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한 다리로 뛸 수 없다
인간에겐 왜 두 다리가 있는가? 어째서 오른발 왼발이 있는가? 걸음을 걸을 때마다 우리는 보행의 리듬을 느끼며 그렇게 반문한다. 한 다리가 정지할 때 또 하나의 다리가 움직인다. 휴지(休止)와 운동, 이 연속 속에서만 우리는 걸음을 걸을 수 있다.
인간은 캥거루가 아니기 때문에 두 다리를 동시에 움직일 수는 없다. 시의 리듬 역시 인간의 보행을 본 뜬 것이다.
그러나 슬픈 일이다. 본래의 이 두 다리를 거부하고 한쪽 다리만으로 문학을 하려고 하고 경제와 처세를 꾀하려는 사람이 많다. 깨금발이 아니면 캥거루처럼 도약하려고 한다.
우리들이 내쉬는 숨결도 그렇지 않은가? 내쉬는 숨과 들이마시는 숨, 이 반대의 두 운동이 있을 때 호흡의 리듬이 생겨나며 비로소 우리의 심장은 고동칠 수 있다. 왜 쉬려고만 하고 어째서 들이마시려고만 하는가?
인간에겐 역사와 신화의 두 다리가 있다. 역사는 먹고 자고 입는 일상의 울타리 속에서 움직이며, 신화는 사랑하고 노래하고 춤추는 초월의 언덕 위에서 행동한다. 밤은 역사의 양식이며 술은 신화의 양분이다.
그렇다. 역사와 신화는 인간의 시간을 지탱하는 두 다리이며, 그 교체 운동은 생의 길을 걸어가는 인간의 생애이다.
밥만으로 살 수 없지만, 술만 마시면서도 살아갈 수 없다. 옛날 그 중세가 신화의 한 다리만 남기고 역사의 다리를 절단한 암흑기였다면, 현대 문명은 신화는 죽고 역사의 다리만이 움직이는 또 하나의 암흑기이다.
한쪽 다리만으로는 걸을 수 없다. 인간은 짐승이 아니기 때문에 먹고 자는 문제만이 전부가 아니다.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현실이 절박하다 해서 또 하나의 다리를 잘라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구름을 딛는 창조의 다리, 순수한 한 방울의 술이 주는 도취의 시간도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성(聖)과 속(俗)의 두 개의 다른 시간, 두 개의 다른 공간, 이 리듬 속에서만이 우리들 생을 걸어갈 수 있다. 깨금발로 뛰려는 자들에게, 시인이여, 올바른 보행을 당신들의 운율로 가르쳐주어라. 그것이 그들의 솥뚜껑을 열어보는 일이다. 더 중요한 당신들의 사명이다.
지은이: 이어령
출 처: 『문학사상』. 1978. 11
고향 모과
이 익섭
"이 댁 주인이세요?"
밭에서 가을걷이를 하는 이에게 물었다.
"그런데요."
"저 모개 좀 안 파실래요?"
작년 이맘때 누이들과 고향 집으로 가다가 이 집 마당에 서 있는 모과나무에 주렁주렁 노랗게 익어가는 모과가 어찌나 탐스럽던지 차를 돌려 와서는 한 바구니 사 간 적이 있다. 그때는 우리가 마당에 들어서서 누이동생이 주인을 찾으니 아주머니가 문을 열고는 "우린 안 믿어요"하며 문을 홱 닫아 버리는 바람에 "아녜요. 모개 좀 살 수 없나해서 왔어요"하며 좀 법석을 떨었는데 오늘은 바로 나무 밑이라 얘기가 쉽게 이루어졌다.
"얼마치나 사시게요?"
"만원어치요. 작년에도 아주머니한테 샀는데 고향 것을 갖다 두고 보는 게 좋아서 또 왔어요."
"고맙습니다."
"이 아래 있는 것은 제가 좀 딸게요."
"그러세요."
과일을 따는 일이 다 그렇지만 모과를 따는 일은 특히 기분이 좋다. 힘을 들이지 않고도 똑 떨어지는 그 촉감이 꽤나 경쾌하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내가 직접 나무 위에 올라가서도 땄었다. 요즘에도 어쩌다 감나무에 올라가 장대로 감을 따는 수가 있지만 나무에 오르는 기분은 또 그것대로 얼마나 좋은가. 그런데 올해는 며칠 전 다리를 좀 다친 것 때문에 나무에 오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아저씨는 원래 여기 분이세요?"
