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과 아무것 / 오은
지난 주말, 제주도에 있는 한 동네책방에서 강연을 하게 되었다. 제안이 왔을 때 적잖이 걱정이 되었다. ‘나는 운전도 못하잖아, 길눈도 어둡잖아, 주말이 날아가는 거잖아…’라는 불안은 ‘이번엔 무슨 이야기를 하지? 사람들이 아무도 안 오면 어떡하지? 서점에 폐가 되는 건 아닐까?’라는 걱정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 불안과 걱정 때문에 나는 강연을 수락했다. 직접 부딪히지 않는 한, 불안과 걱정은 해소될 수 없다. 거절하더라도 내내 묵은 감정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비행기 예약을 하면서 결심했다. 큰맘 먹고 뚜벅이 여행을 해보자! 뚜벅이란 자기 자동차가 없어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걸어 다니는 사람을 일컫는다. 지금껏 제주도에 갈 때는 늘 일행과 함께였다. 그들 중 하나가 렌터카를 빌려 운전했으니 나는 단 한 번도 제주도 내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보지 않았던 셈이다.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 1년 살기를 하는 사람들이 나를 보면 아마 코웃음 칠 것이다. 하지만 호기심이 많고 겁은 더 많은 내게 이번 여행은 하나의 관문이었다. 관문을 거치면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제주도에 도착하고 곧바로 숙소가 있는 종달리로 향했다. 시내버스를 타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물어물어 정류장을 찾았더니 내가 타야 하는 버스는 30분 뒤에나 온다고 한다. 얼른 가서 여장을 푼 뒤 쉬고 싶었지만, ‘뚜벅이 여행의 묘미는 바로 이런 게 아니겠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정류장에 설치된 디스플레이에는 텍스트 형태로 실시간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품질 관리를 통해 부패 감귤을 줄여야 한다는 뉴스, 2019 제주 청년의날 축제가 개최된다는 뉴스를 보았다. 뭍에서는 결코 접할 수 없던 뉴스다. 제주도와 가까워진 것 같아 벌써 기분이 좋다.
버스에 올라 내가 내려야 할 정류장이 어딘지, 얼마나 남았는지 가늠해본다. 앞으로 74개 정거장을 가야 한다니 입이 떡 벌어진다. 대화를 나눌 이가 없으니 자연히 주변을 살피게 된다. 버스에 오르는 사람을 보며 나와는 무연한 그 사람의 사연을 상상해본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그에게 말을 거는 것 같다. 저 사람은 제주에서 태어나 제주에서 죽 자랐을까. 앞 좌석엔 나처럼 여행을 온 사람도 보인다. 나와는 달리 여유가 넘쳐흐른다. ‘저 커다란 배낭에는 뭐가 들었을까?’로 시작한 상상은 ‘여행에 익숙한 삶은 어떤 것일까? 여행을 이끄는 것은 여기에 있기 싫은 마음일까, 거기로 가고 싶은 마음일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옆 좌석에서는 엄마와 아이가 나란히 앉아 있다. 아이가 예쁘게 깐 귤껍질을 내밀며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 이걸 글로 써도 돼요? 이런 것도 글이 될까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서요.” 그럼, 무엇이든 네가 쓰면 글이 된단다. 네가 쓰면, 쓰기만 하면. 나는 속으로 힘차게 대답한다. 귤나무에서 떨어진 귤이 오렌지가 되고 망고가 되고 지구가, 우주가 되는 상상을 한다. 뉴턴이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광경을 보고 만유인력을 발견했듯, 우리가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은 무궁무진하다. 발견하려는 마음이 있으면, 있기만 하면. 어떤 것을 찬찬히 들여다볼 때, 그리고 그것을 마침내 기록하기 시작할 때 아무것은 비로소 빛을 발한다. 이는 역설적으로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무것이 되는 마법 같은 순간이기도 하다.
정류장에서 내리니 날이 어둑해져 있었다. 숙소로 가는 길에 미리 점찍어둔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내가 여기를 찾아내다니!’라고 자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걱정했던 동네책방에서의 강연도 무사히 잘 마쳤다. 와주신 분들의 눈빛에서는 시종 온기가 넘쳐흘렀다. 나는 말을 하면서 속으로 외치고 있었다. ‘오길 정말 잘했잖아. 혼자 여행하는 것, 정말 아무것도 아니잖아!’ 아무것도 아님을 발견하기 위해 무수한 아무것을 거쳐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병원에서 종달초등학교까지 이어지던 74개의 정류장처럼.
오늘도 아무것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간다. 보잘것없을지도 모르지만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아무것 말이다. ‘이런 것도 글이 될까요?’라는 질문이 ‘이걸 한번 써봐야겠어요!’라는 결심이 되는 과정이 그 속에 있다. 물론 그 결심이 실제로 쓰는 행위로 연결될 때,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무것이, 마침내 아무것 이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오은 시인
입력 : 2019.10.28 20:42 수정 : 2019.10.28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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