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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 KINABALU
아침 일찍 수원에서 인천국제공항까지 이동하는데, 내가 예상한 시간보다 늦자 확인전화까지 왔으며, 금방 도착한다고 했지만, 15분이나 늦었다. 미리 해야 하는 해외 수속 때문에 내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선 미안하다고 하고는 일일이 반갑게 악수를 나누었다.
도청 오름사랑회(회장:김영철)에서 해외 첫 등반계획으로 말레이시아 사바(바람 아래 신의 주신 땅)주 코타 키나발루에 있는 키나발루 산(4,095M) 등반에 함께 나선 것이다.
4박 5일 일정으로 여행사 상품이었으며, 오름사랑회 회원 6명과, 다른 3가족 해서 총 13명의 일행이 되었다. 방학을 맞아 해외 관광에 나선 인원들로 인천국제공항 대합실은 복잡 거렸지만, 그래도, 수속을 마치며 속속 떠나야 할 게이트로 이동하는 표정들의 힘차고 기대에 부푼 모습들이었다.
09:45분에 이륙한 말레이시아 항공은 5시간 30분을 비행하고
코타 키나발루 공항에 도착하였다. 국제 휴양지답게 입국수속은 그리 번거롭지 않게 마치고, 현지 가이드를 만나 등반이 시작 될 국립공원 메실라우 리조트까지 2시간 30분 이동하여야했다.
우리나라와 달리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었으며, 주행도로도 반대편이어서 처음에는 위험스럽게 느껴졌다. 중간에 주유소에 들려 용변도 보고, 간단한 음료수도 샀는데, 나는 처음 보는 예쁜 꽃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포장이 안 된 땅을 밟아 보았다.
국립공원 관리사무소에서 입산수속을 마치고, 타고 온 중형버스에서, 다시 국립공원에만 다닐 수 있는 소형 봉고차로 30분 이동하여 첫 숙소인 메실라우 리조트에 도착하였다.
2000년 말레이시아 첫 번째 세계자연유산에 등록된 원시림인 울창한 숲속에 고즈넉하게 지어진 숙소는 많은 시간이 흘러 갔음을 간직하고 있었지만, 그림 같이 군데군데 몇 동씩 건물이 들어설 수 있는 공간에 지어졌는데, 모든 시설이 주변 자연과 크게 배치되지 않게 되어 있었다. 일정 중에 첫 번째 식사인 저녁만찬은 현지식이였는데, 즐겁게 이루어졌다. 한국산 소주에 현지 맥주를 섞어 회장님의 건배와 함께 앞으로 전개 될 일정에 대하여 담소를 나누는 친교의 장이 조용한 숲속 레스토랑에서 무르익어 갔다.
식사 후 소화도 시킬 겸, 2개 이상인 가방을 메고, 들고, 또는 큰 가방은 끌고 해서 포장 언덕길을 올라 배정된 숙소에 도착하였다. 내일 등반에 꼭 필요한 물건과 맡겨 둘 짐을 분리한 후, 하루 종일 긴장하며 흘린 땀방울을 씻고는 다시 본부 숙소에 도청 일행 7명이 한 테이블에 모여 앉았다.
이렇게 외국까지 산행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짐에 감사하고, 무사 산행을 기원하며 잔을 들고 한목소리로 단합의 힘을 모았다.
시차가 우리나라 보다 1시간 늦다.
아침 7시에 리조트뷔페로 아침식사를 하고, 점심 도시락은 각자 가방에 챙긴 후, 등반 허용시간인 8시를 기다리는 사이에 고산 가이드(셀파)에게 맡길 짐을 저울에 달아 서로 확인하였다. 키나발루 산행은 등산신고를 하고 등산객 7명당 1명의 고산가이드를 배정 받아 산행이 시작되고 일행 제일 뒤에서 종점까지 산행인을 돌봐주며, 짐삯은 보너스로 받는 단다. 메실라우 게이트 산행시점(1,926M)에서 8시20분에 일행 모두는 가이드를 선두로 함께 출발하였다.
키나발루 산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인 보르네오 섬에서 가장 큰 면적(7만2천5백㎢)을 차지하며 높이가 4,095M로 동남아 최고봉으로 단층에 의해 형성된 광대한 산이다.
우리 가이드인 신과장이 앞에서 페이스를 조절했는데, 매 1㎞ 지점마다 20~30명의 비를 피 할 수 있는 대피소가 있었는데, 반드시 마실 수 있는 식수와 수세식 용변소가 마련되어 있는 것이 다른 산에 비해 특이 했다. 자연훼손을 최대한 억제하며, 급한 경사는 듬성듬성 나무계단으로 만들었을 뿐, 대체로 친환경적이라는 느낌을 많이 주었다.
