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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說 허준(許浚) 第90話>
- 이은성 지음 / 소설 동의보감
免賤 第四
그 두 사람에게 허준이 계속했다.
"문맥은 간략하나 이 책의 저자가 그 이시진을 만나본 모양으로 아직 완성은 아니했으나 작자의 의도를 부연하여 그 완성된 책의 목표에 의할진대 세상 만병의 발단과 진행을 열여섯 줄기로 대별한 후 이어 1,892종의 동, 식, 광물을 망라한 약물의 각 효험을 상술하려는 방대한 계획인 걸 알 수 있소."
"천팔백아흔두 가지라 ..."
"시진?"
"지금 그 이시진이 전대미문의 방대한 의서의 완성을 위해 저의 나라 천지를 10여 년째 채집 여행중인데 그 완성의 시기는 앞으로 다시 몇 년의 세월을 더 쏟아야 할지 모른다 적고 있소."
"그래서 북경에 가서 이시진을 만나보려는 계획이오? 만나서는 어쩌려오?"
"십수 년째 나라 안을 여행해 다닌다는 인물이라면 내가 바란다 하여 어디서 마주치리란 행운을 바랄 수 없으나 혹 이 책의 저자를 만난다면 의에 일생을 바치는 이시진에 대한 더 좀 자세한 얘기를 들을 수 있으리란 기대는 합니다. 적어도 이 저자는 그 이시진과 더러 음신(音信)을 주고받은 느낌이 드니만큼."
"욕심이오."
자조도 농담도 지운 이공기의 말이었다.
"욕심이라니?"
"그건 의술을 떳떳한 생업으로 보아주는 고장에서나 꿈꾸어볼 수 있는 욕심이지."
"난 의원을 세상이 어떤 눈으로 보고 있는가를 말하고 있는 게 아니오이다. 세상 병든 동족들의 병고를 덜어주고자 자신이 살아 있을 제 자신의 의술을 뽐내는 의원은 많으나 자신의 의술과 체험을 책으로서 남겨 후손들의 병고를 치유할 손잡이가 될 책자를 남긴 이는 없다는 그 안타까움을 말하고 있는 것올시다."
"...!"
"...?"
"더러 학문을 지닌 사람 중에 의술에 대해 저술한 이들이 없다 하진 않으나 넒은 세상을 위하는 데 뜻을 두지 않고 제 문중 제 족벌에나 이용하는 옹색한 발상이 태반인 건 우리도 아는 일 아니오."
"분개할 것 없지. 당연한 일인즉."
이번에는 이명원이었다.
"당연하다니?"
"글깨나 알아서 무엇을 기록하노라 끄적이는 학문은 양반이나 누리는 특권이요 사람 축으로도 안 보는 세상 까막눈들 뿐인 병자를 상대로 양반이 책을 왜 짓소?
더러 장삿속으로 지어봄 직하지만 손에 돈때 묻히는 걸 부끄러이 여기는 그들이 그런 수고를 자청할 까닭도 없소.
차라리 그런 일은 나라에서나 할 일이오만 그런 아름다운 모습도 향약구급방이다 뭐다 펴낸 세종임금대 얘기지. 물론 양반 아닌 사람도 결심할 수 있으리다. 그러나 그 많은 세월 그 빛볼지 말지 한 일에 누가 일생을 걸어 이루고자 하겠소. 처자식 계량은 누가 맡으며 수만 장 소용될 종이값은 누가 대고 오만 가지 약효를 증험하는 그 노력은 아무나 결심할 수 있는 일이오?
일상으로 사용할 수십 가지, 많아서 수백 가지 정도의 기록이면 모르되 보제방이니 본초강목이니 그 어마어마한 중국의 규모에 견주는 책을 꿈꾼다면 뜻은 갸륵하되 그건 꿈이오. 의원을 사람대접하는 중국땅에서나 있음직한 꿈."
세 사람 모두 침묵했다.
그 침묵 속에서 중원의인전을 들쳐보는 이공기가 한숨을 가만히 내쉬는 소리를 들으며 허준이 허공을 향해 시선을 들었다. 그 눈이 자신에게 되풀이 자문하고 있었다.
그래 꿈이다. 물론 꿈이다.
'그러나!'
하고 허준은 자신에게 반문했다.
누군가 해야 할 일이다. 의업에 일생을 바치고자 하는 누군가가 ...
의술이 아무리 정예해도 그 의원이 생명이 있는 동안 의 술이요, 또 인간의 능력이 한계가 있는 것이라면 한 인간의 의술이 삼천리 방방곡곡 모든 이의 병을 살필 수 없다.
그렇다면 그럴수록 직접 의원이 달려가지 않아도 고칠 수 있는 방법, 그 의원이 죽은 후에라도 그 의술이 맥맥이 살아 있는 방법은 이 나라의 누군가도 중국의 주숙처럼 이시진처럼 보제방이나 본초강목에 뒤지지 않는 책을 적어내는 일이 아니겠는가.
'내가 할 일이다!'
방법과 수단은 뒷전이고 그 뜨거운 결심이 먼저 허준의 온몸을 불덩이 처럼 달구고 있었다.
이날부터 허준은 앓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태평한 대궐을 건너보며 무사안일하게 날을 보내는 것이 안타까워 견딜 수 없었다.
마치 세월이 귓전을 구르는 수례바퀴 소리처럼 들리고 있었다.
"피치 못할 무슨 일이 있사온지?"
끙끙거리는 남편의 보이지 않는 소리를 들으며 아내 김씨가 물었고 그 아내에게 허준이 자신의 소망과 결심을 얘기한 것은 정작에게 중국행을 간원하고 두 달이나 앓고 난 후였다.
