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순우리말 / 박 혜 숙
“애썼다. 잘 가!”
“선생님. 왜 저한테 애 섰다고 하세요? 제가 아기 가진 것도 아닌데.”
나는 깜짝 놀랐다. 애썼다는 뜻은 ‘마음과 힘을 다하여 무엇을 이루려고 힘쓰다.’란 뜻으로 ‘고생했다.’란 말 대신에 쓴 순우리말인데 아이들이 잘 안 쓰다 보니 기분 나쁘게 들렸나보다.
이런 순우리말을 나이든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일상생활에서 써왔는데, 언어 사용에 세대 차이는 오해를 하거나 소통이 잘 안 되는 말이 점점 늘어난다. 특히 언어의 앞 글자만 따서 줄여서 하는 말들의 세대 간 격차는 크다. 그런 말도 모르느냐고 바로 꼰대 취급을 받는다.
언어는 생성·성장·소멸의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도도하게 흐르는 언어의 역사 속에서 당연히 일어나는 일이건만 소통이 안 되어 웃음거리가 될 때는 분해서 아이들의 언어를 못 알아 들으면, 묻지 않고 네이버에 검색을 하곤 참 기발한 신조어구나 감탄할 때가 많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출판하는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실린 ‘대박’, ‘먹방’, ‘치맥’, ‘한류’, ‘반찬’, ‘오빠’등 한국에서 유행하는 신조어와 전통문화를 나타내는 표제어 26개가 추가 되면서 CNN 뉴스에도 나오고 화제가 되었었다. 2013년까지 ‘김치’, ‘한글’ 등 10여개에 불과했는데 괄목할 만한 변화이다.
한국문화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고, 한류라는 파도가 영어의 바다 위에 잔물결을 일으키면서 ‘K-팝’과 ‘K-드라마’도 사전에 등재되었고 지구촌 곳곳에서 노래 부르고 다양한 콘텐츠에 접속하고 있다. 우리의 경제와 문화는 어느 때보다 왕성하게 세계를 향해 뻗어가고 국가적 위상도 높아졌음을 입증한다.
글로벌 시대에 여러 언어가 국경을 넘나드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지만 그래도 고유의 순우리말이 사라지지 않고 한국의 전통적인 정서를 담아내어 젊은이에게 더 많이 사용되었으면 좋겠다. ‘은하수’보다 ‘미리내’, ‘믿음직스럽다’를 ‘미쁘다’ ‘용’을 ‘미르’라고도 쓰는 등 사라지기엔 예쁜 단어 들이 많다.
그리고 순우리말이 학문적으로 한국어 고유 계통인지를 판단하기 어렵다. 고대 문헌 자료가 부족해 한국어의 진화 과정을 뚜렷이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순우리말이라고 여겨지는 단어들이 실제로는 타 언어의 차용어, 즉 외래어인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가방, 망토, 빵, 조끼 등 많은 단어가 외래어라는 주장을 인터넷에서 검색해보고 깜짝 놀랐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윤동주의 ‘새로운 길’이란 시 전부이다. 한자로 적을 수 있는 “내일”(來日)을 제외하면 전부 순우리말로 된 시로 보인다. 이처럼 다방면에서 노력하면 사라져가는 순우리말을 되살려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다. 문단에는 사라져가는 고유어를 살려 글을 쓰는 작가들이 있다. 더 많이 보급되고 신조어를 만들 때는 가능하면 순우리말을 살려 쓰려는 움직임이 있어 기대를 하게 한다.
‘먹거리’란 단어가 나왔을 때, ‘먹을거리’가 문법적으로 옳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었지만 사회성을 얻고 있고, '꺾쇠', '덮밥', '붉돔' 따위와 같이 동사어간에 다른 낱말이 바로 붙은 사례 등을 들어 표준어로 인정되었다고 소개되어 있다. 천둥은 순우리말, 우뢰는 한자어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이다.