보통 산행 걸음보다 느린 1㎞에 1시간씩 소요되게끔 느릿느릿하게 걸었다. 오히려 초반에 천천히 걸으니 몸이 한결 편하다는 것을 느껴졌다. 오늘은 8㎞까지 산행이고 그 지점이 오늘 밤 묵을 산장이기에 급히 올라 체력을 크게 소모할 필요가 없었고, 수차례 반복 경험인 가이드의 리드였다.
나는 해외 등반이 두 번째이지만, 다른 일행들은 거의 처음이어서 특히, 열대우림지역이 다양한 나무들과 천 여종에 이르는 난(몇 종류만 관찰 됨)과 습기가 많아 나무에 기생하는 다른 식물도 쉬 없이 보았다. 신기하기도 하고 모처럼 접해보는 광경이라 꽃과 나무에 카메라들이 많은 대화를 하곤 했다. 특히, 카메라에 많이 잡히는 식물이 벌레잡이인 식충식물이었다.
우리 제주도도 식물이 보고라고 할 수 있는데, 보르네오 섬은 아마존강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산소배출량이 많은 나라여서 우림지역 숲이 나라의 자랑이었다. 목재산업이 주 산업이기도 하다.
4,5㎞ 지점인 롬뽀유 쉼터에서 준비한 도시락으로 점심을 맛있게 하였다. 다른 일행보다 서둘러 일찍 출발했기에 그늘이 있는 쉼터에서 했지만, 나중에 도착한 일행들은 햇빛이 내리쬐는 공간에 앉아 식사를 해서 좀 미안스럽기도 했다.
한 시간쯤 점심시간이어서 넉넉하게 쉬면서 따뜻한 커피도 마시고, 좋은 풍광과 좋은 날씨에 감사드리며, 해맑은 웃음꽃을 피우는 공간과 시간이었다.
식사 후 산행은 아무래도 더디고 힘들었다. 모두가 그런 느낌이었다. 1㎞를 더 오르자 라양라양 쉼터에 이르렀고, 하산 시 분기점인 삼거리였는데, 그곳에서 복분자 열매를 따먹는 이벤트 시간도 있었다. 쉬엄쉬엄 느릿느릿 이런 산행은 처음인 듯 했다. 반면, 몸은 피곤하지 않고 여유가 있어서 좋았다.
6㎞지점인 빌로사대피소 지점에 이르자 멀리서 천둥치는 소리가 들리고 먹구름이 몰려옴이 시야에 들어왔다. 조금 지나면서 한 방울씩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준비한 비옷을 꺼내 입을까 말까 갈등이 일 정도로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목적지 1㎞를 남기고 파카대피소에서 잠시 쉬며 지나가는 비이거니 했지만, 아니었다. 계속하여 내릴 것 같아 비옷을 꺼내 입고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천둥과 함께 번개까지 동반하여 세차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 지역 특성인 국지성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 멀리서 손님이 왔기에 보여줄 것은 다 보여주는구나 생각했다.
머무는 시간이 많아서인지 예정시간 보다 조금 늦게인 5시 50분에 오는 묵을 라반라타(3,273M)산장에 도착하였다. 조금씩 비를 맞기는 했지만 다행이었다. 우리 보다 좀 빠르게 가이드가 도착하여 식당과 한 건물에 숙소를 배정받았기에 다행이지 동 떨어진 곳은 상당히 불편할 것 같았다. 비는 더욱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젖은 옷을 갈아입고 아래층에 마련된 식당에서 현지식으로 출출한 배님을 행복하게 해주었다. 축축한 기분은 따뜻한 말리차로, 허전한 마음은 주님이 모두 채워 주셨다. 어느 정도 배가 부르니 젖은 몸과 마음이 따뜻해진 듯 했다. 서유럽 외국인이 많아서인지 서구적인 분위기였지만, 오래 취 할 수 없었던 것은 저녁 8시가 되면 내일 새벽 기상은 위하여 모두 소등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님도 넉넉하지 않았지만, 내일 새벽 힘든 산행을 위하여 모두가 자제를 하였다.
비박이 허용되지 않았으며, 산장에 하루 밤 머물 인원이 150명으로 한정되어 사전에 예약되지 않으면 산행도 힘들단다.
