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방송
송해 별세에 온국민이 마음아파
[ ktimes 케이타임즈 이왕수기자]한국의영원한 '국민MC' 송해,별세
흥과 한을 한국 국민에게 주고.눈물과기쁨도주고
68년 방송인생대기록
“딩동댕동~ 전국! 노래자랑!”
34년 동안 전국의 주말 정오를 책임졌던 유쾌한 실로폰 소리는 이제 천국에서 울려퍼지게 됐다. 현역 최고령 MC로 ‘전국노래자랑’을 책임졌던 ‘일요일의 남자’ 송해가 8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95세.
경찰과 의료계에 따르면 송해(본명 송복희)는 이날 오전 서울 강남구 도곡동 자택에서 별세했다. 송해 측은 “식사를 하러 오실 시간이 지나서 인근에 사는 딸이 자택에 가보니 화장실에 쓰러져 계셨다”고 전했다.
이미 송해는 지난 1월과 최근 건강이상으로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으며 지난 3월에는 코로나19 확진소식을 전했다.
고인의 마지막 공식석상이 된 지난달 23일 기네스 세계기록 등재 인증서 전달행사. 사진 KBS
최근 건강을 이유로 오랫동안 진행을 맡았던 ‘전국노래자랑’의 하차를 고민하기도 했지만, 제작진과 스튜디오 녹화 등으로 형식을 바꿔 계속 참여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었다. 하지만 고인이 세상을 떠나 고인과 ‘전국노래자랑’ 34년의 동행은 막을 내렸다.
송해는 한국전쟁 이후 활발해진 악극단의 세대이자 대중에는 노래와 MC, 코미디와 연기를 두루하는 당시 ‘만능 엔터테이너’의 전형이었다. 특히 ‘전국노래자랑’의 진행은 1988년 5월부터 시작해 34년이 넘는 시간 계속됐다. 지난 4월에는 95세 현역 MC로 ‘최고령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Oldest TV music talent show host)’로 기네스 세계기록에 등재되기도 했다.
1927년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난 송해는 해주예술전문학교에서 성악을 공부했던 경험을 살려 1955년 전쟁 이후 활발하게 창설됐던 악극단 중 하나인 ‘창공악극단’에서 가수로 활동했다. 당시부터 입담이 있었던 고인은 공연 중간중간 시간을 때우는 역할을 하면서 사회도 보게 되며 만능엔터테이너로서의 자질을 키웠다. TV 방송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에는 여러 방송사를 활약하며 코미디 프로그램에 주로 출연했고 동양방송의 라디오 ‘가로수를 누비며’를 17년 동안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송해와 가장 떼려야 뗄 수 없는 프로그램은 ‘전국노래자랑’이다. 1987년 아들의 오토바이 사망사고 이후 그 충격으로 실의에 빠졌던 그가 1988년 처음 출연했던 ‘전국노래자랑’은 전국 1000만 가까운 청중을 만나며 그의 인생이 됐다. 1988년 5월 제5대 MC로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한 그는 1994년 약 6개월 동안 김선동 아나운서에게 자리를 내줬던 시간을 빼면 34년을 노래자랑 무대에 섰다.
이후 2019년 12월 급성 늑막염으로 입원했고, 2020년 감기몸살로 입원하기도 했지만 ‘전국노래자랑’ 진행에 대한 의지를 꺾지 않았다. 지난해 말에는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전국노래자랑’ 후임 MC에 대한 질문에 “아직도 이렇게 또렷또렷한데 누굴 줘”라고 말한 일화는 유명하다.
대중은 2010년대 이후부터 고령의 나이로 MC를 보는 송해의 이름이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갑자기 오를 때마다 혹시나 급작스러운 부고는 아닌지 노심초사하게 됐고, 송해의 건강은 대한민국 국민이 모두 관심을 갖는 이슈가 됐다.
2003년 ‘전국노래자랑’ 평양 편 녹화를 마치고 돌아와 기자회견에 참석한 송해.
외아들의 사망만큼이나 생전 고인의 한이었던 것은 ‘고향’이었다. 예명인 송해의 ‘해(海)’가 한국전쟁 때 고향에서 부산으로 피란을 내려올 때 지났던 바다에서 따왔듯 고인은 생전 끊임없이 고향에 돌아가겠다는 소망을 굽히지 않았다. 1998년 금강산 관광단으로 북한 땅을 밟았을 때는 아이처럼 좋아했고, 2003년 성사된 ‘전국노래자랑’ 평양 편에서는 모란봉공원 평화정 앞 무대에 올라 ‘한 많은 대동강’을 부르며 “다시 만납시다”라는 안타까운 작별인사를 했다. 평양 땅까지 밟았던 그는 결국 고향이었던 황해도 재령의 땅은 밟지 못했다.
오랜기간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하며 국민들과 눈높이를 맞췄던 그는 2011년 전국을 돌며 단독 콘서트를 열었고, 12장의 앨범도 냈다. 지난해에는 MC, 가수, 희극인으로서 국민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한 인생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송해 1927’이 개봉하기도 했다. 지난 2019년 그가 낸 마지막 앨범의 제목 역시 ‘내 고향 갈 때까지’다.
그의 뜻을 기려 부인의 고향인 대구 달성군에 송해공원이 조성됐으며 지난해 12월 ‘송해 기념관’도 개관했다. 지난 2016년에는 송해가 ‘연예인 상록회’ 사무실을 열고 제2의 고향처럼 여겼던 종로2가 육의전빌딩부터 낙원상가에 이르는 240m 구간이 ‘송해길’로 명명되기도 했다.
태진아 는 송해 선생님이 없엇다면 우리트롯트가수는 없었다.
송대관도 트롯가수들의 삶의 원천이되엇던 전국노래자랑
악극단 생활을 시작한 1950년대부터 방송과 영화에서 활동한 1960~1970년대 그는 월등한 인기를 가졌던 다른 악극단 출신 배우들의 끼에 가려져 있었지만 조용히 무대를 받치는 조연을 자처했다. 하지만 동료들이 모두 작고한 이후에도 꾸준히 무대를 지키며 결국 인생의 황혼기, 모두의 추앙과 사랑을 받는 ‘국민 MC’의 반열에 올랐다.
고인의 장례는 대한민국방송코미디언협회장으로 5일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2·3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오는 10일 엄수된다. 고인의 장지는 대구 달성군 옥포리 송해공원 부인 故 석옥이 여사의 묘 옆으로 결정됐다.
#송해 별세
#송해 갑자기별세에
#엄영수 "故 송해, 후배들의 아버지이자 모범이었다"
'#1세대 희극인' 송해, 최고령 가수이기도.."따듯한 목소리"
#"영원한 별"..故송해 별세에 연예계 추모 물결 [
#'전국노래자랑' 심사위원 이호섭 "어제도 낙원동서 점심
#'수양딸' 유지나, 송해 별세에 "100살까지 살 거라고 하셨는데.."
#故송해, 아내 곁에 잠든다..장례는 희극인장 5일장
#전유성 "故 송해 선배님..내가 까마득한 후배인데도"
#송해, 향년 95세로 별세→3일전만 해도 '건강 이상설' 부인했는데..방송계 추모 물결
#송해별세
#엄영수송해 아버지같은
#1세대연예인원조
#故송해 선생님이 별세
#전유성가슴아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