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 스님이 만공 스님과 함께 먼 길을 나선 어느 날이었다. 한 낮에 민가는 눈에 띄지 않는 첩첩산중의 길이었다. 두 스님은 시장기가 들기 시작했다. 굽이진 산길을 돌아 어느 산마루턱에 당도했을 때 길 저편에서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오색 포장과 깃발 같은 것들이 늘어져 있는 상여의 행렬이었다.
고개 마루턱에서 쉬는 상여 행렬로 경허 스님이 만공 스님을 이끌고 다가갔다. 경허 스님이 상여 앞에서 염불 한 다음 음식을 청했다.
“시장해서 음식을 좀 청합니다.”
한 상여꾼이 장난스럽게 대꾸했다.
“행상(行喪) 길이니 술 밖에 더 있겠습니까?”
상여꾼의 장난에 경허 스님은 태연히 말했다.
“술이 있으면 술을, 고기가 있으면 고기를 주시지요.”
술을 달라는 말에 상여행렬의 모든 사람들이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아따 참, 별 중들을 다 보겠네.”
어떤 사람은 두 스님을 보며 빈정거렸다.
이때였다. 점잖은 상주가 나섰다.
“아니 큰 스님들이 어찌 술을 달라하십니까? 곡차라고 하지도 않고….”
경허 스님은 상주를 보며 답했다.
“시장한데 한잔 하면 되지, 굳이 다른 말할게 뭐 있겠소.”
어이가 없어진 상주는 술 한 대접을 듬뿍 떠서 내 놓았다. 막걸리였다.
헌데 경허 스님이 술잔을 받지 않고 손을 내 젓는 게 아닌가.
“잔이 너무 작소. 차라리 바가지나 동이채로 주시오.”
기가 막히면서도 기이한 스님의 행식에 흥미를 느낀 한 사람이 “어디, 동이 통째로 내 줘보지”하며 술이 가득 담긴 동이를 들어 경허 스님 앞에 내 놓았다.
경허 스님은 막걸리 한 동이를 단숨에 비워냈다.
이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있던 상주는 이 스님들이 틀림없이 도가 높은 스님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상주가 경허 스님에게 공손히 물었다.
“무애행(無碍行)을 하시는 도가 높은 스님들 같사온데 스님들의 자비로움으로 망인이신 우리 아버님의 명당을 하나 잡아 주실 수 없는지요?”
상주의 말에 경허 스님은 느닷없이 큰 소리를 버럭 질렀다.
“명당을 써서 뭣하게? 죽으면 다 썩은 고기 덩어리 밖에 되지 않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극진한 대접을 하면서도 혹시나 망자를 위한 영험함을 보일까 기대했던 상주의 동생들이 이 말을 듣고 모두 울화가 치밀었다.
상제들은 주정꾼의 주사 같은 경허 스님의 말투에 어이가 없어 모두 달려들었다.
“아니, 어디서 떠돌던 중놈들이!”
상장(喪杖; 상주의 지팡이)을 들고 당장에 후려칠 기세에 경허 스님이 맞섰다.
“네 이놈들!”
스님은 두 팔을 걷어 올리고 딱 버티고 섰다. 경허 스님과 만공 스님은 모두 육척이 넘는 건장한 체구였다. 스님들의 위세가 매우 당당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뜻밖의 사태에 상여꾼들과 회장꾼들은 그저 멍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 때였다. 상주가 상제들의 흥분을 가라앉히며 말했다.
“스님 말씀이 지당하십니다. <남화경(南華經)>에도 있듯 사람이 죽으면 까막까치나 구더기의 밥이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모자라서 알아 뵙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자손의 도리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을 알아주십시오.”
상주는 행상길을 재촉해 떠날 차비를 했다. 잠자코 있던 경허 스님은 무상설법(無上說法)을 했다.
“모든 것은 다 허망할 뿐이니 죽고 사는 것 원래 그러하므로
만약 모든 것이 참으로 허망한 줄 알면 그대들도 참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일세.”
생멸의 실상을 설하자 이를 듣던 상여 일행은 조용히 고개를 넘어갔다.
고개 너머로 상여의 구슬픈 소리가 바람결에 멀어져 가고 있었다.
어~ 노오, 어 ~ 노오, 어기야 농차 어~ 노오.
▶무상설법(無上說法) : 이 설법과 비교해 더 이상 높은 가르침이 없는 설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