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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04. 01
야구의 계절이 왔다. 2016 타이어뱅크 KBO리그 정규시즌이 4월 1일 전국 5개 구장에서 일제히 막을 올렸다. 9년 만에 주말이 아닌 금요일에 야간경기로 치러진 개막전. 오랜 단장을 끝낸 고척스카이돔과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가 마침내 선을 보였고, 잠실·문학·마산구장에서도 일제히 ‘플레이볼’이 선언됐다. 10개 구단의 선수단과 프런트, 팬들이 모두 겨우내 한마음으로 준비하고 기다려온 순간이다. 개막전은 사실 한 시즌에 거쳐야 할 144경기 가운데 단 하나일 뿐이다. 이기면 1승, 지면 1패가 추가될 뿐이다. 개막전에서 이긴다고 장밋빛 미래가 보장되는 게 아니고, 그 반대도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모든 시작에는 ‘처음’이라서 더 특별한 의미가 있는 법. 겨울잠을 끝낸 프로야구 개막전의 진기록들이 유독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다.
# 개막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이름, 한대화
▲ 개막전에서 7개의 홈런을 때려낸 한대화 전 한화 감독.
한대화 전 한화 감독은 매년 프로야구가 개막할 즈음이면 어김없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는 인물이다. 역대 가장 유명한 ‘개막전의 사나이’라서다. 한 전 감독은 “일부러 개막전에 잘하려고 용을 쓴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그 별명 덕분에 선수 때나 코치 때나 감독 때나 가리지 않고 개막 직전만 되면 기자들 전화가 그렇게 많이 온다”며 웃기도 했다.
개막전 통산 홈런 수가 7개나 되니 그럴 만도 하다. 말이 7홈런이지, 7시즌 동안 개막전에서 매번 홈런을 쳤단 얘기가 된다. 그 사이 역대 개막전 개인 통산 최다인 17타점이 쌓였다. 게다가 1983년과 1990년, 1997년에는 세 차례나 그 시즌의 개막전 1호 홈런을 때려내기도 했다. 한 선수가 평생 한 번 치기도 힘든 시즌 전체 1호 홈런을 7년 주기로 세 번이나 때려낸 것이다. 이 정도면 개막전의 사나이 중에 으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전 감독은 선수 때뿐만 아니라 한화 사령탑 시절에도 또 한 번 개막전과 관련한 진기록을 남겼다. 2012년 4월 7일 사직구장에서 열린 롯데와의 개막전에서 사상 처음으로 개막전 감독 퇴장의 장본인이 된 것. 8회초 공격이 끝난 뒤 화장실에 가면서 곁에 있던 코치들을 향해 검지를 머리 주변에 대고 빙빙 돌리는 제스처를 취한 게 화근이었다. 그 장면을 주심이 목격했다. 판정에 불만을 느끼고 있던 한 감독이 심판들을 희롱했다고 여겼다. 즉시 퇴장 명령이 떨어졌다.
하필 감독이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뒤늦게 달려 나온 한 감독이 “심판들에게 직접적으로 한 게 아니지 않느냐”고 항의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역대 18번째이자 개막전 최초의 감독 퇴장. 이래저래 개막전과 인연이 깊었던 한 전 감독이다.
# 개막전 6승에 완투승만 3번, ‘짱꼴라’ 장호연
투수 쪽에서는 OB 장호연이 한대화와 쌍벽을 이룬다. 개막전에 9번이나 선발로 나섰고, 6승(2패)을 따냈다. 갓 입단한 1983년에 LG의 전신 MBC와의 잠실 개막전 선발투수로 전격 낙점된 게 그 시작이었다. 프로야구 35년 역사에서 개막전에 선발 등판한 신인 투수는 단 8명에 불과하다. 심지어 1994년 롯데 강상수 이후로는 올해까지 22년간 맥이 끊겼다. 그런데 장호연은 단지 승리만 따낸 게 아니라 역대 신인 최초의 완봉승도 동시에 이뤄냈다.
