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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삶, 그들만의 충실한 몸부림
-김정태의 수필세계-
강 돈 묵
1. 들어가면서
통기타 음악과 생맥주, 청바지, 장발로 대변되는 우리의 청년문화는 1960년대 말에 시작하여 정치적 외압으로 강제 퇴출될 때까지 1970년대의 한국 대중문화를 주도했던 문화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이전에 태어난 세대들은 일본 강점기 문화에 길들여져 있었으나 전후에 태어난 세대들은 서구문화의 도입으로 유형이 전혀 다른 문화 속에서 성장하였다. 새로운 세대들이 서구문화에 대한 지향과 동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보니, 기존의 것과 현저한 차이를 보이게 된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다. 일본문화와 서구문화의 차이도 현격한데다 생활 감각이나 가치 체계, 미적 취향에서 차이를 보이는 당시 젊은 세대들의 모습은 기성세대들의 눈에 곱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 뻔하다.
특히 전전세대들은 일본의 강제에 익숙해져 있었고, 개인의 가치보다 국가의 존립에 더 관심을 두던 터라 군사정권의 급속한 경제 성장 정책을 빌미로 한 개발 독재에도 너그러웠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젊은 세대들의 생각은 확연히 달랐다. 아무리 격변기라 해도 사회적 모순과 갈등을 모르는 체 할 수 없었고, 장기집권의 길로 가고 있는 현실을 묵과할 수만은 없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 젊은 대학생들은 고민하고 저항적인 의식을 키우기에 이르렀다. 그동안 헤게모니를 유지하고 있던 식민지 문화는 새로운 서구문화와 심한 문화적 갈등을 겪어야 했음은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새로 형성된 청년문화는 기존의 것에 그렇게 도발적이지는 않았다. 그들의 문화가 첨예한 이념이나 이론으로 무장한 대학생들에 의하여 주도되었던 것도 아니고, 정치적 저항에 맥을 둔 운동도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기존의 문화와는 차별화되는 다소 낭만적인 엘리트 의식과 감성적 자유주의에 속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의 행동은 어디까지나 감성적이고 낭만적인 성격을 짙게 풍기고 있었기에 저항의 문화라기보다는 차이의 문화로 변별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그러니까 세대 특유의 문화적 정체성을 가진 점을 높이 평가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세대혁명이라고 봄이 합당할 것으로 판단된다.
문단활동을 시작하여 처음으로 수필집을 간행하는 김정태는 정확히 말하면 이러한 청년문화가 도래하여 번성하던 시절에 고뇌하며 대학을 다니다 군복무도 마쳤고 복학하여 졸업한 작가이다. 그는 행정학을 선택하였으나 전공의 학습보다 문학적 독서에 깊이 빠져들어 독서 서클에서 심신을 키운 열혈 작가다. 그러나 당시 군사정권이 들어서 한 시대를 풍미하였다 해도 그는 그것에 목숨을 저당하며 저항한다거나 맞서서 싸우기보다는 스스로 삭히며 인내하는 길을 선택하였다. 이것은 너무나 가정적이고 자식 사랑이 지극하였던 아버지의 영향인지도 모른다. 여하튼 시대적 아픔을 작가 김정태는 어떻게 삭히며 견뎌냈는지 살펴보고, 그의 작품세계에 깊이 들어가 같이 공감하며, 이를 통하여 1970년대 전후의 시대상과 당대의 젊은이들의 애환을 들여다보는 것도 커다란 의미가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본래 수필은 작가의 삶이 작품에 지대하게 영향을 미치는 문학 장르이다. 수필은 작가의 삶 속에서 접하게 되는 사물이나 사건의 본질을 찾아 작가만의 시각으로 해석해 내고, 그것이 함유하고 있는 의미를 부여하여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문학 장르이다. 그래서 수필을 보면 작가의 삶에 대한 애정과 고뇌가 함께 어우러져 작가만의 정체성이 드러나게 된다. 작가가 삶의 현장에서 뜨겁게 자신을 사랑한 흔적이 짙게 풍김으로써 독자는 작가의 두뇌를 보는 것이 아니라 뜨거운 가슴을 읽게 되는 것이다.