억지로 갈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안달한다하여 단숨에 갈 수 있는 길도 아니었다.
그런 어느날 내국 밖 감나무에 홍시가 서리를 이기 시작했을 때 드디어 진위사 명목의 사신이 조직되고 있음을 소문들었다. 북경 명의 대궐 황후의 전각에 대화(大火)가 일어 그것을 위문해 가는 행차라 했다.
이제나 저제나 정작으로부터의 지명을 기다리던 허준은 고직, 노자, 일산봉지, 인로, 쇄마영장 등 사신 행차의 각 부서가 날로 구체적으로 짜여지는 걸 듣다 못해 스스로 정작을 찾아갔다.
정작은 반가이 맞았고 그 대답은 정에 겨운 것이었다.
이미 동절에 접어드는 시절인데 북방 대륙을 간다는 것이 평소의 몇 갑절 호된 고생이 되리라는 점에서 다음 차례를 생각하고 있노라는 것이었다. .
허준이 간청했다.
어차피 오가고 5개월의 노정이다. 갈 때 추위에 당하는 고생을 무릅쓰면 돌아오는 귀로는 춘삼월이니 귀로의 편안함으로 가는 길의 고생은 달가이 겪겠노라는 말과 함께....
그 허준에게 어의 양예수가 사행 배행의원의 허락을 내려준 것은 시일이 길게 걸리지 않았다.
또 뒤늦게 허준과 동행을 청원한 이공기가 의원의 정수가 한 사람 뿐임에 교부속(가마꾼)으로 부서를 바꾸어 동행이 인정된 것은 어의 양예수가 전에 없이 아랫것들에게 베푼 온정일 것이라 할 것이었다.
사행 일행이 떠나는 날 허준이 당분간 세 살과 네 살이 된 두 왕자의 수발을 떠나 향명 인사를 드리고자 진숙궁에 나타났을 때 이젠 허준을 동기간의 한 사람 만큼이나 어여삐 보는 공빈은 두 왕자에 이어 세번째 아이를 포태한 행복한 얼굴로 노자에 보태라 순은 열 냥을 내리었다.
배례하고 하직해 대궐을 떠나는 허준은 행복했다.
인정전 넓은 뜰에서 사행 일행이 임금께 기정(출발)을 아뢰고 궐문을 나섰을 때 뒤늦게 미사가 나타나 허준의 짐 속에 작은 짐을 보태었다.
그것이 북로 3천리를 갈 허준이 몸에 걸칠 방한 목도리요. 겹옷 한벌인 걸 허준이 안 것은 조선의 국경 관문인 의주에서 고국의 마지막 밤을 보내며 짐을 정리할 때였다.
다행히 서장관에게 정작이 부탁하였기 가마잡이인 이공기도 여타 가마꾼과 떨어져 허준과 기거를 함께 했다.
대륙의 밤은 추웠다. 밤뿐이 아니라 낮도 마찬가지였다.
세모를 맞이한 섣달의 대륙은 눈바람이 아우성을 치며 사행 일행을 몰아쳤다.
그러나 온몸에 휘감기는 눈보라와 살을 에는 듯한 북풍 속에서 허준도 이공기도 고생 아닌 상쾌감을 맛보고 있었다.
일망무제(一望無際])의 들 ...
누런 황토의 광활한 대지에 떨어지는 붉은 석양을 바라보며 두 사람은 지금은 옛전설이 되고 만 지난날 선조 고구려의 천군만마가 치닫던 옛 화제도 흥겨웠다.
압록강을 건너 첫잠을 잔 곳이 봉황성. 다시 사행 일행에 섞인 허준이 연산관, 요동, 심양, 광령, 사하, 산해관, 통주를 거쳐 명치 수도 북경에 닿아 명의 예부에서 영접 나온 관리들의 안내로 사신들의 객관인 북경 회동관에서 여장을 푼 것은 고국에서 아들 겸이 녀석들이 삼개 강나루에서 신나게 쥐불을 돌리며 놀 정월 보름 밤이었다.
북경의 밤은 소란했다.
넓고 화려한 황궁 하늘로 잇따라 솟아오르는 폭죽이 밤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조선 사신을 영접해서가 아니었다. 북경의 설은 정월 보름이 지나도록 신년 축제가 계속되는 탓이었다.
3천여 리 걸어온 노독을 앓으며 모두 곯아떨어진 객관에서 그러나 허준은 자지 않고 있었다.
이국의 선율, 그 호궁소리 때문이 아니었다.
본초강목 ... 그 아직 보지 못한 방대한 의서의 모습과 역시 한번도 면식이 없는 그 저자 이시진이란 중국 의원의 얼굴이 눈앞에 자꾸만 어른대기 때문이었다.
"꼭 보고 말리라!"
그것이 왕복 7천여 리를 걸어 오가는 목적이라는 듯이 다시 결심을 뇌었다.
허준을 포함한 조선의 사행이 북경에 도착, 명의 예부 관리들로부터 하마연의 환영잔치를 받은지 달포, 다행히 사행 중에 가벼운 배탈이 난 자 외는 큰 병자가 없어 허준의 행동은 자유로웠다. 그러나 그가 바라는 목적은 쉬 이루어지지 않았다.
명나라 의사일반을 총괄하는 태의감 관리들과 수인사를 하고 말문도 터봤으나 속국시하는 조선 내의원 직장이라는 하품직 의원을 상대로 따분한 의업에 관한 화제를 성의를 지니고 상대하는 이가 없었고 허준이 시종 꺼내는 중원의인전의 저자의 존재나 본초강목이라는 저서를 쓰고 있다는 이시진이라는 의원의 이름도 두 손 바닥을 저으며 금시초문이라는 형용뿐이었다.
