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저린 참회의 계기로 삼아야
-임 종 호-
미증유(未曾有)의 세월호 참사로 물경(勿警) 304명의 고귀한 생명이 진도앞바다에서 수장 되었습니다. 온 국민이 참담함을 금할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여 민심이 소용돌이 치고 있습니다. 비통함과 분노와 절망의 파장이 어떻게 확산될지 예측하기 힘든 국면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안산은 단원고학생 250명과 선생님 10명이 졸지에 참변을 당하여 전 시민이 슬픔의 도가니에 빠져 버렸습니다. 원성과 한탄으로 민심이 요동치고있어 겉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닫고 있는듯 합니다. 금쪽같은 자식을 잃어 버리고 오열하는 부모들의 면면을 TV를 통해 지켜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미어지는듯 아립니다
기가 막힙니다. 침몰하는 여객선의 안쪽에 갖힌채 유리창을 애타게 두드리며 구조를 요청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TV에 비쳐지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무섭고 고통스러웠을까요? 얼마나 잔인하고 절박하게 느껴 졌을까요? 생의 애착이 얼마나 간절 하였을까요? 얼마나 사무치게 엄마 아빠를 떠올려 보았을까요? 어른들이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요? 절망의 사선(死線)을 넘나들며 이나라를 얼마나 원망 하였을까요? 구조를 하고자 인근까지 접근했던 고기잡이배 선원들은 전혀 손을쓸 방법이 없어 애만 태우며 펑펑 울었다고 하는군요...
“친구야 진짜 내가 잘못했다. 용서해라. 사랑한다.”
“엄마 말을 못할까봐 미리 말하는거야. 엄마, 사랑해”
“물이 들어와요. 물이 선실에 차올라요.”
숨막히는 물속에서 절박하게 불러본 “엄마! 아빠! 사랑해...”
우리 아들 딸들이 죽음 앞에서 이렇게 절규하고 있음에
엄마 아빠들은 오열하며 기절하고 있습니다.
“아들아, 딸아, 네가 죽으면 나도 죽는다“고 울부짖고 있습니다.
“하나님 제발 나 데려가고 내아들 딸을 살려 주세요”라고 피를 토하고 있습니다.
선장과 승무원들이 침몰전 최선을 다하여 기민하게 대처 했더라면 대다수 승객들을 대피 시킬수 있었을텐데 “승객은 움직이지 말고 가만 있으라” 방송하고 그들만 앞다투어 탈출하여 살아 돌아 오다니 어찌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 할수 있겠습니까?
한편 이런 절체절명의 긴박한 상황에서도 학생들에게 구명쪼끼를 벗어주며 “승무원은 맨 마지막이다. 너희들은 빨리 탈출하라”고 외치며 사명 다하고 자신을 희생한 22살 소녀가장 박지영양이 있었습니다. 또한 다섯 살 어린 동생에게 구명쪼끼를 입혀 탈출 시키고 실종된 권혁규군(7세), 구명쪼끼를 친구에게 벗어 주고 또 다른 친구를 구하기위해 물속으로 뛰어들어 사망한 정치웅학생, 침몰 사실을 가장 먼저 119에 신고 하고도 본인은 돌아오지 못한 최덕하 학생, 최후의 순간까지 학생들을 구하려고 최선을 다하다 생을 마감한 남윤철선생, 최혜정선생, 마지막까지 학생들 19명을 대피 시키다가 정작 자신은 탈출 하지못한 유니나선생의 면면이 숭고한 모습으로 크로즈업 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앞날에 희망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인양된 시신중엔 손가락이 골절된 경우도 있었다고 하니(아마 벽을 긁다가 골절 된듯) 극한의 고통이 얼마나 처절 했을까요? 어찌 필설로 형언 할수 있겠습니까? 짐작만으로도 국민들의 심장이 미어지는데 부모들의 애간장이야 찢어지고 녹아 버리지 않았을까요?
더욱 기가 막히는것은 쌍둥이 남매를 한꺼번에 잃어버린 부모도 있다고 합니다. 방송을 통해 보도된 바와 같이 그들은 구명쪼끼를 서로 묶은 상태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어 애절함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이를 접한 엄마는 죽음보다 가혹한 절망감에 사로잡혀 심신을 가누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 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네식구가 제주도로 이사를 가던중 혼자만 구조된 5세의 어린 소녀(권지연양)도 있습니다. 엄마 아빠와 오빠가 죽은줄도 모르고 자기만 남겨두고 이사를 가버렸다고 큰아빠집에서 날마다 울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가하면 네식구가 함께 탓다가 유일하게 구조된 7세 소년(조요셉)도 있습니다. 엄마 아빠와 형이 죽은줄도 모르고 50여일간 기다려 오다가 장례를 치루게 되어서야 비로서 땅바닥에 주저물러앉아 울음을 터트렸다고 하는군요. 이 어린아이들의 기구한 운명과 절망감을 헤아려 보노라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이 아이들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요? 비극의 극치라 할수 있겠습니다.
