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은 강진현
경계까지 19리, 서쪽은 진도군 경계 벽파진(碧波津)까지 53리, 남쪽은 바다까지 66리, 북쪽은 영암군 경계까지 16리이고, 서울과의 거리는
1천 7리이다.【건치연혁】 본래 백제의 새금현(塞琴縣)이었는데, 신라 때에 침명(浸溟)
-투빈(投濱)이라고도 하였다.- 으로 고치어 양무군(陽武郡)에 딸린 현이 되었다가, 고려 때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치어 영암군에 예속시켰다. 본조 태종 9년에 진도현에 합쳐 해진현(海珍縣)으로 되었으며, 12년에 고을의 치소(治所)를 영암에 딸린
현 옥산(玉山) 땅에 옮기었다가 세종 19년에 다시 가르고 현감으로 하였다.
【관원】 현감ㆍ훈도
각 1인.【군명】
새금(塞琴)ㆍ침명(浸溟)ㆍ투빈(投濱)ㆍ해진(海珍).
【성씨】 본현
정(鄭)ㆍ윤(尹)ㆍ차(車)ㆍ김(金)ㆍ전(全)ㆍ갈(葛).
황원(黃原) 황(黃)ㆍ윤(尹), 종(宗)
송(宋)이라고도 한다. 갈(葛).
죽산(竹山)
윤(尹)ㆍ박(朴)ㆍ송(宋)ㆍ전(全)ㆍ문(門).
유천(杻川) 전(全).
사라(紗羅) 조(曺)ㆍ송(宋)ㆍ윤(尹)ㆍ오(吳)ㆍ조(趙).
구량산(仇良山) 최(崔)ㆍ백(白).
진산(珍山)
최(崔)ㆍ김(金).
팔마(八馬) 문(文)ㆍ김(金).
옥천(玉泉) 김(金)ㆍ윤(尹)ㆍ신(愼)ㆍ안(安)ㆍ박(朴).
【형승】 물이 부상(扶桑)에
닿아 있다
정인지(鄭麟趾)의 시에, “물이 부상 만리의 하늘에 닿아 있다.”
하였다.【산천】 금강산(金剛山)
현의 동쪽 10리에 있는 진산이다. 산에
옛 성이 있다. 달마산(達摩山)
현의 남쪽 60리에 있다. 관자산(館子山)
현의 서쪽 30리에 있다. 가학산(賀鶴山)
현의 북쪽
25리에 있다. 두륜산(頭輪山)
현의 남쪽 30리에 있다. 이 산에 오르면 제주의
한라산(漢拏山)과 서로 바라보인다. 고다산(高多山)
현의 남쪽 40리에 있다.
관두산(館頭山)
현의 남쪽 41리에 있다. 제주를 왕래하는 배가 이 산 밑에 머무른다.
우사현(亏沙峴)
현의 동쪽 10리에 있다. 바다
서쪽ㆍ남쪽이 다 바다이다. 벽파진(碧波津)
현의 남쪽 30리,
진도군과의 경계에 있다. 대진(大津)
현의 서쪽 1백 5리에 있다. 주량(周梁)
현의 서쪽 75리에 있다. 별진포(別珍浦)
현의 북쪽
25리에 있다. 삼촌포(三寸浦)
현의 남쪽 20리, 진도군과의 경계에 있다.
우음토포(亏音吐浦)
현의 서쪽 10리에 있다. 고어란포(古於蘭浦)
현의 남쪽 25리에 있다. 제주에 내왕하는 배가 여기에 머무른다. 입암포(笠巖浦)
현의 남쪽 50리에 있다. 이곳 역시 제주 배가 머무르는 곳이다. 종천포(淙川浦)
현의 서남쪽 5리에 있다. 어성포(魚成浦)
현의 남쪽 10리에
있다. 죽성포(竹城浦)
현의 북쪽 30리에 있다. 포 위에 산성의 옛터가 있는데, 전하는 말에
전세(田稅)를 거두어들이던 곳이라 한다. 부소도(扶蘇島)ㆍ마뢰도(磨賴島)
모두 현의 남쪽 바다
가운데 있다. 죽도(竹島)
황원현(黃原縣)에 있다. 완도(莞島)
현의 남쪽 40리에 있다. 둘레가 2백 90리. 곧 신라 때의 청해진(淸海鎭)인데, 그 서남쪽은 이 현에 속하고,
동북쪽은 강진현에 속한다.【토산】 닥종이ㆍ모시ㆍ대ㆍ죽전(竹箭)
현의 남쪽
고해남리(古海南里) 및 고녹산리(古綠山里), 현의 북쪽 비곡리(比谷里)와 읍내 죽음리(竹陰里)에서 나온다.