"뇌물이 없어 딴전을 피우고 있는 게 아닌가?"
노심초사하는 하루하루가 오늘도 소득없이 지나갈 기미이자 줄곧 동행하던 이공기가 말했다.
조선 사행을 보고 중국관리가 물어오는 관심사의 첫째는 으레 인삼의 매물이 있는지 여부였다.
허준 들의 안내를 맡은 예부관원 정대안의 관심도 그랬다. 자신이 인삼을 지참하지 않았으며 대신 수달피 한 장을 가져왔노라며 선물로 내놓았을 때 상대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 수달피 가죽은 고국에서 김병조의 병을 완치해준 데 치사하여 공빈이 따로 내려준 선물이었고 이곳에서도 인삼 몇 근의 시가에 견줄 진품이었다.
그러나 그 정대안도 뜻밖의 선물에 되풀이 감사함만 연발할 뿐 허준이나 이공기의 질문에는 '부따이칭주(잘 모르겠다)' 그 한마디로 고개를 외로 꼴 뿐이었다.
"아무래도 며칠 더 기다렸다가 역원을 대동하여 상세히 물어봐야겠소. 소속이 확실한 인명이라면 몰라도 야인의 모습으로 떠돌아다닌다는 이시진이란 이름을 필담만 가지고는 우리의 본의를 제대로 알아듣기나 할지 그것부터 의문이오."
과연 정대안은 우호적인 미소만 얼굴 가득 띠고 원로의 객을 건너다볼 뿐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조선말은 제대로 알아듣는 눈치가 아니었다.
그러나 역원을 대동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말이 안 통하는 타국임에서 공무 이외에도 통역을 필요로 하는 관원들이 한둘이 아닌데다 허준이 지닌 의원이라는 직분이 통역들이 되돌아볼 만큼 대단한 존재도 못되어 개별 행동을 엄히 금하는 사행의 규율을 고집하기 때문이었다.
그 두 사람의 초조한 심정을 살피고 정대안이 오히려 앞장서서 짐작되는 의사 관계의 여러 인물들을 자기 집에 초치해놓고 면담을 주선하기도 했으나 여전히 그들의 입에서도 이시진이란 이름 앞에서는 '부따이칭주'가 나을 뿐이었다.
허준의 초조가 더해갔다. 말단 의원일지라도 사행에 끼인 이상 사행으로서의 공적인 일정이 있다. 황제의 나라의 황궁 참배, 의원과 관련되는 태의감 예방 따위로 시일이 여러 날 녹아났다.
"이 꼴로 불려만 다니다간 황궁 구경이나 하는 걸로 일정을 소일하고 말 텐데 무슨 수가 없으리이까?"
"나도 지금 그 생각을 하고 있소만."
"황궁 구경이 끝나면 다시 도성 내외의 명소와 고적 등을 탐방하고 유람할 일정이 또 기다리고 있다는데 ..."
"그거야 병이라도 칭탁하여 그 일정에서 빠질 수도 있겠지만 ... 그래서 우리 두 사람 거리에 나가련들 적어도 이시진의 이름 정도 알고 있노라는 안내자부터 만나야 할 터인데 어딜 가야 그런 인물을 똑바로 만날 수 있을지 그것 또한 난감한 일 아니겠소."
"그러니 ...?"
"금명간 어떤 결단이 없고서는 오가는 6천여리 이 길은 허행이 될 게 뻔하오."
허준의 입안이 또 메말라왔다. 양국이 인정하는 화급한 현안 문제가 개재되지 않는 한 사행의 북경 체류 기한은 엄격하게 40일로 제한되어 있었다.
그 제한된 40일 중 28일이 속절없이 지나가버린 것이다.
아니 앞으로 남은 열이틀도 귀국에 앞서 잡다한 준비를 빼놓을 수 없고 보면 정작 허락된 북경 체류의 날짜는 열흘도 남지 않았다 함이 옳다.
"어쩌리까?"
이공기가 또 물어왔을 때 문득 허준이 대답했다.
"서장관을 만나볼까 하오만."
"서장관을 왜?"
"당돌한 행위이긴 하되 정판관 그분과 교분이 있는 분이라 그걸 빌미 삼아서."
이공기가 재빨리 허준의 말을 알아들었다.
"부탁하고자 하는 일들이 그분의 임무와 상치된다는 것을 생각해보시었소?"
물론이다. 생각했다 뿐이랴.
지금 자기가 부탁하고자 하는 내용은 실사 미리 친분이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양식 있는 인간이면 차마 꺼낼 수 없는 얘기에 속한다.
서장관이 비록 임시직이긴 하되 정사 부사에 이은 사행의 세번째 큰 책임자요 행대어사라는 서슬 푸른 직책을 겸해 있다.
그 행대어사 직책이란 출발 후 귀국까지의 사행의 모든 동정과 공무에 관한 사안을 기록하는 것을 필두로 사행 구성원들이 허락없이 지정된 주거를 떠나거나 조선 사신의 일원으로서 함부로 품위를 해치는 행동에까지 감시하고 기강을 독찰하는 소임도 가졌다.
바로 그 서장관에게 지정된 공무일랑 병을 칭탁하여 빠져서 그 시간에 사사로운 관심을 채우고자 숙소를 이탈할 내락을 청할 수 있는가 ...
"만나보겠네."
갑자기 허준이 자신의 결심을 서두르듯 강하게 말했다.
"...!"
"이번 길 이대로 허행할 순 없어."