▲ 개막전 완투승만 세 차례 거둔 장호연. / MBC 스포츠플러스 방송 화면 캡처.
이뿐만 아니다. 1985년부터 1990년까지 6년 연속 개막전 선발투수(최다 기록 타이)로 나섰고, 1983년의 완봉승을 포함해 개막전 완투승만 세 차례 거뒀다. 이 가운데 1988년 롯데와의 개막전에서는 개막전 최초의 노히트노런이라는 대기록까지 작성했다. 9이닝 동안 볼넷 2개와 몸에 맞는 공 1개만 내주고 안타와 실점 없이 아웃카운트 27개를 홀로 잡았다. 그 안에 단 한 개의 삼진도 없었다는 게 오히려 특이할 정도. 공을 99개만 던지면서 효율적인 피칭의 진수를 보여줬다. 장호연이 기록한 6승과 세 차례의 개막전 완투승, 개막전 노히트노런 기록은 앞으로도 쉽게 깨지기 어려운 기록들이다.
# 정민태와 송진우, 장호연의 아성을 위협한 쌍두마차
그동안 장호연의 개막전 아성을 위협했던 투수는 단 둘뿐. 현대 정민태와 한화 송진우다. 정민태(1997~2004년, 2001·2002년은 일본 진출로 제외)와 송진우(2001~2006년) 역시 6년 연속 개막전 선발투수로 선택받으면서 장호연의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했다. 그러나 최다 등판과 최다승 기록에서는 장호연을 턱밑까지 쫓는 데 그쳤다. 송진우가 8회, 정민태가 7회씩 등판했고, 승리는 정민태가 5승, 송진우가 4승을 각각 따냈다.
사실 장호연 외에는 개막전에서 완봉승을 기록했던 투수조차 많지 않다. 삼성 김상엽(1992~1993년)이 유일하게 2년 연속 개막전 완봉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그 외에는 1984년 해태 이상윤, 1989년 해태 선동열, 2002년 한화 송진우, 2005년 삼성 배영수가 전부다. 그중에서 배영수는 유일하게 무4사구 완봉승을 해냈다. 그런가 하면 롯데 주형광(1996년)과 한화 정민철(1996~1997년·2회), SK 페르난도 에르난데스(2002년)는 개막전에서 무려 10개의 삼진을 잡아내 역대 개막전 한 경기 최다 탈삼진 기록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반대로 개막전에서 가장 많은 패전을 기록한 투수는 누구일까. 두산 조계현, 삼성 최동원, 한화 류현진, KIA 윤석민이 나란히 개막전 3패로 최다패의 아쉬움을 삼켰다. 공교롭게도 모두 KBO리그에서 한 획을 그은 투수들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개막전에 선발 등판한다는 것 자체가 에이스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 대전구장 마운드가 홈런 14개로 무너진 날
2000년 4월 5일 대전구장에서 열린 한화와 현대의 개막전에서는 개막 ‘축포’가 터져도 너무 많이 터졌다. 타격과 관련한 각종 기록이 불꽃처럼 쏟아져 내렸다. 일단 양 팀이 도합 14개의 홈런을 쳤다. 역대 개막전 최다 홈런을 넘어 지금까지 KBO리그 한 경기 최다 홈런 기록으로 남아 있다. 특히 현대 타선은 총 10개의 홈런과 47루타를 만들어 내면서 둘 다 역대 최다 기록을 다시 썼다. 현대 용병타자 톰 퀸란은 3연타석 아치를 그리면서 홈런으로만 12루타를 만들어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현대는 7회에만 홈런 5개를 몰아쳐 한 이닝 최다 홈런 기록도 작성했는데, 이마저도 5연타수 홈런으로 역대 최다 기록이었다. 7회 선두타자 박종호에 이어 박재홍과 에디 윌리엄스가 세 타자 연속홈런을 쳤고, 심재학이 몸에 맞는 공으로 출루한 뒤에는 퀸란과 이숭용이 다시 백투백 홈런으로 화답했다. 현대의 17타점은 역대 개막전 한 경기 최다 타점 기록. 17득점 역시 1993년의 삼성과 함께 역대 개막전 최다 득점 타이 기록이 됐다. 그야말로 대전구장 마운드가 초토화된 하루였다. 최종 결과는 17-10으로 현대의 승리. 승리투수는 정민태, 패전투수는 한용덕이었다.