차ㆍ감초ㆍ석류ㆍ유자ㆍ표고버섯ㆍ해삼ㆍ김ㆍ맛조개[竹蛤]ㆍ맛[甘蛤]ㆍ숭어ㆍ우뭇가사리ㆍ참가사리ㆍ미역ㆍ매산(莓山)ㆍ감태(甘苔)ㆍ황각(黃角)ㆍ굴ㆍ낙지ㆍ전복ㆍ홍합ㆍ오징어ㆍ화반석(華班石)
황원현의 매옥산(埋玉山)에서 난다. 자연동(自然銅)
현의
서쪽 황원리 망포(芒浦)에서 난다. 지치[紫草]ㆍ비자ㆍ감.
【성곽】 읍성
돌로 쌓았으며, 둘레가 2천 8백 57자, 높이가 15자이며, 안에 우물 열둘이
있다.【관방】 우도수군절도사영(右道水軍節度使營)
현의 서쪽 67리에
있다. 오란포영(於蘭浦營)
현의 남쪽 34리에 있다. ○ 수군만호
1인.【봉수】 황원(黃原) 봉수
현의 서쪽 60리에 있다. 남쪽으로 진도군
점찰산(占察山)에 응하고, 북쪽으로 무안현의 유달산(鍮達山)에 응한다. 금강산 봉수
남쪽으로
관두산에 응하고, 북쪽은 관문에만 보고한다. 관두산 봉수
서쪽으로 진도군의 점찰산에 응하고,
남쪽으로 영암군의 갈두산(葛頭山)에 응한다.【누정】 정원루(靖遠樓)
곧 성
남문의 누각이다. 성화(成化) 기축년에 현감 성중성(成重性)이 세웠으며, 성현(成俔)의 기문이 있다. ○ 성임(成任)의 시에, “성곽은 바다가
다한 곳에 평평히 임해 있는데, 풍연(風煙) 10리에 나그네가 누각에 오르네. 희미한 구름이 들을 휩싸니 산은 그림 같고, 큰 물결은 하늘을
적시어 땅이 뜨는 듯하네. 반 년 동안 나그네의 수심이 날마다 더하는데, 채찍 하나 든 행색으로 고을마다 두루 다니네. 만리 건곤을 다
둘러보려면, 장마 걷힌 초가을까지 가야하겠네.” 하였다.망운루(望雲樓)
객관 남쪽에
있다. ○ 고득종(高得宗)의 시에, “마음은 태양 아래에 달리니 삼산(三山)이 멀고, 눈은 하늘 가를 바라보니 오색 구름이 떠 있도다.”
