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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현규 인애
오빠
뱃전에 부딪치는 바닷물이 마치 현규가 가는 길을 암시하듯이 물줄기가 시원스럽게 양쪽으로갈라 지고 있었다. 현규는 갑판위에 올라가 끝없이 펼쳐진 바다와 아득하게 보이는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두 시간만 더 가면 고국에 도착하겠지?’
그의 마음은 급했다. 한시라도 빨리 고국에 도착하고 싶었다. 밤이 되자 캄캄한 어둠을 저 먼 곳으로부터 깜빡이는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인천 항구였다.
‘이제 두 시간 후면 항만에 도착할 것이다. 나는 한 시간도 급하다.’
현규는 중국에서 오래 살았지만 그는 한국인 이었다. 친분이 있는 사장을 따라 북경에서 가저제품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저녁이 되어 퇴근을 하면 하루에 두어 시간씩 중국 전통 무술을 배웠다. 그 무술은 적을 제압하는 것은 물론 숨통까지 끊는 무술이었다. 그의 마음이 급해지는 것은 중국에 있을 때 같은 공장에서 일을 하다 연인 사이가 된 인애와 연락이 닿지 않고 나서부터 였다. 처음 고국에 돌아가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통화를 하던 그녀는 언젠가 부터는 연락을 끊고 사라진 듯 전화조차 연결이 되지 않았다. 항구에는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었다. 그는 배에서 내려 옷깃을 잔뜩 여미고 인천 항구에 내렸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맞이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를 맞는 것은 차가운 바람뿐이었다. 그의 가슴속에는 중극에서 늘 함께 다니던 인애의 생각으로 가득했다. 참으로 막연하기 그지없었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없었다면 반드시 배웅을 나와 인천 거리를 걸었을 것이다.
현규는 황급히 항구의 주차장에 맏겨놓은 그의 승용차를 타고, 그녀의 고향이라는 제천의 한 시골마을을 찾아갔다. 사람들에게 물어 고향집으로 가보니 집은 비어있었다. 옆에 사는 노파에게 물어보니,
‘빛 받으러 왔나요?“
하고는 의심의 눈초리로 현규를 바라보았다.
“빛이라니요?”
“아닌가 보군요. 그 집에는 뻔질나게 빛을 받겠다는 무섭게 생긴 젊은이들이 한동안 드나들었지요.”
“왜 빛을 졌습니까?”
그 노파는 우선 길게 한숨을 내리쉰 뒤 다음 말을 이었다
“인애가 원래 효심이 깊은 애라오. 중국에서 일을 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것은 부모님이 편찮으시다는 연락을 받고 나서였어요.”
그 말은 현규가 들은 바는 없었다. 아마도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고 말을 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럼 부모님은 지금 어디계신가요?”
“아버지는 인애가 오고 나서 얼마 안 되어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지금 요양원에 계셔요.”
“그 요양원이 어디에 있지요?”
"재천으로 넘어가다보면 현애원이라는 입간판이 보일 거예요.“
“고맙습니다. 어르신.”
현규는 노인에게 인사를 드리고 제천으로 향했다. 입간판은 길옆에 세워져 있지 않았다. 아마도 노파는 누군가로부터 잘못 말을 전해 들은 것 같았다. 백운이라는 마을에 가서 한참을 수소문한 끝에 박달재 부근의 산속에 요양원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리로 행했다. 간호복을 입은 한 여성이 누구를 찾느냐고 물었다. 인애 어머니라는 것 이외에 입원한 노인의 이름을 모르니 제천에서 온 70세의 노인이 여기에 입원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고 했다.
“그런데, 그분과 어떤 사이지요?”
현규는 속에서 욱 하고 화가 치밀었다. 그런 신분 파악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혹시라도 돈관계가 얽혀있는 사람에게 가르쳐 주면 뒷감당이 안 될까봐 그러는 것 같았다.
“그 분은 내게 장모 될 분이십니다.”
“아, 그러세요?”