2. 1970년대 청년문화의 진수
앞에서 기술하였듯이 작가 김정태는 젊은이들의 문화가 격변하는 시기를 살아내었다. 작가의 수필은 바로 그 작가의 삶의 모습이다. 작가의 삶이 어떠했는가는 그의 수필세계를 들여다보는 데에 지대한 공헌을 한다. 바로 작가가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제시해 주는 매개체가 되기 때문이다.
기성세대들은 당시의 젊은이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사복경찰은 그들을 범죄자들로 낙인하고 연행하였지만 그들은 무엇이 죄인지조차 알지 못한 채 끌려갔다. 왜냐하면 그들은 전혀 권력에 저항하고자 하는 의도도 없었고, 오로지 그들의 삶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에 대하여 정확히 진단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스스로 불만을 가지고 있었음을 기술한다. ‘치기어린 행동을 열정이라 믿었고, 계통도 질서도 없는 독서와 토론을 최선의 공부로 치부하며 지내던 젊은 날’로 인식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그들은 자신들이 처한 현실을 사랑하였고, 치열하게 그 안에서 삶을 꾸렸던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찬바람이 아직 자리를 비우지 않은 그해 봄, 대학생활은 시작되었다. 새장을 벗어난 새처럼 겉보기는 자유롭고 싱그러웠으나 가슴앓이가 심했고 주변의 일들과 사물을 사유(思惟)함은 옹졸함을 벗어나지 못했다. 생활은 여러 방향으로 방대해졌으나 그 또한 계통도 질서도 없었다. 시대의 아픔 앞에 무력했고, 무시로 찾아오는 자괴감과 즉흥적이고 치졸한 행동은 소년의 티를 벗지 못한 방종의 생활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열정으로 때로는 낭만으로 포장되어졌다. 정리되지 않은 논리는 밤샘 토론으로 희석되어지고, 남은 찌꺼기는 정화되어지지 않은 습작 시로 활자화되어 화랑의 벽에 걸리곤 했다.…<중략>…
그녀와 나는 교정의 그 모든 곳에 있었다. 비 내리는 날은 빗속에 있었고 햇살받기 좋은날은 벤치의 한구석이 우리를 위해 비워져있었다. 시험기간이면 도서관 한 자리를 번갈아 이용했다. 때로는 텅 빈 찻집에 앉아 ‘Crazy love’를 따라 불렀고 존 덴버의 노래에 취했으며 테이블 위의 메모지엔 낙서로 채워져 갔다. 그러는 동안 서로의 집을 한 번씩 들러 부모님께 인사를 했다. 성직자의 가정인 그녀의 집은 내게는 다소 생소했다. 그녀 역시 내 집이 자연스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들꽃 진 언덕>에서
생각도 없이 마냥 날뛰기만 하는 젊은이가 아니었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인식하였지만, 그들은 언제나 가슴앓이 했고, 자신들의 사유가 옹졸하다고 자책하며 살았다. 생활은 방대했으나 계통과 질서가 없고, 시대 앞에 무력했으며, 늘 자괴감에 싸여 방종한 생활을 하면서 그것을 열정과 낭만으로 포장하려 했다고 반성한다.
사랑에 있어서도 그렇다. 늘 함께 있으면서 차를 마시고 존 덴버의 노래에 취해 있었으나 모두가 껍데기일 뿐이었다. 여자와는 극명한 이질감에 쌓여 있다. 서로 다른 집안의 모습이 생소하다. 거리감이 있는 성직자 가정의 여자와 헤어져 신자도 아니면서 절간으로 찾아드는 작가의 모습은 당시의 젊은이들이 얼마나 외롭고, 고독하게 지냈는지를 가늠하게 한다. 이러한 감정에서의 도피는 기행으로 이어지기도 하였던 것이다.