하였다.『신증』 대평정(大平亭)
수영(水營)에 있다. ○ 남곤(南袞)의
시에, “붉은 꽃비 내리고 녹음은 살찌는데, 태평정 위에서 가는 봄을 전송하네. 거센 바람이 물결을 치니 조수 소리가 장엄하고, 엷은 안개 산에
자욱하니 푸른 산빛이 희미하네. 고운 돗자리에서 돌리는 술잔이 남실남실하고, 석양에 들려오는 피리소리는 끊일 듯 말 듯 하구나. 그중에서도
풍경이 그림 같은 것은, 어부네 집이 벼랑에 의지하여 물이 반 사립인 것이라네.” 하였다.【학교】 향교
현의 북쪽 3리에 있다.【역원】 녹산역(綠山驛)
현의 남쪽 5리에 있다. 남리역(南利驛)
현의 서쪽 35리에
있다. 별진역(別珍驛)
현의 북쪽 30리에 있다. ○ 김극기(金克己)의 시에, “풍연(風煙)을
굽어보며 술잔을 드니, 붓 끝의 조화로 교묘하게도 그려낸 듯, 서리 맞은 대가 난간을 둘러 성긴 듯 빽빽하고, 이슬 젖은 꽃잎은 섬돌 위에 피고
지는구나. 오도자(吳道子)의 그림이 공중에 의지한 듯 산은 백번을 돌고, 촉 나라 비단을 땅에 깐 듯 물은 천 구비로 굽이치네. 건(巾)을
재켜쓰고 난간에 의지하여 길게 휘파람 부니, 자리에 가득한 맑은 바람 상쾌하기도 하여라.” 하였다.만희원(萬喜院)
현의 서쪽 12리에 있다. 적량원(赤良院)
현의 서쪽 23리에
있다. 삼기원(三岐院)
현의 서쪽 60리에 있다.【불우】
대둔사(大芚寺)
두륜산(頭輪山)에 있다. 절 앞에 신암(信菴)ㆍ사은(思隱)ㆍ성유(性柔) 세 중의
부도(浮屠)가 있다. 석두암(石頭菴)ㆍ흑석사(黑石寺)
모두 가학산(駕鶴山)에
있다. 금강사(金剛寺)ㆍ다보사(多寶寺)
모두 금강산에 있다. ○ 중 원감(圓鑑)의
시에, “땅은 깊숙하여 시든 풀이 아직도 너저분한데, 소나무 전나무는 싱싱하여 옥당(玉幢)같이 푸르구나. 평상에서 바라보는 고요한 산수의 경치는
뛰어난 자취 오래고, 백 년 피우는 향불은 나라를 복되게 하리. 빈 뜰에 달빛이 가득하여 눈을 깔아 놓은 듯하고, 먼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밤 강물에 울부짖는다. 기운 이불 맨머리에 추워서 잠 못 이루는데, 벽 사이 남은 등잔에는 향기로운 불꽃이 하늘하늘.”
하였다.
【사묘】 사직단
현의 서쪽에 있다. 문묘
향교에 있다. 성황사
현의 북쪽 3리에 있다. 여단
현의 북쪽에 있다.【고적】 고해남(古海南)
두륜산 남쪽에 있다. 땅이 곧 바닷가에 임했으며, 성터가 있다. 죽산(竹山) 폐현
현의 북쪽 10리에 있다. 본래 백제의 고서이현(古西伊縣)이었는데, 신라 때에 고안현(固安縣)으로 고쳐
양무군(陽武郡)에 딸린 현이 되었으며, 동안(同安)이라고도 썼다. 고려 때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 영암군에 예속되었다가 본조에 이르러 본현에
내속되었다. 그곳에 옛 돌성이 있는데 둘레가 2천 6백 40자이다. 황원(黃原) 폐현
현의
서쪽 15리에 있다. 본래 백제의 황술현(黃述縣)이었는데, 신라 때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 양무군에 딸린 현이 되었으며, 고려 때에는 영암군에
예속되었다가, 뒤에 본현에 내속되었다. 목장이 있다. 옥천(玉泉) 폐현
현의 동쪽 15리에
있다. 본래 영암군 냉천부곡(冷泉部曲)이었는데, 본조 세종 30년에 본현에 내속되었다. 옥산(玉山) 폐현
