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연과 세계적인 슬픔
박민혁
파란시선 0077 / 2021년 2월 10일 발간 / 정가 10,000원 / 128×208㎜ / 127쪽 /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_ 신간 소개
“너를 앓는 일이, 내 오랜 질병과 마주 앉아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 일”이 사랑이다
“시란 무엇일까. 그리고 시인이란 어떤 존재일까. 이런 근본적인 질문을 품게 하는 시집이 있다. 그 누구도 손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 어떤 시집들은 ‘전위’ 혹은 ‘메타’라는 이름으로 질문을 전달하고, 이를 받아 본 독자는 자신의 독서 태도 및 습관에 대해 역시 근본적으로 고민한다. 그런데 그간의 한국시를 돌이켜 보면, 저 근본적인 질문들은 대개 젊은 시인들이 짊어졌고, 시의 오랜 독자들은 다소 당혹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던 것 같다. 이를테면 필시 여물지 않았을 그 질문과의 씨름을 두고, 어려운 질문을 제기한다는 의미에서는 매우 좋은 시도이나, 이것이 과연 좋은 시인지 잘 모르겠다는 식의 유보적인 태도 같은 것들 말이다.
좋은 시의 정의를 두고 펼쳐지는 창과 방패의 대결에서 젊은 시인들은 부수고, 오랜 독자들은 보호한다. 그러나 이 끝없는 대결이야말로 오늘날 한국시를 여느 예술 영역에도 뒤처지지 않을 아름다움의 보고이자, 세계 다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사랑받는 장르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방적 대화가 아닌 긴장적 대화를 통해 장르로서 시는 설득적이고 신뢰할 만한 방식으로 그것의 아름다움을 전개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대결 가운데 누군가는 항상 조금 억울해 보인다.
왜 저 가장 어려운 질문에 젊은 시인들만 대답해야 하고, 그 결과와 관련해 그들은 언제나 핀잔을 듣는 위치에 존재해야 하는가. 시인의 젊음은 시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왜 그래야만 하는가. 시를 두고 벌이는 이 기묘한 고부 갈등과 같은 상황에, 젊은 시인들은 점차 문학사의 시간을 떠나 역사 혹은 생활의 시간으로 향한다. 어느덧 오늘날 젊은 시인들은 세상이 붙여 준 ‘젊은’이라는 이름표를 떼어 내며, ‘나’의 시를 만들어 간다. 그들은 첨단화될 대로 첨단화된 혹은 노쇠화될 대로 노쇠화된 저 자율적인 장르로서의 ‘시’를 떠난다. 창과 방패의 대결은 이제 2000년대까지나 가능했던 무엇인 셈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뚫고 나오는 예외 또한 언제나 존재한다.
0에서 1로의 한 발을 내딛는 새로운 십 년에 독자는 젊은 시인의 첫 시집인 <대자연과 세계적인 슬픔>을 읽는다. 그리고 문득 질문한다. 시란 무엇일까. 시인이란 어떤 존재일까. 독자는 한 권의 시집을 통과하며 한 청년이 ‘시인’으로 탄생하는 현장을, 시적인 것들이 ‘시’로 열매 맺는 현장을 반갑게 목도한다. 그리고 저 사건이 벌어지는 과정에 입회하는 가운데, 젊음에 유보적인 독자도, 소위 젊음 자체를 거부하는 요즘 독자도 이 시집에는 설득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젊음이 불가능해 보이는 오늘날, 반대자들마저 모두 사로잡을 수 있을 것 같은 이 시 쓰기란 무엇일까. 이 시집이 가지고 있는 힘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리고는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시란 무엇일까. 시인이란 어떤 존재일까.” (이상 양순모 문학평론가의 해설 중에서)
박민혁 시인은 1983년에 태어났으며,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17년 <현대시>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대자연과 세계적인 슬픔>은 박민혁 시인의 첫 번째 신작 시집이다.
_ 추천사
사랑이 흥건하다. 박민혁의 시집에는 실패한 사랑이 넘실거린다. 흥건하게 넘실거리는 실패한 사랑의 이지러진 상처가 또렷하다. 어두운 골목에 쭈그리고 앉아 떠나간 사랑 때문에 훌쩍거리는 사람. 그의 말려드는 어깨를 토닥이고 싶다. 사랑 때문에 인생이 전복된 청년의 삼키는 울음소리 길게 이어진다. “따뜻한 응달 위에 서서 슬픔에 가려진 내 뒤안길을 오래오래 기렸다.”
