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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불이의 공전보(共戰譜)
소설《신·인간혁명》과 함께 걷는다
제12회 아키타·야마가타②
웃음을 잃지 않고
자, 투쟁하라!
오키타마 향토제전
제8권 ‘대도’에는 제1차 종문사건 당시, 학회를 중상하는 폭풍우가 휘몰아친 야마가타현 오키타마지역의 분투가 그려져 있다.
오키타마는 야마가카현 남부에 자리한 오네자와시, 난요시, 나가이시 등이 있는 지역이다. 1978년 1월, 이곳에서 개최한 어강(御講)에서 주지가 악의에 차서 학회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일방적으로 “학회는 어처구니없는 방법(謗法)을 저지르고 있다.”고 계속 비방했다. “탈회하지 않으면 장례식도, 제사에도 가지 않겠다. 사찰에 유골을 안치할 수도 없다.”는 말을 들은 노부인도 있었다.
그 소식을 들은 동지는 “우리에게 신심을 가르쳐준 것은 학회가 아닙니까!”라고 필사적으로 설득했다.
고투하는 나날이었지만 오키타마의 벗은 지지 않았다.
이치도 오키타마 멤버들에게 계속해서 시를 지어 선사했다.
“눈보라에도 / 가슴 펴고 나아가는 / 자네 있기에 / 야마가타의 대지는 / 공덕으로 향기롭구나”
“생애 / 행복을 정하는 때는 / 지금이라고 / 웃음을 잃지 말고 / 자, 투쟁하라”
신이치에게 받은 시는 열세 수(首)나 되었다.
신이치의 격려로 분기한 동지는 새로운 희망의 물결을 일으키고자 지역문화의 부흥을 목적으로 민요 등을 공연하는 ‘오키타마 향토 제전’을 열기로 했다.
1978년 8월 6일, 요네자와에서 축제가 열렸다. 신이치는 일본을 방문한 미국 멤버들과 연수가 잡혀 있어 도쿄를 떠날 수 없었지만, 이날 도호쿠의 노래 ‘아오바의 맹세’를 완성하여 파견한 간부에게 연락했다. 그때는 축제의 낮공연이 끝난 직후였다. 다 함께 의논해 저녁공연에서 노래를 선보이기로 했다.
이 축제에서 합창지도를 맡은 멤버는 축제 장소에서 요네자와문화회관으로 갔다. 그리고 테이프에 녹음된 노래를 전화기로 들려달라고 하여 마이크를 수화기에 대고 녹음했다. 녹음한 원음을 몇 번이고 들으며 악보에 옮겼다.
완성된 악보를 복사하고 남녀청년부 합창단 20명가량이 요네자와문화회관에 오도록 했다. 저녁 공연 시간이 다가왔지만 모두 환희와 결의에 넘쳐 연습했다.
저녁 공연 시간이 됐다. 피날레가 끝난 뒤, 도호쿠총합장인 아오타 스스무가 인사에 나섰다.
“야마모토 선생님이 작사, 작곡하신 도호쿠의 노래가 오늘 완성되었습니다! 곡명은 ‘아오바의 맹세’입니다. 그럼 발표하겠습니다!”
합창단이 먼저 노래를 선보이고 이어서 다 함께 연습했다. 모든 참석자가 노래하는 대합창이 시작되었다. ‘아오바의 맹세’가 처음으로 도호쿠 천지에 울려퍼진 순간이었다. 그것은 야마가타의 자랑스러운 역사가 되었다.
당시 남자부 본부장으로 분투한 미야코 가즈오 씨(야마가타현 총주사)는 “가장 고통 받은 오키타마에 투쟁하는 혼을 불어 넣어 주신 이케다 선생님의 격려가 바로 ‘아오바의 맹세’ 발표였습니다.” 하고 힘주어 말했다.
일찍이 중학교 음악교사이던 미야코 씨는 음악적인 관점에서 ‘아오바의 맹세’에 담긴 스승의 마음을 이렇게 포착했다.
“곡조는 힘차면서도 폭넓은 분위기를 담고 있습니다. 음 하나하나에 힘이 있으면서도 옥타브의 도약도 있습니다. 도약하기 전에는 단단히 발판을 다지는 음도 있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소중함 그리고 벽을 부수는 도전 그리고 그 토대를 만드는 일의 중요성 등 다양한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한 박자를 세분하는 셋잇단음표도 많이 사용했는데 그것은 ‘일어서야 한다!’는 울림이 되어 가슴에 울려 퍼졌습니다.
