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탄생(誕生)>을 보고
-순교자와 남은 자들-
2022년 12월 3일, 사창동성당에서 기획하고 지원하여 김대건 신부님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탄생>을 보기 위해 모처럼 시내 영화관으로 향했다. 시내 길거리에서 신자분들을 만나 인사하는, 다소 생소한 경험도 재미있었고, 하느님과 예수님을 사랑하고 따르는 신부님과 수녀님을 극장에서 뵙는 것도 신선한 충격이자 행복이었다.
몇 년 만에 가는 영화관 나들이라 모두가 들뜬 마음이다. 우리 가족은 영화관 맨 앞줄 가운데 자리인 A9, 10, 11 좌석을 배정받았으며, 영화 상영 전 퀴즈문제를 맞혀 팝콘까지 선물로 받아, 무척이나 신이 나서 영화를 기다렸다.
주영일 필립보 주임신부님이 2023년도 청주교구 지침 “신앙 선조들의 삶에서 배우고 새롭게 시작하는 교구 공동체의 해”로 인사말을 대신하셨다.
잠시 후 암전(暗轉), 영화가 시작된다.
영화 <탄생(誕生)>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1821~1846)의 일대기를 영화로 형상화(形象化)한 작품이다. ‘김대건 신부님’은 천주교 신자들은 물론, 비신자들도 이름을 알 정도로 매우 유명한 분이다. 그만큼 한국 교회에서 상징적인 분이며, 관심의 대상이기도 하다.
대중적인 콘텐츠로는 일찍이 창극드라마 <성웅 김대건은 살아 있다>(1971, 유니버아살 레코오드사, LP음반)로 제작되어 음악으로 신부님 삶의 편린(片鱗)을 들을 수 있었으나 ‘판소리’ 장르가 지닌 한계와 당시 제작환경 미비로 인해 진면모가 온전히 전달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탄생>은 보다 구체적이고 이해하기 쉬우며, 신학생 생활부터 사제서품, 순교에 이르기까지 10여 년 성상(星霜) 속의 모습을 150분으로 압축하여 보여줌으로써, 비록 짧은 순간이었지만 김대건 신부님에 대한 이해의 폭을 확장시킨다.
기실 영화를 보는 내내 어둠 속에서 주요 장면에 대한 인상을 글로 적었는데, 너무 소략하게 적어 집에 돌아와서 자료로 삼아 글을 쓰자니 장면과 연결이 되지 않는다. 한번 보고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무리임을 이내 수긍하게 되었다.
다행히 영화를 관람한 많은 사람들이 ‘영화 후기’를 포털사이트 다음커뮤니케이션, 네이버 등에 자료로 올려, 영화의 줄거리, 인물과 배역, 명대사 등을 다시 찾아볼 수 있다.*
늦은 저녁을 먹은 후 아들 프란치스코, 아내 정혜 엘리사벳에게 어떤 장면이 떠오르냐고 물었더니, 아들은 ‘신부님 서품’ 장면이 가장 좋았다고 대답한다. 가장 정직하게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분을 말한 모습이 대견하다. 아내는 마부 조신철의 대사 가운데 하느님의 자식인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말하는 부분이 의미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조선시대 계급사회에서도 그렇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도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 가운데 하나를 말한다. 그럼 아빠는 어느 장면이 좋은지 말하라고 하는 아들 녀석 물음에 잠시 생각했다. 모든 장면의 대사, 인물, 장소, 사건, 하물며 음악과 자막까지도 마음에 남기 때문이다. 그래도 세 가지 정도를 이야기했다.
첫째, 영화 초반, 미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의 권유로 신학생이 되고자 결심하는 장면, 그리고 청년 김대건이 “성령이 하시는-가슴이 뜨거워-나는 가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이때 ‘성령’을 언급하는데, 다시금 ‘순명’까지 생각하게 하는 순간이었다.
둘째, 사제가 된 김대건 신부님이 미사를 집전하고 교우촌에서 성찬례를 거행하는데, 이때 어머니 고 우르슬라에게 성체를 주는 장면과 다시 길을 떠나는 김대건 신부-그러면서 아들인-에게 “부디 몸 조심 하십시오.” 하는 대사에 심경이 매우 복잡했다.
셋째, 김대건 신부 순교 이후 마지막 자막이 인상 깊었는데,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체로 “김대건 신부 순교 이후 뒤이어 최양업 토마스 신부가 2번째 사제가 되어 조선에 들어 왔고, 10여 년 9만리 길을 걸으며 전교하는 과정에서 과로로 인해 길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는 내용, 그리고 그 외에도 이름 없는 신자들의 희생과 열정으로 한국 천주교가 지금에 이르렀다.”고 쓰인 부분이다.
영화에는 김대건 신부님의 일생을 보여줌과 함께, 다양한 인물들의 수많은 이야기도 녹아 흐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천주교회가 지금 이 순간에도 현존한다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초기 교회 선각자들의 노력, 김대건 신부님의 ‘피’, 그 뒤를 이어 죽을 때까지 하느님 말씀을 전한 최양업 신부의 ‘땀’, 그리고 비록 사제는 되지 못했지만 최방제 신학생에서 보여지는 ‘순명’, 순교를 통해 하느님을 증거하거나 애써 살아남아 한국 천주교회의 맥을 이어주는 유명(有名)․무명(無名)의 평신도 등, 모든 신자들의 사랑과 희생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영화 <탄생(誕生)>을 통해 다시 한번 천주교인의 삶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신앙 선조들의 피와 땀을 이어받아 교회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으며, ‘신앙 선조들의 삶에서 배우고 새롭게 시작’하기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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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신부(윤시윤 역), 최양업 신부(이호원 역), 신학생 최방제(임현수 역), 역관 유진길 아우구스티노(안성기 역) , 현석문 가를로(윤경호 역), 마부 조신철(이문식 역),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최무성 역), 어머니 고 우르슬라(백지원 역), 당고모 김 데레사(강말금 역), 김아기 아가타(차청화 역), 리브와 신부(로빈 데이아나 역), 포도대장 이응식(이경영 역), 엥베르 신부(폴 배틀 역), 모방 신부(토마스 L. 페데릭션 역) 등
*“지금 제 가슴이 뜨겁습니다(김대건 안드레아)”, “길은 걸어가면 뒤에 생기는 것입니다(김대건 안드레아)”,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김대건 안드레아)”, “저는 살아도 부제님 곁에 죽어도 부제님 곁에 있어야 합니다(현석문 가를로)”, “네가 신부님이 되어서 돌아오면 우리말로 마음껏 고해성사 보고 싶다(마부 조신철)”, “순명하라(정하상)”, “신부님도 우십니까?(좌포도대장)”, “이제 기쁜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임치규)”, “그렇소. 나도 천주교인이오(김 방지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