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존재공(백규) 유작, 21-⑩]
初一曰立聖志明聖學夫存乎人者莫良乎志有志則功業成無志則隳志大則功業大志小則小其或有志而不立則與無志同其或違道而妄大則反不如小士庶人尙然况膺首出之運處作聖之位統萬方而摠萬機哉然則立志如何以堯舜自期而己如以堯舜爲不美則亦己矣如以堯舜爲盡美盡善之聖人則我 殿下所自期者舍堯舜而誰歟禹湯以下當在姑舍之科矣 殿下以天縱之姿同然之性毅然自奮以彼何人爲準的而心堯舜之心言堯舜之言行未及於堯舜一分歉然自視不敢自足旣爲十分舜猶恐不如堯旣爲十分堯猶恐不如天猛省直前刻心立志不疑不沮純亦不己則是乃堯舜而己志於堯舜而不及不失爲殷三宗周成康苟志於漢祖唐宗及之不過爲漢唐不及則漢唐中主以下今有士庶相詆以爲汝人品不過爲漢唐中主則莫不恚且怨至其自期則必舍第一等而寧取第二第三等此無他所見卑下志不弘大也雖然自古帝王處莫高之位贊言咸稱以堯舜而無反省之學自信己至堯舜心逸而志懈自聖而拒諫小則敗政大則亡國此則欲爲堯舜之心反爲害也何者但知堯舜之名之爲美而不知堯舜之所以爲堯舜也彼堯舜者未嘗自以爲己聖旣欽明濬哲矣而猶恐其有闕也旣博施濟衆矣而猶病其未盡也是以與天地同其大而四海之內莫不尊親也所以能如是者以其有聖人之學也其學非藻翰詞章之謂也堯舜以下傳至周孔而載之經書者是也昔有要朱子造朝之路者曰誠意正心之說皇上所厭聞勿復言之也盖國之常政在於刑法軍賦之類而誠正之說冷歇疎緩似無管照故世主每以爲曲士迂說而罔克念聞此治日之所以常少亂日之所以常多也夫誠意正心之說卽堯所謂執中舜所謂精一禹所謂安止幾康湯所謂若性緩猷文所謂緝熙不己武所謂無貳爾心是也若曰堯舜禹湯文武不知治天下之道則己矣至今稱二帝三王莫之或尙而相傳妙訣只此數句則必非迂遠沒功效之說也仲尼論九經而本之以思誠曾氏訓平治而先之以誠正顔子問爲邦而從事於克復子思推位育而戒懼愼獨爲工夫孟子談王道而求放心復善性爲旨要若曰孔孟曾思不達治天下之理則己矣至今以孔孟不得位爲可惜而相承密旨更無他術則必非濶遠欺後人之語也昔聖人必以君師爲言君以名師以學稱居是位而有是學則所謂天作之君師而爲聖帝明王若徒有是位而無是學則漢唐以下皆是也其謂繼天立極罔矣而其位亦不保矣甚可懼也伏願 殿下克念克愓立志以堯舜自期明學以孔孟爲師
宗社幸甚生民幸甚
〈해설〉 첫째, 옛 성인을 본받고 성인의 학문을 밝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좋은 점은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뜻이 있으면 결과가 있고 뜻이 없으면 결과가 없습니다. 뜻이 크면 하는 일이 크고, 뜻이 적으면 일도 적게 마련입니다. 또 뜻만 있고 실행하지 않으면 뜻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혹 그 뜻이 바른 길을 어기고 망령되게 크기만 하면 작은 뜻을 가진 것만 못할 수 가 있습니다.
선비나 백성들의 일들도 이와 같거늘 하물며 국가경영을 이어받아 왕의 위치에 계시면서 나라를 다스리고, 만물을 총람하시는 책임을 갖고 계시는 처지에서야 어떠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입지(立志)를 어떻게 가지시느냐가 관건입니다. 요(堯)․순(舜)의 정치를 원하시지 않는다면 몰라도 원한다면 요․순을 버리고 어느 분을 본받겠습니까?
임금님께서는 훌륭하신 자질과 성품을 지니셨습니다. 그리고 애쓰시고 계신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순 시대의 정치를 본받기 위해서는 마음과 언행까지 요․순을 이어받아 정사를 펴셔야 합니다. 그래도 요․순의 정치가 실현되시지 않더라도 스스로의 부족함을 탓하셔야 합니다. 미흡한 것을 만족하다고 여기셔서는 더욱 안 됩니다.
뜻하신 일이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겸손하셔야 합니다. 순임금은 일이 잘되어도 요임금에 이르지 못하다고 염려하였습니다. 순임금은 요임금처럼 정치를 하면 하늘이 만물에게 고루 혜택을 주셨다고 여겼습니다. 임금님께서는 이를 새겨 의심하지 않아야 합니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실행하시면 요순의 정치가 실현될 것이다. 뜻을 이루지 못해도 걱정이 지나치면 안 됩니다.
요순정치가 실현되지 않더라도 이미 은(殷)나라 삼종(三宗)과 주나라 성왕(成王․BC1115~1079)과 강왕(康王․BC1078~1053)의 정치는 이루어졌습니다. 임금님의 뜻에 따라 결과도 다릅니다. 만일 한(漢)나라 고조(高祖․206~195)나 당(唐)나라 태종(太宗․627~649)에게 두면 한과 당 임금의 수준에 이르더라도 화를 내며 원망하실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뜻이 낮기 때문입니다.