곡을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지만 저는 선생님이 작곡한 ‘아오바의 맹세’의 음 하나하나와 멜로디에서 깊은 의미를 느꼈습니다.”
제자의 맹세가 담긴 곡이자 스승의 진심이 담긴 곡인 ‘아오바의 맹세’를 노래할 때 도호쿠 건아의 혼은 고양된다.
눈 속의 아키타 지도
제29권 ‘청신’에는 1979년 1월 14일에 아오모리문화회관에서 아오모리와 아키타의 합동대표간부회를 개최한 모습을 언급했다.
그리고 제30권 하(下) ‘승리의 함성’에는 아키타 광포사에 빛나는 ‘눈 속의 아키타 지도’의 드라마가 생생히 묘사되어 있다.
1982년 1월 10일, 신이치는 은빛으로 물든 아키타를 방문했다. “이런 한겨울에 굳이 가야 하느냐”는 주변의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제1차 종문사건으로 ‘남쪽의 오이타’ ‘북쪽의 아키타’라고 할 만큼 악랄한 종문의 승려들이 동지들을 괴롭혔다. 그리고 그 바로 전 해의 12월 오이타 지도에 이어서 새해가 되자 가장 먼저 아키타로 갔다.
신이치는 공항에서 차를 타고 아키타문화회관(훗날 아키타중앙문화회관)으로 갔다. 도중에 신이치의 방문을 기다리는 학회원의 모습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다. 그때마다 신이치는 차를 세워 벗의 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앞으로도 나는 여러분을 지키겠습니다. 모두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십시오. 오늘부터는 새로운 출발입니다. 모두 분발합시다!”
“여러분을 만나러 왔습니다! 오늘을 기념해 사진을 찍읍시다!
힘들고 고통 받은 여러분의 승리를 축하하고 싶습니다, 내 마음에는 언제나 여러분이 있습니다. 제목을 보내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내게 제목을 보내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제(師弟)의 모습입니다. 평소에는 만나지 못해도, 우리의 마음은 이어져 있습니다.”
“동지를 지키기 위해 여러분이 필사적으로 공방전을 전개하셨다는 보고도 상세히 들었습니다. 나와 같은 마음으로, 나를 대신해서 분투해주시는 분들이 계시기에 학회는 강합니다. 그것이 이체동심(異體同心)의 모습입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부화뇌동하면서 신심을 의심하고, 학회를 비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는 언젠가 크게 후회합니다.”
“여러분은 지지 않았습니다. ‘필요한 때’에 끝까지 투쟁해서 승리했습니다. 그 과감한 투쟁은 광포사에 찬연히 빛날 것입니다.”
이 ‘길거리 좌담회’는 회관에 도착하기까지 아홉 번이나 열렸다. 구두 안으로 눈 녹은 물이 스며들어도, 볼을 찌를 듯한 찬바람이 불어도 신이치는 거듭 격려했다.
약 10년 만에 이루어진 아키타 지도는 거듭 인내하고 인내한 불굴의 서민 영웅들을 따뜻하게 감싸는 데서 시작되었다.
한 해 전 연말에 막 완공된 아키타문화회관에 도착하자 신이치는 기념비 제막과 기념식수를 하고 다 함께 기념촬영도 했다. 그리고 현관 앞 광장을 ‘청천광장(晴天廣場)’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가가야 세이코 씨(아키타총현 부인부 주사)는 아키타의 새로운 보성(寶城)에서 광포의 스승을 맞이한 때를 선명하게 기억한다.
“이케다 선생님은 ‘내가 왔으니 이제 괜찮아요.’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한 마디에 모두 얼마나 용기와 희망이 솟았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바로 식수를 하고 회관에 들어가셨습니다. 회관에서도 선생님은 쉬지 않고 끊임없이 격려의 손을 쓰셨습니다.”
회관 대강당에는 세로 4.2미터, 가로 5미터의 세계지도가 걸려 있었다. 자세히 보니 조화로 된 백합꽃으로 부인부가 제목을 부르면서 하나씩 하나씩 만든 것이다. 선생님은 그 세계지도를 보고 ‘합장’이라고 휘호하고, 부인부의 진심을 칭찬했다.
“아키타 지도 기간 중에 선생님은 굉장한 기세로 거듭 휘호해 주셨습니다.