앞에서 한국의 청년문화가 첨예한 이념이나 이론으로 무장한 대학생들에 의하여 주도되었던 것도 아니고, 정치적 저항에 맥을 대는 운동도 아니었다고 본 것은 이러한 대목에서 쉽게 읽을 수 있다. 어디까지나 기존의 문화와는 차별화되는 다소 낭만적인 엘리트 의식과 감성적 자유주의에 속했음을 읽을 수 있다. 이들의 행동은 저항이 아니고 오로지 기존의 것과는 거리가 있는 차이였다.
우리는 한 시절을 그곳에서 술을 마셨고 지식을 탐하며 토론했고 이념을 정립해 나갔다. 깨어진 사랑은 가슴에 조각난 모습 그대로 쓸어 담았다. 마저 끝내지 못한 사랑 앞에 더 많은 계절들을 가슴으로 안아내며 지냈다. 그렇게 아주 조금씩 세상을 알아갔다. 결정된 아무것도 없었기에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세상을 바라보며 각자의 길로 나아갔다. 그러나 대개는 그 시절 주모의 파괴되어져 가는 삶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올바로 읽어 내지 못했다. 주모의 삶에 대한 애착이 우리의 떠벌리는 말보다 더 진실 되었음을 우리는 넘기고 있었다. 자신의 것에만 집착하느라 삶의 진실성을 알지 못했다. 사람 사는 모양이 그 작은 동전집 안에 고스란히 있었던 것을. -<동전집 시절>에서
당시 방황하던 젊은이들의 모습은 <동전집 시절>에서도 읽을 수 있다. 앞의 인용문과 다른 작품이면서 같은 작품인 듯이 똑같은 아픔이 그려져 있다. 이념의 혼돈 속에서 방황하고, 사랑을 애달파했다. 진리 앞에 설익은 사유의 강을 두려움 없이 건넜고, 토론은 요동쳤으며 독설이 난무했다. 혼돈 속의 시국을 책 내용과 연계시켜 토론하다 사복경찰에 연행되어 취조실의 문을 넘기도 한 것이 그들이다.
갈증이 해갈되지 않는 고픔은 막걸리를 들이부어 채웠다. 자신들의 행위를 스스로 치기로 인식하고 ‘열정’과 ‘낭만’으로 미화한 것을 후회한다. 이같이 70년대 청년문화는 정치적 목적이 배제된 그들만의 특색이었던 것이다. 기존의 참고 인내하는 문화와는 다르면서 다소 엘리트 의식을 가진 낭만적이고 감성적인 자유주의에뿌리 내렸던 젊은이들의 문화였던 것이다. 기성세대들은 이를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여 그들을 내몬 것은 아닌지 돌아볼 책무가 있다.
김정태의 수필에서 보면 이러한 기록이 작가 자신의 단순한 고백이라기보다 당시의 사회 현상으로 읽힌다는 장 점이 있다. 임팔라처럼 아무데나 들이받는 저항이 아니라 당시에 도도히 흐르던 조류임을 독자들의 뇌 속에 확실하게 각인시키고 있다.
3. 고통의 시간을 견뎌낸 배설의 유형
사람은 먹고 배설해야 살 수 있는 동물이다. 이 과정이 순조롭게 이루어져야 생물체는 유연하게 목숨을 보존할 수 있다. 음식물을 먹으면 그것에서 필요한 영양분을 섭취하고 나머지 찌꺼기는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 먹는 것만큼 배설도 중요하다. 이 대사는 보통의 경우는 자연스럽게 진행되어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나 한번 탈이 나면 다른 모든 활동에 장애가 나타나 절실해진다.