그제서야 간호사는 현규를 데리고 인애의 어머니가 있는 병실로 안내를 했다. 대체 무슨 간호를 하고 무슨 음식을 먹였기에 저리도 바짝 여위었는지, 비록 오래전에 인사를 하러 한번 뵌 적은 있었으나, 이제는 완전히 딴사람이 되어있었다. 현규는 그분 앞에 공손히 인사를 하고는,
“많이 불편하신가요?” 하고 여쭈었다.
“그런데 댁은 누구쇼?”
“혹시 기억이 나실지 모르겠네요. 인애 신랑 될 사람이라고 오래전에 인사를 갔던 사람입니다.‘
골돌히 생각하는 듯 하 더니 그때서야 현규를 알아보고는 쭈굴 쭈굴한 손으로 현규의 손을 잡았다.
“고생이 많으시지요?”
“어디 집에 있는 것 과 같겠오. 그런데 어쩐 일로 찾아왔나요?”
“지금 인애는 어디 있는지 알고 싶어서요.”
인애라는 말이 나오자 노인의 눈에서는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소식이 끊긴지 오래되었다오. 지 부모님들 병 고쳐 드린다고 어디서 돈을 꾸어왔는지, 한동안 병원비를 대더니 어느 땐가부터 소식이 끊어져 나도 기다리고 있어요.”
“그렇군요. 어르신 너무 걱정 마시고 건강에나 신경쓰세요.”
“에구, 고맙구료.”
현규가 인애의 어머니로부터 얻은 단서라고는, 그녀가 사채를 썼다는 딱 한 가지 뿐이었다.
그렇다면 인애가 사채업자에게 끌려간 것이 확실해 보였다.
우선 현규는 인애가 살던 제천으로 다시 찾아갔다. 처음부터 매듭을 풀어내기로 한 것이다. 현규는 우선 집안을 살펴보기로 했다. 무슨 흔적이라도 찾기 위해서였다. 고요한 정적만이 감도는 그곳은 언제 사람이 살았는가 싶게 변해 있었다. 여기저기 벽지는 떨어져 나가고 버리고 간 농에는 곰팡이가 피고 있었다. 현규는 단서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뒤지다가 서랍 속에 놓여 진 수첩하나를 발견했다. 수첩을 펼치는 순간 현규는 그가 간곳을 알만한 단서를 찾았다. 그의 수첩에는 몇 년도 몇 월, 며칠 어디에서 얼마만큼의 사채를 가져다 썼다는 내용들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그는 첫 번째로 적혀있는 제천의 한 직업소개소로 찾아갔다. 분명히 인애는 이 직업소개소의 이름을 적어놓았다. 노크를 하니 안에서 거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시지요.”
그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사장인 듯 담배를 피워 물고 삐딱하게 의자 깊숙이 몸을 묻고 있는 사람하나와 옆 소파에는 부하 직원인 듯한 삼십 대쯤의 사내들이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대부분 돈이 필요한 사람들이 급전을 빌리기 위해 찾아오는 곳이라 행색만 보면 그들은 상대가 누구인지를 금시 알아 챌 수가 있었다. 돈을 빌리러 온 사람들은 거의가 다 고개부터 숙이고 들어왔다. 그러나 말쑥하게 옷을 차려입은 현규를 보고는 예사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경계를 했다.
“사람을 찾으러 왔습니다.”
“사람이라니요? 이곳에서 소개한 사람인가요?
“그렇습니다.”
“이름은 뭐요?”
“인애라고 하는 20대의 여자입니다,”
현규는 언젠가 중국에 있을 때 인애와 같이 찍은 사진도 보여줬다. 그러나 사장은 슬쩍 곁눈질로 사진을 바라볼뿐 모르는 여자라고 했다. 그때 위협적으로 사내들이 현규 옆으로 다가왔다. 뿐만 아니라 너는 뭣 하는 놈이냐며 멱살을 잡았다. 현규는 순식간에 두 놈의 메다 꼰아 버리고 멱살을 움켜쥐고 사장의 책상위로 끌고 갔다.
‘인애가 어디로 갔습니까?“
“조금만 기다려 봐요.”
