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근대 철학(4)-토마스 홉스, 리바이어던
토마스 홉스는 르네상스 시대의 영국의 철학자였다. 그는 굉장히 혼란한 시대 속에 살았기에 안정을 원했고, 그래서 국가에게 권력을 일임함으로서 국가의 권위와 체계 속에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중단하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주장했다. 이 내용을 담은 그의 대표작이 ‘리바이어던’이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시대 가운데 살았고, ‘리바이어던’은 정확히 어떤 동기로 쓰여졌으며 어떤 내용인지에 대해 차례대로 알아보도록 하자.
토마스 홉스는 1588년, 엘리자베스 여왕이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한 해에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온다는 사실을 듣고 겁에 질려 그를 조산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는 빈궁한 가정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교회의 목사였으나, 도박과 주벽에 빠져 있다가 아내와 아들을 버려두고 사라져 버렸다. 다행히도 장사로 성공한 홉스의 삼촌이 홉스가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해 주었다. 영민했던 홉스는 옥스퍼드를 졸업하여 당시 부유했던 카벤디쉬 가문의 가정교사가 된다. 홉스의 지적 사회적 재능이 일찍부터 인정받았던 것이다. 홉스와 카벤디쉬 가문과의 인연은 그의 개인적인 생계 수단의 차원을 넘어 그에게 17세기 정치, 과학, 철학의 장에 들어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그는 이 시기에 세 차례나 유럽 여행을 다녀오면서, 당대의 유명한 지성인들과 교류할 수 있었다. 아마 그때가 홉스의 인생의 가장 행복한 시기였을 것이다. 그러나 1642년 청교도 혁명이 일어나 공화정이 수립되자, 군주정을 옹호하던 홉스는 11년간 영국을 떠나 망명 생활을 해야 했다. 그는 1651년쯤 다시 영국으로 돌아오고, 1660년의 왕정복고를 반가이 맞는다. 그 후부터 급격히 쇠약해진 홉스는 1679년, 질병에 걸려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이렇게 그는 천재였으나 불안하고 위태로운 삶을 살았다.
이제 그가 ‘리바이어던’을 집필하게 된 동기에 대해 알아보자. 홉스는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만난 후, 그의 과학적 방식에 깊게 감명을 받아, 이 방법을 인문적인 면에도 적용하고자 했다. 즉 자연과학 연구의 원리와 방법을 인간행동과 관계의 연구에 적용하여 정치, 도덕에 관한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기하학적 정확성을 갖는 사회과학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이런 의도가 리바이어던의 저술방식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 홉스가 이런 사상적 내용을 규정하고 저술하게 된 근본적인 동기는 하나였다. 리바이어던이 저술되었던 때는 그가 프랑스로 망명해 있던 때였다. 그 두렵고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그가 진정으로 소망했던 것은 영국이 평화와 안정을 되찾고, 자신은 조국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리바이어던’은 영국이 평화와 질서를 회복했으면 하는 소망을 담고 쓰여졌다.
그렇다면 홉스는 책의 제목을 왜 리바이어던이라 지었을까? 리바이어던은 욥기 40-41장에 나오는, 지상 최강의 존재를 상징한 수중괴물의 이름이다. 홉스는 리바이어던을 하나님의 절대권력의 상징이라고 보았다. 즉 그는 리바이어던이라는 괴물을 빗대어 국가의 강력한 권력을 설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리바이어던’의 내용을 보기 전에, 짧게 리바이어던의 핵심 내용에 대해 알아보자. 홉스는 사람들은 만민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전개되는 자연 상태를 극복하기 위하여 국가를 만든다고 말했다. 국가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권력을 어떤 사람 또는 집단에 일임함으로서 성립된다. 권력이 일임된 국가의 체계와 질서가 있어야만 서로에 대한 투쟁이 중재될 수 있고, 그래서 사람들이 국가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토마스 홉스와 리바이어던에 대한 소개다.
감상문-홉스는 전체적으로 암울한 인생을 살았다. 공포와 함께한 출생, 위태로운 가정. 그것들에게서 기적처럼 벗어나 누린 그의 황금기도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으며, 심지어 그는 그 시기에도, 또 그 시기가 지난 후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았다. 나라는 반란으로 인해 어지러웠으며, 그 자신은 11년간을 망명 생활을 하며 암살의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그는 사실 왕당파라기보다는 군주정을 옹호했으며, 그 때문에 긴 망명 생활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군주정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는 사실이 어떻게 보면 놀랍다. 물론 그 이후로 정치에는 일절 관여치 않았지만 말이다. 그의 마지막도 쓸쓸하고 비참하다. 배운 내용으로 보자면 그에게는 곁을 지켜줄 가족도 없었던 것 같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았다면 그의 어두운 인생은 조금은 밝아졌을 런지도 모르는 일이다. 질병에 걸려 몸이 마비된 상태로 숨을 거두기 직전, 그는 어쩌면 끔찍하게 공포스러웠으리라. 아무튼 이렇게 인정받지 못하고 안정을 바랐으나 끝까지 불안정 속에서 살아온 그는 후대에 가서야 크게 인정받게 된다.
내가 홉스에 대해 배우면서 새로웠던 점은, 그가 인문학에 과학적 방법을 접목시키려 했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 말의 뜻을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홉스는 자연과학 연구의 정확성을 닮으려 했던 것일까? 다른 철학자들의 정의가 흐릿하고 논리가 모순되는 사상과는 달리, 정확한 추론을 만들려고 했다는 것일까? 실제로 그의 책에는 인간의 많은 것이 놀라울 정도로 또렷하게 정의되어 있다. 하지만 그것뿐일 것 같지는 않다.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리바이어던을 배우면서 알아보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는 마키아벨리를 비난했다고도 하지만, 사실 마키아벨리와 흡사한 점도 몇 가지 있는 것 같다. 우선 인간의 자연 상태를 악하다고 본 것. 물론 마키아벨리는 실리주의자로서 인간이 악하다는 전제를 끝까지 지키기보다는 자신의 주장에 따라 가끔 바꾸었지만, 기본적으로는 누구보다 먼저 이상이라는 장막을 걷어낸 현실 세계와 인간들을 보았다는 점은 많은 사람이 인정할 것이다. 그리고 또 흡사한 점은 강한 군주를 바라고, 그런 소망을 책에 담아내었다는 점이다. 마키아벨리에 대해서는 워낙 의견이 분분하지만, 마키아벨리가 정말 ‘군주론’에 썼던 대로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유력한 설들 중 하나처럼 정말 이탈리아가 통일되기를 원했다면 홉스와 흡사한 동기를 가지고 책을 썼다고 볼 수 있다. 마키아벨리도, 홉스도 격변의 시기를 살았으며, 그들이 경험한 세계는 그다지 상냥한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홉스는 정말이지 그 몰아치는 폭풍 속에서 그것들을 규합하고 안정시킬 어떤 절대적인 권위를 바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가 책의 제목을 하나님의 절대권력의 상징인 괴물 리바이어던으로 지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가 인간을 악하다고 정의한 것도 그가 경험한 세계에서 나온 생각일 가능성이 있다. 그에게 가족이 없었다는 것과, 온갖 두려움에 사로잡힌 인생을 살았다는 것은 정말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가 과연 신을 믿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의 책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한데, 단지 지금까지 알려진 신의 존재를 존경한 것인지 혹은 진정으로 믿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만일 신을 믿었다면 그가 그의 인생에서 일말의 안정이라도 가졌기를 바랄 뿐이다. 이렇게 쓸쓸하고 알아주는 사람 없는 천재의 죽음은 우리에게 묘한 연민을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