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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독일 사회를 파국으로 몰고 간 하이퍼인플레이션은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건이어서 표면적인 진행과정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 내막은 지금도 감추어져 있습니다. 교과서와 역사책은 그 사태에 관하여 설명하기를, 프랑스와 벨기에가 전쟁배상금을 받아내기 위해 1923년 1월에 루르 공업지대를 점령한 충격으로 독일의 화폐가치가 폭락해서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의 기술은 사건을 설명한 것 같으면서도 실은 아무 것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하이퍼인플레이션은 통화량의 엄청난 증가로 모든 물가가 엄청나게 상승하는 것을 말합니다. 외국군의 루르지역 점령이 왜 독일의 엄청난 통화팽창을 유발했다는 것인지 역사책에는 제대로 된 설명이 없습니다.
루르 지역을 점령하는 프랑스군
은행 예금을 인출하려는 장사진
땔감으로 쓰이는 마르크화
쓰레기로 버려진 마르크화
손수레로 급료 포대를 운반하는 모습
지폐 다발로 블록쌓기 놀이하는 모습
미화 1달러에 대한 마르크 환율
미화 1달러에 대한 환율은 다음과 같습니다.
1914년 : 4 마르크
1919년 말 : 48 마르크
1921년 상반기 : 90 마르크
1922년 상반기 : 320 마르크
1922년 12월 : 9,000 마르크
1923년 1월 : 49,000 마르크
1923년 7월 : 110만 마르크
1923년 11월초 : 2조 5천억 마르크
1923년 11월 23일 : 4조 2천억 마르크
역사와 금융에 관한 거의 모든 서적들은 그 사태의 원인을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하나는 외국군의 루르지역 점령에 저항하기 위해 독일 정부가 통화를 남발했다는 것인데 참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입니다. 독일의 무시무시한 인플레이션은 1923년 11월의 화폐개혁으로 급속히 진정되었고, 외국군이 루르지역에서 철수한 것은 1925년 8월 25일입니다. 외국군의 루르지역 점령과 하이퍼인플레이션은 인과관계가 없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설명이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난삽하고 앞뒤가 안 맞으면 잘 모르고 하는 말이거나 거짓말입니다. 역사는 인간 행동의 기록인데 정신병자를 제외한 인간의 행위는 그 동기가 난해하지 않습니다.
다른 설명은 독일 정부가 전쟁배상금을 지불하기 위해 통화를 남발했다는 것입니다. 앞의 것보다 명쾌한 이 설명은 더욱 분명한 거짓입니다. 진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연합국은 미국의 은행에서 막대한 자금을 대출 받아 미국에서 군수물자를 구입했습니다. 연합국은 전쟁피해 복구와 대출금 상환을 위해 독일에게서 배상금을 받고자 했습니다. 그리하여 베르사유 조약에서 독일에게 전쟁배상금을 부과하고 구체적 액수와 국가별 분배율은 배상위원회가 결정하도록 했습니다. 미국은 1920년 3월 19일 상원에서 베르사유 조약 비준안이 부결되어 배상금 논의에서 빠졌고, 1920년 7월 5일 벨기에 스파(SPA)에서 열린 배상위원회 회의에서 우선 국가별 분배율을 다음과 같이 결정했습니다.
프랑스 : 52%
영국 : 22%
이태리 : 10%
벨기에 : 8%
그리스 + 루마니아 + 유고슬라비아 : 6.5%
포르투갈 : 0.75%
일본 : 0.75%
합계 : 100.0 %
그리스, 루마니아, 유고슬라비아의 국가별 분배율은 자료를 못 찾았습니다. 배상위원회는 1921년 1월 파리 회의에서 배상금을 75억 파운드(375억 달러 = 1,500억 골드마르크)로 결정했으나 독일의 반발로 그 해 4월 27일에 다시 런던 회의를 개최하여 1921년 5월 1일에 66억 파운드(330억 달러 = 1,320억 골드마르크)를 1921년부터 66년간 균등 분납하도록 결정했습니다. 이를 거부하면 루르 공업지대를 점령하겠다는 위협에 독일은 어쩔 수 없이 수락했습니다.