사장은 바짝 긴장을 하며 서랍안의 수첩을 꺼내 살펴보더니 그녀를 제천의 한 다방으로 보냈다고 했다. 그는 즉시 다방으로 가서 인애를 찾으러 왔다고 하니 주인여자의 말이, 그녀를 소개시켜 준 사람이 선금을 받아갖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 이후에 역시 인애라는 여자도 어디론가 사라져서 자신도 피해자라는 억측을 쏟아내었다.
“혹시 인애를 데려다준 그 사내를 아십니까?”
“예, 이름은 차 종근 이라고 합디다. 이제 제천에 소문이 나서 더 이상 이곳에서는 사기를 치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갔어요. 어찌나 무식한 놈인지 우리 애 아빠가 선금으로 준 돈을 달라고 찾아갔다가 엄청 두들겨 맞고 돌아왔어요. 교활하기가 이를 데 없는 사람 이예요 상처가 안 나는 복부만 구타해서 경찰에 신고도 못하고 한동안 고생했지요.”
“혹시 어디로 갔다는 소문 같은 것은 못 들으셨나요?”
“원주로 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거기서도 직업소개소를 차려 놓고 한동안 사기를 쳐서 아마 곧 그곳을 뜬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어요.”
“알았습니다. 혹 후일에라도 인애의 소문을 들으시면 제게 연락을 주십시오.”
현규는 주인에게 핸드폰 번호를 적어주고 나왔다.
‘대체 어디를 가야 너를 볼 수 있는 게냐? 내가 왔다 인애야. 너를 반드시 찾아서 못다한 인연을 이어 가마’
그러나 원주는 엄청 넓은 도시였다. 현규는 우선 114에 문의도 해보고 피시 방에 들어가 인터넷으로도 검색해보니 대충 다섯 군데의 업소가 등록되어있었다. 처음 찾아간 곳은 서울 직업소개소라는 곳이었다.
“혹시 이곳에서 인애라고 하는 여자를 다방 같은 곳에 소개해준 적이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현규는 사진도 꺼내 보여줬다.
“언제인지 날짜를 기억하십니까?“
”칠월 달로 알고 있어요.”
“아, 이여자요?”
사진을 유심히 바라보던 소장이 인애를 알아보는 듯 되물어왔다.
“아니 인애를 아십니까?”
“주소지 등록이 제천시가 아닌가요?”
“예 맞습니다.”
현규는 이제는 만나게 되겠구나, 하는 일말의 희망이 찾아왔다. 그는 긴 한숨부터 쉬었다.
“요즘은 자기 본명을 말하고 소개소를 찾는 이가 드물어요. 우리같이 정식으로 관청에 등록하지 않은 소개소는 이름 따위에 신경을 쓰지 않아 찾기가 더 힘듭니다.”
“그래요?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있을까요?”
“글쎄요, 원래 떠도는 사람들이라 찾기는 힘들 겁니다. 여기에 찾아와서 원주 다방으로 소개를 해줬어요.”
“그곳이 어디쯤 되는지 아시는 지요.“
“예, 역전 다방이라고, 원주 역 부근에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는 소개소를 나와 즉시 원주역으로 향했다. ‘이제는 너를 만나겠구나. 그동안 얼마나 변해 있을까?’
그는 다방 안으로 두리번거렸으나 인애를 볼 수는 없었다. 우선 커피를 주문하고 종업원 들에게도 차를 시켜주었다. 현규는 그들이 커피를 안마시고 녹차를 마시는 것 까지 알만큼 다방을 헤매고 다닌 것이다.
“혹시 배달 나간 아가씨가 있나요?”
“아니요? 여기 있는 아가씨들이 다 예요.”
그중 한 종업원이 대답을 했다. 현규는 다시한번 인애의 사진을 품에서 꺼내 그들에게 보여줬다. 그런데 그중 한 종업원이 인애의 사진을 보고 그녀를 알아보았다.
“아, 혹시 인애라고 하는 여자를 찾는 게 아닌가요? 그렇지 않아도 선금을 받고 도망을 쳐서 사장님이 찾고 있어요.”
“혹시 어디로 갔는지 모르시겠습니까?”