묵묵하던 이공기가 이윽고 찬의의 뜻으로 허준의 손을 굳게 잡았다.
그러나 찾아간 두 사람은 서장관을 만나지 못했다.
정, 부사와 함께 예부에 들어간 서장관은 아마도 밤이 늦어서야 숙사로 돌아오리라는 호위영장으로부터의 전갈을 전해 들은 것만도 해가 한낮이나 기운 시각이었다.
저녁에 다시 찾아올 것을 기약하고 대국의 경관을 구경하는 일정에 끼여 만리장성으로 향했다.
북경성을 나설 때 싸락눈이던 일기는 일행이 장성에 이르는 동안 점차 눈발을 더해가더니 장성 성벽에 오를 때는 온 천지가 백설로 뒤덮이는 장려한 눈보라로 바뀌었다.
장히 한 시각은 넘게 여름날 소나기처럼 눈보라가 퍼붓고 지나간 그 장성의 모습은 장관이었다.
고색창연한 검붉은 성벽들이 구름이 벗겨지는 하늘에 봉우리마다 치솟아 대륙의 야산을 끝간데 없이 휘감고 꾸불꾸불 이어간 광경이며 그 성벽의 돌쩌귀 하나하나엔 역사의 피비린내가 맡아지는 듯했다.
천수백 년간 흥망성쇠를 거듭하던 대륙의 패자들이 저마다 쌓고 꿰어 이어 탄생시킨 그 장성은 처음 북쪽에 웅거한 전쟁의 주력인 기마전단의 침입을 저지하고자 하는 게 목적이었으나 인간의 행복과는 한치도 상관없음을 그 목적에 얼마나 많은 죄없는 인간들의 눈물과 한숨에 묻어 완성된 것인가 ...
서로는 고비사막의 초입인 지아유이관에서 동으로는 발해만의 샨하이관에 이르는 1만 5천리 뺏고 죽이고 스스로 도망해간 인간사의 어리석은 증거가 거기 뻗어 있었다.
"크긴 크군!"
두 키도 세 키도 넘을 굉장한 눈더미 속으로 이어간 검은 장성의 성벽의 끝을 쫓던 이공기가 시선을 거두어 허준을 돌아보았다.
'이시진 ... '
허준이 또 한번 얼굴도 모르는 중국 의원의 성명을 가슴속에 뇌며 이공기와 나란히 앞서가는 안내자인 정대안 뒤를 따랐다.
몰아쳐 오던 북풍이 성벽을 들이치며 회오리바람처럼 눈가루를 흩날리다가 성벽을 타넘어왔다. 허준과 이공기의 도포자락이 역풍을 맞은 돛폭처럼 부풀어올랐다.
그날 밤 ...
허준과 이공기로부터 내방한 사유의 자초지종을 들은 서장관 이동형은 안색을 바꾸었다.
유해 보이다가도 시선을 박고 정색을 하면 금방 호상이 되는 그런 얼굴이었다.
예기치 못한 방문일 것이다. 그리고 한낱 말단 관원의 입에서 꺼내는 간청이기엔 너무나 당돌한 것이다.
과연 입을 연 그의 어조는 차가운 위엄이 온 얼굴에 서려 있었다.
"서책은 금수의 항목인 걸 아느냐?"
"아옵니다."
허준이 대답했다.
"인허를 아니 마치거나 공판되지 않은 책을 가져가려는 것은 더구나 중죄가 되는 것도?"
"아옵니다."
이공기가 고개를 조아린 채 부연했다.
"서책도 서책이려니와 이시진으로 알려진 그 인물이 관원이 아닌 야인임은 확실한 듯하옵니다."
허준도 말했다.
"이시진이란 인물을 만나려 함이 결코 사리를 도모함이 아니옵고 의원으로서 세상을 위해 쓰여질 의서를 펴낸다 함은 너나없는 소망이오나 일차 그를 만나 그 방법과 경험 등을 들어보고자 함이옵니다."
"그 점 믿어주시옵소서."
이동형이 두 사람을 한꺼번에 보며 말했다.
"내가 조선 사람이요 너희가 조선 사람이니 우리가 믿고 아니 믿고는 논할 것이 못된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너희들의 뜻이 아무리 사심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이곳에선 관허를 얻어서 보고 듣고 만나는 것은 막지 아니하되 그 외의 행동, 사사로이 이 나라의 서책을 국외로 반출하는 행위가 발각될 제는 자칫 목숨도 떨구는 수가 있어. 이도 아느냐?"
"그토록 심하게 제재하는 이유가 무엇이오니까!"
"자국의 문화는 곧 기밀로 여기고 있는 때문이다."
계속 ~~
著者, 放送作家 故 李恩成
<小說 허준(許浚) 第91話>
- 이은성 지음 / 소설 동의보감
免賤 第五
그날 두 사람의 개인 경력까지 일일이 묻고 나서야 서장관 이동형은 두 사람의 진심을 이해한 듯했다.
그리고 뜻밖에도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격려였다.
"너희들의 행위가 조선의 민서들에게 보탬이 되는 길이라면 막지 않으리라."
그러나 조선의 사행의 일원인 이상 자신이 사람을 놓아 이시진의 행방을 수소문할 인물을 찾아주기까지 경거망동하지 말 것을 당부한 끝에 한 가지 상징적인 말을 덧붙였다.
"국경을 오가는 물목 일체를 책임진 나로서 앞장서 너희들의 소원을 거둘 순 없되 내 알기로 책은 책이되 규방의 소일거리나 되는 전등신화 따위 책자는 더러 서사에서 구한 이들이 겉장을 바꾸고 들여온단 말은 들었다."
"겉장을 바꾼다 하오면?"
