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한 곡>
1. 1980년대의 문화를 다시 소개하고 그것의 의미를 탐색하는 우리 세대의 한 사람이 있다. 서강대 교수인 김동률이다. 그는 다양한 언론을 통해 80년대라는 시대적 특수성 속에서 탄생한 영화, 음악, 연극 등을 개인적 경험과 사회적 흐름 속에서 파악하고 진술한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많은 점에서 동감하게 된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공통점과 함께 시대를 대했던 비슷한 성향 때문인지 모른다. 이문열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그것을 확인했다. 이문열은 80년대가 낳은 최고의 작가이면서 80년대 청춘의 열정과 이상을 대변했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문학평단의 평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많은 평론가들은 그에 대한 신드롬을 일종의 지적허위이며 인문학적 교양에 대한 욕망의 반영이라고 보았다. 김동률은 신문 특집 연재에서 이문열이 주었던 젊은 날의 충격을 솔직하고 진솔하게 이야기하며 그러한 낭만적 의미는 현재에 반추해보아도 가치있는 만남이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이문열에 대한 나의 생각과 동일했다. 비록 이문열이 보수화되고 불필요한 정치적 논쟁이 휩싸였다고 하더라고 80년대 그가 우리에게 보여주었던 젊음의 ‘낭만’과 이상은 결코 폄하될 수 없는 소중한 가치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 김동률은 <신동아>에 대중가요의 탄생과 영향을 탐사하는 기획 기사를 연재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했고 여전히 내면의 향수로 남아있는 대중가요의 명곡들을 소개하면서 탄생한 지역에 대한 정보와 사진을 곁들인 코너였다. 오랜 작업의 결과는 2015년 <인생, 한 곡>이라는 책으로 출간되었다. 책에 실린 노래들은 우리 세대의 대표곡들이 망라되어 있었다. 곡의 목록을 따라가면서 우리 세대가 공유했던 정서의 특징을 공감하게 된다. 친구들의 모임에서, 단합회에서, 술집의 토론장에서 이러한 노래들은 불려졌고 노래를 통해 사람들은 끈끈한 연대를 확인했던 것이다. 노래의 얽힌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은 노래의 추억과 향수를 확인하는 순간이면서 제대로 알 수 없었던 노래들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금 파악하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3. <인생, 한 곡>을 통해 노래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확인하게 되었다. 양희은의 노래로 알려진 <세노야, 세노야>은 고은과 서정주가 해군사관학교에 강연갔을 때 학교장의 호의로 얻어 탄 함정에서 들었던 멸치잡이 어부들의 노래에서 탄생하였으며, ‘세노야’라는 말은 어부들이 그물을 올릴 때 부르는 노래의 후렴구였다는 것이다.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는 동해남부선을 타던 학생시절의 최백호의 경험을 담은 노래였으며, <오빠생각>은 작사자 최순애와 이원수의 낭만적인 로맨스가 배경이 되고 있는 노래임을 알게 되었다. 노래는 정보와 무관한 예술장르이지만 노래가 만들어진 배경을 알게 되면 노래 자체가 지닌 애조와 정감에 더욱 빠져들게 된다. 숨겨진 민중가요였던 <부용산>은 누이의 이른 죽음을 슬퍼하는 노래였음에도 빨치산들이 즐겨 불렀고 작곡가가 월북했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금기시되었다. 전남 벌교에 있는 작은 산인 ‘부용산’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부용산>은 한동안 목포와 저작권을 두고 다툼이 있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도 접하게 된다.
4. <인생, 한 곡>은 노래가 탄생한 지역의 아름다운 장면을 사진으로 담고 있다. 노래에 대한 새로운 정보와 함께 등장하는 지역의 모습은 ‘그 곳을 가고싶다’라는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특히 벌교의 ‘부용산’은 꼭 한 번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벌교’는 꼬막으로 상징되는 지역이었다. 명물 ‘꼬막’을 먹기 위해 몇 번 방문했지만 사실 요리에는 실망했었다. 꼬막 요리 중에서도 하이라이트인 ‘꼬막전’ 대신 ‘꼬막부침개’가 꼬막정식에 등장하기 때문이었다. 바로 옆 순천의 ‘꼬막정식’에 비해 아쉬었던 벌교의 꼬막정식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부용산>에 대한 정보는 벌교를 다시금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거기에 더해 조정래의 <태백산맥>의 주무대가 벌교라는 점에서 <태백산맥>을 통독하고, <부용산> 노래를 충분히 듣고 난 후에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지닌 벌교을 찾고 싶다. 그때에 먹는 ‘벌교 꼬막정식’은 음식이 아니라 시대와 지역의 기억을 만나는 순간이 될 것이다.
5. 이 책에 등장하는 대중가요는 슬픔이 내면을 가득채울 때, 무력감에서 벗어날 수 없을 때, 우리를 위로하던 노래였다. 술과 함께 혼자서, 때론 누군가와 함께 부르던 이 노래들은 무력감을 잠시나마 잊게 해 주던 소중한 동료였다. 노래는 그 노래와 함께 했던 누군가를, 노래를 들었던 어떤 장소를 소환시키며, 그 노래를 통해 지나간 젊은 날의 기억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과거의 추억이 주는 그리움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고 한다. 그때 추억은 대중가요의 애조를 동반하면서 나타나는 것이다.
6. 노래와 술 그리고 술과 함께 한 사람들, 이것들은 오랜 동반자였다. 생각해보면 나에게 중요했던 사람들은 나와 함께 술을 마실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남자건, 여자건, 술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나에겐 소중했던 것이다. 어머니와의 추억도 어머니와 나누었던 술에 대한 기억으로 더욱 그리움을 더하게 된다. 몽롱한 기분으로 바라보는 세계와 대상은 아이러니하게 현실을 살아가는 힘을 부여했고, 술에 취해 힘든 시간은 나를 자책하면서도 사유하게 하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그때 ‘대중가요’는 내가 만나고 싶은 지극히 감상적인 내 모습을 확인해주었고 비록 어리석었지만 아름다운 모습으로 전환시킬 수 있게 해주는 큰 힘이었다. 그러나 한 잔의 술이 주는 후유증이 커질수록, 술을 마실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수록, 대중가요가 주었던 낭만적인 힘과 애달픔은 이제 다가오지 않는다. 취한 정신으로 만나게 되는 노래의 슬픔과 아름다움이 사라졌다. ‘클래식’에 가까워지고 있는 이유도 어쩌면 ‘대중가요’에서 찾을 수 없는 낭만에 대한 아쉬움에 기인할지 모른다. 나의 편집 음반에 모아놓은 슬픔과 애조의 ‘대중가요’들, 여행 때마다 틀었던 이 노래들을 듣는 시간이 줄고 있다. 김동률의 <인생, 한 곡>에 대한 전적인 동의를 표하면서도, 점점 사그러져가는 ‘대중가요’에 대한 멀어짐이 아쉽다. 대중가요는 오로지 ‘술’을 통해서만 나에게 다가왔던 불완전한 존재였던 것인가?
첫댓글 선배가 선물한 책으로 기억!
공동체를 묶어주던 노래들!
'우리 때는 그랬지!' 추억 속의 설명 ~ 꼭 뮌가가 있었던 것같은 시간들!
가요의 시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