“그 애들이 어디로 간다고 알려주고 도망가나요? 소문에 의하면 청주로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청주요?”
“예”
“혹시 청주 어느 곳으로 갔는지 알수가 있을까요?”
“그건 모릅니다.”
“사장님도 그 여자를 찾아서 수소문 해보았는데, 허탕을 쳤어요.”
현규는 다시금 그녀와 멀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이제 그 넓은 청주에서 어떻게 인애를 찾는단 말인가. 어차피 나선 길 청주의 모든 다방을 뒤져서라도 반드시 인애를 찾으리라는 각오를 다졌다. 청주는 교육도시라는 말처럼 거리는 깨끗했다. 현규는 다시 다방을 돌아다니며 인애를 찾았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인애를 만날 수도 없었을 뿐더러 사진을 내보여도 아는 이들도 없었다.
‘세상아, 말 좀 해다오. 얼마나 더 헤매어야 그녀를 찾을 수 있는지를.....’
현규는 희뿌연 도시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한편으로는 인애가 다방을 전전하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만일 그녀가 평택 역전 골목에 있는 창녀촌 같은 곳으로 팔려 다니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창녀촌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청주에서 사라진 인애를 이제는 더 이상 수소문을 할 곳도 없었다. 막연했다.
‘이 나라의 모든 곳을 다 뒤져서라도 반드시 너를 찾으리라.’
현규는 인애가 강원도 주변을 떠나지는 않을 것 같은 예감 한 가지만 믿고 횡성이며 정선까지 강원도 일대를 수소문 하고 다녔다.
“너를 찾을 수만 있다면 내 모든 것을 받칠 것이다. 제발 잘 지내기나 하거라. 설혹 네가 창녀촌에 팔려 다닌다 해도 나는 너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때부터 현규는 다시 기운을 차리고 인애를 찾으러 나섰다. 이미 중국에서 갖고 나온 돈도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가 끼니를 해결하느라 쓴 돈보다도 기름 값이 더 들었다. 아마도 서울서 부산까지의 거리보다도 몇 배는 더 한국 땅을 누비고 다닌 것이다. 그가 찾아다닌 곳은 정선을 비롯해서 태백 까지 이어졌다. 사진 한 장을 손에 쥐고 인애를 찾아다니는 것이었다.
현규는 봄이 언제오고 갔는지, 여름이 언제 오고 간 것인지, 또 가을은 언제오고 겨울은 언제 닥친 것이지 그는 모른다. 세월은 그렇게 빠르게 삼년이라는 시간 너머로 현규를 데려다 놓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인애 생각뿐이었다. 눈이 내리는 겨울이면 더 그녀가 그리웠다.
‘같이 저 하얀 눈을 밟으며 손을 마주잡고 걸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의 의지가 하늘에 닿았는지, 빵이라도 사려고 태백의 한 슈퍼마겟에 들렀다가 사진을 내보이니 주인여자가 머리를 갸웃대고 한동안 사진을 바라보더니 그녀 같은 여자가 자주 자신의 마켓에 들렀다고 전해 주었다. 그렇다면 인애는 다방 생활을 접고 마켓주변의 어느 곳에 정착을 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현규는 다시 한 번 기운을 차리고 마켓주변의 장소를 뒤져 보기로 했다. 우선 주변에 있는 원룸을 돌아다니며 인애를 찾기 시작했다. 원룸은 주인이 대부분 따로 살고 있어서 만나기가 힘들었고 특성상 입주인 들은 누가 옆에 사는지도 모를 만큼 서로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아무리 이곳저곳을 뒤져가며 찾아보아도 인애를 만날 수가 없었다. 가까이 다다가면 다가간 만큼 멀어지는 그녀, ‘얼마나 더 시련을 겪어야 우리의 인연은 끝이 난단 말인가.....’