인간이 살아가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섭취와 배설이 자연스럽게 이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섭취와 배설은 상당히 복잡한 문제이다. 아무리 조심을 해도 상대에게 부담을 주는 말실수를 해서 언짢은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하고, 내가 들은 말이 가슴에 응어리지어 좀처럼 풀어낼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전혀 예기치 못한 일로 인해 당황스런 상황을 겪고, 더러는 엉뚱한 일로 궁지에 몰린다. 또 자신에게 밀어닥친 일이 억지투성이라서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에게 파고든 가시를 제거하는 일은 슬기로워야 한다.
우선 사람들은 자신에게 날아든 말의 칼날은 배설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서운한 말을 듣는 순간 참지 못하고 버럭 화를 내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점잖은 사람은 상대에게 서운한 감정을 덜 주면서 자신의 의도를 전달하기를 소망한다. 1970년대 군사정권의 급속한 경제 성장 정책을 빌미로 한 개발 독재와 장기집권의 길로 가고 있는 현실을 묵과할 수 없었던 젊은이들은 사복경찰과 마주서기를 원하지 않았다. 작가 김정태 역시 유연한 선택을 하고 있다. 이 배설은 몇 가지 유형으로 나타나 문학적 성과를 거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짜증과 분노, 배신과 원망, 미움이 뒤범벅이 되던 시절이다. 취해버린 자의 무책임하고 가엾은 정서는 나오는 대로 지껄여대면서 욕하고 악다구니하다가, 비실비실 집으로 향하는 찬바람 이는 새벽길에서, 똥이 되지 못한 것들이 제 들어간 곳으로 도로 기어 나왔다. 겨우 제 길로 찾아간 것들만 아침에 똥이 되어 나왔다.
이런 날, 스스로에게 씌워지는 혐오는 화장실 변기에 앉았을 때 최고조에 달한다. 가엾고 슬픈 똥이다. 앉아서 마시던 장소도 가물거리고 마구 지껄였던 말들도 덜 썩은 채로 똥 속에 섞여서 가늘고 무기력하게 나온다. 참으로 남루하기 이를 데 없는 똥이다.…<중략>…
헛웃음이 나오며 어머니의 가여운 똥 앞에서 또 눈물겨웠다. 평생 밥을 만들기 위해 험한 길을 걸어 온 한 노인의 삶 끝자락에, 똥을 만들기 위한 것 역시 힘든 여정이지 싶다. 힘겨웠지만 순결한 노동의 대가로 자식을 위해 밥을 만들었다면, 그 자식에게 보일 수밖에 없는 힘겨워하는 똥도 순결하기는 마찬가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밥과 똥을 생각하며>에서
별일 없이 온전히 배설이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속이 거북하여 배설하는 경우도 있다. 입으로 섭취한 음식이 소화기관을 거쳐 온갖 더러운 냄새와 모양을 하고 밖으로 나오기도 한다. 본래 인간이 복잡한 존재라서 가장 냄새가 난다는 지적이 있다. 그러나 이 과정이 그리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개별적인 밥에서 똥에 이르는 길은 어둡고 험난하다. 때로는 그 여정이 심란하고 조급하다. 평생을 자식을 위해 밥을 만들었던 어머니지만, 지금은 병상에 누워 생의 끝자락을 부여잡고 똥을 만들지 못해 힘들어한다. 역시 배설은 그리 용이한 것이 못 된다.
또 짜증과 분노, 배신과 원망, 미움이 뒤범벅이 된 시절의 배설은 제 길을 찾지 못하고 입으로 되돌아 나온다. 감정이 극에 달해 쏟아 놓는 배설은 부드럽지 않다. 나오는 대로 마구 지껄여대고 욕하고 악다구니한다. 자신의 분노를 입으로 끝없이 쏟아낸다. 이도 분명 배설이다. 더 심할 때는 분노를 참지 못해 마구 부어댄 막걸리가 제 길을 찾지 못하고 내장의 벽을 들이박다가 격한 용트림으로 솟구치기도 한다. 제 들어간 길을 따라 거꾸로 토해내는 배설이다.
