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과목 수업듣는 학생 한명이 메일로 <인간의 본성>에 대해 질문을 해왔습니다. 답변을 하고 난 뒤 그 내용이 다른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올립니다. |
@ 학생질문 :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현대사회의 윤리적문제들> 과목을 수강하고 있는 H**이 라고 합니다.
수업 시간에 인간의 본성이 있는가에 관해 언급을 했었는데 저는 인간의 본성의 유무에 관한 이 질문이 너무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나름대로 저의 생각을 정리가 되지 않아 수업 시간 때 질문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계속해서 생각해봤을 때 저는 인간의 본성은 없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본성이라는 것이 어떤 행동을 하게 되는 원리인데 인간이 태어났을 때부터 그런 원리가 내재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유아기 때부터 인간사회에서 격리된 다른 곳에서 인간이 홀로 살아간다면 흔히 이야기하는 인간의 본성은 이러이러하다 하는 말들이 적용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적응성이 좋기 때문에 빨리 습득을 해서 좀 더 학습을 하고자 하거나, 타인을 배려할 줄 알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합니다. 인간이 몇 천 년을 거쳐 이루어놓은 인간 사회, 문화 속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그 문화와 관습, 사람들의 행동을 보고 그것에 적응하기 때문에 남을 배려하고 사람들이 양심이라고 부르는 것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라고 제 나름대로의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 사회에서 자라지 않았더라면 형태는 인간의 모습이나 다른 삶의 형태를 띄고 있을 것입니다.
제가 생각한 것은 위와 같지만 본성의 유무에 대한 생각이 정답이 있는 것일까요? 인간의 본성이 꼭 있는 것이 정답인가요 아니면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맞는 것일까요? 제 생각이 타당한 것인지 애매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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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의 생각 요약약 해 보았습니다.
1. 인간의 본성이란 것이 없는 것 같다.
2. 왜냐하면, 우리가 본성적이라고 하는 것은 학습에 의해 습득된 것이기 때문이다.
3. 남을 배려하는 양심이라는 것도 오랫동안의 문화와 관습에 의해 습득된 것이라 본다.
4. 만일 인간이 이 같은 문화적 환경이 아닌 동떨어진 곳에서 자랐다면 다른 삶의 형태를 뛸 것이다.
5. 본성의 유무에 대한 정답이 있는 것일까? 나의 생각은 타당한 것일까?
@ 위 다섯 가지 사항에 대해서 저의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1. 우선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실상 ‘본성(本性)’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본성이란 ‘본래부터 주어진 고유한 성질’ 혹은 ‘천성’이라고도 한다. 예를 들어 ‘물의 본성’ 즉 물이 원래가진 성질은 ‘형체가 없다’, ‘유동적이다’, ‘생명의 필수 요인이다’, ‘온도에 따라 성질이 변한다’는 등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성질은 분명 ‘돌이나 쇠’와 같은 고체와는 다른 성질이지요. 이렇게 애초에 혹은 탄생부터 가지는 고유한 성질이 있다면 이것을 ‘본성’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인간 역시도 이렇게 탄생부터 가지는 고유한 성질이 있는가? 라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니다’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요, 그렇다면 그 근거들은 무엇일까요?
2. 학생은 본성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의 근거로 사람들이 본성적이라고 부르는 것도 모두 ‘학습에 의해 습득된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본성적이라고 하는 것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여기서 학생은 사람들이 무엇을 본성적인 것이라고 부르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저에게 몇 가지 예를 들어보라면, ‘인간이 가진 본성적인 것 중에서’ 특히 동물과 구별되는 것을 들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본성’이라는 용어에서 부각되는 것은 ‘인간을 동물로부터 구분해주는 특별한 성질’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지요. 대부분의 생물학적인 차원의 현상은 인간이나 동물이나 유사하다고 여겨집니다. 하지만 분명 인간에게는 다른 동물들과 구분되는 인간만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는데요, 예를 들어 ‘인간은 나이가 듬에 따라 무엇을 알고자 한다’, ‘인간은 무언가 의미 있는 것, 혹은 가치가 있는 것을 추구하고, 항상 더 나은 것을 갈망한다’, ‘인간은 자기자신이라는 것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자신만의 삶, 자신만의 비밀, 자신만의 인생관, 자신만의 세계관을 가지고자 한다‘ ’인간은 아름다운 것, 새로운 것 등을 추구한다‘. ‘인간은 정의롭고 올바른 것을 추구하고, 자유로운 삶을 갈망한다’ ‘인간은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고,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을 한다’ 는 등 수 많은 것들이 다른 동물들에게는 볼 수 없는 인간이 가지는 고유한 특징들(현상들)이지요. 그래서 철학자들은 ‘사유하는 인간(호모 사피엔스)’ ‘윤리적 인간(호모 에티쿠수)’ ‘종교적 인간(호모 헐리지오수스)’, ‘예술적 인간(호모 아르테스)’ 등의 용어로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 규명하고 있지요. 이러한 본질적인 현상을 낳는 그 애초의 원리가 곧 ‘인간 본성’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학생의 생각에는 이 모든 본질적인 현상들이 ‘본성’으로부터 파생되기 보다는, 교육과 학습에 의해 습득된 것으로 생각을 하는데요, 이러한 생각에는 일종의 모순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가령 현재의 인간들에게는 이러한 것이 마치 교육을 통해서 습득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도, 과거 언젠가 처음 이러한 것을 추구한 사람들은 누가 이들에게 이것을 교육하고 습득시켜 주었을까요? 외계인 이었을까요? 천사들이었을까요? 만일, 이러한 것을 추구한 것이 인간 스스로의 욕구나 욕망 등에 의해서라면 이러한 욕구나 욕망을 일으킨 그 내면의 어떤 것이 곧 ‘본성’이라고 불릴 수 있지 않을까요?