원룸에서 조차 인애를 찾지 못한 현규는 어쩌면 가정을 이루고 살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드렀다. 만일에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난 다면 이제껏의 고생을 뒤로하고 그녀의 행복을 빌어주며 조용히 사라져주어야 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가지 들었다. 아무리 그러한들 단 한번이라도 얼굴은 보고 나서 놓아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현규는 다를 무엇보다도 한번은 만나서 직접 말 한마디라도 나눌 수가 있으면 설혹 그녀가 떠난다 해도 놓아줄 아량은 갖고 않았다. 그건 오래 전 부터의 다짐이었다. 왜 내게 그리도 운명은 가혹 한 것인지 이만큼 열심히 살아왔고 한 여인과의 약속도 지키려는데 무엇이 더 부족하단 말인가. 현규는 혹시나 인애가 나타날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무려 열흘가까이 슈퍼마켓 앞에서 차를 대놓고 그녀가 나타날 때를 기다렸다. 마치 내가 자신을 쫓아오면 안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는 듯 그녀는 결코 나타나지를 않았다, 결론은 인애는 분명히 이 근처에 머물었으나 곳 다른 곳으로 떠난 것 같았다.
‘나는 너를 찾고 있고 너는 자꾸 어디론가 떠나니 이게 무순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현규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먹는 것이 부실한 것은 물론, 잠도 아무 곳에서나 자니어느 곳 하나 망가지지 않은 곳이 없었다. 오랜 운전으로 다리는 무릎까지 아팠고 목도 시트를 뒤로 젖히고 자는 날이 많으니 뻣뻣하며 좀처럼 고통이 가시지를 않았다. 한편 자신의 몸이 망가지는 것을 이대로 두고 인애를 찾으러 더 다녀야 하는 것일까? 하는 회의감이 들기도 했지만, 인애의 얼굴이 떠오르면 아무것도 가릴 것이 없었다. 오직 만나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이제는 태백을 뒤로하고 다른 곳으로 그녀를 찾아야 했다. 참으로 길고도 먼 길이었다. 어디를 원망할 곳도 없었다. 원망을 한다면 그건 세상을 악으로 물들이는 그 몇 명이 될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현규의 눈에서는 불꽃이 일었다. 저 쓰레기 같은 놈들만 없으면 인애와 같은 피해자는 결코 생기지 않을 것이다. 불쌍한 여자를 이용해 돈을 갈취하는 인간들 내 모조리 쓸어 다시는 사회를 더럽히지 않게 할 것이다. 그는 곧 실천에 옮겼다. 현규는 다방마다 여자들을 꽂아주고 피를 빨아먹는 불량배들을 찾아 나섰다. 그 과정에서 그들도 그룹을 이루고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일종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현규는 다방에 죽치고 앉아 있다가 종업원을 소개해주고 소개비를 받아들고 나가는 40대 중반쯤의 새내 뒤를 밞았다. 그는 최고급 승용차에 올라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현규는 그를 놓칠 새라 눈치 채지 못하게 멀리서 따라붙었다. 그는 차를 길옆 주차장에 세우고 이층에 있는 직업소개소로 들어갔다. 현규는 직업소개소 문 앞에서 노크를 했다. 안에서 들어오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그곳도 여느 직업소개소와 마찬가지로 사장은 책상 앞에 앉아 담배를 꼬나물고 있었고 직원들로 보이는 사내들이 소파 깊숙이 몸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우선 뒤를 밝고 쫓아간 놈의 멱살부터 움켜쥐었다.
“그 여자를 소개해주고 받는 돈은 무슨 돈이냐?”
“당신 뭐야? 이건 우리의 밥벌이야. 우리가 있어야 업소도 운영되는 거고.”
참으로 기가 막힌 억측이며 변명이었다. 현규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규는 사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펄떡 날아올라 놈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단 한방에 넘저진 놈을 일어나지도 못하고 신음 소리만 내었다.
“이 자식아, 아까 받은 돈 도로 내놔.”
“무슨 돈이요.”
“네가 아까 다방에서 받은 선 불금 말이다. 네가 선택을 해라. 더 맞던지 돈을 내놓던지. 아니면 직접 다방에 갖다 주고 사과를 한 뒤 다시는 여자들을 이용해서 돈 벌을 생각은 하지 마라. 천벌이 없는 것 같으냐? 오늘 내가 하늘을 대신해서 너에게 천벌을 내릴 것이다.”