견디고 버티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악물고 바닥을 기어가는 사랑의 루저가 보인다. 그의 슬픔은 비릿하고 비루하고 비참하다. 아름다운 이 세상에서 넌 깃털처럼 사뿐한 존재, 난 쪼다야, 벌레야.(Radiohead, 「Creep」) “이별 이전과 이후를 왕복”하는 박민혁의 눈앞에 “불구의 나비가 가득하다.” 사랑에 실패한 자여, 벌 받아 마땅할지어다. 자기 처벌의 황홀한 이미지 가득하다.
사랑이 떠나고 시가 왔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사랑이냐 예술이냐. 하나를 선택하는 순간 다른 하나를 버려야 한다. 박민혁은 사랑을 붙잡을 것이다. 시보다 사랑이 아름답고 행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절대로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사랑에 서툴고 모자라고 무딘 그가 말한다. “그리움을 그러모은다. 사실 잘 모르겠어. 이게 과연 사랑이 맞는 건지.”
잘 벼려진 감정을 유려한 수사로 기술하는 박민혁이 부서진 사랑을 부드럽고 따스하게 응시한다. 박민혁은 사랑의 실패에, 삶의 비극에 무너지지 않는다. 사랑의 파국이 재연되겠지만, 사랑의 고통을 다시 껴안고, 몸서리치게 그리운 사람을 그는 우리 앞에 불러올 것이다. 벅찬 사랑의 찬가를 목 놓아 부를 것이다. “너를 앓는 일이, 내 오랜 질병과 마주 앉아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 일”이 사랑이다.
박민혁의 사랑은 절망 속에 매장했던 사랑의 대상 ‘그/그녀’를 부활시킨다. 바디우의 말과 박민혁의 시가 겹쳐진다. 이 세계에서 저는 그대와 함께하는 행복의 원천이 나에게 주어지는 것을 직접 봅니다. 심장에서 쏟아진 말. ‘나는 너를 사랑해.’ 이 말은 내 사랑을 위해 그대가 있는 그 원천이 이곳(<대자연과 세계적인 슬픔>)에 있다는 뜻입니다.
―장석원(시인)
_ 시인의 말
포장지도 뜯지 않았는데
그대로 낡아 버린 새 물건이 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누군가 틈틈이 꺼내서 사용하고,
다시 몰래 넣어 놓은 흔적이 역력하다.
누구라도 사용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새것이면서 더는 새것이 아닌 그것을 본다.
내 것이면서 더는 내 것이 아닌 그것을 본다.
세계의 양심을 꾸짖기 어려웠다.
_ 저자 소개
박민혁
1983년에 태어났다.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17년 <현대시>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대자연과 세계적인 슬픔>을 썼다.
_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400번의 구타 – 9
제2부 대자연과 세계적인 슬픔
빅 픽처 – 69
나의 여자 친구, 모호 – 71
여름성경학교 – 73
여름성경학교 – 75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 77
묘묘(杳杳) - 80
메리 크리스마스 로렌스 씨 – 84
욕조의 품 – 88
모호한 슬픔 – 90
여름성경학교 – 93
여름성경학교 – 96
대자연과 세계적인 슬픔 – 98
말씀과 삶 – 100
생량머리 – 102
애달피 – 103
해피엔드 – 106
그 후 – 107
젖빛유리 너머 – 110
해설 양순모 비행, 젖빛유리 너머 – 111
_ 시집 속의 시 세 편
대자연과 세계적인 슬픔
액상의 꿈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를 매달고, 생시 문턱을 넘는다.
애인의 악몽을 대신 꿔 준 날은 전화기를 꺼 둔 채 골목을 배회했다. 그럴 때마다 배경음악처럼 누군가는 건반을 두드린다.
비로소 몇 마디를 얻기 위해 침묵을 연습할 것. 총명한 성기는 매번 산책을 방해한다. 도착적 슬픔이 엄습한다. 나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부모에게서, 향정신성 문장 몇 개를 훔쳤다.
아름다웠다.
괘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경외한다. 우리들의 객쩍음에.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이유 없이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 나의 지랄은 세련된 것. 병법 없이는 사랑할 수 없다. 너는 나의 편견이다.
불안과의 잠자리에서는 더 이상 피임하지 않는다. 내가 돌아볼 때마다 사람들은 온갖 종류의 비극을 연기한다. 우울한 자의 범신론이다. 저절로 생겨난,
저 살가운 불행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럴 때마다 생은 내 급소를 두드린다.
나와 나의 대조적인 삶.
길항하는,
꼭 한 번은 틀리고 말던 아름다운 피아노 소리.
