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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경 선교부장 ― 교사
이은혜 ― 새신자
1. 마음을 여는 아이스브레이크
오성경: 은혜 자매님, 오늘은 조금 무거운 주제를 공부합니다. 그런데 시작하기 전에 아주 간단한 게임 하나 해볼까요?
이은혜: 네. 어떤 게임인데요?
오성경: 제가 단어 하나를 말하면 자매님은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을 말씀해 주세요.
이은혜: 좋아요.
오성경: “천국!”
이은혜: 행복!
오성경: “지옥!”
이은혜: 무서움… 불… 고통?
오성경: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지요. 그런데 오늘 우리가 바로 그 질문을 성경으로 확인해 보려고 합니다.
이은혜: 정말 지옥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가요?
오성경: 그럴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느냐가 아니라 성경이 뭐라고 말하느냐입니다.
이은혜: 저도 그건 꼭 알고 싶어요.
오성경: 좋아요. 오늘 공부가 끝날 때 자매님이 이런 질문에 스스로 성경으로 대답할 수 있게 될 겁니다.
“사람은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악인은 영원히 불타는가?”
“하나님은 정말 사람을 영원히 고통받게 하시는가?”
2. 영혼불멸 사상은 어디에서 왔을까?
이은혜: 저는 어릴 때부터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살아서 천국이나 지옥에 간다고 들었어요.
오성경: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배웠습니다. 그런데 아주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이은혜: 어떤 질문인가요?
오성경: 그 가르침이 성경에서 시작되었을까요, 아니면 다른 곳에서 들어왔을까요?
이은혜: 성경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오성경: 그렇다면 역사를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영혼의 불멸과 환생을 믿었습니다. 고대 동양의 여러 종교에서도 윤회와 영혼불멸, 조상숭배와 같은 사상이 발전했습니다. 페르시아의 종교에서는 몸과 영혼을 서로 다른 것으로 보는 이원론적 사고가 발전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상들이 헬라 철학과 만나면서 더욱 체계화됩니다.
3.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오성경: 기원전 5세기의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이은혜: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했을까요?
오성경: 오히려 반대였습니다. 그는 육체를 영혼을 가두는 일종의 감옥처럼 생각했습니다.
그의 제자 플라톤은 이것을 더욱 체계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이은혜: 플라톤이 그렇게 중요한가요?
오성경: 상당히 중요합니다. 플라톤의 저서 《파이돈(Phaedo)》은 서양의 영혼불멸 사상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플라톤은 죽음을 육체와 영혼의 분리로 보았습니다.
그의 생각을 간단히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몸은 죽지만 영혼은 죽지 않는다.
그리고 선한 영혼은 높은 세계로 올라가고 악한 영혼은 고통을 받는다는 사상이 발전했습니다.
이은혜: 그런데 그것이 기독교와 무슨 관계가 있나요?
오성경: 바로 그것이 오늘 공부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헬라 철학의 영향이 시간이 지나면서 기독교 신학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4. 기독교 안으로 들어온 영혼불멸 사상
오성경: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헬라 철학과 여러 종교 사상이 혼합되면서 새로운 철학적 흐름이 발전했습니다. 흔히 신플라톤주의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3세기경 오리겐 같은 기독교 신학자들에게도 플라톤 철학의 영향이 나타났습니다.
오리겐은 영혼의 선재와 윤회적인 사상까지 받아들였습니다.
이은혜: 그러면 기독교가 성경만 가지고 교리를 만든 게 아니었군요?
오성경: 역사적으로 보면 기독교 신학 안에 성경 이외의 철학적 요소들이 상당히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터툴리안에 이르러서는 영혼불멸과 영원한 지옥이라는 개념이 더욱 분명하게 연결됩니다.
그 후 어거스틴은 서방 기독교의 신학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후 중세를 거치면서 영혼불멸과 연옥, 영원한 지옥이라는 개념들이 교리적으로 더욱 발전하게 됩니다.
5. 그런데 종교개혁 시대에는?
이은혜: 종교개혁을 하면 성경으로 돌아간 것 아닌가요?