그러자 사내는 주머니에서 좀 전에 받은 돈을 모두 꺼내놓았다.
“이깟 이십 만원을 받자고 인신매매를 하다니, 너흰 아무리 생각해도 용납이 되지를 않아.”
소개소 안에 있던 다른 놈들도 위기를 느꼈는지, 한꺼번에 현수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순식간에 놈들은 현수에게 두들겨 맞고 모두 바닥에 납작 업 드렸다.
“저, 잘못을 시인 할 테니 이제 그만 하십시오.”
“그래? 그럼 좋다. 지금 이 여자가 어디에 있는지 솔직하게 불어라.”
현규는 인애의 사진을 꺼내 그들에게 보여줬다. 모두들 처음 보는듯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건 이미 알고 있는 터였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사진을 보여준 것이다.
“너희들 말고 다른 곳에서 똑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아는 놈들을 불어라.”
매가 약이라는 말대로 놈들은 한참 궁리를 하더니 그중 한 놈이 말을 꺼냈다 제일 많이 맞은 놈이었다.
“평창에 가시면 거기 직업소개소에서 한 사람이 아가씨 몇 명을 데리고 다니며 돈을 뜯는다는 말을 들었어요?”
“이름은?”
“전 용환 입니다.”
“만일 거짓말이면 다시 와서 이번엔 사무실까지 쓸어버릴 테니 그리 알아라. 또한 그리고 내가 찾아간다는 말을 절대 해서는 안 된다.”
나는 그 말은 남기고 그곳을 떠나 평창으로 가는 도중에 정선의 직업소개소에 들렀다. 좁은 지역이라 그런지 사람들 통행도 별로 없었다. 다시금 쓸쓸한 바람이 그의 옷깃을 스쳐갔다. 처음 한국에 발을 딛던 날 인애가 한국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항구에 서서 바람을 맞던 생각이 났다.
현규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다시 평창으로 갔다. 강원도의 대부분 도시들은 이미 쇠퇴해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인력사무소로 향했다. 사장 혼자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다소 초라한 사무실이었다. 어차피 간 김에 인애의 사진을 보여주며 여기에서 소개를 해준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사장은 여기서는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 말엔 거짓이 없어보였다. 그는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돌아 나왔다. 아마도 머지않아 사무실 자체가 없어질 것 같았다. 다시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한 가닥 실타래 같은 희망이라도 보여야 힘을 낼 것이 아닌가. 그래도 그는 인애에게로 향한 끊은 놓지 않았다.
‘내 목숨이 끝나면 모르되 살아있는 동안 너는 꼭 한번이라도 봐야 하겠다.‘
현규는 답답한 마음도 풀 겸 인천항만으로 갔다. 아마도 추억을 되 돌이고 싶어서 간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막상 배가 오고가는 모습을 보니 어쩌면 인애가 다시 중국에 들어가 직장 생활을 할지 모른 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국 전 지역을 찾아다녀도 만나지 못했다면 한국에는 머물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에게 연락도 안하고 갔으니 무슨 사연이라도 있을 거라고 짐작을 했다. 그는 중국으로 가는 절차를 밟고 다시 배에 올랐다. 하루가 걸리는 시간이지만 그는 잠을 꼬박 새웠다. 현규는 중국에 도착하는 즉시 그녀가 일하던 회사로 찾아갔다. 경리과에서 일을 했으니 취업을 했다면 같은 계열의 경리일을 할 것이라 여겼지만 인애는 그곳에 없었다. 하는 수없이 사장실을 찾았다. 사장은 오랜만에 나타난 현규를 반겼다.
“아니, 자네가 연락도 없이 여긴 어쩐 일인가?”
“사장님,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아, 자네와 사귀던 인애를 찾는 게 아닌가?”
“그런가? 하지만 그때 한국으로 돌아가고 나서는 전화 한통 없었네. 나도 인애 소식을 기다렸네. 참으로 성실한 사원이었는데.....”