하지만 말로 토해내는 배설은 후유증이 심하다. 말은 본래 상대의 가슴을 파고드는 습성이 있어서 가슴에 가서 꽂히기 일쑤다. 이 경우 삭혀지지 않기에 오랜 시간을 두고 후유증이 상존한다. 그리고 토악질하는 배설은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도 하지만, 자신의 몸과 마음에도 깊은 상처를 남기기 마련이다. 이미 몸은 술에 절어 가늠되지 않는 의식으로 토해내니 순리나 조절 없이 솟구치어 구강은 물론 콧구멍 구석구석에도 파편을 날리고 오염시키니 배설하는 사람 역시 참아내기 힘든 지저분한 배설이다.
마을 아낙네들은 아침이면 빨랫감을 머리에 이고 우물로 종종 걸음을 옮겼다. 흰 색의 옷들이 대부분이었던 시절, 옷들은 그 시절 살아가는 모습처럼 때에 찌들어 있었다. 쌀겨에 양잿물을 넣어 굳힌 비누는 아낙네들의 손등처럼 거칠었다. 자식들의 한 벌 뿐인 교복에 비누를 문질러 치대며 한 벌 더 사주지 못하는 궁핍함에 아쉬워했다. 곳간 열쇠를 여전히 틀어쥐고 있는 시어머니의 꼬질꼬질한 저고리 고름을 뜯으며 딱히 시어머니에게 하는 것이 아닌 듯 욕을 했다. 읍내에 다녀온 남편의 분 냄새 나는 옷을 방망이로 두들기며 눈을 흘겼다. 대포 집에 낮선 여인과 나란히 앉아 있더라는 풍문이라도 들은 아낙은 빨랫방망이질이 세차졌다. 매를 맞는 바지는 철퍼덕 대며 아무 변명 없이 넓적한 빨랫돌 위에서 널브러졌다. 빨래터에서의 어머니의 모습은 이런 풍경 속에 늘 자리하고 있다.
-<빨래터가 있는 풍경>에서
동구 빨래터는 어머니의 가슴에 희망과 한이 교차하던 곳이다. 희망에 부풀어 자식들의 입성을 빨아 널기도 했지만, 아버지의 적삼과 잠방이를 빨랫방망이로 두들기기도 하는 곳이다. 아낙네들은 흰 옷에 찌든 때를 빨아내듯 삶의 때를 흐르는 물에 헹구어내던 곳이 이곳이다. 쌀겨에 양잿물을 넣어 만든 거친 비누로 자식의 교복을 문질러 치댈 때는 그래도 꿈과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곳간의 열쇠를 틀어쥐고 내놓지 않는 시어머니의 꼬질꼬질한 저고리를 빨 때는 저절로 입에서 욕이 새어나왔다. 읍내에 다녀온 남편의 분 냄새 나는 옷은 방망이에 힘이 더 가해졌다. 힘껏 두들겨도 분은 풀리지 않았다. 대포 집에 낮선 여인과 나란히 앉아 있더라는 풍문이라도 들은 날은 저절로 빨랫방망이질이 세차졌다. 매를 맞는 바지는 철퍼덕대며 아무 변명 없이 넓적한 빨랫돌 위에서 널브러졌다. 방망이를 쥔 손에 힘이 든 날은 아낙네들이 힘껏 배설하는 날이다.
작가 김정태의 수필에는 배설의 유형이 여러 종류 등장한다. ‘똥으로 배설’, ‘입을 통해 욕설로 배설’, ‘입을 통해 토악질하는 배설’, ‘빨랫방망이로 힘껏 두들겨 패는 배설’ 등 다양하다. 어떤 배설을 선택하든 사람들은 이 배설을 통해 삶을 대사시키는 기쁨을 누리고자 하였다. 가능한 직설로 세상과 마주하지 않고 다양하게 배설한 김정태의 수필은 나름 성공을 거두고 있다.
