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17일 아들 수료식에 참석한후 식당을 찾다가 진주성 앞에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여기까지 온김에 진주성을 가려고 하는데 평일인데도 관광차가 많아서 주차장 진입이 쉽지 않아서 지나치는 바람에 한바퀴 돌아서 진입하게 되었다.
진주성(사적제118호)
진주성은 외적을 막기 위하여 삼국시대부터 조성한 성으로 진주의 역사와 문화가 깃든 유서 깊은 곳이다. 선조 25년(1592) 10월 왜군 2만여명이 침략해 오자 김시민(金時敏) 장군이 이끄는 3천8백여명의 군사와 성민이 힘을 합쳐 물리쳤으니, 이 것이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난인 진주대첩이다. 이듬해 6월에는 왜군 10만 여명이 다시 침략했고, 민간인과 관료, 군인 등 7만 여명이 이에 맞서 싸우다 모두 순절하는 비운을 격었다. 성곽 둘레는 1,760m이고 높이는 5 ~ 8m 이며, 성안에는 촉석루, 의가사, 영남포정사, 북장대, 창렬사, 호국사, 서장대, 임진대첩 계사순의 단, 진주 박물관 등이 있다. 공북(拱北)이란 충성을 맹세한 신하가 임금이 있는 북쪽을 향해 공손하게 예를 올린다는 뜻이다.

공북문

김시민 장군 동상

영남포정사

우물, 삼국시대부터 있었던 우물로 임진왜란 진주성 전투때에는 식수 공급원으로 중요한 역활을 하였으며, 2013년 9월 복원되었다.
너비 1.5m, 깊이 8.4m

쌍충사적비, (경남 유형문화재 제3호)
임진왜란때 의병을 모아 싸우다가 전사한 제말(諸沫) 장군과 그의 조카 제홍록(諸弘祿)의 공을 새겼다. 제말 장군은 징비록(徵毖錄)에의하면 경상도 고성 사람으로 웅천, 김해, 의령 등지에서 왜적과 싸워서 전공을 세워 성주 목사에 임명 되었으나 성주 싸움에서 전사했다. 조카 제홍록은 숙부를 따라 전공을 세운후 이순신 장군 휘하에 있다가 정유재란 때 전사하였다. 정조 16년(1792)에 왕은 이들의 충의를 기리어 쌍충각을 축석루 옆에 세웠다.

矗石門

촉석루(矗石樓)
촉석루는 강가에 바위가 우뚝소아있다고 하는데서 그 이름이 유래 되었으며, 일명 남장대 또는 장원루라고 부르기도 한다.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광해군 10년(1618) 병사 남이흥이 고쳐 지었으며 1948년 국보로 지정되었으나 1950년 625 전쟁으로 소실되었다. 지금의 건물은 1960년 지어졌다. 예로 부터 남으로는 진주 촉석루, 북으로는 평양 부벽루(浮碧樓)라 할 만큼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다.

촉석루 출입문

촉석루

의랑 논개의비

지수문, 논개사당 출입문

의기사(義妓祠)
임진왜란 당시(1593) 왜장을 껴안고 남강으로 투신한 논개의 영정과 신위를 모신 사당이다. 논개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영조 16년(1740)에 경상 우병사 남덕하가 창건한 이래 두차례 중건하였으며 현재의 건물은 1956년 중건하였다.

논개 영정

의암(義巖)
의암은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순국한 바위다. 선조 26년(1593) 6월 29일 임진왜란 2차 진주성 싸움에서 논개는 나라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왜장을 의암으로 유인하여 이 바위에서 순국하였다. 이에 논개의 순국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이 바위를 의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인조 7년(1629) 진주의 선비 정대륭은 바위의 서쪽 벽면에 전서체로 의암이라는 글을 새겼고, 남쪽 벽면에는 한몽삼이 쓴 것으로 전하는 해서체로 된 의암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넓이 3.5*3.3m 이다.

의암

의암 사적비
선조 26년(1593)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진주성이 함락되어 7만의 민, 관, 군이 순절하자 왜장을 끌어안고 순국한 논개의 사적을 기록한 비석이다. 비문에는 다음과 같은 시가 새겨져 있다.
"그 바위 홀로 서있고 그 여인 우뚝서 있네, 이 바위 아닌들 그 여인 어찌 죽을 곳을 찾았겠으며,
이 여인 아닌들 그 바위 어찌 의롭다는 소리 들었으리요, 남강의 높은 바위 그 이름 만고에 전하리 "

의암에서 본 진주성

의암에서 본 촉석루

의암에서 본 촉석루

진주성 임진대첩 계사순의 단 (癸巳殉義 壇)
진주성의 임진대첩과 계사순의(1593년 2차 진주대첩) 때 순절한 애국 영령을 기리기 위하여 진주시가 1987년 세운 제단이다.

임진대첩과 계사순의 단

촉석정 충단비,
선조 26년(1593)에 있어ㄸ던 2차 진주성 싸움에서 순국한 3장사(三壯士) 김천일(金千鎰), 황진(黃進), 최경회(崔慶會) 및 군관민의 영령을 제사하기 위하여 세운 정충단의 비석이다.

김시민 장군 전공비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진주성 싸움을 승리로 이끈 주장(主將) 김시민 장군의 전공을 새긴 비이다. 진주 목사 김시민 장군이 진주성을 사수함으로써 임진왜란 초기에 불리했던 전세를 뒤집고 전열을 가다듬은 계기를 마련하였다.

천자 총통, 지자 총통, 현자 총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