스스로의 뜻을 가장 높은 곳에 두고도 2등이나 3등의 결과가 나오겠습니까. 이는 보는 것이 적고 뜻이 크지 않기 때문에 나온 결과입니다. 대개 그런 제왕들은 지식도 없으면서 신하들의 감언이설과 지위만으로 요순이 된 것으로 착각합니다. 자신을 성인처럼 여기면서 진실한 충고나 간언은 듣지 않습니다. 그래서 작게는 정사를 그르치고 크게는 나라를 망치게 합니다.
요순이 되고자 한 것이 오히려 해가 된 것입니다. 어째서 그렇겠습니까. 그런 제왕은 요순의 이름만 좋아했지 요순이 왜 올바른 정치를 했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요순은 스스로 성인이 되겠다고 하지 않았으며, 공경함과 도리가 밝았습니다. 깊은 지혜를 가졌으며 스스로가 부족함이 없는지 두려워했고, 모든 백성에게 혜택이 고루 가게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태평성대를 누렸다고 합니다. 하늘과 땅에는 재앙이 없고, 온 나라 백성들은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윗사람을 공경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는 화려한 문장과 말솜씨가 있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성인의 학문을 바르게 실천한 결과입니다. 요순(堯舜) 이하 주공(周公)과 공자(孔子)와 경서(經書)에 있는 내용이 바로 이것입니다.
옛날 어떤 이가 주자에게 정치를 어떻게 하면 잘한 것인가에 대해 물었습니다. 주자는 임금이 만약 진실된 뜻과 바른 마음으로 행하지 않으면 두 번 다시 간언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대체로 법을 엄하게 적용하고, 군비(軍備)를 튼튼히 하고, 세금을 잘 거두는 것을 정치로 여깁니다. 그러나 정치에 성의(誠意)와 정심(正心)이 없으면 태평은 적고 혼란(混亂)이 많게 됩니다.
성의와 정심이 무엇입니까. 곧 요의 집중(執中)이요, 순의 정일(精一)이며, 우의 안지기(安止幾)요, 강왕(康王)의 약성(若性)과 탕왕의 수유(綬猷)며, 문왕(文王)의 집희불기(緝熙不己)요, 무왕(武王)의 무이이심(無貳爾心)입니다. 만일 이들 왕이 천하를 다스리는 방법을 몰랐다면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요순과 禹湯文武의 정치보다 나은 사람이 없다고 하니 앞서 밝힌 글은 터무니없는 말은 아닙니다.
성현들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공자는 이르기를 구경(九經)을 논하되 사성(思誠)을 근본으로 삼고, 증자(曾子)는 고른 정치를 성정(誠正)으로 가르치라 이르고, 안자(顔子)는 나라 다스리는 법을 극기복례(克己復禮)라 했습니다. 자사(子思)는 만물에 혜택이 고루 미치게 하는 방법으로 계(戒)․구(懼)․신(愼)․독(獨)을 배우라 일렀으며, 맹자는 어진 임금의 정치를 바른 마음과 성품으로 하라 일렀습니다.
어진 군왕이 갖춰야할 덕목은 더 있습니다. 군(君)은 위치(位置)로 말하고, 사(師)는 학문으로 말합니다. 그러나 어질고 총명한 임금은 스승의 글이 있어야 합니다. 이는 하늘이 낸 임금입니다. 임금의 자리에 있으면서 스승 될 만한 글이 없으면 어진 임금이 될 수 없습니다. 한당(漢唐) 이하의 왕들이 모두 이분들입니다. 이들은 천명으로 나라를 세우거나 왕위도 보존할 수 없으니 참으로 두려운 말입니다.
원하옵건대 임금님께서는 지극히 깊이 생각하시고 두려워하시되 뜻을 정치의 이상(理想)이라 할 요순(堯舜)시대에 두셔야 합니다. 이런 요․순시대의 덕치(德治)를 위해 학문을 밝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자(孔子)와 맹자(孟子)를 스승으로 삼으셔야 합니다. 두 성현의 가르침대로 정치를 하시면 종묘사직(宗廟社稷)은 물론 이려니와 백성에게 혜택이 고르게 돌아갈 것입니다.
(144-073일차 연재에서 계속)
첫댓글 (144-072일차 연재)
(장흥위씨 천년세고선집, 圓山 위정철 저)
72일차에도 '존재공(위백규)의 유작'이 밴드에 게재됩니다.
※ 주) 63~83일차(21일차)에는 '존재공(백규)'의 유작이 계속 이어집니다.
(존재공 유작 게재 10일차 입니다)
'만언봉사'의 정책제시 첫번째는 "성인을 본받고 성인의 학문을 밝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무엇보다 만언봉사는 목숨을 내놓지 않고는 결코 하기 쉬운 행위가 아님을 잊어서는 되지 않을것 같습니다.
그만큼 무게감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무곡
역시나 맹자와 공자의 인의예지를 기반한 文治가 돋보입니다./ 벽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