4. 롤 모델 아버지, 지워지지 않는 그림자
자신에게 부여된 삶을 꾸려가는 데에 닮고 싶은 롤 모델이 있다면 나아갈 방향이 확실해져 나름 흔들리지 않는 힘을 얻을 수 있다. 확실한 목표를 세운 사람들은 그래서 롤 모델을 정하기도 한다. 작가 김정태에 있어서 롤 모델은 아버지다. 당시 가부장제가 만연하던 시절에 작가의 아버지는 모든 것을 ‘사랑’으로 무장하였다. 비록 농부로서 시골에서 농작물을 재배하였지만, 자식들에게 끝없는 사랑을 베풀었던 것이다. 작가 김정태의 수필을 보면 전편에 걸쳐 아버지의 사랑이 도도히 흐르고 있다. 그 사랑은 요란하지 않고, 조용하면서도 확실하다. 그 어느 아버지보다 더 자애로 다져진 사랑을 받으며 성장함으로써 ‘사랑의 대물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삭발한 머리를 아버지의 무릎에 묻고 한참을 울었다. 투박한 아버지의 무릎은 따뜻했다. 그 곳은 아늑함과 아득함이 공존하던 또 다른 황산벌이었다.
“이겨 내거라, 네 몫이다. 너와 연(緣)닿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무 말도 없으셨다. 다만 내 등을 수도 없이 문질러 내렸다. 어머니만 끝없이 내편에 서서 부조(扶助)하고 계셨지만 죄송스러울 뿐 귀에 담아내지는 못했다. -<들꽃 진 언덕>에서
가부장제가 존재하던 1970년대의 아버지가 아니다. 엄한 아버지 앞에 가서 나약하게 우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부터가 용납되지 않던 때, 그것도 여자 친구가 떠난 아픔을 가지고 아버지 앞에서 울음을 보였다는 것은 쉽게 가정할 수 없던 시절이다. 이곳에 나타난 상황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이라 할 만하다. 여자 친구의 떠남으로 중이 되겠다고 머리를 삭발하고 와서 무릎에 누워 우는 아들. 그 아들을 보듬는 아버지의 모습은 ‘인자’와 ‘자애’ 외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찾아지지 않는다. 그러기에 아들은 그 아버지의 무릎이 따뜻했다고 실토한다. 사복경찰에 끌려 다니다가 군으로 도피한 작가가 경험한 아늑함과 아득함이 공존한 훈련소에 비교한다. 한 마디 말도 없이 아들의 등만 문질러 내리던 아버지가 한 말, 그 말은 아들이 다시 일어서는 데 강력한 힘이 된다. ‘이겨 내거라. 네 몫이다. 너와 연닿는 사람이 아니다.’ 아버지의 사랑이 그윽하게 고인다.
“이놈아 들어가 밥 먹잖고 여기서 졸고 있어”
아버지였다. 궁둥이에 묻은 흙을 털어 주셨다. 내 손을 감싸고도 남을 만큼 커다란 손으로 내 손을 감싸 쥐고 삽짝을 들어서며 엄마를 나무라셨다.
“해 넘어가도 애가 안 보이면 찾아 밥을 먹여야지”
엄마에게 던지는 느닷없는 대주로서의 호기에 눈물이 왈칵 났다. 아버지는 아직 내 손을 잡고 계시는데 아버지의 흰 고무신은 뜰에 그대로 있는 것이 그렁그렁한 눈물 속으로 들어왔다. 건넝골 당숙 어른이 와 계신 거였다. 아버지는 읍내 나가셨다가 그 때 돌아오신 것이었다. 그때 엄마에게 부리신 아버지의 호기가 왜 그렇게 눈물겨웠는지.…<중략>…
나도 두 아들을 훈계해본 일이 있다. 괜히 엄한 소리를 해대며, 가장의 존재 가치를 높이기 위하여 억지 부린 아버지를 이제는 그들도 알 나이가 되었다. 그 억지 속에는 자식을 온전히 양육시켜야 한다는 가장으로서의 울타리 역할이라 생각했다. 허지만 탱자나무 울타리를 가족들 주변에 치고 있었던 것이다. 때로는, 아버지의 성화를 슬그머니 피하여 기대어 있을 토담 벽 하나 마련해 주지 못한 것 같다. 그 토담이 아버지의 다른 모양인 것을. 두 아들에게 울타리 역할은 했는지 모르지만 때에 따라 기댈 수 있는 온기 품은 토담은 못되어 준 것 같다. 그 점이 두 아들에게 사뭇 미안하다.
