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國서부 여행기
이영호
미국에서 사는 친구가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며 자신은 몸이 불편하니 나보고 관광 겸 왔으면 해서, 아내와 상의 좋다고 하여 가기로 했다.
나는 여름방학이 시작되자 여행계획을 준비한 대로 떠나기로 하고 2002년 8월 6일 오전 일찍 서둘러 아내와 함께 배낭과 간편 옷차림으로 인천공항을 향해 집을 나섰다.
오전12시(1일차) 집에서 출발하는데 비가 쏟아지기 시작, 우산을 꺼내 사용하였다. 집 앞에서 택시로 김포공항까지 가서 다시 인천 국제공항까지 가는 공항 전용 버스를 탔다. 오후 1시경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다.
여행하는데 될 수 있으면 간단히 다니는 것이 편리하기 때문에 배낭 속에는 될 수 있는 한 많이 넣고 다니지 않기로 했다. 몇 번의 여행 경험에서 얻은 지식이라고 생각한다. 도착 후 여유시간이 많이 있어 우선 우동가게에 들여 점심을 먹은 후 공항 안을 이리저리 구경하고 다녔다. 새로 지은 인천 국제공항은 세계적으로도 손색이 없다.
오후 5시에 여행사에서 직원이 나와 출국 수속을 해 주었다. 비가 계속 쏟아지기 때문에 몹시 걱정했지만, 7시 30분에 탑승(아시아나) 비행기는 미국을 향해 하늘 높이 날기 시작, 우리를 태운 비행기는 계속 날아가 11시간 만인 오후 2시 30분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였다.
8월7일(2일 차) 한국과 미국의 시차는 12시간 차이가 난다. 지금 한국은 밤이고 미국은 낮이다. 시곗바늘과 날짜를 하루 앞당겨놓았다. 공항을 빠져나오니 관광 일행 단을 마중을 나온 여행사 관계자인 가이드가 우리를 친절하게 맞이한다. 대기한 버스에 탑승하니 각처에서 온 여행자들이 모두 42명이라고 한다. 가이드는 오늘부터 한 가족이 되어서 일주일간 잘 지내야 한다고 하면서 여러 가지 설명과 안내를 거듭하였다.
곧이어 샌프란시스코 시내 관광이 시작되면서 유명한 금문교 다리를 관람하고 이어서 유람선을 타고 가이드가 일일이 설명해주었다. 금문교가 대표적인 자살 장소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유람선을 타고 한 바퀴 돌면서 멀리 보이는 알 카트라 섬은 중범죄자들의 수용소였다고 하며, 부둣가 바다 갑판에는 물개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피트 39거리를 돌아보며 커피도 한잔 1불 50센트 사서 먹었다. 미국인들이 살고 싶어 하는 1위 도시가 샌프란시스코라고 한다. 차이나타운 등 시내 관광을 하고 저녁식사는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한일관 식당에서 하였다.
저녁 8시에 호텔에 도착 여장을 풀었다. 미국 땅에서 첫 밤을 맞이하는 기분을 그냥 보낼 수 없어 아내와 함께 맥주를 사서 마시다가 12시 잠자리에 들었다.
미국 8월8일(3일 차), 모닝콜 소리에 기상해보니 7시다. 8시에 호텔 식당에서 빵과 간단한 과일 음료로 식사했다. 캘리포니아 대농장을 둘러보고, 이어 버스에 탑승 요세미티 국립공원으로 이동 관람하고, 최대의 농업도시 유명한 건포도, 오렌지밭 후레스노 도착 관람 후, 호텔투숙 밤 10시경 취침하였다.
8월9일(4일 차), 아침 식사후 사막으로 출발, 끝없는 광야의 길, 정말 미국이 넓은 나라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가도 가도 끝없는 사막을 차창 밖을 바라보면서 가이드의 계속 설명을 들었다.
미국의 최대의 곡창지대 후레스노 베이커스 필드를 지나 바스토우에서 점심을 먹고 서부 개척 시대의 모습을 재현한 캘리코 은광 촌을 관람하고, 계속 넓고 끝이 안 보이는 사막을 달려 오후 5시에 라스베이거스에 도착 저녁 및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저녁식사후 라스베이거스 야경을 관광하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쥬빌리쇼를. 값이 비싸지만 안 보면 후회할 것 같아 관람했다. 의상이 너무나 화려하고 과연 대단한 쇼였다. 라스베이거스는 도박의 도시라 궁금해서 들어가 보았다. 혹시나 하고 게임을 했다. 5달러를 잃고 나왔다. 여기 호텔은 시계가 없다고 한다. 늦은 시간에 호텔로 돌아왔다.