어느 날 ‘지부증을 쓰려고 하니 먹을 갈아주세요.’라고 하셔서 당시 현부인부서기장인 제가 도와드렸습니다. 한 장씩 지부증을 쓰면서 때로는 어깨를 돌리며 한숨을 돌리고 ‘이대로 괜찮은가? 글자가 틀리지는 않았나?’ 하고 제게 물으셨습니다. 아키타의 동지를 생각하는 스승의 자애가 가슴 깊이 느껴졌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가가야 씨는 선생님의 행동을 자신의 본보기로 삼아 행동하자고 지금도 날마다 결의한다.
상식 풍부하게
저녁 무렵, 신이치는 아키타 시내에서 개최한 도호쿠대표자회의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 오마가리와 노시로 등이 학회원에게 불합리한 처사를 가했다는 보고를 받고 신이치는 이렇게 힘주어 말했다.
“지금까지 여러분이 겪은 고생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질 듯합니다. 잘 견디셨습니다. 광선유포를 위해 정의를 관철한 여러분을 어본불이 크게 찬탄하실 것입니다.
어쨌든 리더는 모든 동지를 크게 포용하고, 꿋꿋이 지키기 바랍니다. 이때 세심한 배려가 중요합니다. 인간은 감정으로 좌우되는 경우가 많아서, 배려 없는 사소한 말투에 상대가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심의 세계에서는 부주의한 언동이나 폭언으로 동지를 퇴전으로 몰아넣는 일이 있으면 절대로 안 됩니다. 부처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동지를 대해야 합니다. 그것이 기본입니다.
어디까지나 한 사람을 존중하고, 상식 풍부한 인격을 연마하는 세계가 바로 우리 창가학회라는 점을 깊이 자각하시기 바랍니다.”
제자를 믿고
온 힘을 다하는 것이 스승입니다
진정한 신앙자란
이튿날 11일, 신이치는 오랜 세월 아키타현의 중심회관으로 사용한 아키타회관을 방문했다. 이곳에서 신이치의 세계평화를 위한 발걸음을 소개하는 ‘평화행동전’을 관람하고, 행사진행요원 청년들에게 격려하는 말을 건넸다. 그 뒤, 공로자의 집으로 가서 그 가족들을 격려했다.
아키타문화회관으로 돌아와 저녁에는 아키타현 대표자회의에 참석해 ‘참된 신앙자’가 나아가야 할 삶의 자세를 강조했다.
“그것은 결코 특별하지 않습니다. 인생에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일이 있어도 어본존 앞에 앉아 창제하자!’는 일념으로 견실하게 계속 학회활동에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광선유포를 자기 삶의 중심축으로 정하고, 어서 근본으로 법(法)을 위해 끝까지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실한 신앙자입니다.
지금까지 한때는 화려하게 활약했어도 퇴전해서 학회에 반기를 든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을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자기중심적이고, 명문명리를 좇고, 독선적이고, 허영심이 강하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결국은 ‘자기자신이 근본’이고, 신심이나 조직은 모두 ‘자신을 위해 이용하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아무리 약삭빠르게 굴어도, 결국 그 본성이 밝혀지는 것이 묘법(妙法)의 엄격함이고 신심의 세계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진심을 말했다.
“나는 사람들에게 많이 속았습니다. 이용당하고, 함정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제자를 자칭하는 사람 중에도 그런 인간이 있다는 점은 알고 있었습니다.
‘저 사람은 다른 속셈이 있으니, 멀리하는 편이 좋다’고 말해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관대하게 대하고 포용했습니다. 그 심성도, 책략도 알고 있었지만, 신심에 눈뜨게 하려고 끈기 강하게 대화했습니다. 또 몇 번이고 엄하게 그 본질을 지적하고 거듭 지도했습니다.
어째서인가? 속고 또 속아도 제자를 믿고 갱생시키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존재가 스승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내 마음입니다.
그러나 악(惡)의 본성을 드러내 불자(佛子)인 동지를 괴롭히고 학회를 교란해 광선유포를 파괴한다면, 그 사람은 이미 불적(佛敵)입니다. 철저히 맞서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주저하면 안 됩니다.”
“모든 것은 인과이법(因果理法)이라는 생명의 법칙으로 심판받게 됩니다. 인과는 엄연합니다. 그렇게 확신해야 비로소 불법자(佛法者)입니다.