오성경: 바로 그 점이 흥미롭습니다.
중세의 신학을 비판하면서도 모든 종교개혁자들이 모든 교리를 완전히 성경적으로 재검토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캘빈은 영혼불멸을 받아들였습니다.
캘빈은 자신의 저서에서 플라톤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이교도 철학자들로부터 영혼의 정의를 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예외가 있는데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인 플라톤은 ‘영혼은 불멸의 본질’이라고 바르게 정의하였다.”
이은혜: 그러니까 영혼불멸이라는 생각이 플라톤에서 시작되어 기독교 신학자들을 거쳐 전해졌다는 말이군요.
오성경: 네. 물론 역사는 그렇게 단순한 직선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영혼불멸 사상이 성경에서 처음 등장한 것이 아니라 고대 철학과 종교적 사상에서 발전해 기독교 신학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연구 주제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역사보다 더 중요한 것을 살펴봅시다.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6. 성경은 죽음을 무엇이라고 표현하는가?
오성경: 은혜 자매님, 요한복음 11장 11절을 찾아볼까요?
이은혜: 네.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 요한복음 11:11
오성경: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죽음을 어떻게 표현하셨나요?
이은혜: “잠들었다”고 하셨네요.
오성경: 그렇습니다.
성경은 죽음을 여러 곳에서 잠으로 표현합니다.
스데반의 죽음도 볼까요?
사도행전 7장 60절입니다.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이은혜: 스데반도 “자니라”고 했네요.
오성경: 그렇습니다.
왜 성경은 죽음을 잠이라고 표현할까요?
잠든 사람은 의식적으로 주변의 일을 경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잠에서 깨어날 날이 있듯이 죽음에도 부활이라는 깨어남이 있기 때문입니다.
7. 그러면 악인은 영원히 고통받는가?
이은혜: 그런데 목사님, 그렇다면 악인은 어떻게 되나요?
오성경: 성경은 둘째 사망이라는 놀라운 표현을 사용합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4절을 읽어볼까요?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이은혜: “둘째 사망”이라고 하네요.
오성경: 네.
성경에서 말하는 죽음을 크게 구분하면,
첫째 사망 ― 사람이 이 세상에서 경험하는 죽음
둘째 사망 ― 마지막 심판 후 악인에게 임하는 최종적인 멸망
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성경 원칙이 있습니다.
로마서 6장 23절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이은혜: 죄의 결과가 “영원한 고통”이라고 하지 않고 “사망”이라고 하는군요.
오성경: 바로 그것입니다.
성경은 영생과 사망을 대조합니다.
영생은 영원히 사는 것이고,
사망은 생명이 끝나는 것입니다.
8. 그렇다면 성경의 “지옥”은 무엇인가?
이은혜: 그런데 성경에 분명히 “지옥”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오성경: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성경에서 우리말로 “지옥”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하나가 아닙니다.
대표적으로 세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① 스올(Sheol)
구약의 히브리어입니다.
죽은 사람이 내려가는 곳, 곧 무덤 또는 죽음의 영역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놀라운 것은 의인도 스올에 간다고 성경이 말한다는 것입니다.
야곱도 죽음을 생각하며 스올을 언급했고, 욥도 죽으면 그곳에 내려갈 것을 말했습니다.
다윗도 죽음과 스올을 연결하여 말합니다.
따라서 스올을 “악인만 들어가 영원히 불타는 지옥”으로 이해하면 성경 문맥과 맞지 않습니다.
9. 신약의 하데스
오성경: 신약에는 **하데스(Hades)**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을 책망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 마태복음 11:23
그리고 시편 16편 10절과 사도행전 2장을 비교하면 아주 흥미로운 사실이 나타납니다.
시편 16:10: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사도행전 2:27에서는 이 단어가 하데스로 연결됩니다.
베드로는 이것을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적용합니다.