현의 남쪽 10리에 있다. 옛날의 사라향(沙羅鄕)이었는데, 고려 때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 영암군에 예속되었으며,
지금은 본현의 치소(治所)로 되어 있다. 흑산(黑山)고성
현의 북쪽 30리에 있다. 돌로
쌓았으며, 둘레가 5백 80자, 높이가 7자인데 지금은 절반이 무너졌다. 진산(珍山)고성
현의
서쪽 30리에 있다. 돌로 쌓았으며, 터만 남아 있다. 녹산(綠山)고성
현의 남쪽 10리에
있다. 돌로 쌓았으며, 옛 녹산역(綠山驛)의 터인데, 지금은 폐지되었다. 고다산성(高多山城)
고성이 있는데 둘레가 9백 13자이다. 북평향(北平鄕)ㆍ송지부곡(松旨部曲)
모두 현의 남쪽 60리에 있다. 팔마부곡(八馬部曲)
현의 북쪽
20리에 있다. 신갈부곡(神葛部曲)
현의 동쪽 20리에 있다. 정통(正統) 정묘년에 영암군에서
예속되었다. 마봉소(馬峯所)
현의 남쪽 60리에 있다.【명환】
본조 곽안방(郭安邦)
현감이 되었는데 은혜로운 정치를
했으므로 백성들이 지금도 그를 사모하고 있다.『신증』 【열녀】 본조 석을금(石乙今)
참봉 박성림(朴成林)의 첩인데, 젊어서 남편에게
버림을 받았으나 맹세코 다른 사람에게 가지 않았다. 어떤 중이 그를 욕보이려 했는데 벗어나지 못할 것을 알고 마침내 목매어 죽었다. 금상
10년에 정문을 세워 주었다. 종이(從伊)
젊었을 때 어떤 사람이 밤에 그녀의 집에 들어가서
그녀를 욕보이려 하므로 놀라 외치면서 도망쳐 피하였으나, 그 사람이 이미 강간하였다 하여 관청에 고소하려 하니, 종이가 울면서 말하기를,
“여자가 이 세상에 나서 애매하게 피를 더럽혔다는 누명을 쓰게 된 것은 상서롭지 않다.” 하고, 마침내 목을 매어 죽었다. 금상 15년에 정문을
세워 주었다.【제영】 뚝뚝 갈대잎에 비 떨어지고
김극기(金克己)의 시에,
“타향에서 가을 풍경을 만나니, 쑥대 같은 귀밑머리에 먼저 놀라네. 뚝뚝 갈대잎에 비 떨어지고, 솨솨 댓가지에 바람 부네. 옥주(玉麈)는
왕연(王衍)을 모시고, 금준(金樽)으로 공융(孔融)을 마주하네. 밤새도록 마시기를 사양하지 말라, 취하고 깨는 것이 곧 궁극(窮極)과 통하는
것이로세.” 하였다. 남쪽 나라 따뜻하여 겨울에도 눈이 없구나
조계생(趙啓生)의 시에, “남쪽
나라 따뜻하여 겨울에도 눈이 없고, 굽이진 물가에서 소금 구우니 낮에도 연기가 이네.” 하였다. 긴 길이 바다를 따라 땅이 없는
듯하네
이석형(李石亨)의 시에, “긴 길이 바다를 따라 땅이 없는 듯 하더니, 화려한 집이 바람에
임하였으니 별천지로구나.” 하였다.《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연혁】 고종 32년에 군으로
고쳤다.
《대동지지(大東地志)》
【방면】 현일(縣一)
읍내에
있다. 현이(縣二)
서쪽으로 5리에 있다. 녹산(綠山)
남쪽으로 처음이 10리, 끝이 30리이다. 현산(縣山)
남쪽으로
30리, 끝이 50리이다. 은소(銀所)
남쪽으로 처음이 50리, 끝이 70리이다.
화일(花一)
남쪽으로 30리에 있다. 화이(花二)
남쪽으로 20리에 있다. 산일(山一)
서쪽으로 처음이 10리, 끝이
40리이다. 산이(山二)
서쪽으로 처음이 30리, 끝이 60리이다. 황일(黃一)
서쪽으로 40리에 있다. 황이(黃二)
서쪽으로 70리에
있다. 비곡(比谷)
북쪽으로 처음이 30리, 끝이 40리이다. 마포(馬浦)
북쪽으로 처음이 10리, 끝이 30리이다. 청담(淸淡)
북쪽으로 50리에 있다. 장동(場東)
서쪽으로 90리에
있다. 장서(場西)
서쪽으로 90리에 있다.