우리는 광선유포를 위해, 세계평화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꿋꿋이 헌신해 왔습니다. 그러나 악승이나 그 악승들에게 속은 사람들은 엄연한 이 사실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대성인은 악인이 색상장엄(色相莊嚴)한 석가불을 어떻게 보았는지를 나타내시며 ‘혹은 악인은 숯으로 보고 혹은 악인은 재로 보며 혹은 악인은 적(敵)이라고 보느니라.’(어서 1303쪽)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곡된 눈에는 모든 것이 왜곡되어 보입니다. 질투와 진에(瞋恚) 그리고 편견으로 비뚤어진 마음에는 학회의 진실이 비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학회를 방법(謗法)을 저지르는 집단이라고 비방했습니다. 악에게 미움 받는다는 일은 정의롭다는 증거입니다.”
신이치의 확신에 찬 지도를 들은 아키타 동지는 ‘서쪽의 영웅’이라는 긍지와 결의를 불태웠다.
눈 덮힌 천지에 울려 퍼진 승리의 함성
신이치는 12일, 아키타문화회관 낙성을 축하하는 아키타현 간부회에 참석했다. 간부회에는 종문사건의 시련을 이겨낸 오이타현의 대표도 참석해 이 자리에서 아키타현과 오이타현이 ‘자매결연’을 맺어 ‘광포의 무지개 다리’를 놓게되 었다고 발표했다.
신이치는 날마다 광선유포를 위해 꿋꿋이 달리면서 인생의 황금 같은 추억을 구축하라고 지도했다.
이튿날 13일, 아키타문화회관에서 신이치의 제안으로 자유근행회를 개최했다. 참석하고 싶은 사람은 모두 참석할 수 있다는 연락을 받은 멤버들은 전날 밤부터 계속 눈이 내리는 상황에서도 의기양양하게 모였다.
신이치는 오전에 시내에서 개최한 협의회에 참석하고, 정오가 지나 회관 앞에 있는 공원으로 갔다. 그곳에는 오전에 근행회를 참석한 동지 1500여명이 기념촬영을 위해 모여 있었다.
흰색 패딩점퍼를 입은 신이치가 모습을 나타내자 기쁨의 환호성과 박수가 퍼졌다. 신이치의 제안으로 다 함께 ‘인간혁명의 노래’를 합창한 뒤, 신이치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의 건투와 대승리를 축하하며 승리의 함성을 울립시다!”
동지들은 광포의 스승과 함께 하늘을 향해 힘껏 팔을 치켜들었다. 민중승리의 대선언이라고 할 수 있는 승리의 함성이 눈 덮힌 천지에 그리고 벗의 마음에 울려 퍼졌다.
신이치는 오후 1시 반이 넘어서 개최하는 자유근행회에 참석했다. 학회활동이라는 실천 속에, 불도수행도, 숙명전환도, 일생성불도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근행회가 끝난 뒤에도 다시 공원으로 이동해 다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13일 저녁, 신이치는 아키타 시내에서 열린 아키타현 청년부 최고회의에 참석해 젊은 리더들의 의견과 요구사항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후계의 애제자들에게 혼을 쏟아 붓듯이 이렇게 외쳤다.
“무엇인가를 ‘성취하자, 개혁하자’고 생각하면 반드시 두터운 벽에 가로막히고, 모순에 부딪칩니다. 아니, 현실은 모순투성이입니다. 하지만 그 속을 날마다 총명하게, 끈기 강하게 뚫고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물며 세계광선유포는 전인미답의 새로운 항로입니다. 어려움이 끊이지 않는 속에서 추진하는 건설입니다. 의지할 사람 따위는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고, 홀로 일어서야 합니다! 모두가 ‘야마모토 신이치’가 되어야 합니다. 모두 이렇게 자각하고 일어서면 21세기는 양양하게 펼쳐진 희망의 세기가 됩니다.”
청년이 힘차게 뛰어나오면
창가의 대하(大河)는
유구한 미래를 향해 흘러갈 것이다
아키타현 청년부총회
아키타 지도에 나선 지 5일째가 되는 14일, 아키타현 대표 1500명이 모여 제1회 아키타현 청년부총회를 성대하게 개최했다.
신이치는 참석자와 기념촬영을 하고 미래의 모든 것을 의탁하는 심정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차대의 광포는 모두 여러분 청년부에게 의탁할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10년 동안에 그 커다란 변화의 시대를 맞이합니다. 그러므로 단단히 각오하고 ‘공부’하고, ‘노력’하면서 자신을 단련하기 바랍니다.
특히 삶의 철학이 되는 교학을 철저히 익혔으면 합니다. 일류라고 일컫는 사람들은 반드시 그 나름대로의 노력을 하고, 다른 사람보다 몇 배나 공부하면서 연구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도 서민의 철학자, 민중의 지도자로서 일체의 근본이 되는 위대한 불법(佛法)을 행하며 깊이 공부했으면 합니다. 거기에 인간승리의 왕도가 있습니다.”
