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관혼상제를 4대사(大事)라 하였다.
지금은 혼례와 상례, 두 큰 일이 이어지고 있다.
제례엔 온 형제 자매가 모이고, 지방에 따라 관례를 치루지만
예전에 비해 많이 간소해지고 관례는 성인식으로 바뀌었다.
옛 어른들은 풍수설을 믿어 묘 자리가 좋은 곳을 찾아 모시었다.
20여 년 전 대흥사 가는 삼산면 선산에 모신 고조부모님,증조부님을 고향 선산으로 모시기 위해 갔다가
오전 내내 장대비가 내려 다음에 하라는 뜻으로 여기고 끝내 하지 못했다.
이후 조상 전체 이장 문제를 함께 처리해야겠다 생각하고 8남매와 집안 어른들,친구들,
경험한 사람들,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왔다.
가족 납골당을 할 것인지, 한다면 고향에 하느냐, 남매들이 거의 수도권에 살고 있으니
교통이 편리하여 성묘하기 좋은 수도권 사설 공원 납골당으로 할 것이냐?
경비는 하는 곳에 따라 납골당비만 3천만~5천만원이 들어가니 단순하지 않았다.
아버님을 어머님과 수원연화장에 부부단으로 모시고 숙부님을 현충원에 모시며
부동리 선산에 모신 조상들은 조부모님과 증조모님을 모신 데서리께 선산에 함께
수목장을 하기로 남매들이 합의하고, 그 당시 서류 문제부터 시작하여 현충원 승인이 나서
이장을 마칠 때가지 6개월 정도는 걸릴 것 같아 현직에 있을 때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퇴임하자마자 시작한 일을 3개월여만에 끝내고 나니 이렇게도 홀가분하고 평안한지!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또 남매들의 기도,합심과 친구들의 조언으로 이루어진 일입니다. 감사, 감사합니다!
첫댓글 배성아 수고했다.
조상 산소 문제로 얼마나 고민을 많이 했느냐.
보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나는 아버님을 아버님이 생의 마지막을 보내셨던 근방에(꿉자라는 지명 한문은 曲子라고 되어 있음)
매장으로 모셨었다.
이 땅을 처분하는(누나가 독단으로) 바람에 이 땅을 산 양반이 묘를 빨리 안 파간다고
묘 바로 앞에 창고를 지었더라.
기가 막혔지만 이 사람들과 싸울 수가 없었다.
돌아가신지 30년 째가 되는 해에 구성리에 납골묘를 할까 아니면 서울 근방에 모실까 하다가
결국 서울 근방 벽제의 필리핀 참전비 위에 있는 '미타원"이라는 납골당으로 모셨다.
자네는 집안의 장손이니 할아버니까지 신경을 써야 하지만
나는 아버님이 세째 아들이라 큰 집이 따로 있다.
고향에 아버님을 모시면 좋은 점도 있지만 형제들이 모두 서울에 있는지라
일년에 고작 한 번 정도 가 뵐 수 있었는데 서울로 옮기니 명절 때 아우들이 모이면
차례 전에 미리 성묘하고 오니 얼마나 편하고 좋은지 모른다.
이 방법이 최선은 아니란 걸 알고 있지만 어쩌겠니 이 복잡한 세상에
편리하고 단순함을 쫒을 수 밖에..
아무쪼록 친구가 산소 문제가 해결되었다니 다행이고 이제 걱정은 덜었으니
건강이나 챙기며 보람있는 노후를 보내기를 바란다.
태성아! 고맙다.이런 일을 미리 치룬 평환,행용,너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되었다. 또 전국적인 행정전산망이 되어 있어 시간과 경비,전국을 찾아 다녀야 했을 수고를 덜었다. 그래서 어떤 일이든 때가 맞아야 한다는 걸 다시 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