"논어의 겉장이라도 좋고 당시의 겉장도 ...
한족들이 자랑으로 삼는 책인즉 까탈을 걸지 아니해."
"...!"
또 그런 따위야 설사 내용이 드러났다 한들 오가는 길에 심심파적삼아 보았노라든가 객사에서 읽던 중 미처 다 보지 못하여 들고 왔노라 하면 굳이 따지지는 않는 수도 있다니 허준도 이공기도 서장관이 무슨 말을 들려주고 있는지 알아들었다.
두 사람은 서장관에게 깊이 고개 숙여 감사했다.
상마연은 출발 이틀 전에 있었다. 안내받았던 각 부서별이 아닌 사행에 속한 전원에게 직위의 높낮이대로 자리가 정해지고 역시 역할의 높낮이대로 명의 조정에서 내리는 기념품과 선물이 각자에게 배당되었다.
그리고 이날은 사행에 속한 모든 인물이 저마다 바쁜 날이기도 했다.
예부에서 주관한 그 공식적인 송별잔치가 파하자 문신들은 그 동안 사귀게 된 명 조정의 요로 관원들과 따로 자리를 마련하고 그 신분이 아닌 인물들은 거리 구경을 나가고 그것을 겸하여 고국에 가져갈 선물을 사들일 마지막 기회였다.
사신 일행 속에 묻어온 장사치들도 이날은 바쁘다.
도착하면 으레 겪는 현지 장사치들이 후려때리는 값에 불만, 아예 안 판다는 대답으로 물건을 내놓지 않은 그들도 이날쯤에는 그 동안 틈틈이 알아둔 그쪽의 장세를 근거로 짐을 털어 팔고, 돌아가 또 한 행보 이문을 남길 물건들을 꾸리기에 밤들을 세운다. 또 한패거리. 이국의 마지막 밤을 청루에 올라 꾸냥들의 술시중을 받으며 객지에서의 호기를 부리는 날도 이날이었다.
허준은 오랜만에 취해 있었다. 이시진이라는 인물을 얼마나 그리며 이곳에 왔던가.
만나보리라, 얘기해 보리라.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문도 일었다.
도대체 자기는 본초강목이라는 책이름을 들은 순간부터 왜 그토록 빠져들어갔던가. 굳이 생각컨대 자기의 마음 깊숙이 언제부턴가 지금 이시진이가 행하고 있는 새로운 의서 찬술이라는 꿈이 도사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건 언제부터일까, 고향 용천을 떠나 동서남북 어느 곳 하나 갈 곳도 없이 오로지 호구를 위해 지리산 그 숱한 골짜기를 헤매던 때부터일까.
모른다. 아니 그러한 꿈은 혜민서에서 만난 저 수많은 가난한 병자들을 접하면서부터 인지 모른다.
어렵게 씌어진 의서의 조목을 짚어주며 굳이 한자로 씌어진 오만 가지 어려운 약초이름을 항간에 통용하는 쉬운 우리말로 풀어주던 그런 어느날부터의 잠재했던 욕망이었을까.
콩나물을 일러 대두황권이라고 표현한 의서 속에서 오히려 내 나라 말의 아름답고 정겨운 표현을 상기하며 싹트기 시작한 내 나라 산천에 대한 사랑이었을까.
세종임금이 창제했다는 내 나라 문자를 언문이라 일컫되 그 언자를 일러 자전은 상말 언자로 부른다.
상것들이 쓰는 문자 상말 언자 언문이라 불러 시비거리야 될까마는 그 언문에 비해 진서로 우대받는 한자는 분명 내 나라 글이 아니다.
혜민서에 찾아든 그 수많은 가난한 병자들이 부르기 쉽고 알기 쉬운 콩나물 대신에 대두황권이라는 어머어마한 표현에 주눅부터 들어서 그 약재가 비싸고 귀한 약인가 하여 주저주저 물어오다가 그것이 우리 말로 콩나물임을 알자 가가대소하던 웃지 못할 모습에서 장차 조선의 모든 약초에 제 이름을 찾아주어야 하리라 잠시 잠시 마음먹었던 그러한 아쉬움들이 한겹 두겹 쌓여 마침내 만가지 의초들을 망라했을 법한 본초강목이라는 책이름 앞에서 자기는 서둘러 이곳 중국땅에 이시진을 찾아온 건지 모른다.
허준은 그 소득없이 돌아가는 허허한 가슴속에 자꾸만 술을 채웠다. 그리고 그 가슴에 고개를 쳐들기 시작한 것은 자성이었다. 의약에 관해서 이치나 그 응용에서 이 중국이 더 유식하고 더 활발했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이유는 많으리라. 의원을 번듯한 생업으로 보지 않고 천시하는 조선이라는 토양에서 뛰어난 의원, 번듯한 의서가 태어날 수 없다는 사정도. 그러나 따지고 보건대 내 나라 조선인들 의약의 역사가 결코 중국에 비해 짧은 것이 아니잖은가.
환웅천왕이 신시를 태백산 신단수 아래에 배포하고 풍백, 우사, 운사를 거느리고 곡, 명, 병, 형, 선악 등 다섯 강목으로써 360여 가지에 이르는 인간사의 모든 일을 주재하였다.
때에 한 곰과 한 호랑이가 있어 같은 동굴에서 살고 싶다고 간원하거늘 이에 환웅께서 신령스러운 쑥 한 줌과 마늘 스무 개를 주고 이르되 "너희가 이것을 먹어라. 그리고 백 날을 일광을 보지 않으면 사람의 모습을 얻으리라."