그러므로 하데스 역시 “영혼이 불타는 지옥”이라는 의미로 단순하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10. 타르타루스 ― 어두운 구덩이
오성경: 베드로후서 2장 4절을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여기서 “지옥”으로 번역된 단어가 타르타루스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는 죽은 인간의 영혼이 불타는 장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범죄한 천사들이 심판 때까지 갇혀 있는 상태를 묘사하는 표현입니다.
따라서 이것 역시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사람이 죽자마자 영혼이 들어가는 영원한 불지옥”과는 다릅니다.
11. 가장 중요한 단어 ― 게헨나
이은혜: 그러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지옥불은요?
오성경: 여기서 **게헨나(Gehenna)**라는 단어를 만나게 됩니다.
마가복음 9장 43절을 읽어볼까요?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이은혜: “꺼지지 않는 불”이라고 되어 있네요.
오성경: 맞습니다.
그런데 “게헨나”는 원래 지명이었습니다.
힌놈의 골짜기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예루살렘 남서쪽에 있는 골짜기였지요.
그리고 이곳에는 매우 끔찍한 역사가 있었습니다.
12. 힌놈의 골짜기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오성경: 역대하 28장 3절을 볼까요?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분향하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그의 자녀들을 불사르고”
이은혜: 자기 자녀들을 불태웠다고요?
오성경: 그렇습니다. 몰렉 숭배와 관련된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곳을 심판의 장소로 예언합니다.
예레미야 19장 6절입니다.
“그러므로 보라 다시는 이 곳을 도벳이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죽임의 골짜기라 부르는 날이 이를 것이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후대에는 이곳이 심판과 멸망을 상징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게헨나”라는 표현을 사용하실 때 당시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죽음, 심판, 불, 멸망의 이미지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13. “꺼지지 않는 불”이 정말 영원히 타는 불인가?
이은혜: 그런데 “꺼지지 않는 불”이라고 했으니까 영원히 타는 것 아닌가요?
오성경: 여기서 아주 중요한 성경 연구법이 필요합니다.
성경에서 어떤 표현을 해석할 때는 성경의 다른 구절과 비교해야 합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생각해 보세요.
유다서 7절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이은혜: 소돔과 고모라도 “영원한 불”이라고 했네요.
오성경: 그렇습니다.
그런데 소돔과 고모라가 오늘날까지 불타고 있습니까?
이은혜: 아니요.
오성경: 그렇다면 “영원한 불”이라는 표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불이 끝없이 타고 있다는 뜻이라기보다, 그 불이 가져온 심판의 결과가 최종적이고 돌이킬 수 없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2장 6절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이은혜: “재가 되게 하셨다”고 하네요.
오성경: 그렇습니다.
불은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14. “영원”이라는 말도 문맥을 보아야 한다
오성경: 성경에서 “영원”이라는 표현이 항상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사용되는지도 살펴봐야 합니다.
출애굽기 40장 15절을 보겠습니다.
“그 아버지에게 기름을 부음 같이 그들에게도 부어서 그들이 내게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게 하라 그들이 기름 부음을 받았은즉 대대로 영영히 제사장이 되리라 하시매”
이은혜: 제사장 직분이 “영영히”라고 되어 있네요.
오성경: 그런데 이스라엘의 제사장 제도가 지금도 그대로 존재합니까?
이은혜: 아니죠.
오성경: 그러므로 성경에서 “영원”이라는 표현은 문맥에 따라 끝없이 지속되는 시간 자체보다, 어떤 기간의 완전성이나 지속되는 결과를 강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하나 보겠습니다.
이사야 34장은 에돔의 심판을 묘사하면서 그 연기가 “끊임없이” 올라간다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완전한 황폐입니다.
성경의 표현은 그 심판이 완전하고 돌이킬 수 없음을 강조합니다.
15. 성경이 말하는 악인의 최종 운명
오성경: 이제 아주 중요한 구절들을 연결해 보겠습니다.
말라기 4장 1절입니다.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이은혜: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않는다”고 하네요.
오성경: 그리고 3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또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내가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은혜: 재가 된다고요.
오성경: 그렇습니다.
시편 37편 20절도 보겠습니다.
