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바람처럼 떠돌던 여자
기억과 추억 사이/옛날 고향 이야기
2006-04-22 18:00:53
먹을 것이 풍부해지고 살만해서 그런지 요즘은 거지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헤진 옷에 땟국 말라붙은 얼굴로 부랑하던 거지들은 그 당시에는 흔한 풍경이었다.
내 초등학교 시절이었으니 40년이 한참 뒤로 물러선 세월이다. 흰 고무신을 신고 다녀도 부잣소리를 듣던 시절, 헝클어진 머리에 깡통 하나 달랑 허리에 꿰 찬 거지를 보면 손가락질 하며 놀려대는 아이들이 많았다
마을 앞으로 휘돌아 가는 신작로 때문일까. 마을에는 가끔 부랑자들이 꾸역꾸역 찾아들었다. 대부분 걸인 아니면 광인, 상이군인들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동냥을 하러 다녔다. 며칠마다 한 번씩 나타나 마을을 휘젓고 다니며 손을 내밀었다. 쌀이나 일원짜리 동전을 던져주면 고맙다고 머리가 땅에 닿는 사람도 있었지만 상이군인이 문제였다.
상이군인들은 아주 자존심이 강했다. 비록 목발을 짚고 구걸을 하러 다니지만 한때 군대생활을 했다는 패기 때문인지 동냥을 주어도 제대로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일원짜리 동전이라도 주면 “내가 거지냐”면서 불같이 화를 내고 되돌아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우스웠다. 거지인 주제에도 자존심은 있어 일원짜리 동전을 무시해서 주는 걸로 알았던 모양이다.
이럴 때는 어머니의 따스한 손도 무색했다. 어머니는 인상이 차가워 보였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따스함이 녹아있었다. 거지들이나 상이군인들이 오면 그냥 보내는 법이 없었다. 일원짜리 동전이나 쌀 한 됫박 정도는 건네주기 일쑤였다. 풍족하지 않는 시절이었지만 배고픈 사람에게는 베풀 줄 아는 아량이 있었다.
그 중에서 아직도 삼삼하게 떠오르는 거지가 있었다. 중늙은이 여자 거지였는데 집에 동냥을 얻으러 오면 대놓고 이 말부터 했다. 제 딴에는 그 말이 인사치레 같았다.
“같이 먹고 같이 살아야지”
무뚝뚝한 말투였지만 그 소리를 들으면 풀풀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 말이 상부상조하자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정작 자신은 얻어먹는 주제에 그 말을 버릇처럼 써먹는데 어쩐지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게 다가왔다.
그 허전함이 하루하루를 지배할 무렵, 이번에는 미친 여자가 바람처럼 나타나 마을을 휩쓸고 다녔다. 헤진 옷에 두 눈이 쾡한 여자였다. 늘 굶어 그런지 두 눈이 쾡하게 보였지만 눈동자 속에는 살기가 들어있었다. 그 여자는 매일 마을에 나타나 골목을 어슬렁거렸다.
그러면 미친 여자 뒤를 아이들이 쪼르르 좇아 다녔다. 한 손에 막대기를 들고는 미친 여자의 허리춤을 쿡쿡 쑤시거나 종아리를 갈기고 도망을 치기도 했다. 아이들의 장난이 더 심해지면 미친 여자는 아이들을 피해 동네 아랫녘 논으로 슬슬 꽁무니를 뺐지만 헛수고였다. 아이들이 거기까지 따라가 괴롭혔다. 아이들의 장난이 더 심해질수록 여자는 힐끗 돌아서서 쏘아볼 때도 있었지만 더 이상 말은 하지 않았다. 마음속에 서리서리 한이 쌓인 여자처럼 보였다. 누가 괴롭혀도 상대하기 싫고 말조차 하기 싫은 표정 같았다.
그런데 여자를 따라 다닐수록 마음속에서는 궁금증 하나가 떠올랐다.
여자가 낙엽처럼 마을을 떠돌아다니는 것만 봤지 어디서 잠을 자고 밥을 먹는지 한 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날만 저물면 바람처럼 어디로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날이 밝으면 또 다시 귀신처럼 나타났다.
그렇게 궁금증이 꽉 차 있을 무렵, 그 여자가 기거하는 곳을 알게 되었다. 마을 입구 신작로 아래 배수구 앞이었다. 배수구 앞은 무척 지저분했다. 신작로 넘어 산자락에서 졸졸 내려온 물이 배수로로 흘러나와 고여 있는 바람에 억센 풀들이 무성했고 날벌레가 들끓었다. 어쩌다 막대기로 잡풀을 휘저으면 퀴퀴한 냄새와 함께 날벌레들이 풀잎에 부딪히며 튀어 올랐다. 더구나 차들이 달려가면 바퀴에서 날아오른 먼지가 신작로 둑를 타고 내려와 배수구를 희뿌옇게 뒤덮었다. 그 바람에 풀들은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채 힘겹게 흔들렸다. 그렇게 지저분한 곳이었지만 그곳을 보금자리 삼아 미친 여자는 목석처럼 앉아 있었다. 걸레같은 옷을 두르고 무표정하게 앉아 있는 그 모습이 꼭 모나리자처럼 보였다.
물론 그 여자를 찾은 것은 우연이었다. 평소에는 동네 뒷산길을 이용해 학교를 다니다가 그날따라 신작로를 타게 된 것이 그 여자를 발견하게 된 계기였다.
그 이후로 신작로를 따라 학교를 다니는 일이 무서워졌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평소처럼 동네 뒷산길을 이용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 여자의 모습이 사라졌다. 매일이다시피 마을을 어슬렁거리던 여자의 종적이 묘연했다. 배수구 앞은 늘 텅 비어 있었다. 후덥지근한 여름이 흘러가고 배수구 앞 도랑에 솟아오른 개여뀌에 깨알 같은 꽃망울이 숨 막히게 매달려도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시달리고 잠자리가 마땅치 않아 아마 더 안전한 곳을 찾아 떠났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가 고향을 뜬지 40년이 흘렀지만 명절날 고향에 가면 습관적으로 그 배수로 앞으로 눈길이 갔다. 지금은 배수로가 막히고 도랑도 말끔하게 정비되어 그 옛날의 흔적은 찾을수 없지만 미친 여자의 모습은 환영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배수로 앞에 쪼그리고 앉아 나를 빤히 쳐다보던 여자의 쾡한 눈, 걸레조각 같은 옷을 두르고 하소연을 하듯 나를 쳐다보던 여자의 살기어린 눈동자가 오버랩되어 나타났다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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