숙소는 한방에 10명씩 쉴 수 있는 개인용 침대였는데, 공간은 여유가 없었고, 비에 젖은 옷들과 땀으로 젖은 옷에서는 향긋한 향기가 모락모락 피어났다. 씻을 공간도 세수와 발 정도였다. 현장에 맞게 적당히 적응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서로가 배려하고, 인내하며, 양보하는 마음이 진정한 산사람들이다. 그러한 마음이 곧 아름다움이며, 건강한 정신이기에 그 산 만큼 더 건강한 마음을 담아 갈 수 있는 그릇을 만들기 위하여 애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따뜻한 모포 속에 몸을 묻었지만, 평소 신체 리듬 때문인지 8시 취침은 좀 아니었다. 소등은 이루어졌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소리를 죽이고는 동쪽에서 중앙로터리에 머물다가 한참 후에 서쪽으로 회전해 보았지만, 상황은 비슷했다. 미지의 정상 정복을 머릿속에 수없이 그려 보았다. 행복한 그림이었다.
내리는 빗소리는 여전히 귀가에 들려왔다. 그래도, 눈은 감아야 한다. 눈감은 상황과 그렇지 않은 상황은 피로가 훨씬 차이가 있어 보인다. 내일 제발 비가 그쳐 달라고 기도도 해본다. 시간은 말없이 흐른다.
챙김이 많은 나는 새벽 기상알람을 2시전으로 맞추었다. 그 시간에 어김없이 울렸다. 그래도 모두가 조용하기만 했다. 일어나 준비하자고 했는데, 2시가 아니고 1시란다. 핸드폰을 한국시간으로 맞췄기에 한 시간 빠른 것이었다. 실수였다.
어쩌라! 거의가 말똥말똥한 상태였고, 설레임과 부담감으로 모두가 깊은 잠은 잘 수 없었을 것이다. 한 둘 화장실에 다녀오고, 다른 일행들도 복도를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2시 30분에 맞추어 등반이 허용되기 때문에 우리 일행들은 간단히 식사한 후 해드랜턴 또는 손전등을 각자 준비하고, 식당 앞에 모여 기념촬영하며 파이팅을 외쳤다. 다행인 것은 날씨가 좋아졌다는 것이다. 몇 시간 전까지 비가 내렸는지 나뭇잎에는 아직도 물기를 머금고 있었으며, 걸어 다니는 길은 계속하여 물이 흐르고 있었다.
등반이 시작되자마자 가파른 나무계단 길이 힘들겠다는 것을 짐작케 했고, 물기를 머금은 바위들은 미끄러웠다. 항상 조심해야 했다. 미약한 전등에 의존해 주위는 분간이 어려웠다.
사고는 하찮은 데서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그래도 초보자는 아니어서 다른 사람을 안내도 해주면서 한발 한발씩 정상을 향해 옮겨야 했다.
사얏사얏산장(3.668m)에서 정상으로 가는 사람들이 네임텍을 점검하였다. 산장을 조금 지나자 본격적인 로프를 이용해야만 하는 코스로 접어들었고, 심한 경사여서 뒤에서 앞에서 헉~헉 거리는 숨소리가 너나없이 새여 나왔다. 한 둘은 고소순응이 안되어 토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앞서다 한 참 뒤쳐지는 모습이 한 둘이 아니었다. 우리 일행도 거리가 생김은 어쩔 수 없었다. 거대한 화강암 한 덩어리로 형성된 듯한 경사로는 끝이 없어 보였다. 앞선 주자와 뒤에서 올라오며 반짝이는 전등불빛 또한 멋있게 보였다. 고도가 높아 가면서, 추위는 더해 갔고, 지쳐가는 사람도 더 많았다.
″등산을 할 때는 조금씩, 꾸준히, 열심히 걷는 것이 정상에 이르는 길이라는 말이 있다″.
이쯤해서 여명이 밝아오며, 주변 큰 봉우리들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 시간이 대략 4시를 넘기면서였다.
3㎞가 무척 멀다는 느낌이었고, 4천여m가 결코 만만한 등반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당나귀 귀봉(4,054m) 지점에 이르자 5시쯤 되었다. 5시 50분에 일출이 시작되기에 50분 안에 1㎞ 남은 정상까지 도달하여야 하기에 조금 서둘렀다.
시간에 맞춰 키나발루 정상인 LOW′S PEAK(4,095.2m)에 등정했다. 양손을 하늘높이 쳐들었으며, 정상 팻말에 악수를 청했다. 반갑게 맞아 주었다. 얼굴 가득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촬영했고, 서둘러 자리를 피해 줘야했다. 정상 공간이 비좁아 밀려오는 사람들 때문에 오래 지체 할 수가 없었다. 조금 아쉬운 것은 일출을 구름 사이로 그 빛만 보여 주었는데, 그것도 천만 다행이었다. 정상 날씨도 좋아서 정상에서 바라 보이는 4천미터 이상인 알랙산드봉(4,003m),킴조지봉(4,066m),
세이트존봉(4,090m)들이 그 위용을 자랑하며 늘 그곳에 서 있을 것이다. 정상등정 기념선물로 충분했다. 대단함에 한참을 보고 또 보았다. 언제 다시 올 수 없는 곳이기에 여러 장을 담고 또 퍼 담았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았다. 산의 정상 부근은 화강암 표면이 노출되어 황량한 모습이었다.
