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25일 일요일
식탐
김미순
어찌 그리 이쁠까?
매사에 안 이쁜 것이 없다. 특히 먹는 걸 보면 세상 살 맛이 난다. 내 아내 정 이는 근동에서 제일 이쁜 각시다. 게다가 딸 둘, 아들 둘 다복한 가정을 이룬 일등 공신이다. 내 어머니도 그런 며느리를 고마워 하셔서 살림 다 해주시고, 손주, 손녀들 뒷바라지도 다 해 주신다. 정님이와 나는 토마토 하우스에서 먹고 자고 옷 갈아입으러 집에 간다. 물론 빨래는 어머니 몫이다.
정님이가 특히 예쁜 건 먹을 때다. 무엇을 먹든 오목오목 씹는 것이 내 마음에 든다. 사람들도 참 복스럽게 먹는 다고 칭찬한다. 동네 형수는 하도 깨작깨작 드셔서 형님이 애를 먹는다.나는그에 비하면 양반이다. 밥을 형수같이 먹으면 들어오는 복도 달아날 것 같다.
어느날 오이하우스를 하는 동네 형님의 하우스에 갔다. 점심을 해결할 양으로 간 것이다. 흑토마토 한 상자를 지고 갔다. 어차피 토마토는 정님이가 싫어해서 남들한테 상자로 줘도 안 아깝다.
"토마토 잘 열린가?"
"뭐 그렇지요? 형님 오이도 잘 열리지요?"
"비가 많이 와서 예년보다 반 짝도 안 돼"
"밥 안 먹어요?
"밥 먹어야지. 갈치조림 해서 먹지. 어이, 거의 다 됐지?"
정닝이는 쏜살같이 식탁으로 달려들었다. 식탁을 차리던 형수가 정님이 더러 숟가락을 놓으라고 하였다.
"자기가 먹을 숟가락은 자기가 챙겨야지요"
"내가 놓을게"
뾰로통해진 정님이 대신 내가 숟가락 젓가락 네 벌을 숟가락 통에서 꺼냈다.
"이거 시숙님이 낚아온 거죠?
정님이는 감탄했다며 저법 큰 토막을 앞접시에 옮겨놓았다. 나도 통통한 토막을 건졌다. 아무 소리가 없었다. 젓가락 부딪치는 소리만 딸근락거렸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갈치 토막을 없애고 얼큰히 익은 호박, 양파로 마무리하였다. 정님이는 물김치에 고들빼기 김치로 남은 밥을 먹었다. 나는 갈치 조림에 이미 배가 두둑하게 불러버렸다. 형님 내외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형수님이 누룽지를 가져 오셨다. 그 때 만큼은 세 사람 다 깨작거렸다. 정님이는 보시기 바닥이 다 보일정도로 깨끗이 비웠다.
"와~우, 잘 먹었댜"
잘했어, 역시 우리 정님이!
며칠 후 초복에 복다림 한다고 형님이 하우스로 초대하였다. 그날도 흑토마토를 한 상자 가지고 갔다. 이미 식탁이 차려져 있었다. 닭볶음이었다. 정님이는 먼저 햇감자를 건져 앞접시에 놓고 기도하듯 '파글파글 맛나겠다' 읊조렸다. 그 다음 다리 하나를 꺼냈다. 그이후 또 다리를 건지려고 젓가락을 집는 순간 형수님 젓가라콰 부딪쳤다.
"걸신 들렸냐?"
형수님이 샛된 목소리르 소리를 질렀다. 잠시 움찔하던 정님이
"다른 거 먹을께요"
하고 가슴살을 집었다. 물김치와 간재미회무침이 마음에 들었는지 밥을 손수 퍼 와 우적우적 먹었다. 정말 이쁘다. 마지막 숭늉까지 완전 정복했다.
오이하우스를 나와 부근 하나로 마트에 갔다. 커피를 사야겠다며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별로 살 것도 없는데 푸트코트 앞에 걸음을 멈추었다. 도토리묵과 집채를 가방에 쏙 넣었다. 천천히 매장을 구경하다가 칸타타 하나를 계산하고 나왔다. 나는 깜짝 놀라 손을 잡았다.
"괝삲아"
"들키면 어쩌려고?"
정님이는 통이 점점 커지고 나는 겁이 많아지고ㆍㆍㆍ
날이 지날수록 정님이의 도벽은 심해졌다. 하나로마트는 기본이고, 애플망고나 귀한 열대과일 시설하우스를 침탈했다. 미래의 작물 체험을 핑계로 처음엔 시식을 하였다. 그 다음부터는 주머니에 한 두 개씩 훔쳐왔다. 주인은 모르는 척 눈감아 주었다. 나도 몇 번 경고를 하였는데 말을 듣지 안았다. 급기야 소문이 났다. 경찰에 신고할 거라는 말도 슬슬 나왔다. 경찰이 주변 마을을 점검한다는 이유로 시설하우스 주변을 밤마다 돌았다.
