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백년 동안의 고독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tistory.com)
돈 아폴리나르 모스코테를 마주 보고 앉아서 그는 조금도 언성을 높이지 않고 처음에 어떻게 마을을 세웠는가 하는 얘기를 아주 자세하게 설명하고, 땅을 어떻게 분배했으며, 길을 어떻게 닦았으며, 나라의 도움을 조금도 받지 않고 어느 누구의 간섭도 받음이 없이 어떻게 그들이 마을을 발전시켜 왔는지를 소상하게 들려주었다. “우리는 워낙 평화롭게 살아왔기 때문에 아직 죽은 사람조차 하나 없습니다.”
그는 말했다. “이 마을에는 묘지가 없다는 걸 알고 계시죠?” 나라에서 도와주지 않았다고 해서 섭섭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가 하면 여태까지 아무도 간섭을 하지 않아서 평화롭게 살았던 것도 다행이다. 그러니까 그대로 내버려두었으면 좋겠으며, 아무 관계도 없는 높은 사람이 와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싫다고 했다.
그는 먼 타향을 여행하던 때의 재미있는 얘기들을 늘어놓아서 사람들을 웃겼다. 한번은 배가 파선되어 한국 동해에서 2주일 동안 표류하다가, 일사병으로 죽은 동료의 시체를 먹고 살았는데, 그 짭짤한 살은 햇볕에 잘 익어서 달콤하고 쫄깃쫄깃하더라는 얘기도 했다.
사형을 선고받은 아르카디오는 죽음이 오히려 우스꽝스리운 장난같이 여겨졌다. 죽음이란 대단한 것이 아니었지만 삶은 뜻있는 것이었고, 그랬기 때문에 사형이 선고되자 그가 느낀 감정은 공포가 아니라 삶에 대한 향수였다.
“자네는 너무나 군사정권을 미워하고, 그들과 너무 오랫동안 싸움을 하고, 그리고 그들에 대한 생각을 너무 깊이 해왔기 때문에 결국 자네도 그들 못지않게 나쁜 사람이 되고 말았어. 그토록 비참한 타락을 겪으면서까지 추구할 만큼 고귀한 이상은 이 세상에 없을 지도 모르지.”
이런 말을 한 순간에 그는 전쟁을 끝낸다는 일이 새로이 전쟁을 시작하기보다 훨씬 어렵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정부가 반란군에 유리한 휴전 조건을 약속하도록 하는 데는 1년 동안이나 피땀 어린 노력을 기울여서 악착같이 투쟁해야 했으며, 그러한 조건이 이루어지자 그 조건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반란군 지휘자들을 설득하는 데도 또다시 1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다. 그는 부하들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서도 상상하기조차 어려울 만큼 잔혹한 수단을 써야 했으며, 최후의 승리만이 목표라고 고집하는 부하들의 기를 꺾으려고 오히려 정부군의 도움이 필요할 때도 있었다.
기적 소리와 숨을 헐떡이는 소리에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고 길로 쏟아져 나온 주민들은 기관차 위에서 손을 흔드는 아우렐리아노 트리스테와 처음 계획보다는 여덟 달이나 늦긴 했지만 생전 처음 마콘도에 도착한 꽃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기차를 보고는 얼이 빠진 듯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 죄 없는 그 샛노란 기차는 마콘도에 수많은 불안과 확신을, 기쁘거나 슬픈 수많은 순간들을, 그토록 많은 변화와 재앙을, 그리고 옛시절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을 가져다주게 되었다.
그링고(미국인들을 비하하는 말)들은 기찻길 건너편에 따로 그들의 마을을 세워서 길거리에는 종려나무를 심고, 차양을 창문에 드리운 집들을 짓고, 테라스에는 작고 하얀 탁자들을 늘어놓고 천장에는 선풍기를 달고, 그리고 돈을 많이 들여서 장만한 잔디밭에다 공작과 메추라기를 길렀다. 그링고 지역에는 철로 만든 울타리가 세워졌으며, 그 울타리 위엔 전기가 통하는 철조망을 올려놓아서, 서늘한 여름날 아침이면 전기로 구워진 참새들이 까맣게 타서 철조망에 매달려 있곤 했다. 그들이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단순히 박애주의자들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그들은 옛날에 이곳에 왔던 집시들보다도 훨씬 심각한 불안감을 이곳에 조성했고, 잠시 머물다가 떠나갈 사람들이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그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옛날 같으면 전지전능하신 하느님만이 가능했던 여러 가지 힘을 발휘해서 그들은 필요에 따라 장마철을 조절했고, 수확 주기를 축진시켰으며, 강줄기를 이제가지 있었던 자리로부터 마콘도의 다른 쪽, 즉 공동묘지 뒤쪽으로 옮겨놓았다.
자유파와 보수파가 다른 점을 구태여 꼽는다면, 자유파는 5시에 미사를 드리러 가고, 보수파는 8시에 미사를 드리러 간다는 것뿐이지. 그들과 함께 그는 날마다 굴욕을 당해야 하는 슬픈 전쟁을 수행했으니, 탄원을 하고 진정서를 내고 ‘내일 다시 생각해 보자’거나, ‘언제라도 기회가 오면’ 이라든가, ‘당신 문제를 성의껏 검토하고 있다.’는 말에 밀려서 하루하루를 속아 살았다. 종신연금 증서에 서명을 했어야 하지만, 서명을 하려고 들지 않던 ‘당신의 친애하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싸움은 끝내 패배로 끝났다. 20년 동안 피를 흘려 싸웠던 다른 전쟁은 영원히 연기만 되는 부식성 전쟁보다는 차라리 피해가 적었다.