○ 팔마부곡(八馬部曲)은 북쪽으로 20리에
있다. 신조부곡(神蔦部曲)은 동쪽으로 20리에 있다. 정통(正統) 정묘년에 영암군(靈巖郡)에서 내속하였다.
마봉소(馬峯所)는 남쪽으로
60리에 있다.【성지】 읍성(邑城)
2천 8백 57척이며 옹성(甕城)이 세
개, 성문이 세 개, 우물이 12개 있고, 남문을 정원루(靖遠樓)라고도 한다. 고해남성(古海南城)
두륜산(頭輪山)의 남쪽에 있다. 죽산고현성(竹山古縣城)
둘레가 2천
6백 40척이다. 흑석산고성(黑石山古城)
북쪽으로 30리에 있으며, 둘레가 5백
80척이다. 진산성(珍山城)
서쪽으로 20리에 있으며, 돌성의 자취가 남아 있다.
녹산성(綠山城)
남쪽으로 10리이며, 녹산현 옛터에 석축의 자취가 있다.
고다산고성(高多山古城)
남쪽으로 40리에 있으며, 둘레가 9백 13척이다. 죽성포성(竹城浦城)
북쪽으로 30리에 있으며, 포(浦) 위에 고성이 있는데 대대로 내려오며 전세를 받아들이던
곳이다. 금강산고성(金剛山古城)
성터가 남아 있다.【영아】
우수영(右水營)
국초(國初)에 수군을 두고 영을 설치해둔 곳은 무안(務安)의 대굴포(大掘浦)인데, 세종
22년에 본현의 황원곶(黃原串)에 옮겨 설치하였다. 본현과의 거리는 서쪽으로 70리이다. 세조(世祖) 10년에 절도사로 승격되었다. 성의 둘레는
2천 4백 48척이며, 옹성이 네 개, 연못이 하나, 우물이 2개며 태평정(太平亭)이 있고 동문 밖에는 충무공(忠武公)의 승첩비가
있다.관원 전라우도 수군절도사(全羅右道水軍節度使)ㆍ중군(中軍)
우후(虞侯)가 겸한다. 각 1인.속읍
나주(羅州)ㆍ영암(靈巖)ㆍ진도(珍島)ㆍ영광(靈光)ㆍ해남(海南)ㆍ무안(務安)ㆍ함평(咸平).
속진 법성포(法聖浦)ㆍ군산(群山)ㆍ고군산(古群山)ㆍ위도(

島)ㆍ임류도(臨溜島)ㆍ고금도(古今島)ㆍ가리포(加里浦)ㆍ남도포(南桃浦)ㆍ금갑도(金甲島)ㆍ어란포(於蘭浦)ㆍ이진(梨津)ㆍ신지도(薪智島)ㆍ마도(馬島)ㆍ목포(木浦)ㆍ다경포(多慶浦)ㆍ지도(智島)ㆍ임자도(荏子島)ㆍ검모포(黔毛浦)ㆍ본영(本營)
및 속읍진(屬邑鎭) 각종 배 1백 30척
진강(津舡)이 24척이다.누정 복파관(伏波館)ㆍ망해루(望海樓).
【창고】 창(倉)이 5개
읍내에 있다. 해창(海倉)
남쪽으로 20리에
있다.【목장】 황원장(黃原場)
현과의 거리가 90리이며,
진도감목관(珍島監牧官)을 이곳으로 옮겼다. 진도를 속장(屬場)으로 하였다.【진도】 벽파진(碧波津)
서쪽으로 60리에 있으며 진도로 통한다. 등산진(登山津)
서북쪽으로
90리에 있으며 무안ㆍ목포진으로 통하는 수로(水路)는 20리이다.【교량】 남천교(南川橋)
현의 남문 밖에 있다. 맹진교(孟津橋)
북쪽으로 25리에
있다.【사원】 표충사(表忠祠)
정종(正宗) 기유년에 지교(持敎)가
건축하였으며, 사(祠)에 예관을 파견하여 제사하였다. 석 휴정(釋休靜)ㆍ석 유정(釋惟政)
모두
밀양편에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