# 개막전 만루홈런, 누가 쳤고 누가 맞았나
▲ 2013년 개막전 만루홈런 두 방을 맞은 배영수.
홈런의 꽃은 역시 만루홈런이다. 지난해까지 34번의 개막전에서는 총 10개의 그랜드슬램이 터졌다. 1982년 MBC 이종도, 1984년 삼미 양승관, 1990년 해태 한대화, 2000년 LG 조인성, 2004년 두산 안경현, 2011년 삼성 채태인, 2012년 LG 이병규(9번), 2013년 두산 오재원과 김현수, LG 정성훈 등이 주인공이다. 이 가운데 이종도는 프로야구 원년 개막전 연장 10회에 역사적인 개막전 끝내기 만루홈런을 날리면서 평생 야구사에 이름을 남기게 됐다.
홈런을 친 타자가 있으면 맞은 투수도 있다. 삼성 이선희와 김시진, 빙그레 김대중, 롯데 정원욱, KIA 훌리오 마뇽과 곽정철, 삼성 차우찬, 한화 배영수, SK 이재영 등이 개막전부터 만루홈런을 내줘야 했던 비운의 투수들이다.
특히 배영수는 삼성 시절이던 2013년 3월 20일 두산과의 대구 개막전에서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을 경험을 했다. 1회 오재원, 4회 김현수에게 잇달아 만루홈런을 얻어맞고 무려 8실점을 한 것이다. 개막전 만루홈런 두 방은 사상 최초의 기록. 배영수는 그후 스스로에게 ‘개만두(개막전 만루홈런 두 방)’이라는 별명을 붙이며 자조하기도 했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가 LA 다저스 시절 한 이닝에 같은 타자에게 그랜드슬램 두 방을 내주면서 ‘한만두’라는 별명이 붙은 적이 있는데, 배영수가 그 별명을 응용한 것이다.
# 개막전부터 5시간 넘게 야구한 OB와 한화
겨우내 무척 야구가 하고 싶었던지, 개막 첫 날부터 원 없이 게임을 했던 팀들도 있다. OB와 한화는 1997년 4월 12일 대전구장에서 연장 13회까지 총 5시간 21분에 걸쳐 개막전을 치렀다. 역대 개막전 최장경기 시간. 유일하게 5시간을 넘겼던 개막전이다. 두 번째로 길었던 개막경기 시간은 2007년 4월 6일 대전 한화-SK전(연장 12회)의 4시간 38분이었다. 반대로 2000년 4월 5일 잠실 두산-해태전은 2시간 11분 만에 끝났다. 1992년 4월 4일 광주 해태-태평양 전(2시간 14분)과 1984년 4월 7일 광주 해태-롯데전(2시간 15분)도 승부가 빨리 났다. 그야말로 속전속결. 선수들은 가뿐하게 개막전을 끝내고 다음 경기를 준비했다.
물론 경기가 짧든 길든 무사히 끝낸 팀들은 차라리 사정이 낫다. 1990년에는 잠실·인천·광주구장에서 열릴 예정이던 개막전 3경기가 모두 우천 취소됐다. 개막전 전 경기가 무산된 역대 유일의 시즌이다. 이럴 때 가장 허탈한 건 선수들보다 프런트, 특히 마케팅팀 직원들이다. 성대한 개막전 행사를 위해 1년 중 가장 바쁜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비가 오지 않더라도 날씨가 너무 흐리거나 추우면 행사 계획과 흥행에 차질이 빚어진다. 프로야구 개막일 하루만큼은 하늘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
배영은 / 일간스포츠 기자
일요신문 [제1247호]
[개막전 시구의 역사] ‘각하’ 마운드 오르자 경호원이 심판으로
시구(始球)는 이제 KBO리그에서 없으면 허전한 필수 이벤트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매년 화제의 시구자들이 포털 사이트 검색어를 오르내리고, 모두가 더 기발한 방법으로 시구를 하기 위해 온갖 아이디어를 짜낸다. 특히 구단들은 개막전 시구자 선정에 가장 심혈을 기울인다. 한 시즌을 여는 경기인 만큼, 팀의 상황과 성격에 맞는 시구자를 마운드로 올려 보내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머리를 맞댄다.