“악인은 멸망하고 여호와의 원수는 어린양의 기름 같이 타서 연기가 되어 없어지리로다.”
그리고 10절은 이렇게 약속합니다.
“잠시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이은혜: “없으리로다.”
오성경: 네.
성경의 표현은 매우 일관됩니다.
사망, 멸망, 소멸, 재, 없어짐.
16. 그렇다면 마지막에는 무엇이 남는가?
오성경: 요한계시록 21장 1절을 볼까요?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하나님께서는 죄와 죽음과 고통이 영원히 존재하는 우주를 만드시는 것이 아닙니다.
죄의 역사를 끝내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주십니다.
베드로후서 3장 13절도 말합니다.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이은혜: 그러면 하나님께서 결국 죄와 고통 자체를 끝내시는 것이군요.
오성경: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마지막 목적은 고통의 영원한 보존이 아니라 죄의 완전한 제거와 회복입니다.
17. 하나님의 품성을 생각해 보자
이은혜: 목사님, 사실 저는 어릴 때 지옥을 생각하면 하나님이 너무 무서웠어요.
오성경: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질문을 해볼까요?
자신의 선택으로 태어난 것도 아닌 인간이 짧은 인생 동안 죄를 지었다고 해서, 죽지도 못한 채 영원히 불 속에서 고통받는 모습을 하나님께서 영원히 바라보시면서 기뻐하실 수 있을까요?
이은혜: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오성경: 저도 그렇습니다.
성경이 보여주는 하나님은 어떠신 분입니까?
요한일서 4장 8절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에스겔 33장 11절에서도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하나님은 죄인을 고문하는 것을 즐거워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죄인이 돌이켜 살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18. 그런데 심판은 왜 필요한가?
이은혜: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냥 모든 사람을 용서해 주시면 안 되나요?
오성경: 아주 중요한 질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죄를 그냥 내버려두는 사랑이 아닙니다.
죄는 반드시 제거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죄가 영원히 존재한다면 우주에는 영원한 고통이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영원히 고문하심으로 죄를 유지하시는 것이 아니라, 죄와 죽음의 역사를 완전히 끝내심으로 우주를 회복하십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21장 4절은 이렇게 아름답게 말합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이은혜: 정말 아름다운 말씀입니다.
오성경: 저는 이 말씀이 오늘 공부의 결론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고통을 영원히 지속시키는 분이 아니라, 고통을 끝내시는 분입니다.
19. 오늘 공부를 정리해 볼까요?
오성경: 이제 제가 질문을 드릴게요. 은혜 자매님이 대답해 보세요.
질문 1
성경은 죽음을 무엇이라고 표현합니까?
이은혜: 잠이라고 표현합니다.
질문 2
성경이 말하는 최종적인 악인의 죽음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이은혜: 둘째 사망입니다.
질문 3
구약의 “스올”은 악인의 영혼이 영원히 불타는 지옥입니까?
이은혜: 아니요. 죽음이나 무덤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질문 4
신약의 “하데스”는요?
이은혜: 스올에 대응하는 표현으로, 죽음과 무덤의 의미를 가집니다.
질문 5
게헨나는 원래 무엇이었습니까?
이은혜: 예루살렘 주변의 힌놈의 골짜기라는 지명이었습니다.
질문 6
“영원한 불”은 반드시 불 자체가 끝없이 타오른다는 뜻입니까?
이은혜: 아니요. 성경의 문맥에서 심판의 완전성과 최종적인 결과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질문 7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죽음을 기뻐하십니까?
이은혜: 아니요. 하나님은 악인이 돌이켜 살기를 원하십니다.
20. 함께 체크해 보기
오성경: 이제 오늘 배운 내용을 표시해 볼까요?