정상정복을 하고 나니 마음에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그 정상 밑에서 7대경관 현수막을 펼치고 기념촬영을 하였으며, 정상 주(酒)도 한잔씩 했다. 추억을 나눠 마신 것이다.
하산 길은 또 새롭게 느껴졌다. 올라 깔 때는 컴컴해서 전등 불빛에 의존해서 앞만 보고 걸었는데, 내려오는 길엔 날씨가 밝아 주변 경관이 모두 바라 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걸음을 재촉하지 않았다. 산은 오히려 하산 할 때 더욱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경사진 암능 길이어서 조심해야만 했다.
우리끼리는 키나발루 산행을 잘 왔고, 날씨까지 도와주어 잘 보았다는 등, 평소 나누지 못했던 대화도 하고, 또 외국인을 만나면 간단한 인사를 건 내면 친구를 만난 듯 반가운 표정을 보여 준다. 모두가 아름답고 건강한 얼굴들이며, 오가는 목소리도 경쾌하게 들린다.
일행 모두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여 무사히 산장에 도착하였다. 9시경 두 번째 아침 식사를 했다.
숙소에서 짐들을 챙기고 추억에 어린 라반라타산장과 함께 정상은 배경으로 단체 촬영하고 하산 길에 접어들었다.
6㎞인 하산 길도 경사도가 있어 결코 쉽지만은 않아 천천히 하산하였다. 1시 30분에 종점인 팀폰게이트에 도착하여 관리사무소에서 본인 이름이 새겨진 등정증명서를 발급받고 점심식사를 하였다. 이번 여행 목적인 키나발루 등반을 무사히 보람있게, 찡한 추억으로 장식된 셈이었다.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그 후, 2시간 반여를 버스로 이동하여 키나발루 시내에 있는 수트라하버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오후에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여행 상품이기에 내일 하루 해변 휴양 일정이 남아 있었다. 규모가 큰 호텔에 걸맞게 조식은 깔끔하면서도 입맛에 맞아 지금까지도 부담이 없었지만, 최고로 맛있게 한 셈이다.
호텔에서 바라보이는 세계3대 해변 휴양지인 마루깐 섬으로 쾌속보트를 타고 이동하였다. 수영 할 수 있는 복장으로 갈아 입고, 주의사항을 들은 후, 조끼와 수경을 끼고, 물속에서 다양한 색색이 물고기와 함께 한 참을 놀았는데, 모처럼 어린아이처럼 한 마리의 물고기가 되어 시간가는 줄 모르게 보냈다. 밖에서 나와서 식사하라고 손짓을 하여야 물 밖으로 나왔다. 수영 후는 에너지소모가 많은 편이다. 촐촐한 배는 현지 해산물을 곁들인 바베큐로 포식을 하니 또 행복감을 느꼈다. 국제휴양지답게 동양인은 물론 많은 외국인들도 찾고 있었다.
오후에는 3,200여장의 유리로 건축된 30층의 주 청사와, 이슬람국가인지라, 만 3천여 명이 동시에 예배 할 수 있는 이슬람사원도 구경하였다. 저녁은 중국계가 운영하는 널따란 인공 호수위에 수상식당에서 식사하고 공연도 잠시 구경하고 공항으로 이동하였다.
말레이시아에서 또 하나의 아름다운 모습은 보았다.
우리 일행을 안내한 신성규(38세)가이드인데, 이민하여 2년 반 정도 정착했는데, 대학 때 스쿠버다이빙 전공이라 해외 훈련겸 코치하면서, 현지에 적응해보고 머물 것을 결정했다. 지금은 부인과 3살 아들을 두고 함께 민박과 차량 임대 사업까지 차츰 사업을 확장하며, 현지인과 친숙하려는 모습들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과정이 대한민국인 한사람이라는 자긍심에 힘찬 박수를 보냈다. 일 추진에 너무 적극적이어서 이 다음에 더 큰 기업가로 성장하기를 기대해 본다.
11시 30분에 이륙한 비행기는 다음날 새벽에 인천공항에 도착하였다. 일행들은 서로 뜨거운 악수를 나누고 헤어졌고, 나는 수원 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2011. 8. 10.
말레이시아 키나발루 등반을 무사히 마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