제30권 ‘승리의 함성’에는 스승의 만감이 담긴 기대가 씌어 있다.
“청년이 거센 물결처럼 광선유포의 무대로 힘차게 뛰어나오면,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창가(創價)의 대하는 수량을 늘리면서 유구한 미래를 향해 흘러갈 것이 틀림없다.
신이치는 ‘청년들이여! 학회를 부탁한다. 광포를 부탁한다. 세계를 부탁한다. 21세기를 부탁한다.’는 심정으로 외쳤다.”
“신이치는 믿었다 ― 이곳에 모인 청년들이 신세기 리더로서 일어서 우정과 신뢰의 스크럼을 사회에 넓힐 것을! 광포를 짊어지는 인재의 진열을 겹겹이 만들어줄 것을!”
이튿날 15일, 신이치는 아키타현과 오이타현의 자매결연을 기념하는 근행회를 두 현의 대표와 함께 열고 아키타문화회관을 떠났다. 공항으로 가는 도중에 신이치의 부탁으로 아키타회관 앞을 지나갔다.
그곳에는 청년 수십명이 ‘선생님, 감사합니다’라고 쓴 현수막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신이치가 손을 크게 흔들자 “감사합니다!” “아키타는 투쟁하겠습니다!” “또 오십시오!” 하고 모두 입을 모아 외쳤다.
“신이치는 아키타에 머문 이 6일간도 하나의 반전공세 드라마로서 광포사에 찬연히 빛날 것이라고 생각했다.”(제30권<하> ‘승리의 함성’)
‘눈 속의 아키타 지도’는 단순히 ‘그 당시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는 스승과 제자가 공전(共戰)하는 길이다. 고마쓰 주이치 씨(총아키타 주사)는 이렇게 강조했다.
“제30권 ‘승리의 함성’에 저희 이야기를 ‘이렇게까지 써주시다니!’ 하고 모두 기쁨에 넘쳐서 읽었습니다. 당시 참석한 사람들은 사제(師弟)의 원점을 다시 가슴에 새겼습니다.
청년 세대는 이케다 선생님의 아키타를 생각하는 깊은 마음을 배우면서 후계의 서원을 세웠습니다. 그것이 기세가 되어 확대전도 대승리 할 수 있었습니다.”
고마쓰 씨는 ‘눈 속의 아키타 지도’에서 선생님이 ‘가장 광선유포가 추친된 지역 중 하나’로 소개한 센보쿠군 오타지역(센다이시 오타지역) 출신이다. 소설에서는 초대 지구부장의 인재배출 비결은 ‘내가 홍교한 사람이 홀로 일어설 때까지 철저히 보살피는 것’이라고 씌어 있다.
고마쓰 씨는 “정말로 그렇습니다. 지구부장은 우리가 절복할 수 있을 때까지 함께 활동해주었습니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로 광포의 인재를 육성하는 ‘철칙’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말했다.
선생님이 엮는 영예로운 광포사를 지금 진지하게 배우고 생명에 새겨 전진을 위한 힘으로 삼는다. 그것이 후계의 제자가 갖춰야 할 중요한 자세다.
감동이 넘치는 드라마의 배경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뒷받침한 분들이 반드시 있다. 이 ‘눈 속의 아키타 지도’도 그렇다.
이케다 선생님은 ‘수필 인간세기의 빛’에 아키타 지도 당시 쌓은 황금 같은 추억을 언급하면서 이렇게 썼다.
“그때 집을 지키면서 각지에서 진지하게 대성공을 계속 기원해주신 존귀한 동지들이 아키타현에 많이 계셨다. 순백의 눈처럼 깨끗한, 그 깊은 진심을 내가 어떻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훗날 이 멤버들은 ‘눈 속의 아키타 지도 영광그룹’으로 결성되었다. 스승의 마음이 응축된 서민 영웅들의 모임이다.
성훈에 “대저 눈은 지극히 희므로 물들여도 물들지 않으며”(어서 1474쪽) 하고 씌어 있다.
순백의 눈처럼 어떤 악연에도 물들지 않는 신심을!
어떤 고난에도 지지 않는 순백의 깨끗한 신심을!
아키타의 벗이 사제의 원점으로 돌아가 청신한 결의로 불타는 눈의 1월이 올해도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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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너무감사드려요~~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