고통의 규칙을 보라. ***
말씀과 삶
요구하지 않은 기도는 하지 말아 줄래요.
나의 믿음은 도식적이어서요.
많은 이웃을 사랑했어요.
양쪽 뺨 정도는 마음껏 내줄 수 있지요.
성애도 사랑이니까요.
퍼즐을 꼭 맞춰야 하나요?
예쁜 슬픔 한 조각이 갖고 싶을 뿐이에요.
인생을 학예회처럼 살고 싶지는 않네요.
어린이를 연기하는 어린이는 끔찍하죠.
칠흑 같은 밤에는 차라리 하늘을 보고 걷듯,
내 기도는 지속되지만
아멘을 발음할 땐 신중해야 합니다.
반복되는 절망은 내 탓이 아니죠.
비극은 생의 못된 버릇 같은 거니까.
강대상 뒤에는 당신 몸에 꼭 맞는 침대
걸려 있는데 아버지, 외박이 잦네요.
남을 미워하는 건 이제 관두기로 했어요.
내 온실 속에는 꽃 피우는 고통만 들이기로.
통증 없는 삶은 결코 범사가 아닙니다.
당신 같은 플라세보가 있어서 다행이에요.
형제들이여, 나의 죄는 희대의 형식이어서
제게 돌을 던질 자격을 드리기로 합니다.
커다란 손에는 잘 벼린 말씀과 한 줌의 인간들.
내 직유의 전장에는 방패 같은 톨레랑스! ***
묘묘(杳杳)
무너지는 세계를 보며 너냐고 묻는다.
시는 이럴 때만 친한 척, 내 등 푸른 감정의 살점을 잘도 발라먹는다니까?
착향탄산음료를 마시니 따가운 눈물이 고인다. 이런 와중에도 나는 주머니 속 단어 몇 개를 뒤지고 있다. 망측해라! 나는 이별까지 미화하는 사람이구나.
그러니까, 그날 새벽에 꾼 꿈은 모두 흉몽. 쉽게 풀어쓴 성경책 한 권이 필요해. 나 같은 괴물도 한 번쯤은 온전히 즐거울 권리가 있을 텐데. 하지만 물러서는 것이 좋겠지? 어서 멀리 도망가. 너에게 총을 겨누기 전에.
지독한 슬픔을 난반사하는 다각형의 고통이라니! 우리가 교배한 각자의 농담은 결국 기형인 것으로 밝혀져. 너는 슬픔마저 후원한 사람인데. 나는 너에게만 굴절된 인간. 오로지 너만 나를 있는 그대로 봐 주었으므로. 헤헤. 그것은 사실입니다.
지금 어디야? 나 무서워. 너를 따라 죽은 신부의 미사를 따라갔던 날이 왜 자꾸 떠오를까. 너는 그토록 추하게 닭고기를 뜯는 나를 언제나 사랑해 주었지. 그러나 이제 네가 만든 속담처럼 우는 애인에게 혀를 물려 줄 수는 없는 일.
이제 와 이런 편지를 쓴다고,
화내지 마세요. 걷어차지 마세요. 안녕,
아니아니, 아직이야. 안 끝났다구.
자자,
여기를 봐, 작은 닭아.
무례한 슬픔들이 너를 두고 다툰다. 요즘도 난쟁이들이 등장하는 악몽을 꾸니? 내 일기장에 너의 조각난 잠꼬대를 탁본해 두었어. 네 꿈으로 들어가는 지도를 복원하려던 참이었는데. 기억나니? 동방의 어떤 나라에는 무식하고 귀여운, 또 다른 네가 있다고 했던 말. 타인들의 엉덩이를 뻥뻥 차고 다니는. 하지만 넌 산책 나온 작은 강아지조차도 무서워하던 애. 그게 왜 무서워? 밟을까 봐. 이제 네가 기르던 원숭이는 몸을 긁는 일도 없겠지. 마치 문득 생각났다는 듯. 영문은 모르지만 우유는 여전히 혼자만 말을 안 해. 쓰러진 우유가 온몸으로 말해요.
아야
호놀룰루, 하고 웃으며 만화책을 읽고 있니? 변기 위에서 말야. 할아버지 흉내는 그만 내렴. 목이 다 쉬잖니. 마지막으로 함께 노래를 부르자.
삐용삐용! 삐용삐용!
까르륵.
이제 면봉을 들고, 내 귓속의 퓨즈를 내려 줘.
나답게 보내 줄게.
나답다는 건 뭘까?
안녀엉
(작고 힘없고, 어리석은 말투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