인간은 절망감에 사로잡히게 되면 정상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합니다.
극도의 절망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면 몸과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될수도 있다고 하는군요. 실존철학자 ‘키에르케콜’이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 이라고 언급 했던 경구(警句)가 널리 회자되고 있는 터 이지만 오늘 새삼 엄중하게 떠오릅니다. 희생자들의 부모 형제들이 심장이 멈춰 버릴것 같은 절망감을 어떻게 감당 할수 있을까요? 죽음보다 무서운 절망의 무덤에 갖혀 버리지 않도록 자비로운 주님의 손길로 안위(安慰)하여 주실것을 기도 드립니다.
돌이켜 보면 어른들은 탐욕에 눈이 멀어 온갖 부정과 불법을 저질렀고 엄정함을 잃은 공권력은 이들의 부정과 불법에 눈을 감은탓에 가공할 참사가 초래 되었다고 여겨집니다. 이번 사고는 오랫동안 우리사회 전반에 걸쳐 고비고비 단계단계마다 만연되어왔던 총체적 부실과 고질적 병폐로 야기된 재앙이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이를테면 끼리끼리 문화와 민.관유착이라는 비정상적 관행이 얼마나 가공할 재앙을 초래할수 있는가를 실증적으로 보여준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평소에 선박심사와 안전운항지침등 안전관련 규정들이 원칙대로 지켜지고 적법하게 감독이 이루어 졌다면 이번 참사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불법과적(不法過積)으로 안전에 많은 문제가 예견 되었는데도 국가기관이 바로잡지 못한것이 큰 불찰이었습니다. 선박안전을 관리감독 해야할 정부와 감독대상인 해운사들간에 이런 유착관계가 자행 되어 왔기에 선박안전관리가 제대로 될수 없었던것은 자명한 귀결이라 할수 있겠습니다. 20년이 다된 노후선박을 구입해서 무리하게 구조를 변경하고, 적재중량을 허위로 기재한채 기준치를 훨씬 초과하는 화물을 실었는데도, 감독을 책임지는 누구도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유착은 비단 해운분야 뿐만이 아니라 사회전반 구석구석에 켜켜이 쌓여온 고질적 병폐가 아닐까 합니다.
국론을 하나로 모아 위중한 상황을 슬기롭게 수습 해야할 차제에 유감스럽게도 일부 몰지각한 불순세력들이 호기(好機)를 만난듯이, 아니 북한의 악의적인 선동에 맞장구라도 치듯이 비탄에 빠진 유가족과 국민의 분노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더구나 대통령 퇴진 촛불시위를 하는등 반정부 선동을 획책하고 있음에 개탄을 금할수 없습니다. 일부 성직자들도 이에 가세하고 있다고 하니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아무쪼록 이번 사고를 계기로 어른들의 뼈저린 참회를 통해 안전하고 살기좋은 대한민국으로 거듭날 수 있다면 2014년 4월 16일은 역사의새로운 분기점으로 기록 될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국가적으로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하나로 단합해서 위기를 극복한 사례가 수없이 있어 왔습니다.
슬픔과 분노의 표출이 문제 해결의 근본적인 방편이 되지 못 한다는것을 새롭게 인식하고, 이제 슬픔과 분노와 좌절에서 벗어나 영광된 내일을 열어 나가는 일에 매진 해야 되겠습니다. 대한민국을 근본적으로 개조하여 바로 세우고 고귀한 생명의 억울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대한민국이 다시 태어나는 계기로 삼아야 겠습니다.
* 상록수문학지 여름호에 투고한 내용입니다.
첫댓글 글을 옴기면서 맘아파하셨을 회장님 !!
부모잃은 아이들이 누구손해 의해 자라게 될지 .걱정이됩니다
참담한 심정이네요..
부모형제들이야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심정이 겠지요.
혼자 구출된 어린아이들의 운명이 너무나 기구하군요~
이 아이들이 고아가 될줄이야 ...
장담할 수 없는 우리네 앞날 .후손들이 슬픔없이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가여워 가슴이 아픔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