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멀리서 찾아온 친구, 학창 시절 같은 서클에서 활동하며 각자의 집을 오가며 쌓은 우정은 졸업 후 결집에 틈이 생깁니다. 그 이유는 친구가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이민초기 치열하게 살아야 했던 이민간 나라의 삶의 환경에 적응하는 시기, 서로의 안부조차 못했던 친구는 중년에 접어들면서 여유를 갖기 시작합니다. 그전까지는 무소식이 희소식이었습니다. 간혹 산에 오르면 정상에 서서 나도 모르게 북미방향을 가눔하고 서서 친구를 그리워하며 까치발을 세우기도 하였습니다. 친구의 성공은 자신과 주변과 친구들에게 까지 기쁨이었습니다. 이후 일 년마다 먼 길을 날아와 친구들과 우정을 재소환하고 즐기다 돌아갑니다. 한편으로는 같은 믿음을 갖고 있는 교우이기도 합니다. 몇 년 전 귀국하여 저녁을 함께 먹으며 담소를 즐기다 대구에 본원이 있는 모수도회에서 선물로 주신 묵주가 2개나 있어 하나를 잘 여미고 포장하여 늘 평화 안에서 삶을 찬미하라 하며 주었습니다. 이후 늘 소지하고 다닌다는 이야기가 참 고마웠습니다. 다시 방문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이미 마음은 마중하려 아름다운 운해 속에서 바위에 끝에 우뚝 서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벌써 만날 시간이 다가온 것 같습니다. 요즈음은 가급적 승용차를 멀리하고 대중교통수단을 애용한답니다. 약속된 장소까지 걸리는 시간을 웹을 찾아 살핀 후 환승까지 포함하여 살피니 약 40분이 가늠되었습니다. 플러스 20분을 덧셈하여 약 한 시간을 동선의 시간으로 정한 후 집을 나섰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1층에 있는 공간이동의 수단인 승강기를 부르려 버튼을 꾹 눌렀습니다. 누군가 몇 초 사이로 앞서 눌렀는지 나의 요구를 무시하고 승강기는 빠른 속도로 10층 이상을 쏜살같이 올라가 버렸습니다 독점이라는 의식이 깨져버리자 여분의 시간을 책정한 것이 잘한 일이라 느껴졌습니다. 돌발은 늘 사람을 초조하게 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무슨 사연일까? 예상외의 시간을 소비하고 서 있는 승, 하강기라는 기계, 평소와는 다른 시간을 소비시킨 후 내려와 문이 열리는 순간. 누구지 하며 사각공간을 살피자 낯설지 않은 사람모습이 잡혔습니다. 어색해하며 전해 오는 인사,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궁색하게 느끼면서도 기다림에 순간을 잊게 해 주었습니다. 천량의 빛을 탕감해주는 기분으로 앞서 내리며 긍정의 인사를 남기고 쏜 화살처럼 튕겨나갔습니다. 잘 다녀오십시오.라는 인사를 전해 불편을 해소 시켜 주고 단숨에 힁단보도를 가로지론 후 순시 간에 두 번의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한 후 바로 도착한 전철에 올맀습니다.