-<탱자나무 울타리>에서
늘 아버지는 근엄하다. 까다롭진 않으셔도 딱지치기하다 때가 늦어 집에 들어가면 ‘밥도 주지 말어’ 하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작가는 기가 죽어 안으로 들지 못하고 햇살에 따뜻해진 토담에 등을 맡기고 ‘아버지 마실 나가셨다’ 하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기다렸다. 이와 같이 아버지는 쉽게 다가서기 어려운 존재다. 그래서 친구와 놀다가도 아버지가 돌아오시기 전에 귀가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으면서, 더러 잊고 해거름을 넘기기 일쑤였다. 이번에도 그랬다. 부랴부랴 집으로 와 삽짝을 열어보니 벌써 뜰에 흰 고무신이 놓여 있다. 어쩔 수 없이 토담에 기대어 어머니의 기별을 기다리는데 어머니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느닷없이 아버지가 나타나셔서 잠을 깨운다. 읍내에 나갔다가 지금 돌아오신 것이었다. 늘 두렵기만 했던 아버지의 말씀에 불안감이 날아간다. 의외의 아버지 말씀이다.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들어와 보니, 당숙 어른이 와 계셨다.
‘해 넘어가도 애가 안 보이면 찾아 밥을 먹여야지.’ 아버지의 호기에 작가는 눈물겨워 한다. 이게 아버지의 사랑이 아닐까. 언뜻 보면 없는 것 같으면서도 진하게 배어 있는 것이 아버지 사랑이다. 겉으로는 근엄해도 속마음은 언제나 여리고 따뜻한 것이 아버지다. 이런 아버지의 사랑으로 성장한 작가는 이제는 자신의 아버지 역할을 성찰한다. 아버지는 근엄해야 하지만 언제나 따듯한 사랑을 준비하고 있어야 함을 깨달은 것이다.
두 아들의 아비로서 가장의 존재 가치를 높이기 위해 억지만 부린 세월이 눈에 밟힌다. 그 억지로 자식들에게 탱자나무 울타리를 굳게 쳐 주었다고 자부해 왔는데 되돌아보니, 가시로 제어만 했지 사랑으로 감싸진 못한 것 같다. 자식들에게는 부모의 성화를 피해 등을 맡기고 편히 기다릴 수 있는 토담이 필요하다는 것을 겨우 알아차린다. 낮 동안 햇살의 온기를 받아 따뜻해진 토담의 자애로움을 아비는 준비해야 한다. 바로 작가 김정태는 자신의 부친에게서 받은 사랑을 말하고 있다. 이게 바로 김정태가 간직하고 싶은 아버지상이다.
느티나무처럼 늘 그 자리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아버지는 어느 날 그늘을 거두셨다. 내 삶의 구비마다 그늘을 드리우던 아버지가 떠나고 얼마쯤 지나 느티나무 아래를 몇 번 찾았다. 느티나무 같았던 당신의 모습을 나는 더듬고 있던 것일까. 어릴 적 무심코 밟고 오르던 나무의 옹이는 더 커진 듯 보였다. 내가 아버지의 시름을 밟고 성장하고, 산다는 것을 힘겨워 할 때, 마음 밖에 보탤게 없는 아버지의 몸에도 저런 옹이가 하나씩 늘어났으리라. 마음속에서 느티나무로 형상되는 아버지의 정은 소란하지 않았고 필요 없이 부산하지 않았다. 중저음의 목소리는 들뜨지 않고 가라앉아 내게 전달되곤 했다. 느티나무 밑에서 듣는 바람소리가 그렇게 들렸다. -<느티나무 아래서>에서
동네 어구에 있는 느티나무는 온갖 사연을 다 들어준다. 옆집 처녀의 마음을 돌리지 못해 가슴앓이 하는 총각, 이웃마을로 시집간 처녀를 잊지 못해 우는 총각,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 두 남녀, 먼데서 시집 와 한에 겨워 밤 눈물을 흘리는 새색시, 해거름에 치마폭을 펄럭이며 약국으로 달리는 부모, 전보 치러 우체국으로 내닫는 부모, 두루마기 앞자락을 휘날리며 포대종이 뭉치 움켜쥔 동네 어른, 거기다 먼데서 온 자식을 떠나보내며 안쓰러워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떠나는 자식의 인사는 짧고 보내는 어미의 당부는 길어 함께 한숨지을 줄도 안다.