8월10일(5일 차), 7시에 기상 아침 식후 라스베이거스를 뒤로하고 세계 최대의 인공호수인 미드호를 거쳐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그랜드캐니언에 도착 그 광활한 경관이야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계곡마다 눈앞에 펼쳐있는 그 모습은 “야! 굉장하구나”하고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실내 전망대에서 기념사진도 찍고 선택사항으로 협곡 사이를 경비행기를 타고 지나가면서 관람하는데, 나는 고소 공포증으로 무서워서 신청하지 않았다. 대신 그랜드캐니언 아이맥스 영화관을 관람하였디, 코로라도 강변도시 라플린에 도착 석식후 호텔에 투숙하였다.
8월11일(6일 차) 아침식사후 라플린 출발, 광산촌 관람, 로스안젤레스 도착 시내 관광 및 점심식사후 오후에 헐리우드 스타의 거리 관광, 차이니스 극장, 다운타운 쇼핑, 만리장성이라는 중국음식점에서 저녁식사 후 공항까지 버스로 이동하였다. 나와 아내는 공항에서 그동안 함께했던 일행과 작별 인사를 하고, 친구 안달홍에게 전화 연락을 하니 저녁 8시경에 친구 부인이 승용차를 몰고 우리를 마중 나왔다.
부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한인타운에 살고있는 집에 도착, 친구는 나를 보자 반가움에 나를 붙잡고 흐느끼며 운다. 고국 떠나온 지 20년, 그동안 온갖 고생 하면서 살아온 지난 일들과 중풍으로 쓰러져 불구가 된 자신의 설음이 북받쳐 한참이나 나를 붙잡고 흐느껴 울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밤늦도록 지난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큰아들의 2층 방을 비워둔 곳에 여장을 풀고 친구 집에서 12시경 첫 밤을 보냈다.
친구 안달홍은 내가 서울에서 대학 다닐 때 알게 되었다. 대구가 고향이고 여름방학 때 부모님이 있는 곳에 같이 내려갔다. 대구 시내에 있는 성공회 사택에서, 친구 아버지는 몸이 불편하여 누워 계셨다.
친구 말에 의하면 아버지께서 일제 강점기 때 독립운동 하시다가 감옥살이를 오랫동안 하셨다고 한다. 그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했다. 어머니가 간호 시중을 들고 계셨다. 그 후 며칠 후에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친구의 둘째 형이 성공회 신부인데 그 가족들이 모두 성공회 교인이다.
친구와 나는 한동안 자취생활도 같이 하며 지냈다.
지난 이야기지만 친구와 나는 추운 겨울날 돈도 한 푼 없고 배는 고파 굶고 누워 있는데, 친구가 나가자면서 남대문 시장에 가더니 자기가 입고있는 좋은 가죽 잠바를 중고 옷 가게에 팔아서, 면 잠바로 바꿔 사 입고 남은 차액으로 시장 음식점에 들려 배부르게 먹었던 일이 있다. 더욱 의리와 우정으로 맺은 친구가 되었다.
친구는 얼마 후 자원해서 육군에 입대하였다. 돈 벌어 오겠다고 월남 백마부대에 지원하기도 했다.
나도 그 이듬해 영장이 나와 군에 입대하였다. 서로 편지 연락하며 지내다가 제대 후 친구는 돈 벌겠다고 학교도 복학하지 않고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돈도 벌고 집도 마련하고 생활이 안정되자 결혼도 하였다.
둘째 형이 미국으로 발령이 나서 가게 되니 그 후 첫째 형, 셋째 형 식구들이 모두 이민을 갔다, 막내인 친구가 어머니를 모셨다.
그 후 나도 결혼하고 서로 가족들이 오가며 잘 지냈다. 친구는 아들 둘 낳고, 나는 딸,아들이다. 친구는 우리 딸을 보고 나중에 며느리 삼겠다고 예뻐해 주었다. 그 후 친구 어머니마저 돌아가시고 친구도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이민을 가기 전에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었다.
이민가서 목회 활동도 잘한다며 가끔 한국에 나올 때면 내 집에서 묵기도 했었다. 국제 전화로 첫째 아들 민식이가 MIT 공대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했다며 자랑하기도 했다.
그 후 세월은 흘러가면서 전화와 우편으로 서로 소식을 지내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갑자기 중풍으로 쓰러졌다고 연락이 왔다.