환승을 조건으로 한 동선은 맨뒤칸이었지만 앉아 갈 수 있는 확률 방정식에 의하여 첫 칸과 두 번째 칸에 올랐습니다. 내려 환승하려면 여덟 량을 스쳐 걸어야 하는 불편이 따름에도 불구하고 긴 동선을 선택한 것입니다. 시시각각 사라지는 근육의 손실은 갈수록 계단을 오르는 행동을 숨 가쁘게 합니다. 3월까지도 괜찮았는데 4월 들어 생긴 나약함입니다. 그 속 깊은 이유를 알고 있지만 일시적 현상일 거야? 하고 자신만만한 치부라 생각합니다. 환승하는 역사의 물밀듯이 흐르르는 많은 승객들 군상 속에 자위권을 상실하고 떠밀려 흐르듯 걸어야 하는 환경에서 벗어나 천천히 걷고 싶다는 생각이 기인된 한몫의 판단이 그러라 한 것입니다. 수많은 군중에 속에서 느끼게 되는 소외된 고독감은 현대인의 자화상이 아닌가 합니다. 차를 탄 후 묵직한 전철의 중량감과 빛과 같은 쏜 살의 이동은 대중교통의 총아입니다. 한 칸에 책정된 늙은이들과 기타 이유에 배정된 자리는 모두 12석, 이 자리의 선점은 굉장히 갈수록 어렵습니다. 늘어나는 늙은이들이 수효 때문이지요 두 번의 환승지점을 지나면서 비워진 자리 앉았습니다. 반은 서서, 반은 앉아서 갈 수 있는 호사의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꼬박 서서 가는 경우 굳어진 양다리는 순간적 이동이 순조롭지 못하게 하는 경험을 느꼈습니다. 경직된다는 것을 체험한 것입니다. 잘못하면 넘어질 수 있다는 것도 경험한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방편으로 생각해 둔 것은 바로 양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까치발을 만들어 오르락내리락하는 운동을 20회씩 타인이 느끼지 못할 조용한 운동을 살짝살짝 해두면 그런 현상에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늙는다는 것 여러 가지로 참 궁색한 구석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착석 후 조용히 눈을 감고 일 년 반 정도 즈음 왔던 친구의 모습을 떠올리며 추억을 더듬거렸습니다. 어느새 도착한 지하철 문 앞에 서서 나도 모르게 열려라 침께 하지 문이 스르르 열렸습니다. 물 흐르듯이 앞서 가는 다수의 사람들의 행렬을 보며 천천히 마의 계단을 올라섰습니다. 역시 힘드는군요. 체력은 근육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경험하는 순간입니다. 류신이라도 잘 챙겨 먹어야겠다는 생각과 육류와 콩과 관련된 음식도 잘 챙겨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어렵사리 이동식 계단을 타고 오른 후 다시 내려갈 때에는 계단을 선택하여 환승전철을 탔습니다. 그리고 도착한 충무로 역사 1번 출구를 오르자 주인공은 안 보이고 오늘 참석을 예약한 동무들이 유리창 너머로 보였습니다. 언제 보아도 즐겁고 반가운 얼굴들입니다. 다가 가 악수를 한 후 비워 놓은 가운데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주인공이 올 때까지 십여분 기다리자 짠하고 나타난 친구, 예약해 둔 식당을 향해 필동골목길을 걸으며 늦게 연락해서 미안하다며 귀국 후 분주하게 보낸 여행시간에 대한 정보를 들려주었습니다. 전국을 여행하고 해외까지 일가친척들과 함께 다녀와 이렇게 우리들의 만남이 늦어진 이유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으며 한 친구는 최근 에베레스트 트레킹 다녀온 이야기도 실감 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하고는 개인적으로 자일 파트너로서 숱한 암벽등반 경험이 있는 친구입니다. 이 친구는 늘 나를 만나면 산으로 이끌어 준 고마운 친구라라는 덕담을 해 오는 악우입니다.
일전에 하늘에 별이 된 친구와 해외에서 가장 가깝게 지낸 말년의 이야기와 그 친구가 귀국하여 우리와 보낸 시간들을 섞어가며 이야기를 교환해 가며 알찬 내용의 대화와 더불어 미식의 점심을 챙겨나갔습니다. 3시간 정도의 점심시간, 그리고 나와 필동에서 을지로 3가 역까지 걷다 다시 들어간 작은 식당, 이곳에서 간단한 요기를 주문하여 덕담을 나누었습니다. 첫인사와 마지막 인사에 깃든 주내용은 서로 건강을 기원하는 것이 상례가 된 지금의 우리들의 환경, 우리들의 마음은 십 대 후반과 스무 살의 청년기였습니다. 마음은 찬란한 봄날, 몸은 늦가을 나무에 걸린 마지막 잎새~~~ 오헨리의 마지막 잎새를 닮은 형극입니다. 역사 안에서 헤어지며 반복해서 쳐다보면 서로 손을 흔들었습니다. 오래토록 쌓아 놓은 향수가 가득 담긴 손 짓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일 파트너 악우와 나란히 앉아 요즈음 에베레스트 형편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 깊은 오지에도 점점 현대화 물결이 들어선다는~~~ 롯지에서의 휴식, 장엄하게 다가 왔던 고산이며 설산의 자락에서 일출, 길고 긴 트레킹 끝에 세워진 베이스켐프 아직도 마음속에 영롱한 구슬의 빛처럼 남아 있습니다.
https://youtu.be/4sQozDG7Cdo?si=373nN8gsocyjMdo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