골드마르크(Goldmark)는 1871년에 통일된 독일에서 1873년부터 사용한 금본위제 통화로서 금 태환이 보장되었습니다. 금과 은의 국제적 거래 단위는 트로이 온스(troy ounce)이고 1 트로이 온스는 31.1034768 gram입니다. 골드마르크를 은행에 납부하면 금으로 교환해 주었는데 금 1 트로이 온스의 가액은 82.7 골드마르크였습니다. 환율은 1 파운드가 20 골드마르크였고 1달러가 4 골드마르크였습니다. 1 파운드는 5 달러였습니다.
1914년 7월 28일 합스부르크제국이 세르비아에게 선전포고하면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습니다. 합스부르크제국의 동맹국인 독일은 8월 1일 러시아에게, 8월 3일 프랑스에게 선전포고를 하였고 영국이 8월 4일 독일에게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독일 정부는 8월 4일을 기하여 골드마르크의 금 태환을 정지시키고 금 태환이 안 되는 파피어마르크(Papiermark)를 발행하여 법정화폐로 사용했습니다. 파피어(Papier)는 종이를 뜻하는 독일어입니다.
1921년 5월에 배상금 총액이 66억 파운드 또는 1,320억 골드마르크로 결정되었지만 골드마르크는 이미 폐지되었고 파피어마르크는 금 태환이 불가하여 둘 다 배상금으로 지불될 수 없었습니다. 배상금은 금 태환이 보장된 파운드나 달러로 지불되어야 했고 금, 석탄, 철강 등 현물도 허용되었습니다.
독일 정부는 1921년에 1차분 배상금 1억 파운드를 지불했으나 1922년 6월로 합의된 2차분의 지불을 연말로 연기하더니 12월 14일에 배상금 지불 불능을 선언했습니다. 파운드나 달러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다음해 1월 11일 프랑스와 벨기에가 군대를 동원하여 루르 공업지대를 점령하고 석탄, 목재, 철강 등 현물로 지불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때부터 파피어마르크(Papiermark)의 통화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물가 역시 폭발적으로 상승했습니다.
금 태환이 불가한 파피어마르크(Papiermark)는 애시당초 배상금으로 사용될 수 없었으므로 독일 정부가 배상금을 지불하기 위하여 파피어마르크를 마구 찍어냈다는 설명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진행되던 시기와 인플레이션이 진정되고 수 년이 지나는 동안 독일은 현금이건 현물이건 어떤 형태로도 배상금을 지불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독일 정부가 종이돈을 마구 찍어서 배상금을 지불했다거나 금을 매입해서 배상금을 지불하기 위해 종이돈을 마구 찍었다는 거짓말이 버젓이 나돌고 있습니다. 통화량이 증가하면 모든 물가와 함께 금값도 오르기 마련이라 종이돈을 찍어서 금을 매입하는 방법은 통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1923년에 독일 국내의 금값은 통화량 증가보다 더 빠른 속도로 상승했습니다.
1 온스당 금값은 1919년 1월에 170 마르크, 1920년 5월에 1천 마르크, 1922년 1월에 4천 마르크, 1922년 6월에 6천 마르크, 1923년 11월말에는 87조 마르크로 1922년 6월을 기준으로 145억 배 상승했고, 도매물가 지수는 1922년 7월에 100.6에서 1923년 11월말에는 7,260억으로 72억 배 상승해서 금값 상승률이 도매물가 상승률의 두 배였습니다.
독일에서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진행되던 1923년에 국제 금 값은 미국 달러 기준으로 변동이 없었습니다.