3. 우리가 양심이라고 부르는 것도 습득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양심이 습득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도 약간의 모순된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가령 어릴 적부터 세뇌에 의해 조폭이나 공산주의에서 볼 수 있는 이상한 가치관(예를 들어 강자가 살아남고 약자는 도태된다, 양심이라는 것은 약자가 만든 허상이다는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면, 조직이나 공산당을 위해서 친구나 가족을 혹은 선량한 사람들을 파괴하고 죽이는 일도 망설임 없이 행하겠지요. 그의 내적인 판단(습득된 양심)이 그것을 옳다고 생각하기에 그러한 이상한 행동에 아무런 거부반응이 없어야 할 것이겠지요. 하지만 많은 사람이 이러한 이상한 행동에 대해서 어느 날엔가 염증을 느끼고 여기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을 볼 수 있지요. 가령 수많은 탈북자들이 그 예가 아닐까요! 그렇다면 이러한 ‘반발’이나 ‘반동’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누가 이러한 ‘내적인 정의감’을 학습을 시켰을까요? 아마도 ‘양심(良心)’ 즉, ‘밝은 마음’이라고 부르는 것이 학습과 무관하게 모든 인간에게 내재하고 있는 것이라면 이것이 ‘동물의 본성’과 다른 ‘인간본성’이 있다는 것의 명백한 증거가 아닐까 합니다.
물론 중국 철학자 순자와 같은 사람은 오히려 인간의 ‘이기심의 발로’를 보고,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고 하였으니,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한 인간의 본성이라는 말이 모순된 것이어서 성립할 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기심이란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물체들이 가지는 본능적인 것이라 이것을 ‘인간의 본성’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요. 즉 인간본성에는 ‘동물들과 공유되는 부분이 있고, 인간만이 가지는 고유한 부분도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4. 만일 인간이 영화 속의 ‘타잔’처럼 어릴 적부터 인간사회와 동떨어진 곳에서 살았다면 현재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삶을 살 것이라는 가정은 충분히 긍정할 만한 것입니다. 하지만 ‘삶의 형태가 다르다’는 것과 본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삶의 형태’가 다르다는 것은 다소 막연한 표현이지만, 지금도 인간사회의 삶의 모습은 천차만별입니다. ‘아프리카 부족사회’들의 삶의 형태나, '아랍인들의 삶의 형태'나 '한, 중, 일의 유교적 사회모습'이나 혹은 '기독교 사회의 모습'이 너무 다르고, 또 '자유 민주주의 국가'와 '공산사회주의국가'는 그 삶의 모습이 너무 다르죠. 하지만 삶의 모습이나 형태가 다르다고 해도 그곳에는 ‘인간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있지요. 바로 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것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그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즉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기인된다고 할 수 있겠지요. 따라서 타잔과 같이 정글 속에서 혼자서 동물들과 산다고 해도 분명 타잔은 다른 동물들과 다른, '인간이기 때문에' 욕구하거나 욕망하는 것들이 있겠지요. 그것이 바로 인간본성의 발로가 아닐까 합니다. 몰론 이것을 경험적으로 실험을 해 볼 수는 없으니,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지요!
5. 우선 학생의 생각은 틀렸다거나 옳지 않다거나 할 수가 없습니다. 분명 ‘본성은 없다’라는 생각도 하나의 철학적 관점이며, 이를 보다 섬세하게 논증하고자 하는 철학자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 학생이 생각하는 그 근거들과 추론은 매우 빈약하여 타당하다고 할 수가 없겠지요. 만일 학생이 현재 학생의 생각이 타당한 것인지를 확인하고자 한다면, 위에서 제가 논하고 있는 것처럼 어떻게든 학생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경험적이든 연역적이든) 다양하게 정당화 시켜보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분명 언젠가는 “보아라! 이렇게 분명하지 않는가!”라고 혹은 “아, 이렇게 해서 내가 잘못 생각하였구나!”라고 확신이 들 때가 올 것입니다.
사실상 ‘본성’이나 ‘본질’ ‘실체’ ‘영혼’ 등과 같은 용어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형이상학적인 실재 혹은 원리’를 지칭하는 것이어서 정답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정답이라기보다는 ‘건전한 답변’ ‘모범적인 답변’ ‘긍정적인 답변’ ‘선호할 만한 답변’ 등은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러한 것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상대주의’에 빠져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깊이 생각하고 세심하게 추론하면서 스스로 ‘확신하는 답변’ 그것이 최선이겠지요.
만족한 답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