그동안 개막전 시구자의 면면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를 거듭해왔다. 역사적인 첫 시구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었다. 1982년 3월 27일 동대문구장에서 열린 삼성과 MBC의 프로야구 원년 개막전 시구자로 나섰다. ‘각하’의 출현과 동시에 야구장 전체에 삼엄한 경호가 펼쳐졌다.
경호원이 트렌치코트를 입고 심판 대신 주심 자리에 서 있었고, 타석에 서게 될 삼성 1번 타자는 경기 며칠 전부터 천보성으로 정해졌다. 삼성은 천보성의 신상명세서를 만들어 청와대에 미리 제출했다. 심지어 천보성은 타석에 들어서기 전에 경호원에게 몸을 수색당했다. 배트도 시구 직전에야 건네받았다. 그만큼 대통령의 시구는 처음부터 끝까지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다. 무엇보다 완벽한 보안이 최우선이다. 외부에 알려지는 순간 일정은 전면 취소된다. 그 이후 대통령의 개막전 시구 사례는 김영삼 전 대통령(1995년)이 전부였던 이유다.
▲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2년 3월 27일 동대문구장에서 열린 삼성과 MBC의 프로야구 원년 개막전에서 시구를 했다. / 일요신문 DB
초창기 프로야구 개막전의 단골 시구자는 체육부 장·차관, 지역 자치단체장과 같은 정치인으로 채워졌다. 시구 자체가 개막전, 올스타전, 포스트시즌처럼 특별한 경기 때만 마련되는 행사였던 까닭에 주로 정치인들이 보여주기식 이벤트로 많이 활용했다.
그러나 1989년 ‘월드스타’였던 배우 강수연이 연예인으로는 처음으로 광주구장에서 공을 던지면서 개막전 시구의 새 페이지가 열렸다. 여자 연예인의 시구를 처음 본 관중의 반응이 열화와 같았다는 후문이다. 그런가 하면 같은 해 OB는 구단 제1호 성인회원인 이국신 씨를 시구자로 내세워 처음으로 일반인에게 개막전 시구의 문호를 열었다.
물론 이후에도 정치인들의 시구 행렬은 한동안 계속됐다. 2000년대로 접어든 후에야 연예인들의 개막전 시구 비중이 점점 높아지기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에는 채시라, 한석규, 최민식과 같은 배우들에게만 기회가 주어졌다면, 2000년대 들어서는 이휘재, 엄정화, 비, 이미연, 안성기, 정준호 등이 차례로 개막전의 첫 공을 던지면서 시구자들의 폭이 더 넓고 다양해졌다.
동시에 다른 종목 스포츠스타들과의 교류도 활발해졌다. 특히 2월에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해에는 금메달리스트들이 개막전 시구자로 각광받았다. 1998년 나가노올림픽 쇼트트랙 금메달리스트 안상미, 2010년 밴쿠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금메달 삼총사인 이상화, 이승훈, 모태범이 그해 모두 시구를 했다. 이상화는 2014년 소치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따 4년 만에 다시 잠실구장 개막전에 나서기도 했다.
삼성도 올해 새로 문을 여는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의 첫 시구자로 야구인이 아닌 ‘피겨 여왕’ 김연아를 초빙했다. 소치올림픽에서 석연찮은 홈어드밴티지에 밀려 은메달을 따고도 의연하게 경쟁자에게 박수를 보냈던 김연아의 모습에서 지난해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차지한 뒤 우승팀 두산의 시상식을 끝까지 지켜봤던 삼성과의 연결고리를 찾았다.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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