현규는 자신보다도 더 인애를 아끼는 사장 앞에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후일 만일이라도 회사에 째 취업하겠다고 오면 연락하라고 전화번호를 남겨놓고 돌아섰다.
배에 오르니 차가운 바닷바람이 옷 속을 파고들었다. 그러나 처음 고국에 올 때 같은 감흥은 없었다. 파도를 보는 것조차 싫었다. 사람하나 곁에 없는 것이 이렇게 커다란 고통을 안겨줄지 몰랐다.
인천항으로 돌아온 그는 다시 한 가지에 희망을 걸기로 했다. 비록 중국까지 가서 만나지 못하고 헛수고만 했지만, 사람 사는 세상에 안 되는 일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다시 인애의 어머니가 계시는 요양원으로 향했다. 누군가가 요양비를 대주었다면 그는 분명히 딸인 인애일 것이고, 돈을 부친 흔적은 남아있을 터였다. 그는 가는대로 인애 어머니부터 뵈었다. 그것도 원장의 허락을 받고 간호사의 안내를 받아야 들어갈 수가 있었다 인애 어머니는 요양을 받은 것이 아니고 학대를 받은 듯이 몸은 전보다 훨씬 약해보였다. 현규는 인애 어머니의 바짝 마른 손을 잡았다.“
“어머니, 좀 괜찮으세요?”
“응, 처음엔 잘해 주더니 점점 간호원들도 잘 안 드나들고 그래. 이젠 죽을 날만 남았지.”
“어머니가 이렇게 아프신데 인애는 요양비만 부쳐드리고 찾아오지는 않던가요?”
“글쎄다, 정신이 흐려서 언제 왔다 갔는지 날자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한 달 전에 한번 왔던 것 같애.‘
‘그래요? 어디로 간다고 하던가요?“
“집 정리 한다고 한 거 같아.”
“부디 건강하게 지내세요.”
돌아서서 병실 문을 여는 현규를 향해 인애 어머니가 부탁을 하듯 말씀을 하셨다.
“혹시 만나면 내가 한 번 더 보고 싶다고 전해주게.”
“예, 당연히 찾아오겠지요.”
현규는 그 말을 남기고 황급히 제천 쪽으로 차를 몰았다. 체천에서 이 십 여분 더 가야 하는 시골에 인애의 집이 있었다. 그러나 집안을 살펴봐도 그녀는 보이지가 않았다. 사람은 언제나 고향을 그리워하며 살 것이니 어머니의 말씀대로 인애는 반드시 고향으로 올 곳이라고 생각하고 그녀의 문 앞에 차를 세우고 잠적에 들어갔다. 배가 고프면 근처에 있는 구멍가게로 가서 빵 몇 개와 음료수를 사들고 차로 돌아와 허기를 채웠다. 그러나 고향으로 온다는 그녀는 또 열흘을 기다려도 나타나지를 않았다. ‘사람 기다리는 일이 이렇게 힘들고 지치게 만든 것이구나’ 그렇다고 이제 와서 포기를 하면 이제껏 기다리느라 한 고생은 헛수고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 한번, 단 한번만 라도 그녀를 만날 수가 있다면 목숨이 끊어져도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현규는 집에 안 나타나도 인애는 효녀이니 언제고 다시 요양원에 어머니를 보러 올 것이라는 생각으로 다시 요양원으로 향했다.
