⑨AI 개입을 숨기는 멤버십 작가, 이것은 독자 기만
⑨#26- 0918》
by여유시간
48분전
AI 개입을 숨기는 작가, 이것은 독자 기만이다.
보이지 않는 손과 투명하지 않은 진실
글을 쓰는 행위는 결국 자기 자신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일이다.
빈 화면 앞에 앉아 문장을 고르고, 기억의 단추를 하나씩 꿰어 나가는 과정은 온전히 작가의 고뇌와 호흡으로 채워져야 마땅하다.
그런데 플랫폼의 풍경을 들여다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순간들이 적지 않다.
매끄럽게 정돈된 서사, 누구나 감탄할 법한 정형화된 교훈, 감정의 결까지 기계적으로 다듬어낸 듯한 글들이 유료 공간과 멤버십의 장벽 안에서 버젓이 유통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글들 가운데 상당수가 인공지능과의 깊은 협업이나 사실상 대필 과정을 거쳤음에도, 그 사실을 알리는 어떤 표기도 찾아보기 어렵다는 데 있다.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
AI의 보조와 AI에 의한 대필은 같은 것이 아니다.
AI를 보조 도구로 사용하는 경우는 작가가 글의 주체로 남는다.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직접 구성하고, 무엇을 말할 것인지 결정한 뒤 AI에게 맞춤법이나 문장 표현을 다듬게 할 수 있다. 반복되는 표현을 찾아내거나, 문단의 흐름을 점검하거나, 자신이 쓴 문장이 독자에게 어떻게 읽힐지 검토하는 데 활용할 수도 있다.
이 경우 AI는 어디까지나 작가의 생각을 더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한 도구다.
반면 사실상 대필에 가까운 경우는 다르다.
작가가 전달하고 싶은 핵심 내용이나 구체적인 경험을 몇 줄의 지시문으로 입력하고, AI가 글의 구조를 만들고, 문장을 구성하고, 감정의 흐름을 설계하고, 결론까지 완성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특히 작가가 결과물의 상당 부분을 직접 쓰지 않았고, AI가 만들어낸 문장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여 자신의 글처럼 공개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문장 보조라고 부르기 어렵다.
생각을 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도움을 받은 것과, 생각을 글의 형태로 만들어내는 핵심 작업 자체를 넘긴 것은 구분해야 한다.
─
그렇다고 AI를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글에 일률적인 낙인을 찍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AI가 창작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가다.
맞춤법을 고치는 것과 글 전체를 대신 쓰는 것은 다르다.
한 문장을 더 자연스럽게 다듬는 것과 서사의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어내는 것은 다르다.
작가가 자신의 초고를 가져와 AI에게 퇴고를 요청하는 것과, 몇 가지 키워드만 던진 뒤 완성된 에세이를 받아 게시하는 것은 같은 수준의 협업이라고 보기 어렵다.
결국 핵심은 이것이다.
AI를 사용했느냐가 아니라, 누가 글의 실질적인 창작 주체였느냐.
─
문제는 후자의 경우조차 아무런 설명 없이 자신의 순수한 창작물인 것처럼 제시되는 데 있다.
누군가는 AI를 문장의 수정을 돕는 보조 도구로 사용하면서도 그 사실을 솔직하게 밝힌다.
그것은 오히려 기술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서 창작의 경계를 정직하게 설명하는 태도다.
반면 AI에게 글의 상당 부분을 맡기고도 마치 자신이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써 내려간 것처럼 포장한다면, 독자는 그 글에 담긴 창작자의 노력과 경험을 잘못 이해할 수 있다.
특히 그 글이 유료 콘텐츠라면 문제는 더욱 선명해진다.
독자는 단순히 문장 몇 개를 구매하는 것이 아니다.
그 글을 쓴 사람의 경험과 생각, 관찰과 표현을 읽기 위해 비용을 지불한다.
그렇다면 창작 과정에서 AI가 실질적으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밝히는 것은 단순한 형식상의 문제가 아니라 독자와의 신뢰에 관한 문제다.
─
물론 AI가 개입했다고 해서 글의 가치가 자동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AI를 활용한 글에도 작가의 경험과 관점, 판단과 편집이 충분히 담길 수 있다.
오히려 자신의 생각을 먼저 만들고 AI를 적극적인 편집 파트너로 활용하는 새로운 창작 방식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AI가 작가의 표현을 돕는 것과 AI가 작가를 대신해 표현을 만들어내는 것은 구분되어야 한다.
그 경계를 흐린 채 결과물만 자신의 순수한 창작물처럼 내놓는 순간, 독자가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정보 하나가 사라진다.
바로 그 글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 대한 정보다.
─
진솔한 고백이 담겨야 할 서재가 인위적인 알고리즘의 세트로 채워져 가는 지금,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기술의 발전 그 자체가 아닐 것이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기술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기술이 창작의 어디까지 개입했는지를 감추는 침묵이다.
AI가 한 문장을 다듬었다고 해서 그 글의 모든 진실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AI가 글의 대부분을 만들어냈다면, 적어도 그 사실을 독자가 알 수 있어야 한다.
보이지 않는 손이 글을 다듬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손이 사실상 글 전체를 썼다면, 적어도 그 손의 존재까지 없었던 것처럼 만들어서는 안 된다.
독자가 읽어야 할 것은 완벽하게 만들어진 문장만이 아니라, 그 문장이 누구의 생각에서 출발했고 누구의 손을 거쳐 만들어졌는가에 대한 진실이기 때문이다.
⑨작가의 시선#26》AI수정·협업》실용인문학을 독학한 관찰작가 여유시간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