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프랑스 시인 레미 드 구르몽은 낙엽을 밟으면 영혼처럼 운다고 했지만, 낙엽차를 즐기는 사람들은 낙엽을 떠받들고 산다. 가을이 깊어 갈수록 빨갛고 노랗게 제 몸을 물들이는 나뭇잎이 좋은 차의 재료가 된다는 사실이 조금씩 알려지고 있다. 낙엽차는 우선 재료비가 들지 않고,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산야초 연구가 방양희 씨의 도움을 받아 낙엽차를 만들었다. 감·뽕·생강나무 잎 훌륭한 차 재료
주운 낙엽 잘게 잘라 그늘에 말려
종이로 만든 차 봉투에 보관
칼슘 등 몸에 좋은 영양성분 많아
하얀 진액 나오는 나뭇잎은 'NO'
■낙엽차 왜 좋은가 도시에서 낙엽은 청소부들에게 쓰레기에 불과하다. 그러나 자연 상태의 낙엽은 다음 생을 기약하는, 훌륭한 거름이 된다. 여름 내내 가꾼 잎을 잘 갈무리해서 주변에 떨어뜨리는 것이다. 낙엽은 노랗거나 빨갛다. 특정한 성분이 집약돼 있다는 사실을 뜻한다. 방 씨는 "나무는 자기 자신을 위해 가을이면 짙은 색의 단풍을 만들어 떨어뜨린다. 자기에게 주는 선물이자 거름인 셈"이라고 말했다. 블루베리가 눈에 좋은 이유도 안토시아닌이라는 자색 성분이 많이 들었기 때문인데, 낙엽이 하찮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부에 좋은 성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는 주장이다.■낙엽은 어디서 구하나 차의 재료가 될 낙엽은 청정한 지역에서 구해야 한다. 가능하면 도로에서 1㎞ 이상 떨어진 곳이 낫다. 특히 나무에서 막 떨어진 것이라면 더욱 좋다. 물론 하루 이틀 전에 떨어진 것도 깨끗한 상태에 있다면 크게 상관없다. 나무를 살짝 흔들어 떨어뜨리거나 나뭇가지에 붙은 나뭇잎을 따는 것도 요령이 된다.■어떤 낙엽이 좋을까 낙엽이라고 다 차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낙엽 중에서 비벼서 향이나 색깔이 잘 우러나는 것을 차 재료로 고른다. 낙엽차는 나무에게서 조금 빌리는 것이기 때문에 대량 생산의 대상이 아니다. 대신 다양한 종류의 차를 마실 수 있다. 그중 가장 대중적인 것은 감나무 잎이다. 그러나 단감나무 잎보다 떫은 감나무 잎, 떫은 감나무 잎보다 토종인 고욤나무 잎이 더 좋다. 생강나무, 비목나무, 감태나무, 뽕나무 등의 잎도 훌륭한 차 재료가 된다. 굳이 잘 모르는 나뭇잎을 구할 것이 아니라 차 재료로 잘 알려진 나뭇잎을 구하는 편이 가장 낫다.■낙엽차 만드는 법 낙엽에 벌레 구멍이 나 있어도 상관없다. 고운 단풍이 들었으면 가장 좋은 차의 재료다. 주운 낙엽은 마른 수건으로 앞뒷면을 잘 닦은 뒤 가위로 잘게 잘라 그늘에서 이틀 정도 말리면 된다. 덖을 필요도 없고 별도의 가공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으니 화석연료가 소모되지 않는 제다법이다. 바싹 마른 나뭇잎이라면 가위로 잘라서 즉석에서 차로 우려낼 수도 있다. 잘 마른 차의 재료는 종이로 만든 차봉투에 보관하면 된다. 그걸로 끝. 차봉투에 보관하면 변색이 잘 되지 않는다. 건조가 된 잎은 곰팡이가 필 일도 없으니 굳이 냉장 보관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너무 오래 두고 마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6개월 정도만 즐기는 것이 좋다. 적당한 양을 다기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3~5분 기다렸다가 따라 마시면 된다. 한 잔 마셔 보니 비목차는 감미롭고, 생강나무 잎차는 다감했다.
■낙엽차의 효능 낙엽차에는 나무가 주는 좋은 영양 성분이 많다. 잎이 말랐기 때문에 약 성분이 집약돼 있다. 주황색 단풍이 드는 비목잎은 면역력을 증강시키는 성분이 있다고 한다. 생강나무 잎으로 차를 우리면 노란 찻물이 우러난다. 칼슘 성분이 들어 있다고 한다. 한방에서는 어혈을 풀어 주는 약재로 생강나무를 쓴다고 한다. 감나무 잎으로 만든 차는 향이 연하고 거부감이 없다. 감잎은 비타민이 풍부하고 고혈압을 완화시키는 성분이 있다. 뽕나무는 당뇨병 약재로 쓰여 잎도 역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가피 잎은 인삼처럼 5갈래이니 약 성분이 제일 좋다고 한다. 감태나무 잎도 차가 되는데 약간 끈적한 느낌이 있어 관절에 좋다고 알려졌다. ■주의할 점 모든 낙엽을 차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독성이 없어야 한다. 아무리 약성이 좋더라도 옻나무 잎 등으로 차를 만들어 먹을 수는 없다. 나뭇잎이나 가지를 찢었을 때 하얀 진액이 나오는 잎은 차로 만들지 않는 것이 좋다. 공사 현장이 가깝거나 공단 주변, 농약을 친 밭이나 과수원 주변에서 나뭇잎을 채취하는 것도 가급적 삼가야 한다. 보관 중 제대로 말리지 않아 뜬 잎은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가을을 음미할 만큼 적당히 구해 두고 차로 만들어 먹는다면 늘 자연에서 노닌다는 고운 느낌을 음미할 수 있는 것이 낙엽차의 매력이다. 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 낙엽차란
낙엽차가 다소 생소한 이유는 보통의 차가 봄에 나는 새잎을 재료로 하는 것과 정반대의 경우이기 때문이다.
산야초 연구가 방양희 씨는 "낙엽차는 절에서 스님들이 예부터 마셔 오던 것이 민간에 조금씩 알려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산중의 스님들은 무소유의 원칙을 몸소 실천하면서 가을철이면 자연에서 버려지는 낙엽으로 차를 달였던 것이다. 우리나라 차의 대가로 불리는 초의선사가 지은 '동다송'에도 고성 옥천사에서 지은 시에 '낙엽으로 맑은 차를 손수 끓인다'는 구절이 나온다.
텔레비전 방송 프로그램 출연으로 최근 잘 알려진 '방랑식객' 임지호 씨도 한 방송에서 백두산 기행을 가서 낙엽차를 끓여 주변 사람들을 대접했다. 그의 요리 원칙은 주변에서 나는 재료로 즉흥적으로 하는 것이 특징. 편리하고 신선하고, 내 주변의 음식이 나를 보호하는 울타리라는 것인데 낙엽이 훌륭한 차의 재료가 되었다.
송명자(부산 서구) 씨는 최근 산야초 관련 강의를 듣고 난 뒤 낙엽차 마니아가 되었다. 주로 먹는 차는 생강나무 잎 차와 비목나무 잎 차. "낙엽차를 먹고 난 뒤로 정말 몸이 더 건강해졌다"며 웃었다.
이재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