곰과 호랑이가 이것을 믿어 실천, 세이레 만에 곰은 여자의 모습이 되었으나 호랑이는 금기를 다 지키지 못하여 사람의 모습이 되지 못하였다. 이에 웅녀는 다시 신단수 아래서 혼인의 상대를 간절히 비니 이에 환웅이 사람의 모습을 빌어 웅녀와 혼인, 아들을 낳으니 그 이름을 단군왕검이라 ...
삼국유사에 유래한다는 그 얘기를 허준에게 들려준 것은 김민세다.
그리고 그때 곁에서 김민세를 거들던 안광익의 격렬했던 말... 생각하면, 아름다운 것은 모두 중국 땅에서 시작되어 건건이 우리가 고개숙여 받아들인 듯이 여기는 사대모화에 찌든 조정의 체통없는 모습을 그때 안광익은 침을 뱉으며 매도했었다.
또 기억이 있었다.
스승 유의태를 천황산에 묻은 후 내의원 취재를 앞두고 김민세의 권에 따라 내 나라의 동서남북을 유력하러 떠나려던 날... 아니 그 유력의 어느 길모퉁이에선가 김민세가 한 말... 쑥과 마늘을 주어 짐승을 사람으로 바꾸고 그 사람으로 하여금 대대 자손을 퍼뜨리게 한 환웅 그 사람이야말로 우리나라 의약의 창시조라 했던가 ...
또 생각난다.
땅의 남북은 기후가 다르며 땅의 동서가 물맛이 다를진대 같은 병이라도 어찌 약이 같을손가 하던 스승 유의태가 생전에 한 그 말
'그렇다면!'
수만 년 바다로 막히고 아득히 대륙이 수천 리로 떨어지게 한 남의 나라 중국의 의약이 어찌 내 나라 사람들이 오로지 한가지로 본받아야 될 보전일 것인가. 내가 정작 찾아야 될 것은 이 대륙 누구에게도 아닌 바로 내 나라 내 산천에서 얻어져야 할 해답이 아니던가.
그 허준의 상념을 깬 건 뜻밖에도 서장관 이동형의 출현이었다.
설핏 잠에 떨어져 있던 이공기도 튕겨 일어났고 허준도 급히 몸을 가누어 이동형을 맞았다.
놀란 건 또 있었다. 이동형은 혼자가 아니라 '내가 수소문할 자를 찾을 것이니 기다리라'는 그 약속대로 중국 관원을 대동해 온 것이다. 왕오라는 그 중국 관원이 이동형이 대동해 온 역관의 통역으로 들려준 얘기는 허준이 그토록 궁금해한 이시진의 편린이었다.
이시진은 호북현 기주 사람이며 자는 동벽으로 한때 금릉(지금의 남경)의 관리였다가 종래의 의서나 선학들의 업적에 비판을 가해 마침내 주위로부터 고립되어 관직을 내던진 고집불통의 일간인데 그러나 그 아들을 끝내 지지하는 역시 같은 의원인 아비와 그리고 역시 그 아버지를 따르는 그의 아들 그렇게 삼대가 독자적으로 전 중국땅에 약초 채집차 유랑해 다니는데 그의 귀향이나 귀경을 그 누구도 예측치 못한다고 했다.
아비와 자신과 아들, 그 고집쟁이 삼대의 모습이 더욱 허준의 뇌리에 감동적인 그림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허준은 듣기만 할 뿐 더 이상 이시진에 관해 캐묻지 않았다. 지금 허준의 머리와 가슴속에는 이시진보다 김민세와 안광익이 그리고 스승 유의태의 모습이 더욱 크게 자리해 있기에 ...
모르는 것보다 좀이라도 안 것은 반가운 소식의 하나다.
그러나 이젠 되었다고 생각했다.
지금 허준이 내리고 있는 결론은 이시진은 이 나라 이 중국의 의약을 위해 평생을 건 사람이라는 것이요, 자신은 이제 조선으로 돌아가 조선의 의약을 위해 일생을 던질 조선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그 자각은 허행에 끝난 이 중국행에서 이시진을 만난 것 못지않게 허준에게 새로운 용기를 북돋고 있는 것이다.
이밤 허준의 심정의 일단을 들은 이동형은 대동했던 중국 관원과 역관을 돌려보낸 뒤 다시 허준의 객사로 돌아왔다. 그리고 수행하는 종자는 주안상을 받들어 따라들어왔다.
술잔들을 굳이 한상 위에 놓게 한 것은 이동형이었다.
벼슬의 높낮이가 너무나 현격하고 세상을 살아온 연륜도 아득히 높다. 그러나 이동형은 기분이 좋은 듯했다. 잠시 의원들의 세계에 화제가 맴돈 후 곧 분방한 화제로 허준의 세상에 대한 안목을 시험했고 웃음과 맞장구 속에서 좌석은 나이도 신분도 떠난 파탈의 주석이 되었다.
그 이동형을 보며 허준은 세상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뜨고 있었다. 양반이요 지체 높은 관리의 가슴속에 이토록 말과 행동으로 세상의 격식을 깨고 스스럼없이 가까워지는 인물을 처음 본 것이다.
이날 세 사람은 바이갈을 통음했다.
허준은 세상이 오늘처럼 아름답게 보이기가 처음이었다.
허준은 자기가 알게 된 모든 이를 위해 감사하며 술잔을 들었다.
김민세를 위하여.
안광익을 위하여,
스승 유의태를 위하여.
또 낯모를 중국의 의원 이시진 그 삼대를 위하여.
또 형제 못지않은 정으로 동행하여 더더욱 우정이 쌓인 이공기를 위하여.