일주일이 지나도 비는 계속 내렸다. 수천 번이나 되풀이해서 발표되고 정부가 온갖 통신수단을 동원하고 마음대로 조작해서 전국 각지에 퍼뜨려 결국은 사실이라고 받아들여진 공식발표에 따르면, 마콘도에서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만족한 노무자들은 모두 가족을 찾아 돌아갔고, 바나나 회사는 비가 끝날 때까지 모든 작업을 중단하겠다고 했다. 끝없이 계속되는 폭우 때문에 야기될지도 모르는 사고에 즉각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필요성 때문에 계엄령이 계속 실시되었지만 군인들은 대부분 그들의 영내에 머물렸다. 군인들이 3000명이 넘는 노무자들을 역 앞에 모아 가두고 어떻게 기관총으로 학살을 했으며, 어떻게 그 시체들을 200개의 차량이 달린 기차에 실어서 바다로 가져다 버렸는지를 설명했다.
끝없이 편지만 쓰는 동안 저절로 시간의 개념을 망각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고향으로 돌아올 날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날짜와 달수와 햇수를 부지런히 따져보고 세월의 흐름에 신경을 썼다. 그러나 아이들이 돌아올 계획을 자꾸만 변경하다 보니까 날짜들은 서로 뒤섞여 종잡을 수 없게 되었으며, 기간이라는 개념도
애매해지고 오늘이나 내일이 별로 다른 것 같지도 않고 시간 자체가 흐르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날짜가 지나감에 따라 그는 배에서의 현실에 대해서는 점점 흥미를 잃게 되고, 배가 멀어져 갈수록 자꾸만 슬픈 생각이 들어서, 아주 최근에 있었던 지극히 사소한 일들에 대해서도 향수를 느끼게 된 것 같았다. 그러한 향수의 과정은 그가 보낸 사진 속에도 잘 나타나 있었다. 처음에 찍은 사진들에서는 하얀 파도 거품이 이는 카리브 해를 배경으로, 병원에서 입는 윗옷처럼 멋진 셔츠를 입고, 머리는 새하얀 갈기처럼 나부끼고 서 있는 모습이 무척 행복해 보였다. 그러나 여행의 마지막에 찍은 듯한 사진들에서 검은 저고리에 비단 스카프를 두르고 묵묵히 갑판에 서 있었으며, 가을 바다를 몽유병자처럼 떠가는 배도 처량해 보였다.
그들이 어디를 가든지 간에 과거란 모두가 거짓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며, 추억은 되돌아오지 않을 터이고, 이미 지나간 모든 봄은 하나도 다시 찾을 수 없으며, 사랑이 아무리 거칠거나 깊다고 해도 결국은 한순간의 진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얘기를 했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가 이 원고를 해독하게 되는 순간부터 마콘도는 인간의 기억에서 영원히 사라질 것이며, 여기에 적힌 글들은 영원히 어느 때에도 다시 되풀이될 수 없을 것이니, 그것은 100년 동안의 고독에 시달린 종족은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날 수 없다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첫댓글 양배추와 왕들 오 헨리
백년 동안의 고독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이 영상을 보면서 '체 게바라'가 공산혁명으로 세상을 바꾸려 했던 것이 이해됨...
‘마지막 잎새’로 잘 알려진 미국작가 오 헨리는 원래 은행원이었다. 문학에 소질이 있던 그는 은행을 다니면서 주간지 롤링스톤을 창간했다. 초기에 잡지 판매가 잘되는가 싶더니 이내 내리미국으로 돌아온 헨리는 당시 온두라스에서 보고 겪은 경험을 토대로 1904년 ‘양배추와 왕들(Cabbages and Kings)’이라는 소설을 썼다. 단편소설 ‘마지막 잎새’가 세상에 나오기 1년 전이다. 양배추는 가난하고 무력한 대중을, 왕들은 소수 기득권층을 상징한다. 이 작품에서 그는 부패로 찌든 온두라스를 빗댄 가상국가 ‘바나나공화국’을 창조했다. 밖은 화려한데 안을 들여다보면 썩은 내음이 진동하는 구제불능 상태의 국가다.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쉽게 썩는 바나나의 속성에 비유했다고 한다. 이후부터 ‘바나나공화국’은 바나나· 커피 등 한두 가지 농산물이나 원자재 수출에 의존하고 부패와 외세 개입 등으로 정치·사회적 불안이 일상화한 나라를 멸시하는 의미로 쓰인다. 원래 온두라스 등 중남미국가들을 주로 지칭했으나 몇몇 아프리카 나라들로 범위가 넓어졌다. 미국 영화감독 겸 배우 우디 앨런은 1971년 개봉한 코미디물 ‘바나나스(Bananas)’에서 바나나공화국을 풍자하기도 했다.
바나나 공화국(banana republic)은 바나나 등의 한정된 일차산품의 수출에 절대적으로 의지해 주로 미국 등의 외국 자본에 제어받으며 부패한 독재자와 그 수하가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정치적으로 불안한 작은 나라를 가리키는 경멸어이다. 이 용어는 냉전 시절 미국의 안마당처럼 휘둘리던 엘살바도르, 벨리즈, 온두라스, 과테말라, 그레나다를 비롯하여 중앙 아메리카의 여러 나라에 쓰이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넓게 보면 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지역의 국가에 쓰이는 경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