국제 금 가격
(달러/트로이 온스)
1900 : 20.68
1910 : 20.64
1920 : 20.68
1930 : 20.65
1933. 4. 05 : 20.67
1934. 1. 30 : 35.00
1940 : 33.85
1950 : 34.72
1960 : 35.27
1970 : 35.94
1971. 8. 15 : 35.00
1977 : 147.71
1980 : 612.56
1990 : 383.51
1997 : 330.98
1998 : 294.24
1999 : 278.88
2000 : 279.11
2007 : 695.39
2008 : 871.96
2009 : 972.35
2010 : 1224.53
2010. 09. 14 : 1265.50
2011. 04. 20 : 1503.45
2011. 08. 09 : 1727.60
2011. 08. 22 : 1888.70
2012 : 1668.98
2013. 04. 02 : 1604.30
2015 : 1160.06
2015. 12.17 : 1050.80
2016 : 1250.74
2018 : 1268.49
2019 : 1392.60
2020. 03. 09 : 1674.50
2020. 03. 13 : 1515.70
2020. 03. 26 : 1651.20
2020. 07. 21 : 1842.40
2020. 08. 06 : 2051.50
2021. 06. 02 : 1909.90
2021. 09. 30 : 1755.30
2022. 02. 17 : 1902.00
2022. 03. 08 : 2068.90
2022. 11. 03 : 1659.90
2023. 04. 04 : 2022.20
2023. 10. 26 : 1984.24
통일 후 독일에서는 정부가 중앙은행인 제국은행(Reichsbank)을 통하여 화폐를 발행하고 통화량을 조절하며 이자율을 관리했으나 1922년 5월 26일 제국은행(Reichsbank)이 민영화되면서 독일 정부는 화폐와 관련된 모든 권한을 상실했습니다.
이에 앞서 1913년에 미국은 민간 소유인 연방준비은행을 설립하고 화폐발행, 통화량과 이자율 조정 등 화폐에 관련한 모든 권한을 부여했습니다. 독일의 제국은행도 미국의 연방준비은행처럼 민영화된 것이며 두 은행의 소유주는 소수의 유태인 금융재벌이었습니다.
미국 연방준비은행이 설립된 지 100년이 넘었지만 그 은행이 민영기업이고 로스차일드, 록펠러, JP 모건 등 소수의 유태인 금융재벌 가문이 대주주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대다수 미국인들은 연방준비은행을 국가기관으로 알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이런 실정이니 다른 나라 사람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1922년 5월에 민영화된 독일 제국은행이 그런 실정이었습니다. 역사학자들은 이런 내막을 모르거나 감추고서 엉뚱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유태인 금융자본가들은 독일의 제국은행을 인수한 직후부터 아무런 이유 없이 마르크화의 통화량을 늘리기 시작해서 6개월 만에 도매물가 지수가 30배, 다시 말해 3,000 % 상승했습니다. 1922년말에 이미 독일의 경제는 파탄 상태였는데 1923년 1월에 프랑스와 벨기에군이 루르지역을 점령한 후부터 통화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해서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독일 정부는 그해 11월 23일에 1조 대 1로 화폐개혁을 단행하여 1조 파피어마르크(Papiermark)를 1 렌텐마르크(Rentenmark)로 교환하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더 이상의 화폐발행을 금지하고 강력한 통화 회수를 시행하여 물가를 안정시켰습니다.
하지만 독일 국민들의 예금은 이미 휴지가 되었고 수 많은 기업들이 도산하여 국제유태자본에게 헐값에 넘어갔습니다. 송홍병은 ‘화폐전쟁’에서 제국은행이 화폐를 남발하여 하이퍼인플레이션을 일으킨 목적이 바로 이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진실을 은폐하느라고 학계와 져널리즘 업계는 터무니 없는 거짓말을 해온 것입니다.
100년전에 이미 유태인은 서방 세계의 금융, 석유, 식량, 철도, 무기 등 산업 전반과 백화점 등 유통사업 그리고 대학, 통신, 신문, 방송, 출판, 영화, 변호사 업계, 노동조합 등을 장악하고 유태인의 평판에 불리한 사실은 철저하게 은폐하였습니다. 유태인에게 불리한 사실을 폭로하다가는 직장에서 해고되거나 사업체가 망하고 때로는 감옥에 가거나 비명횡사합니다. 반면에 유태인 편에 가담하여 진실을 은폐하면 부(富)와 출세와 명성이 뒤따릅니다. 유태인이 관련된 역사적 사건의 설명에 거짓말이 횡행하는 까닭은 이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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