많은 고생과 노력으로 회복은 되었으나 후유증으로 정상적인 활동을 못 하며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는데, 친구한테서 미국으로 꼭 한번 여행 삼아 오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여행을 하게 된 것이다.
8월12일(7일 차) 아침에 눈을 뜨니 8시가 넘었다. 늦잠을 잔 것이다. 며칠 동안 여행 일정과 시차로 시달렸던 것이다. 친구 부인이 해주는 한식 아침식사를 했다. 친구 집은 2층 콘크리트 식이다. 2층은 침실이고 1층은 침실과 거실 겸 식탁이 따로 되어 있는 건물이다. 뒷마당이 있고 창고가 있다. 대지면적이 200평 정도 되보인다. 친구는 3박4일 일정으로 그랜드캐년 만큼이나 멋진 곳에 비행기 예약을 해놓았으니 미국 구경 잘하고 가라고 진심 어린 호의였으나 나와 아내는 극구 사양했다. 친구가 몸이 불편하고, 귀국할 비행기 예약 표를 보여 주면서 성의는 고맙지만 일정상 안 된다고 했다.
그제야 친구는 물러서면서 그럼 오늘 일요일이니 LA 시내와 가볼 만한 곳에 구경이나 시켜주겠다며, 오전 11시경 큰아들 민식이가 오늘 집에서 쉬니까 부모님을 위해서 운전하겠다고 나섰다. 친구 아들 민식이는 멋진 청년이 되어 있었다.
아름다운 산타모니카 해변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웨스트 우드’ 산 중턱에 자리 잡은 현대식 ‘게티 센터’ 박물관(JPaul Getty Museum)을 관람하였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고미술품과 18세기 프랑스의 장식 예술품 등 고급스러운 작품들이 가득하다. 2층에는 고흐, 렘브란트, 세잔,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박물관 관람을 하고 시내로 나와 뷔페식 음식점에 들렸다. 푸짐하게 진열되어 한결 구미를 당기게 했다. 주인이 우리를 위해서 특별히 음식을 따로 마련해주어 우리는 맛있게 먹었다.
점심 식후 롱 비취라는 경치 좋은 바닷가에 나가 선상 호텔에 들러 커피도 한잔하고 장시간 휴식을 취하다가 밤 10시경 집으로 돌아왔다.
8월 13일(8일 차) 아침 늦게 일어나니 친구 부인은 아침 식사를 차려놓고 직장에 나가고 없다.
오후 1시경에 친구 부인이 집에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또 나가자고해서, 친구 부인이 운전하여 우정의 종각이 있다는 바닷가 언덕에 갔다.
전두환 대통령 때 이 언덕을 매입해서 LA 시민을 위해 기증했다고 한다. 전두환 기념식수도 있다.
우리는 다시 바닷가 음식점에 가서 저녁 식사를 하고 집에 돌아왔다. 친구의 집에서 마지막 날 밤 친구 가족들과 맥주도 한잔하면서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8월14일(9일 차) 예정대로 귀국하는 날이다. 오후 2시 비행기다. 친구와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12시경에 친구 부인이 회사에서 돌아와 우리는 친구와 석별의 아쉬움을 나눈뒤 부인이 운전하여 공항까지 태워 주었다.
LA 공항에 도착 절차를 밟고 귀국 비행기에 올랐다. 11시간 동안 계속 날아와서 기내에서 주는 저녁, 다음 날 아침, 점심을 해결했다.
8월15일(10일 차) 오늘은 광복 57주년 기념일이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오후 2시경. 공항버스를 갈아타고, 다시 택시로 집에 도착하니 오후 4시 경이다, 그동안의 긴장과 피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린다.
인생이란 마음 먹는 대로
되는 것이 있고 안 되는 것도 있다.
노력 끝에 성공, 고생 끝에 낙(樂)
아쉬움과 미련이 남는 인생
만남은 잠시지만 인연은 소중한 것
좋은 인연으로 살아가고
이 세상 태어나 살아가는 동안
사람답게 살다 가는 것이...
2002.8. 30.
첫댓글 이영호수필가님
미국서부 여행기 잘 읽었습니다
저는 2017년에아들이 LA 파견근무때 방문하여
미서부여행 을 했었는데 여행기를 읽어보니 다시 여행하는 기분으로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ㅎㅎ
신두업 회장님
읽고 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행은 삶의 활력소가 되지요
늘 건강 하시고 행복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