"그럼요. 여기 토박이래요. 저기가 바로 우리 집이었는데요 머."
"우리 집도 지재래요. "
"지재 어디요?"
"탱주목 넘어 바로요"
"두환이 집요?"
"아니요. 모산집요."
"거기는 상형이가 사는데."
"맞아요. 우리 일가 아저씨가 지금 거기 살고 저는 서울 가 살지요."
이렇게 해서 옛날 얘기가 벌어졌다. 이 집은, 비록 우리 시골집에서 오리쯤 떨어져 있는 다른 동네의 외딴 집이지만 내가 초등학교 4학년까지 다니면서 매일같이 그 앞을 지나가던, 지금도 가끔 꿈에 나오는 그 집 바로 옆에 새로 지은 집이다. 집 주인은 나 보다 아홉 살 아래였다. 그러니 직접 서로 얽혀 있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얘기로 우리는 이내 구면같이 되었다.
모과가 어느새 수북이 쌓였다.
"이만하면 됐어요. 오늘 새벽시장에 나가 보았는데 작은 건 오백원, 큰 건 천원 하던데 이제 다 됐겠어요."
"아네요. 그냥 드려도 드려야 되는데."
그러면서 한참을 더 따 정말 수북이 담아 주었다.
잘 계시라고, 안녕히 가시라고 몇 번이나 인사를 하고, 또 돌아보고 또 손을 흔들고 그러면서 헤어졌다. 어디 한 곳을 더 들를 계획이었는데 차를 그대로 서울로 몰았다. 이 수북한 기분을 그대로 안고 가고 싶었다.
모과는 현관에서, 서재에서, 또 내 차 안에서 겨우내 은은히 향기를 뿜어 줄 것이다. 그 따뜻한 노란색으로, 그 소탈한 모습으로 고향을 불러다 주곤 할 것이다. 어쩌다 탐을 내는 사람이 있으면 하나씩 주어 보내며 이 한겨울을 따뜻이 보낼 수 있을 것이다.
< 낙엽 >
시몬느, 나뭇잎이 저버린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느,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낙엽은 너무나도 부드러운 빛깔, 너무나도 나지막한 목소리를 지니고 있다
낙엽은 너무나도 연약한 표착물(漂着物)들의 대지 위에 흩어져 있다
시몬느,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황혼이 질 무렵 낙엽의 모습은 너무나도 슬프다.
바람이 휘몰아칠 때면 낙엽은 정답게 소리친다.
시몬느,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발이 밟을 때, 낙엽은 영혼(靈魂)처럼 운다
낙엽은 날개 소리, 여자의 옷자락 소리를 낸다
시몬느,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가까이 오라:우리도 언젠가는 가여운 낙엽이 되리라
가까이 오라: 벌써 밤이 되고 바람은 우리를 휩쓴다
시몬느,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구르몽(1858~1915)
<단풍의 산길>
서리 내린 가을날
산길을 가면
찬 바람 살랑살랑
불어오고요
찬바람을 타고서
단풍잎들이
사뿐사뿐 길 위에
떨어집니다
바람찬 가을날에
산길을 가면
쓸쓸히 들국화만
피어있고요
떨어진 단풍잎을
밟아서 가면
단풍의 붉은 길이
열리입니다―
목일신(1913∼1986)
<가을비>
앞산엔 가을비
뒷산엔 가을비
낯이 설은 마을에
가을 빗소리
이렇다 할 일 없고
기인 긴 밤
모과차 마시면
가을 빗소리
박용래(1925~1980)
유정독서 모임은 11월 5일 목요일, 오후 6시 솔바람마루에서 진행됩니다. 함께 읽을 김유정작품은 <노다지>입니다. 한강의 작품 <작별하지 않는다>, 전 시간에 이어서 읽게 됩니다.
안내 말씀 드립니다.
11월의 첫 토요일 오전 10시 30분, 김유정문학촌 솟을대문 앞에서 '촌장과 함께 걷는, 실레이야기길에서 김유정과 친구맺기' 행사 이어집니다. 함께 읽을 작품은 < 만무방>과 <슬픈 이야기>입니다.
참가비는 없습니다. 각자 점심과 식수를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이 행사는 매달 첫 토요일에 작품을 달리해가며 진행됩니다.
https://www.kimyoujeong.org/bbs/board.php?bo_table=notice&wr_id=407
2026. 11.01 강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