고유어는 당연히 방언에 많다. 예컨대 '오름'은 오늘날 제주 방언에만 남아있으나 산봉우리를 뜻하는 한국 고유어이다. 한문과 한국어의 언어사회에서 지방언어는 구어로서 하층에 머문 시기가 길기 때문에 방언에서 한국어의 고유어를 찾을 수 있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이 경우 "해당 방언에서만 특이하게 고유어를 쓴다."라기보다는 본래는 중앙에서도 고유어를 사용했으나 한자어에 밀려 사라진 경우가 많다. 방언에 옛 꼴이 많이 남아있다.
우리나라는 교육열이 높고 학교에서 거의 표준어를 쓰다 보니 젊을수록 사투리를 쓰지 않아 지방에 남아 있는 훌륭한 사투리들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그 말들이 사라지기 전에 지자체에서도 힘쓰고, 순우리말을 살려 쓰는 운동이 적극적으로 전개되길 빈다.
고향에 가거나 어렸을 때 친구들을 만나면 긴장이 풀어지고 사투리 억양들을 공유하며 친밀감을 느낀다. 내 동생 별명이 ‘투가리’였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뚝배기를 그렇게 부르면 고향이 어디냐고 묻고 그것만으로 따스한 정을 느낀다며 ‘영둑맞다.’ ‘저정스럽다.’ ‘지청구를 먹었다.’ 등 오랜만에 들어보는 사투리가 그렇게 구수했다. ‘부추’도 충청도에선 ‘정구지’라 부르고 아랫녘에선 ‘솔’이라 부른다. 이런 말들이 다 소멸되지 않고 살아났으면 좋겠다.
외래어인데 유입된 지 오래 되었거나 발음이 변하는 등의 이유로 어원 의식이 약화되어 고유어로 오인되는 낱말들은 귀화어라고 부른다. 반대로 고유어를 한자어로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과거 한문으로 적는 과정에서 그럴싸한 한자를 붙인 것일 뿐이다.
국어에서 한자어는 대략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문어로 쓸 때는 그 비중이 더 올라가지만, 구어를 쓸 때는 비중이 내려간다. 한자문화권에서 한자의 지위는 워낙에 높아서 한국, 일본, 만주, 베트남 모두 한자어가 뿌리 깊게 자리 잡았다. 한자어가 깊숙이 들어온 이유는 수천 년 동안 동아시아에서 서면어(書面語)는 한문이고, 전문적인 어휘는 한문에서 대거 차용했다.
한자어를 이용하여 고유어에는 없는 추상적이고 복잡한 개념을 짧고 정확하게 지칭할 수 있었다. 또, 한자어는 격식 있고 교양 있는 분위기를 준다. ‘이바지’와 ‘잔치’ 대신에 ‘연회’가, ‘저자’ 대신에 ‘시장’이, ‘잣’ 대신에 ‘성’이, ‘견주다’ 대신에 ‘비하다’가 쓰이는 것 등이 그렇다.
‘노인’하면 점잖은데 ‘늙은이’하면 얕잡아 보는 것 같고, ‘부인’하면 대우해주는 것 같고, ‘여편네’하면 싸우려고 드는데, ‘남편’의 반대 ‘여편’에 ‘네’란 접미사를 붙인 것뿐이다. 나를 대우해서 불러주는 말인 줄 알았는데, 부인의 한자를 풀이하면 아내 부(婦)는 빗자루를 들은 여자란 뜻을 알고 ‘안사람’이나 ‘아내’라고 부르는 게 좋았다. 젊은 사람들은 ‘와이프’란 말을 많이 쓰는데 왜 그들 부인이 더 세련되어 보이는 것은 왜일까?
좀 더 전문적으로 연구해 글을 써야하는데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고 인용했다. 평소 순우리말사용이 점점 줄어들고 사랑스러운 사투리가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워 써 보았는데 사라져가는 말들을 찾아 사회성을 되찾아주고 싶다. 고유어 사투리들이 사라지면 우리말이 풍부한 표현이 얼마나 줄어들까 걱정이다.
첫댓글 순 우리말들
사투리
그들이 사라지지 않게 꼭 붙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