그는 언젠가 하도 답답해서 인터넷으로 흥신소라는 곳을 검색해 전화도 걸어보았다. 그들은 사람을 찾아 달라하니 그런 일을 하다가는 처벌을 받기 때문에 안 된다고 했다. 그는 다시 사람을 찾아준다는 무허가 일을 하는 사람과 통화도 한 적이 있었다. 전화번호는 물론 사는 곳까지 알아낼 수가 있다고 했다. 그 대가는 현규에게 부담스러울 정도 였으며, 더욱 난처하게 만든 것은 그자의 요구 사안 때문이었다. 그는 이름은 기본이고 생년월일은 까지 물었다. 현규는 중국에 있을 때, 동료들과 인애의 생일 파티까지 열어주었는데 정확한 생년월일은 모르고 있었다. 그는 차후 다시 연락을 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다시 인애 어머니가 입원해있는 양로원으로 향했다. 언젠가는 다시 그녀가 어머니를 찾을 것을 예견 하고 있었다. 그녀가 효녀라는 것은 마을 사람들 모두가 인정하고 있는 시실이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자기도 아버지 뒤를 따라 가겠다고 식음을 전폐하는 것을 이웃들이 겨우 말려 죽을 고비를 넘긴 여자였다. 그러니 반드시 어머니를 뵈러 올 것이라는 확신을 현규는 가지고 있었다. 현규는 차를 구석진 곳에 세워놓고 빵과 음료수만 먹고 마시며 그녀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힘이 겨운 일이 닥칠 때마다 그의 눈에는 살기만 가득했다. 마침내 꿈에도 그리던 인애가 현규 앞에 나타났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끌어안고 싶어도 그는 잠시만 참기로 했다. 먼저 해야 할 일이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현규는 인애를 태우고 온 승용차로 다가가서 운전석 차창을 두드렸다. 나쁜짓을 일삼는 놈이기에 상대를 경계하며 창문만 조금 열었다.
“누구세요?”
“나, 인애 오빠 되는 사람입니다.”
“아, 그러세요? 안녕하세요?”
안녕? 그 쓰레기 같은 입에서 어찌 안녕이라는 말이 나온단 말인가.
“나와서 이야기 좀 할까요?”
“예, 알았습니다.”
사내는 그가 친 오빠인줄 알고 경계심을 풀었다. 그리고는 이내 운전석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무얼 그리 잘먹고 다녔는지 몸은 탱탱했고 얼굴에는 기름기가 번뜩이며 흐르고 있었다.
“사람들이 보면 불편하니 저 쪽으로 잠시 가시지요.”
“아, 예.”
현규는 요양원 옆 건물 쪽으로 그를 데리고 갔다. 현규는 사람들이 아무도 내다 볼 수 없는 곳에 다다르자, 발길로 놈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왜, 왜 그러세요?‘
“왜 그러느냐고? 네가 그동안 전국 곳곳으로 인애를 데리고 다니며 저지른 일들을 생각해봐라.”
그 생각을 하니 더욱 부아가 치밀어 현규는 그놈을 거의 반죽음 상태가 되도록 두들겨 패었다.
“살려주세요. 다시는 그런 짓 안하고 살겠습니다.”
“좋아, 이쯤하지, 그러나 다시 한 번 인애 앞에 나타나면 병신을 만들어 놓을 테니 그리 알고 내가 인애를 데리고 갈 때가지 여기에 꼼짝 말고 있어.”
“예, 알겠습니다.”
참 구차한 인간들이다. 강자 앞에서는 굽신거리고 약자 앞에서는 군림하는 저 쓰레기들. 차로 돌아와 얼마 안 있다가 양로원 입구에 인애가 나타났다.
“인애야!"
현규는 산이 울리도록 그녀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오랜 기다림 끝의 이 만남.
“아, 현규씨 당신이 여기는 어떻게.....”
“내가 그동안 너를 찾기 위해 이 나라 어느 구석이든 안 가본 곳이 없다.”
“찾아다닌 다는 것을 저도 알고는 있었어요. 그렇지만 저는 현규씨를 만날 자격이 없엇기에 나서지 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
“아니다, 인애야. 이렇게 만난 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
현규는 인애의 손을 꼭 잡았다.
“다시는 내 손을 놓지 마라.”
인애는 현규의 손을 잡으면서도 불안한 기색을 보였다.
“이제는 걱정 안 도 된다. 너를 싣고 온 놈의 버릇을 내가 단단히 고쳐 놓았으니 다시는 네 앞에 나타나지 못할 것이다.”
“미안해요. 그리고 고맙고요”
“이제는 우리 부모님도 뵙고 당당하게 결혼도 하자.”
현규는 인애의 손을 꼭 잡고 은행잎이 바람에 날리는 길을 지나 고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은행잎들은 마치 그들의 앞길을 축복이나 해주듯이 뒤창으로 배웅을 하고 있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