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2년 그 해 겨울, 12월의 스릴러(thriller)
-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되다
남진원
1982년엔 강원도 정선읍소재지의 병설 벽탄 국민학교로 발령을 받았다. 그곳은 강원도 시범 연구학교로 국민 학교와 중학교가 함께 있어 수업도 서로 교사들이 교류하여 가르쳤다. 나는 국어를 맡아 가르쳤다. 중학교 국어와 국민 학교 국어 과목이었다.
당시 여름에 나는 강릉에 내려와 있었는데, 그곳에서 문인들 몇이 모였다. 서울의 김원석 작가도 내려오셨다. 여름밤 경포해변에 문인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그 해 한국문예진흥기금을 받았다고 하였더니 김원석 선생께서 그 돈으로 동시집을 주선 발간해 주시기로 하였다. 그렇게 하여 발간한 책이 첫 동시집 『싸리울』이었다.
벽탄에 와서 11월이 되자, 신춘문예 준비를 하였다. 아이들이 다 간 뒤 교실에 남아 난롯불을 피워놓고 응모작품을 써내려갔다. 시 작품을 썼는데 당시 6군데나 되는 서울의 신문사에 보냈다. 그리고 제일 떨어진다고 생각한 작품을 지방지인 강원일보에 보냈던 것이다. 나는 그 작품들이 모두 당선될 것을 믿고 ‘그 많은 곳에 당선되면 상금을 어디에 써야 하나?’하고 걱정에 쌓이기도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과대망상증, 허무맹랑한 꿈이었다. 어찌되었든 패기 하나 만은 만만하였다.
얼마 후, 정선 읍내에서 정선문학회인 <아라리문학회> 모임에 나갔다. 그곳에는 전태규 시인 등 여러 명의 문학 동인들이 모여 있었다. 그 자리에서 신춘문예 작품 보낸 것을 자랑삼아 이야기 하였다. 그리고 필명을 ‘청파’라고 했다는 말까지 하였다.
시인, 전태규 선생이 그 말을 듣더니 “에이, 벌써 틀렸어. 필명으로 ‘청파’로 보내면 안 되는 거야.” 하며 말했다.
그런데 전태규 선생의 말은 거의 들어맞았지만 한 가지는 빗나갔다. 강원일보 신춘문예에서만은 ‘청파’란 이름으로 당선된 것이었다.
12월 23일 무렵인가, 나는 서울에 첫 동시집 『싸리울』을 찾으려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춘천 강원일보사에 들렀다. 동시집을 강원일보 문화부에 전하고 올 심산이었던 것이다. 그곳에서 김기중 문화부장이 동시집 『싸리울』책을 보며 내가 벽탄국교에 있는 것을 알고 혹시 ‘청파’라는 사람이 있는지에 대해 물었던 것이다. 왜 그러시냐고 하자, ‘청파’라는 사람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자라고 하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 이름은 필명이고 내가 그 사람이라고 말씀을 드렸다.
나는 그 자리에서 당선소감을 썼다. 숨 막히도록 감격스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당선 소감을 쓰려고 창밖을 보니 때맞춰 함박눈이 펄펄 내리는 게 아닌가. ‘우와, 하늘도 나를 축복하고 있구나!’ 또다시 이런 망상에 사로잡혔다. 망상이라 해도 기분이 좋았다. 나는 이 후 신춘문예에는 더 이상 작품을 보내지 않았다.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것에 대해 크게 만족해 있었던 것이다.
봄빛
남진원
새벽으로 가는 안개들의
푸른 길옆에
산의 손 시린 물소리
마을로 마을로 오고 있다.
들판은
번쩍이는 햇살과
귀가 아픈 새떼 속에
일어서고
우리들의 삶 한가운데
희디 흰 소금으로 남아
짭짤하게 등허리를 절이고 있는
풀뿌리 밑에서
아침은 깨끗한 피부를 드러낸다.
벌써 몇 광주리 씩 푸른 바람을
이고
대문을 나서는
아주머니들
땀과 거름으로
기름진 잎들이
그림자를 드리운 채
빛 속에서 누군가와 만나고 있다.
(「강원일보」신춘문예 당선 시, 1983. 1. 1)
왼쪽부터 아내. 수상자. 어머니
앞줄 왼쪽 부터 최도규 시인, 남진원 본인(앞에 아들 대순) , 박화목 선생 ........
박화목 선생 바로 뒤에 선 분 은 <시문학 >출신의 전태규 시인 .
- 마석규 선생, 작가의 약력 소개 시간 -
- 사랑하는 아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