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꿍 / 시원
그가 아침에 서울에 갔다. 오랜 만에 은사님을 만나 점심을 함께 해야 한다고. 그와 나는 어떨 땐 자꾸 어긋난다. 모처럼 옷 입은 폼이 어떠냐고 묻기에 다 좋은데 신발이 문제라고 했더니 역정을 냈다. 그럴 거면 물어 보지를 말지. 우리처럼 책상과 걸상도 티격태격하면서 같이 붙어있는 짝꿍 일까?
지금은 참 많이 달라졌지만 육십 년대 교실에는 칠판 앞에 높은 교탁이 있었고 그 앞에 줄 맞추어서 놓인 책걸상에는 우리들이 올망졸망한 앉아 있었다. 수업 종이 울리면 발소리가 들리고 문이 드르륵 열리면서 선생님이 출석부를 들고 오셨다. 떠들고 놀다가도 조용해지는 순간들이다. 그때는 교탁이 참 높아 보였다. 그리고 교권도 확실했다. 대학에 가니 과목에 따라 교실을 옮겨 다녔다. 교양을 들으러 큰 강의실에 가면 교탁이 우리 시선 아래에 깔리는 곳도 있었다. 그 곳에서는 다리를 꼬고 앉아보기도 했다. 자유인가? 하다가도 전공 시간이 되면 고등학교 시절 때처럼 여지없이 바른 자세로 책걸상에 앉았다. 약학이란 것이 외울게 많았다. 어떤 논리를 펼치거나 증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약용식물의 기원 생리작용 화학구조를 암기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꼼꼼한 교수님은 가르치기 전에 복습을 했는지 확인하려고 쪽지 시험이란 것을 보았다. 점수에 민감한 우리에게 책상은 곧잘 커닝 페이퍼가 되기도 하였다.
약국을 하게 되니 내 책상은 온통 거래명세서며 세금계산서 그리고 각종 신문이며 우편물들로 가득 찼다. 컴퓨터를 쓰게 되면서 정리 되는 듯 했지만 금방 다른 서류들이 자리를 차지하였다. 또 걸상은 손님이 오면 일어나기 편한 스툴로 바뀌었다. 남편이 그러다가 허리 상한다고 등받이가 있는 사장님 의자를 사주었다. 그런데 거기 앉아 있다가 일어나려면 무릎에 힘이 두 배는 더 들었다. 그래서 바쁠 때는 스툴이 쉴 때는 등받이가 긴 사장님의자가 편했다. 얼마 전에 잡동사니와 함께 컴퓨터를 집으로 가지고 왔다. 윈도우7이고 작고 볼품없지만 그것으로 은행 일도 보고 자료를 저장하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거실 피아노 옆에 접이식 책상 위에 그것을 놓았다. 아래에 본체도 들어가 딱 맞았다. 콘센트도 옆에 있고 필요하면 피아노 의자를 끌어다 쓰면 되었다. 잠시 일하는 것은 괜찮았지만 글쓰기를 하려니 거실에 있는 것이 불편해졌다. 티브이도 소리에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것을 안방으로 옮겼다. 창문과 침대사이는 육십 센티 정도의 간격이 있는데 다행히 책상 세로 길이가 사십 센티여서 그 사이로 쏙 들어갔다. 자연스레 걸상은 옥침대가 되었다. 컴퓨터가 놓인 책상 앞에 앉아서 매트를 들추고 엉덩이를 붙이면 따뜻한 온돌 의자가 되고, 위에 앉으면 푹신한 의자가 되었다. 이제야 자리를 제대로 잡았다. 또 온전히 내 자신과 만나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그래서 글쓰기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좋은 목수는 연장 탓을 할까? 그런다고 성능이 좋은 컴퓨터를 안 산다는 것은 아니다.
언제 추웠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창밖에 소나무는 반짝거리고 있다. 햇살 가득한 오후다. 내 넓은 걸상에는 도서관에서 빌려온 장요근을 건강하게 해주는 필라테스 책과 고등학교 선생님이 쓴 국어수업 책이 널려있다. 쓰다가 힘들면 벌렁 누워 스트레칭도 하고 글도 읽을 것이다. 그리고 저녁에 그가 오면 그냥 웃어줘야겠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더러는 슬프고 짜증나지만 어찌 하겠는가. 우리도 그들처럼 서로 바라보며 함께 살아갈 수밖에.
첫댓글 약국하시면서 글도 쓰시고 대단해요. 짝꿍과 웃었겠죠?
바쁜데 짬내서 글도 쓰시고 멋지세요.
자리를 제대로 잡으셨군요. 이제는 글쓰기에 푹 빠지면 될 것 같습니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