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의 옆에 앉기 위해 소파로 걸어갔다.
자리에 막 앉으려는 순간 , 레프리콘이 팔짝 뛰어오르며 말했다.
" 아니 , 아니 , 아니
이럴 시간이 없소.
당신은 안경을 찾으러 가야 하오. "
언제나 그렇듯 그는 내 삶의 모든 걸 꿰뚫고 있는 것 같았다.
처음은 아니지만 , 그가 나와 함께 있지 않을 때 도대체 무엇을 하는지가 궁금했다.
내가 질문을 하려는 순간 , 그가
" 당신 안경 말이오 " 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창 밖에 비가 내리는 것을 보고 대답했다.
" 조금 있으면 날씨가 갤 것 같아요. "
" 그럴 가능성은 없소.
갑시다.
우비를 입고 , 신발을 신고 어서 출발하시오. "
" 우비와 신발은 덜 말랐어요. "
나는 난롯가에서 김을 내며 건조되고 있는 옷가지들을 가리켰다.
" 그럼 더 젖을 것도 없겠군.
안 그렇소 ? "
레프리콘은 무심하게 말을 툭 내뱉었다.
" 당신 말이 맞네요. "
나는 축축한 신발 한 짝에 발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 당신이 동행해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아요. "
레프리콘은 망설이며 창가로 걸어가더니
비가 내리는 걸 쳐다보았다.
" 난 대체로 궂은 날씨에는 외출하지 않소. "
그가 말했다.
그가 특정 표현을 강조하는 것을 보아하니
새로운 단어를 연습하고 있는 것 같았다. ( ' 궂은 ' )
" 하지만 당신을 위해 ...... . "
레프리콘은 문장을 다 끝맺지 않은 상태로 말을 덧붙였다.
" 평생 고마워 하며 살겠습니다.
선생님 "
나는 다른 쪽 신발을 신기 위해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젖은 우비를 집던 나는 이미 철저하게 비에 무장한 레프리콘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의 발에는 무릎 위 까지 올라오는 커다란 장화가 신겨져 있었고 ,
그 위로는 뱃 사람들이 입는 검정 유포 우비가 입혀져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테가 넓은 커다란 방수모가 그가 평소 쓰던 모자를 대신하고 있었다.
" 그런 방수 장비를 나에게도 갖다 주면 소원이 없겠네요. "
나는 현관문을 통해 느릿 느릿 걸어가며 한숨을 쉬었다.
" 엘리멘탈에게 주어지는 작은 특전 중 하나일 뿐이오. "
그가 나를 따라 빗속으로 들어가며 킥킥 웃어댔다.
" 그런데 , 입문식의 밤은 잘 즐겼소 ?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한 거요 ? "
그는 재밌어하며 껄껄대고 웃었다.
" 내가 달라 보이나요 ? "
만약 내게 뭔가 변화가 생겼다면 분명히 그가 그것을 알아챌 것이었다.
" 전혀 ! " 방수 모자의 챙 아래로 나를 힐끗 쳐다보며 레프리콘이 말했다.
" 나는 깨달음을 얻지 못한 것 같아요. "
내가 대답했다.
" 만약 내가 깨달음을 얻었다면 ,
뭔가 다른 느낌이 들었을 거예요.
눈부시게 빛나는 섬광이나 , 빛 같은 것도 없었고 , 그냥 흙탕물을 뚫고 묵묵히 걸어 다니기만 했어요.
그런데 희한하게 이제 깨달음 같은 건 더 이상 신경쓰지 않아요.
밤새 묘지와 고인돌 아래에 앉아 있던 나 자신 ,
그리고 죽은 영들에게 도움을 준 나 자신이 꽤 자랑스럽거든요.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을 다했다는 느낌도 들어요. "
" 죽은 사람들이라니 , 우웩 "
레프리콘이 역겨워하며 대답했다.
" 유령이 나오는 무덤가 근처에 나를 데려갈 생각은 꿈에도 마시오. "
" 엘리멘탈의 세계에는 유령이 없나 봐요 ? "
레프리콘 : 우리 세계에도 사고로 몸을 잃은 엘리멘탈 유령들이 있소.
당신도 그들의 부름 소리를 듣거나
그들이 똑같은 사건을 끊임없이 재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거요.
그가 대답했다.
레프리콘 : 하지만 우리 세계에는 부패하는 몸이 없소.
혐오스러운 일이지.
엘리멘탈의 몸은 모두 공으로 돌아간다오.
공 속에서는 몸이 비물질화 되기 때문에 엘리멘탈의 에너지가 다시 사용될 수 있다오.
타니스님이 사람들과 함께 숲에서 명상을 하고 있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