모든 사람의 사연을 다 들어주고 보듬어주는 느티나무를 바라보면서 작가 김정태는 아버지를 읽어낸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 그늘을 드리워주던 느티나무처럼 아버지는 아들을 끝없이 지켜주시려니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늘을 거두시고 작가 옆에는 안 계신다. 어린 팔로 가늠할 수 없는 굵은 나무를 오를 때, 큰 옹이가 툭 툭 튀어나와 있어 발받침이 되어 주던 느티나무 같던 아버지. 그 아버지를 추억하는 것이다.
여기서도 아버지는 끝없이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헤아려 주시는 존재로 작가의 의식 속에 살아 계신다. 평생을 롤 모델로 바라보고자 했던 아버지. 그 자애로움이 그리워 순간 순간 작가의 앞에 어른거리는 것이다.
5. 나가면서
1970년대를 치열하게 살아낸 작가 김정태의 수필을 살펴보았다. 당시의 청년문화는 일본 문화에 익숙해진 세대 들에게는 저항의 몸짓으로 읽혔는지 모르나, 실은 그들의 문화는 새로 운 패러다임의 서구문화였던 것이다. 서구문화에 대한 지향과 동경에서 비롯된 당시의 청년문화는 어설픈 상태에서 나름 최선을 다한 그들의 몸짓이었다. 이러한 양상은 김정태의 수필에서도 능히 알 수 있다. 기존의 문화와는 차별화되는 다소 낭만적인 엘리트 의식과 감성적 자유주의에 가까웠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자신이 걸어온 길을 ‘치기어린 행동을 열정이라 믿었고, 계통도 질서도 없는 독서와 토론을 최선의 공부로 치부하며 지내던 젊은 날’로 정리하는 작가의 글에서 당시의 청년문화의 특성을 익히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작가 김정태는 기존세대에 대해 불만이 있어도 목숨을 저당해서 저항하는 일이 없고, 배설작용에 빗대어 카타르시스를 체험한다. 배변, 욕설, 토악질, 방망이질로 승화하고 있는 것이다.
뭐니 뭐니 해도 작가에게 대주로서의 롤 모델은 아버지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언제나 근엄하지만 늘 사랑으로 부드럽게 자식을 끌어안은 아버지의 모습에서 작가는 아버지의 길을 터득한다. 수시로 접하는 물상에서 아버지의 추억을 만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사랑이 컸던 까닭이다.
이상에서 보았듯이 김정태의 수필은 1970년대 청년문화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김정태의 수필이 독자의 가슴에 오래 남는 것은 그의 문장의 섬세함에서 비롯되고 있음도 본다. 상황에 따라 요구되는 문장을 정확히 기술하는 능력은 가히 일품이다.
다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한정된 글감에서 좀 빠져나와 다양한 것들에 대해 애정을 베풀었으면 하는 것이다. 지나치게 과거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도 눈을 주는 변화가 있었으면 하는 욕심을 가져 본다. 그래서 평자는 작가 김정태의 다음 수필집을 누구보다도 더 기다리고 싶다. 뭔가 기대에 만족하는 글이 나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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