북경에서의 초조했던 40일. 허준에게 있어 그 중국의 마지막 밤이 소리없이 깊어가고 있었다.
명의 예부가 베푼 상마연을 끝으로 조선의 진위사 일행이 귀국길에 올라서 스무 날쯤. 아직 북방의 삼월은 바람이 찼다. 대륙의 땅거풀은 그제도 두꺼운 얼음을 박은 채 인마의 발길을 자주 미끄러뜨렸고 잠시 파란 한천이다가도 금방 때아닌 눈보라가 한바탕 휘몰아쳐 가기도 했다.
그러나 허준도 이공기도 지루하지 않았다. 요서와 요동벌 곳곳에 옛 조선족의 국운이 치성하던 때의 고성과 고적의 흔적이 심심찮게 나타나고 그럴 적이면 전승돼오는 그 시대의 얘기들이 주위의 입에서 다투어 되살아나기 때문이었다.
귀국의 노정이 3분의 1쯤에 이르는 금주에 이르기까지 한족들이 고려구라 비칭하는 괴수의 모습이 자주 눈에 들어왔다.
허준은 그것들을 처음 보았다.
이미 성채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 아득하게 넓은 땅. 누런 잡초가 잔설과 함께 뒤덮인 언덕 위에 화려한 무늬로 조각한 석대를 깔고 완강한 힘을 느끼게 하는 양어깨 밑으로 뻗은 두 앞발을 버틴 이상한 괴수는 한때 한족들이 장성을 쌓아 두려워할 만큼 공포의 대상인 고구려의 상징으로 지금도 강변과 언덕과 산맥의 곳곳에서 그 퉁방울 같은 돌눈을 부릅떠 한족들의 거점인 서쪽 중원 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 사나운 기골은 이 대륙의 옛 임자가 누구인가를 아직도 외치고 부르짖는 기세였다.
해태를 닮았되 해태가 아니다. 사자를 닮았되 사자도 아니다. 지혜를 상징하는 반듯한 이마와 송곳니는 괴수의 앞모습이요, 솔방울 모양으로 딴딴하고 총총하게 얽은 머리카락 밑으로 무한한 생산의 힘을 느끼게 하는 두꺼운 허리는 뒷모습이다. 또 금방이라도 포효할 듯 억센 턱에서 이어지는 옆모습을 이룬 전체의 생동감 있는 각흔과 골마다에 푸른 이끼를 돋운 각수의 솜씨는 어떤 예지, 어떤 상상력에서 북풍한설 2천 년 시련의 시공을 넘어 아직도 이 대륙에 뜨거운 입김으로 숨쉬고 있는 고구려의 성수로 쪼아냈던가.
'고구려 ... '
지금 와서 상기한들 허황할 수밖에 없는 옛나라의 이름이되 그러나 허준에게 있어 이번 길은 의서다 이시진이다 하는 직분과 관련지을 목표는 이루지 못했어도 이땅에 와서야 더더욱 자신은 조선 사람이라는 자각이 가슴속에 솟아났고 오늘날 이 대륙에서 밀려나 반도 안에 오므라든 국운에 대한 포한을 일깨우기도 했다.
더구나 이미 산도 강도 땅덩이의 이름조차 한족화한 저 흙더미 속에 저 수많은 고려구를 배치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조상들의 피가 흘러 배어 있으며 뼈가 묻혔을 것인가.
그리고 지금 옛 자랑스럽던 조상의 땅을 밟아 상국이라 일컫는 이민족의 대궐의 화재 따위로 진위사란 이름으로 수백 명 떼지어 몰려갔다 몰려오는 수모.
조선족이 고구려, 백제, 신라 세 나라로 나뉘어 패권을 다투는 중에 한족과 가장 접촉이 먼저 된 것은 고구려다. 요동별 너머로 국세를 확대했던 고구려는 자연 육속된 한족의 문화와 접촉이 잦았고 수의 문제 때 강남 오의 의원 지총이 의약서인 내외전, 약서, 명당도 등을 지니고 고구려에 들어와 머물다가 다시 왜로 건너가기까지 그 중국의 의학이 고구려의 의술과 접목되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고구려가 의학적인 모든 지식을 한족으로부터 전수했다는 것과는 다르다. 적어도 그보다 102년 전인 고구려 장수왕 47년에 왜가 양의를 구하여 백제에 사자를 보냈을 때 백제가 자국에 와 있던 고구려의 명의 덕래를 왜에 보내주었고 그 덕래는 왜의 난파란 곳에 주거를 정하고 자손 대대 의업을 행하여 왜인들로부터 난파약사라는 존칭까지 받은 것은 허준이 김민세한테서 들은 얘기였던가.
아무튼 고구려인 덕래의 의술이 섬나라 왜에서 꽃핀 것은 병의 치유를 무주의 방식이나 신불의 가호에 빌던 원시적 행위로부터 약과 시술에 의해 병의 원인을 다스리려는 고구려의 진일보된 의지식을 말하는 것이다.
'의지식을 중국에서만 구하려 한 것은 경박한 생각이다.'
천년 전 고구려 의원 덕래를 떠올리며 허준의 생각이 다시 거기에 미쳤다.
'한의란 한족을 위주로 한 의술이요 조선족엔 조선의 의술이 있을 터이다.'
요동벌을 통과해가는 허준은 갑자기 조선이라는 내 나라의 모습이 다시 보이고 있었다.
오늘의 한의라는 말이 지금의 명은 물론 몽고족이 지배하던 원, 그 이전의 한, 초, 송, 당, 수 그밖의 잡다한 송, 오, 위 등 그 모든 의술을 포함하여 종족을 대표한 한의라는 명칭이라면 우리의 역사를 통틀어 조선족을 상징하는 한마디는 무어겠는가. 근역이란 말도 생각났다.