진술○ / ×
| 고대 철학에는 영혼불멸 사상이 있었다. | ○ |
| 플라톤은 영혼불멸 사상을 체계화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 ○ |
| 영혼불멸 사상은 기독교 역사 속에서 철학적 영향을 받으며 발전했다. | ○ |
| 성경은 죽음을 잠이라고 표현한다. | ○ |
| 성경에는 둘째 사망이라는 표현이 있다. | ○ |
| 스올과 하데스가 반드시 영원한 불지옥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 ○ |
| 게헨나는 힌놈의 골짜기와 관련된 표현이다. | ○ |
| 소돔과 고모라의 불은 “영원한 불”이라고 표현되었지만 오늘날까지 타고 있는 것은 아니다. | ○ |
| 성경은 악인이 영원히 고통받는다고 가르친다. | × |
| 하나님의 최종 목적은 죄와 고통을 영원히 지속시키는 것이다. | × |
| 하나님은 악인이 돌이켜 살기를 원하신다. | ○ |
21. 마지막 질문 ― 가장 중요한 질문
오성경: 은혜 자매님, 마지막으로 이것을 여쭤보고 싶습니다.
오늘 공부를 하기 전에는 하나님을 어떤 분이라고 생각하셨나요?
이은혜: 솔직히 말하면 무서운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잘못하면 지옥에 보내서 영원히 고통받게 하시는 분이라고요.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니까 조금 달라졌어요.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지만 사람을 미워하시는 분은 아니네요.
오성경: 맞습니다.
이은혜: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고통 가운데 두고 싶어 하시는 게 아니라, 죄와 죽음 자체를 없애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아요.
오성경: 바로 그것입니다.
22. 감동적인 예화 ― “아버지가 불 속으로 들어간 이유”
어느 날 한 아버지와 어린 아들이 낡은 집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깊은 밤, 집에 불이 났습니다.
불길은 순식간에 집 전체를 삼켰습니다.
아버지는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빠져나왔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밖으로 나온 순간, 아이가 안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아들아!”
아버지는 다시 불길 속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사람들이 소리쳤습니다.
“안 됩니다! 너무 위험합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뜨거운 불길을 헤치고 들어가 마침내 아이를 찾아냈습니다.
아버지는 아이를 품에 안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이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걸었던 것입니다.
오성경: 은혜 자매님,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요?
우리를 지옥불에 던져 넣고 멀리서 바라보시는 분일까요?
아니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불 속으로 직접 들어오신 분일까요?
이은혜: 예수님이시네요.
오성경: 그렇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면 하나님의 품성이 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고통 가운데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 요한복음 3:16
영원지옥의 공포보다 더 깊은 진리는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너를 영원히 고통스럽게 하겠다.”
가 아니라,
“내가 너를 살리기 위해 내 아들을 주었다.”
입니다.
23. 오늘의 결심
오성경: 은혜 자매님, 오늘 말씀을 공부하면서 새롭게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요?
이은혜: 하나님이 생각보다 훨씬 사랑이 많으신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죽음과 지옥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보다 성경 말씀을 믿고 싶어요.
오성경: 참 귀한 결심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결심해 보면 어떨까요?
“나는 사람의 전통이나 두려운 이야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겠습니다.
죽음과 심판에 대한 진리를 바르게 이해하고, 나를 살리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생의 선물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이은혜: 네. 그렇게 결심하고 싶습니다.
24. 마치는 기도
오성경: 그럼 오늘 우리가 발견한 하나님께 함께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을 오해했습니다.
하나님을 무서운 심판자로만 생각했고,
죄인을 영원히 고통 가운데 두시는 분으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다시 바라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씀하신 하나님,
그러나 우리에게 영생을 선물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하나님,
죄와 죽음과 눈물을 영원히 끝내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의 마음에서 잘못된 두려움을 거두어 주시고
말씀에 기초한 거룩한 믿음을 주옵소서.
죽음보다 부활을 바라보게 하시고,
심판보다 먼저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시며,
지옥의 공포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깨닫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신 예수님을
날마다 바라보게 하옵소서.
우리의 사랑하는 새신자들이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진리를 마음 깊이 경험하게 하시고,
마침내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영원한 생명을 받아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주님과 함께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오늘의 한 문장
“하나님은 죄인을 영원히 고통 가운데 보존하시는 분이 아니라, 죄와 죽음과 눈물을 영원히 끝내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암송 말씀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 로마서 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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