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두 의학박사의 요양병원 이야기(74)
저승에서 마중나올 때까지
장 할머니는 1932년생으로 92세이시다. 집에서 넘어져 고관절 수술도 하고 척추협착증으로 수술을 몇 번이나 하셨고 치매 증세와 거동불편으로 입원하셨다. 이분은 아침에 약을 주었는데도 약을 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지만 일본어를 아주 유창하게 하셔서 놀라게 한다. 이분은 일본에서 태어나셨다. 당시에 나라 잃은 조선인들이 일본에 일하러 많이 갔다.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소학교를 다니고 해방되던 13살까지 일본어를 썼으니 청년기에 배운 한국어보다 유년기에 배운 일본어를 더 정확하게 구사하는 것이다. “소학교 6학년에 해방되고 그해 가을에 귀국했지. 나는 일본어를 잊어먹지 않았지만 소학교 2~3학년까지 배우고 온 사람은 일본어를 대부분 잊어버렸지.”
치매란 병이 최근 일부터 잊기 시작하여 유년기의 기억은 제일 마지막에 잊는 병이라 치매증세가 심해도 신통하게 유년기의 기억은 아주 또렷이 남아있는 사람이 많다.
“센세, 아시까라 히자마데 토테도 이따이데스(선생님, 발부터 무릎까지 엄청 아파요).”
일본어로 아픈 증세를 줄줄이 말하는데 너무 구체적이고 눈에 보이듯이 생생하게 말하여 늘 놀란다.
“아노요까라 무카에니 쿠르마데(저승에서 마중 나올 때까지)” 이런 말도 자주 하시는데 저승을 대하는 생각이 아주 친근하여 놀라게 한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지는 절대 안된다.’ 어린 시절에 종종 들었던 이 말이 얼마나 과격한 표현인지 아버지의 매장식 장례를 치러보니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죽어 무덤에 묻히고 오랜 후에 눈에 흙이 들어가지 않겠는가?
하지만 일본인은 ‘저승에서 마중 나올 때까지’라는 부드러운 표현을 한다.
장 할머니를 통하여 일본인의 저승관을 엿볼 수 있다. 한국인은 대개 저승을 무서워하는 경향이 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우리 속담이 있듯이 얼굴에 개똥을 묻혀도 이승에 살고 싶다는 강한 본능적 욕구가 있다. ‘명이 길면 수치도 길다’는 일본 속담이 있듯이 일본인은 추하게 사느니 깨끗하게 저승으로 가는 것이 낫다는 성향이 있다. 으스스하게 생기고 자비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저승사자가 와서 사람을 포승에 묶어 끌고 간다고 한국인은 생각하는데 비해, 일본인은 저승에서 마중 나와 사람을 영접해간다고 생각하는 것이 다른 점이다.
‘젊은 시절을 되돌아보자. 당신을 사랑해. 이 세상 끝까지, 이 생명 다하여 사랑할게.’ 누구나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한국인의 의식 깊은 곳에는 죽으면 가야하는 저승이라는 곳이 천당도 아니고 지옥도 아닌 무언지 뚜렷하게 묘사할 수 없는 두려운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인에게는 저승에 가면 전쟁에 나가 죽은 아들이 군신(軍神)으로 모셔져 있고, 대장장이 아버지는 대장장이신(神)으로 어머니는 부엌신(神)으로 모셔져 있어 이승보다 훨씬 대접받는 곳이다. 그래서 저승은 아무 두려움이나 부담없이 갈 수 있는 곳이다.
일본은 오랫동안 무사정권의 지배를 받아 무사도(武士道)가 최고의 덕목으로 존중받아 왔으며 일반 민중에게도 무사도 정신을 강요해 왔다. 무사들은 죽음에 연연하지 않고 언제 죽어도 한이 없다는 무념무상의 평정심을 잃지 않도록 훈련받는다. 일반민중들은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도 참고 견디며 불평을 말하지 않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강요받아 왔다. 일본인은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싫어한다. 늙어 치매에 걸려 다른 가족에게 피해를 끼치게 되는 것을 꺼려하여 일본의 노인들은 극약을 상비의약품 속에 항상 준비해 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홉은 모자라고 열은 넘친다.’ 일본의 수양서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계율이다. 현재 주어진 이상의 행복을 바라는 것은 위험하고도 죄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일본인만큼 행복이란 말을 꺼리는 민족은 없다. 행복이란 말을 하는 순간 행복은 저멀리 날아가 버린다고 여긴다. 요양병원에는 누워 콧줄을 끼고 하루하루 연명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분들은 눈빛으로 말을 하신다. ‘선생님처럼 단 하루만이라도 두 발로 걸어보았으면 한이 없겠습니다. 선생님처럼 한 번이라도 음식을 씹어 먹어보았으면 한이 없겠습니다.’
늙어 요양병원에 오지 않은 것만 해도 큰 행복이다. 70~80세에 걸어다니는 것만 해도 큰 행복이고 죽을 때까지 끼니 걱정하지 않고 사는 것도 큰 행복이다.
남과 비교하지 말고 지금 상태가 최고의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