의서의 여러 항목을 포함한 고서 산해경이라는 중국인의 지리책에 조선 산천의 가는 데마다 무궁화가 피어 있어 목근화의 나라라 이르고 이를 줄여 붙인 이름이 근역이다.
진이란 말도 생각났다. 진이란 동북방을 의미하는 문자로 고구려를 승계했다고 자처한 발해의 본이름이 진이며 역시 고구려를 다시 일으킬 것을 자처하여 신라말 궁예가 세운 태봉국도 마진 즉 동쪽이란 의미를 포함했다. 또 있다.
조선을 이르는 또 하나의 말 청구라는 말도 본래 동쪽바다 밖 신선이 사는 세계를 일컬었고 또 하늘에 청구라는 조선땅을 맡은 별이 있어 조선을 청구라 부르게 되었으며 글자의 뜻 또한 청은 오색 중 동방을 나타내는 빛이며 동방세계를 의미한다 할 때 조선의 상징은 모두 동녘 동자에 합일되는 것을 알았다.
그럼 중국의 한의에 대칭하여 조선의 의술은 당연 동의라는 말로 집약된다고 허준은 생각했다.
이시진의 중국의 의약술을 망라한 책과 같은 책을 만들고 싶다는 허준의 머릿속에는 책명의 머리를 동의라는 두 글자를 붙여야 할 것이라고 결심했다.
1,892종에 이르는 동, 식, 광물의 약효를 망라하리라는 이시진의 방대한 본초강목이라는 소문을 다시 머리에 떠올리며 그에 필적하는 조선의 조선 사람을 위한 상상 속의 대저를 꿈꾸며 허준은 다시 한번 동의라는 말을 머릿속에 뇌었다.
수삼 일 전에 본 요서땅에 떼지은 고려구들의 모습은 옛 고구려 전사들의 전진기지였을까?
요동땅에 들어서며 보이지 않던 고구려 석수들의 무리지은 모습이 다시 한번 보고 싶다고 아쉬워하는데 홀연히 또 한 쌍의 석수가 저 멀리 언덕 위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허준은 반가웠다. 이미 그 석수의 모습에는 관심을 지운 일행으로부터 벗어나 그 언덕 아래로 다가간 허준은 자신도 모르게 옷깃을 여민 후 합장했다.
석상들은 의연히 서녘을 부릅떠 본 채 천 년 만에 나타나 알은체를 하는 후손을 돌아보려 하지 않았다.
5개월을 사흘이나 넘긴 사행이 도성 경계에 당도했을 때 한양의 초목은 긴 겨울살이를 마치고 수목의 가지마다에 신록의 새 순이 무리무리 돋아 초여름을 맞고 있었다.
회정의 소식이 전해졌는지 이명원이 무악재 밑 모화관어귀까지 마중나와 주었으나 그 얼굴은 어두웠다.
오랜만에 만난 우정들이 이윽고 그 어두운 눈빛을 발견하고 영문을 물었을 때 이명원이 전한 얘기는 놀라운 것이었다.
공빈이 산병으로 몸져 누웠는데 회생의 가망이 어렵다는 설이 떠돈다고 했다.
"대체 초산도 아닌 분이 산병으로 위독하다니 믿을 수가 없네."
"좌우간 진숙궁은 지금 숨쉬는 소리 하나도 없이 긴장해 있네. 병명은 심하통으로 밝혀졌네."
"심하통!"
심하통은 중증의 위병이다. 허준은 믿어지지 않았다. 사행을 떠날 제 두 왕자 생산하고 세번째 아이를 포태한 더없이 행복한 모습으로 여로에 보태 쓰라며 순은 열 냥을 내려주던 화사한 얼굴이 어제의 일인 듯 선명한 것이다.
서장관 이동형께 아뢰어 남 먼저 입궐해 가며 허준과 이공기가 이명원에게 물었다.
"그 위독한 원인이 심하통이 주라던가, 태아가 원인이라던가?"
"심하통도 갑자기 도진 모양이고 태아의 위치는 역산이라고 들었네."
"아이가 거꾸로 들어앉은 것쯤 어려운 병으로 여길 건 없잖은가. 또 심하통이라 하여 아무리 당월(해산시기)과 겹쳤다 한들."
허준은 말을 맺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내노라 하는 의원과 왕실의 해산을 맡아보는 산실청 여의들이 무수히 있을 터이다. 이미 위독하다는 병자를 놓고 자기의 자신만을 내세울 일이 아니다.
오랜만에 보는 대궐은 오월의 신록에 싸여 평화로웠다.
진숙궁으로 가는 연못을 긴 돌다리 위엔 어머니의 위급함을 알 리 없는 세 살, 네 살의 임해군과 광해군 두 왕자를 데리고 나온 궁녀들의 모습도 보였다.
허준은 이명원을 돌아보았다. 진숙궁의 위기가 믿기지 않아서였다.
"전하를 비롯, 어의 양대감도 정판관도 계시네. 공빈이 여러 날 전부터 그대를 찾았었으니 이대로 나타나도 허물이 없을걸세."
"나를?"
"산실청 수발은 여의원들이 할 것이나 심하통에 관한 한 공빈께서 그대의 처방을 원했던 듯하이."
그러나 모든 것이 갑자기 닥치고 있었다.
허준 들이 진숙궁 첫문을 들어서 화원에 이르렀을 때 산실처라 일러준 진숙궁에 딸린 별채에서 상궁들의 곡성이 터져나오고 있었다.
계속 ~~
著者, 放送作家 故 李恩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