁에서 떠나지 않게 혼인하지 말라고 말했었으며 창기와 하나 될 것을 주장하고 있었음을 우리는 이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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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4장> 3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
베드로는 음란과 정욕 그리고 술과 우상숭배를 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그 행위가 이방인의 뜻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한 행위는 이방인이 하는 행동이지 유대인이 하는 행동이 아닙니다. 베드로가 정신을 차리고 정상적으로 이야기 한 것일까요? 그것이 아니라 베드로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예수 시절에 하던 말을 하는 것 입니다. 시대가 바뀌어 유대인을 나쁘게 표현하고 이방인을 좋게 표현해야 했음에도 깨닳지 못한 것 입니다. 왜냐하면 예수시절에는 악을 악하다며 자랑 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철저히 숨겨야하는 시대가 되었음을 몰랐던 것 입니다. 다시말해서 사탄의 종교를 신의 종교로 만들려는 과정이였음을 몰랐던 것 입니다. 이것이 베드로와 바울의 결정적인 차이점이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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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2장> 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13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14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 15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16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2장에서 예수교도들을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사람들에게 선한 행동을 보이게 하라고 말 합니다. 한마디로 자신들의 악행을 숨기라는 의미입니다. 14절에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 있으니 그 의미를 해석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내용은 악행하는자는 징벌하고 선행하는자는 포장하라는 것이고 이는 악이든 선이든 포장 할 수 있다는 예수교도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핵심이 16절에 있으니 자유하는 행위를 악을 가리우는데 만 쓰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로서 14절의 의미가 악을 포장할 수 있음을 분명하게 가르쳐 줍니다. 어떻게 포장 했을까요? 당연히 유대인들을 고리대금업자, 사채업자로 만드는 것이였습니다. 이는 유대인들이 정말 그러한 짓을 했는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채업자들이 모두 유대인의 이름으로 사채업과 고리대금업을 했기 때문 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일이 생겼을 수도 있습니다. 스스로 유대인이라 칭하는 고리대금업자들이 정말 자신의 조상이 유대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 입니다. 지금 예루살렘에 모여 있는 유대인들이 정말 순수한 유대인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를 인정하는 사람인가? 아닌가 밖에 없습니다. 예수를 인정하는 유대인이라면 그는 고리대금업자의 후손으로 가짜 유대인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 진다고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바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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