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팔꽃 담장/박형권
외치기 위해서 속을 보여야 하는 꽃 있다
담장 높고 창살 꽂고 철망 친 그 집에
고요한 외침 있다
대문이 닫힌 빨간 벽돌집에는
근처에만 가도 컹컹 개 짖는 소리가 귀청을 물어뜯는다
삐익삐익 방범 벨도 짖는다
저러고서 편안한가
지나가는 사람마다 한마디씩 하는 그 집에
나팔꽃 나팔꽃 산사태처럼 피었다
머뭇머뭇 터질 듯 피었다
사람 그림자는 보이지 않고 나팔꽃 뇌관처럼 아찔하다
나팔꽃 보면 저 집 초인종 누르고 싶지만
날카로운 말에 찔릴지도 몰라 문 앞에서 기웃거리다
길고양이도 피해갔다
여름 한철 다 지나도록 빨간 벽돌집은
굳건히 닫혀 있다
나팔꽃 저렇게 피워올릴 줄 아는 사람들이
우리 시선이 찔려 눈 아린 걸 보지 못한다
하지만 누구 한 사람은 있어 나팔꽃 철망 위로 선뜻 올려 놓았다
볼이 빨간 그 아가씨가 올려놓았다
외치다 쓰러지는 꽃 있다
외친다는 것은
목젖가지 당신을 받아들이는 것
울컥할 때까지 당신을 사랑해보는 것
이 여름의 끝이 가을이 아니라 절망일지라도
나팔꽃 나팔꽃 시들어갈지라도
흔쾌히 시드는 법 아는 꽃
그 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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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권 시인의 시집<전당포는 항구다>에 실린 시입니다.
이 시를 보는 순간 넷플릭스 드라마'퀸 메이커'가 떠올랐어요.
인권변호사 오경숙은 사람들의 인권을 위해 코뿔소처럼 싸우다가서울시장 후보까지 되지요.
상대편 소위 힘있는 후보보다 많은 차이로 앞서 나갈때 맡고 있는 여성노동자 복직연대의 공금 횡령 사건이 터지지요. 조사했더니 총무인 화수이모가 아들 등록금으로 썼고,그녀는 상대편 힘있는 사람들 협박에 넘어가 있었지요. 오경숙은 벼랑 끝에 몰려 도와달라는 말조차 못하는 화수이모를 생각하며 선거를 포기할 결심을 하지요.
외치기 위해선 속을 보여야 하는데 나팔꽃은(오경숙은)시들어 갈지라도(절망일지라도)
흔쾌히 시드는(쓰러지는) 쪽을 택하지요.
시는 삶에 대한 현상학이라 말할 수 있지요.
이 시는 높은 담장과 창살과 철망으로,귀청을 물어 뜯는 개짖는 소리와 방범 벨소리로, 누군가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누군가는 시선이 찔러 눈이 아릴 수 있다고 말하지요. 그래도 그집에서 함께 공존하기 위해 쓰러지더라도 외치지요.목젖까지 당신을 받아들인다고,울컥할 때까지 당신을 사랑해 본다고.(감상/어향숙)
첫댓글 요즘 사람은 전당포가 뭔지도 모르지요.
나팔꽃 노래는 동요도 있고 가요도 있지요.
이런 동요 아시나요?
햇님이 방긋웃는 이른 아침에
나팔꽃 아가씨 나팔불어요.
잠꾸러기 우리아기 일어나라고
아가방에 또또 따따 나팔불어요.
전당포, 저도 가본적 없지만 소설이나 글에서 많이 보아 어떤 의미로 이용되는지 압니다.
나팔꽃 동요는 어릴 때 자주 불렀어요 ㅎㅎ
의인화하여 미소짓게 만드는 동요지요.
신기하게 나이가 들어도 어릴 때 불렀던 노래들은 또렷이 기억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