정님이는 그때야 행동 조심했다. 아니 조심하는 척이었다. 왜냐하면 애들과 어머니를 잡도리했다. 옷 갈아입을 때만 가던 집을 끼니 때 마다 꼬박꼬박 갔다. 밥을 먹을 때, 맛이 없네, 소금이 범벅이네, 어머니는 치매걸린 거 아니냐,, 큰 딸에게는 자기 돈을 훔쳤네 하면서 울음바다를 만들었다. 아직 중학생인 큰 딸은 한참 사춘기라 무척 예민하였는데 집 나가교 말거라고 울며 학교에 갔다.
그날 저녁 예고한 대로 딸은 집에 오지 않았다. 당분간 친구집에서 지낸다며 나에게 전화했다. 엄마가 의심을 거두면 가겠다는 것이다.
나는 찬찬히 정님이를 만났을 때를 생각했다. 무척 가난했다. 홀어머니에 세살 터울 남동생이 하나 있었다. 전통시장에서 채소를 파는 어머니는 맵고 짰는데 장사하는 사람 특유의 독한 면이 있었다. 정님이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엄마 곁에서 장사를 배웠다. 머리가 좋고 요령이 있어 금방 장사꾼들 사이에 장사에 장인이라고 부러움을 샀다. 돈을 잘버니까 동생의 학업에 투자하였다. 학교가 끝나면 버스 타고 읍내 학원에 보냈다. 영수학원에 보내니까 한달에 이십만원이 들었다. 그러나 성적은 그저 그랬다. 고등학교 다닐 때는 피시방에 쳐박혀 지내고, 겨우 학교만 안 빠졌다. 그런데 이게, 웬일? 턱하니 아들을 낳아 집에 들어왔다. 고 3 아버지가 된 것이다. 게다가 애 엄마는 없는 ㆍㆍㆍ 그때부터 어머니 장사 자리에 정님이와 남동생이 자리잡고 앉아 손님을 불렀다. 그때 시설하우스를 하려고 여러가지 시설물을 사러간 내 눈에 띈 가족. 누구보다 밤 깎아놓은 듯한 정님이를 발견했댜. 한 눈에 반한 나는 동생에게 운전면허증을 따게 하였다. 고향 선배가 상추 시설하우스를 운영했다. 그 선배가 학교 급식에 상추를 공급하게 되었단다. 급식차에 운전사가 필요하다 해서 벌인 일이었다. 아이는 어머니와 정님이가 바닥에 요를 깔고 우유 먹여가며 키웠다. 어는정도 장사도 잘 되고 동생도 월급을 받으니까 정님이 먼저 결혼 말을 꺼냈고 나는 혼쾌히 승낙했다. 아무것도 필요없다고 나는 정님이 몸만 와도 된다고 했다. 모든 결혼 비용은 내가 다 졌다. 시설하우스를 한다고 아버지가 물려 주신 산을 잡히고 논을 땅으로 만드느라 꽤 많은 돈을 쳐박았다. 어머니는 몹시 반대했다. 없어도 너무 없는 집안이라고. 어느정도 비슷한 수준이야 손을 잡을 거 아니냐고. 그래도 농업 전문대학교를 나오고 돈도 그만하면 부농인데 뭐가 아쉬어 정님이란 말인가. 게다가 독자인 내가 좋은 조건의 여자가 쌔고 쌨는데 왜 정님인가 말인가? 어머니의 반대는 밀물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동생이었다. 아침 일찍 상추를 싣고 대여섯 군데 학교를 돌고나면 오후엔 놀았다. 그때 도박을 하였다. 월급은 도박에 쳐박았고 정님이에게 손을 벌렸다. 이반이 마지막이라는 각서를 쓰고 돌아서도 마지막이 아니었다. 아이가 초등학생이 된 지금은 주식으로 방향을 틀어 정님이의 속을 태운다.
내가 벌어들이는 자금도 꽤니 된다. 건강에 토마토가 최고라고 해서 내 주머니가 두둑하다. 거기에 흑토마토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지경이다. 그런데 정님이는 돈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맛 있늕 것도 못 사먹는다며 자리를 핀다. 아무래도 동생 밑으로 자주 돈을 넣어주는 것 같다. 정님이가 식탐을 부리는 것도 지금이 아니면 먹을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리라.
나는 정님이가 불쌍해졌다. 절도까지 해서 배를 채우려는 정님이의 신세가 한없이 불쌍하고 안 돼 보였다.
정님이는 오늘도 오이하우스에서 형님이 낚아 온 고등어 조림을 먹고 있다. 형수랑 티격때격 젓가락 싸움을 하며ㆍㆍㆍ배시시 웃으며 물김치를 먹으며 누룽지도 말끔히 비워내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