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발 손수레의 꿈 / 정선례
문화 유적 답사 1번지 명성에 걸맞게 강진은 볼거리, 먹거리, 문화유산이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자랑한다. 강진이 낳은 독립운동가이자 시인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서정시로 널리 애송되고 있다. 내가 모란을 처음 접한 것은 30여 년 전 5월 홀연히 여행하러 와서 찾은 영랑 생가에서다. 여러 줄기의 갈래로 갈라지는 모란은 꽃 중의 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붉은 자줏빛의 화려한 겹겹의 꽃잎이 크다. 생가 뜨락에 무리 지어 활짝 피어난 모란의 꽃말은 ‘부귀영화’이다. 영랑생가 옆에는 전국 최초 시문학파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영랑 김윤식 시인이 활동했던 시문학파 시인들의 기념관이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그는 진중함이 말과 행동에서 묻어나는 선량한 사람이었다. 그와 만나는 동안 알 수 없는 연민이 생겨서일까 결혼할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는데도 마음의 빗장이 풀린 나는 그를 선택해 이미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 들어와 있었다. 인연이라는 말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농촌에서 맏며느리로 살아간다는 것은 균형이 잘 잡히지 않는 외발 손수레를 끄는 것과 같이 아슬아슬하였다. 농촌에서는 품앗이며 초상, 제사 등 크고 작은 일들이 많고 대부분 대문이 없고 마당이 넓다. 햇볕 잘 드는 마루에 걸터앉아 열무국수를 말아 먹으며 흉허물없이 지내는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여 주위에서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늘이 드리워진 굴레를 벗어나 몸과 마음이 자유롭고 싶어 머리 위로 하루에도 여러 차례 오가는 비행기를 올려다보며 나는 여차하면 이곳을 떠날 궁리만 했다. 내가 택한 결정이 올바르지 않았을지라도 정해진 운명으로 여기고 이 순간에 최선이 뭘까 늘 고민한다. 아마도 부부가 행복하게 사는 덕목 중에 제일은 서로에 대한 믿음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다른 건 다 맞지 않아도 서로에게 그러한 마음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봄이다. 겨우내 창고에 넣어 두었던 밭농사에 필요한 외발 손수레를 꺼내 마당 한쪽에 두었다. 그 손수레는 짐을 몸쪽에 실어야 무게 중심이 뒤에 있고 손잡이 끝을 잡고 팔을 쭉 펴서 양팔에 힘을 줘야 넘어지지 않는다. 사용 방법이 익숙해지면 좁은 길이나 울퉁불퉁한 돌길에서도 두 발 수레보다 자유롭게 쓰게 된다. 생활이나 물건 그 어느 것이든 결핍이 오히려 장점이 되어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 같다. 농촌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쉴 새 없이 일해야 겨우 살 수 있는데 어릴 때부터 게으르기로 소문난 나는 야행성으로 새벽 서너 시를 훌쩍 넘겨도 눈이 말똥말똥하다. 아침에 빨리 일어나지 않는 습관 때문에 다툼의 원인이 되어 마주 보기보다는 평행선을 달릴 때가 많았다. 산다는 건 어쩌면 누군가의 붉어진 눈시울을 보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한 개 달린 바퀴의 외발 손수레처럼 늘 위태로운 시간을 견딘 것은 산과 바다, 들에서 가져온 풍부한 먹거리로 허기진 정서 대신 뱃속을 든든히 채웠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여긴다.
그날도 바람이 몹시 불었을 것이다. 호남의 3대 정원인 백운동 원림을 찾아가서 산책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마음이 가라앉았다. 아낌없이 주는 숲의 위로 덕분이다. 마디마다 비운 왕대나무 댓잎의 수런거림을 들으며 흔들리는 내 삶이 마치 대나무 숲과 흡사하다고 생각했다. 백운동 원림에 가서 정원의 12경을 둘러보고 백운계곡 탐방로의 우거진 동백나무와 왕대나무 숲길을 걸었다. 우연히 가 보고 마음의 위안을 얻은 나는 이곳을 수시로 찾아 고요한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아마도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푸른 대나무를 좋아해서 이곳을 자주 찾았던 것 같다. 이곳 말고도 멀리서 지인들이 찾아오면 데리고 가는 곳이 있는데 조선 후기 대학자 다산 정약용 선생님이 강진에서 18년 동안 지냈던 다산초당이다. 누구나 한 번쯤 꼭 읽어야 할 『목민심서』를 쓰신 다산 정약용, 나는 나주 정씨 후손이기에 존경하는 마음이 남다르다. 유배 생활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500여 권에 이르는 방대한 책을 저술해 궤적을 남겼으니 그의 인품과 학식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도 책과 글쓰기를 즐겨하는지도 모르겠다. 숲의 흙길을 걷는 것과 글쓰기는 내 안의 묵은 상처를 어루만져 평안을 얻게 해준다. 사는 일이 고단해 마음이 공허하고 시릴때면 가는 곳이 있다. 섬의 모양이 소의 멍에처럼 생겼다 하여 이름을 얻은 가우도에 잰걸음으로 와서 파도 소리에 선물 같은 에메랄드빛 바다를 보곤 한다. 그동안 수없이 찾은 이곳은 어느새 걷기 운동코스가 되었다. 어떻게 생활해야 할지 막막한 현실에서 힘들 때 찾게 되는 그 어디가 있다는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늘 바쁘게 지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만 살아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버거웠던 그 시절 나를 내려놓고 느린 속도로 살고 싶다. 처음에는 빈 수레도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 주지 않더니 이제는 퇴비를 한가득 싣고도 밭고랑 사이를 능숙하게 끌 수 있게 된다. 안개 자욱하던 결혼 생활을 잘 경영하여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오늘에 이른 것처럼 시간을 견디다 보면 부귀영화는 아니더라도 봄꽃처럼 활짝 피어날 것이다. 내 나이 계절에 비유하면 가을의 중심에선 지금, 주위에 선한 영향력을 전하며 삶의 무게 앞에 당당하고 싶다. 외로울때 내 애기 들어주는 그이와 사랑과 믿음으로 황혼이 잘 익어가도록 서로를 따뜻하게 보듬으며 다 같이 잘 살기를 두 손 모은다. 누군가 말했다, 꿈은 꾸는 자의 몫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