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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들(2)
2008년 11월 16일 / 대예배 / 단 6:25-28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 가운데 닮아야 할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절대로 닮아선 안 될 사람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믿음이 무엇인가를 순종으로 보여준 사람 노아 할아버지, 절대 신앙과 순종의 사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무서운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자신의 믿음을 지키고자 몸부림을 쳤던 욥(끝내는 고난을 통해 배의 복을 받았던 욥), 자신을 번제로 바치는데 저항하지 않은 착한 이삭,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인 하나님의 신실한 종 모세, 시어머니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희생을 아끼지 않았던 룻은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하고 본받을 것이 많은 분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보다 마귀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였던 하와, 자기 동생을 질투에 눈이 어두워 살해한 가인, 당장의 급한 의식주를 해결하고자 장자의 명분까지 소홀히 했던 에서, 권력과 명예에 눈이 가리어 하나님을 멀리한 사울 왕, 스승을 팔아 돈을 챙긴 가룟 유다 등은 절대로 배우거나 따르면 안 될 사람들입니다.
♬ 199(통234장) 2절 / 옛날 용맹스럽던 다니엘의 경험과 유대임금 다윗왕의 역사와 주의선지 엘리야 병거타고 하늘에 올라가던 일을 기억합니다 귀하고 귀하다 우리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재미있게 듣던 말 이 책중에 있으니 이 성경 심히 사랑합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위대한 신앙인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나름대로 공통점이 있었는데, 이들 모두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다니엘 / 단 6:19-23 / 이튿날 새벽 왕은 일찍 일어나 다니엘을 가두어 둔 사자굴로 뛰어가서 20) 큰소리로 외쳤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종 다니엘아, 그래, 아무 일 없느냐? 그대가 늘 섬겨 오던 하나님께서 그대를 구해 주셨느냐? 사자들이 그대를 해치지 못하게 하나님께서 살려 주셨느냐? 대답해 보아라.’ 21) 다니엘이 대답하였다. ‘임금님, 만수무강하소서. 22)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천사들이 사자들의 입을 틀어막아 무사합니다. … 다니엘을 굴에서 끌어올려 보니 정말 어디 하나 상한 곳 없이 멀쩡하였다. 이것은 다니엘이 하나님을 굳게 믿고 의지하였기 때문이다.
단 6:25-28 / 다리오왕은 제국내에 살고 있는 모든 백성들 곧 인종이 다르고 쓰는 말이 다른 모든 백성들에게 글을 써서 어명을 내렸다. “그대들에게 평안이 있기를 빈다. 26) 나 다리오가 그대들에게 명을 내리노라. 내가 다스리는 제국안에 살고 있는 모든 백성은 하나도 빠짐없이 다니엘이 섬기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섬겨라. 그분은 살아 계시는 하나님, 영원히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이니 그분의 나라는 결코 망하지 않으리라. 그분의 권세는 결코 꺾이지 않으리라. 27) 그분은 사람을 건지시는 분, 사람을 구해 내시는 분, 하늘에서든 땅에서든 이적을 베푸시는 분, 놀라운 일을 일으키시는 분, 바로 그분께서 다니엘을 구해 내셨다. 사자굴에서 아무 흠도 없이 건져내셨다.” 28) 다니엘은 다리오왕이 다스리던 시대와 바사 왕 고레스가 다스리던 시대에도 많은 존경을 받으며 살았다.
▶ 지난 주에 이어 신앙과 삶의 모델로 삼고 배워야 할 다니엘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그는 주전 586년 바벨론의 침략으로 남왕국 유다가 망할 때 포로로 끌려간 젊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인품이나 인격도 준수했고 거기다 신앙도 뛰어났습니다(단 1:6).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포로로 붙잡아온 청년 가운데 흠 없는 사람, 아름다운 사람(용모가 뛰어난 사람), 모든 재주를 통달한 사람, 지식을 구비한 사람, 학문에 익숙한 사람, 학문과 방언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을 뽑아 바벨론 젊은이들을 3년간 가르치도록 했습니다. 인격과 재능을 겸비한 사람을 뽑아 이름도 바벨론 이름으로 바꾸고 왕궁 별채에서 숙식을 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왕이 평소 먹고 마시는 음식과 술을 먹도록 했습니다. 한마디로 출세 길이 열린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먹고 마시는 그것을 거절했습니다. 이유는 함께 포로로 끌려온 동족들은 천대와 멸시를 겪고 있는데 나만 호의호식 할 수 없다는 애국심과 동족애 때문이었고, 왕이 먹고 마시는 음식이나 술은 대부분 우상제사에 사용했던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물론 출세가 싫어서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권력자들이 참다운 신앙이었으면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면서까지 왕이 하사한 음식이나 술은 자기 몸을 보신하는데도 좋고 왕의 환심을 사 출세하는 데도 발판이 되는 것이기에 다니엘은 ‘아니오’로 거절했습니다. 용기란 “옳은 것은 옳소, 아닌 것은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사람은 결단이 필요합니다. 먹고 마시는 것이 내 뒷덜미를 잡혀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친구가 뒷덜미를, 어떤 사람은 오락기나 취미가, 어떤 사람은 좋지 못한 습관이나 버릇이, 어떤 사람은 먹는 것이나 마시는 것이 뒷덜미를 잡아 당겨 신앙생활을 소홀히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다니엘은 젊었지만 그러한 위기와 고비를 잘 넘긴 것입니다. 이런 점에 존경스러운 것입니다. 우리도 젊은 사람이 갖기 쉬운 욕정을 피하고, 늘 올바른 일을 하려 애쓰십시다.
이렇게 시작된 다니엘의 포로생활은 안과 밖에서 일어나는 온갖 시험과 시련 고통과 박해를 이겨내고 결국 바벨론의 세 총리 중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단 6:1-2 / 다리오는 자기가 다스리게 된 제국을 120 지방으로 나누어 120명의 지방장관을 각각 임명하여 온 제국을 다스리게 하였다. 2) 또한 중앙 행정을 맡아 보게 하려고 총리를 세 사람 두었는데 다니엘은 세 총리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120명의 지방장관은 각각 그 담당 총리에게 지방일을 보고해야 하고 그 총리들은 또한 보고받은 각 지방일을 왕에게 보고해야 하였다. 이렇게 온 제국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왕이 잘 알아 아무런 문제가 없게끔 조직을 갖추게 한 것이다.
다니엘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그가 겪은 시련은 어떤 것이었고 어떻게 이겨냈는가?
1. 다니엘은 어떤 사람입니까?
1:4에 의하면 그는 모든 것을 갖춘 사람입니다. 용모, 지혜, 지식, 재주, 지도력, 요즘 말로 만능 엔터테이너(예능인)였습니다. 우리에게 이런저런 재능이 다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있는 재능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면 됩니다. 다니엘은 그런 면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 자신을 보면서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 자신 역시 남보다 못한 것이 있는가 하면 남보다 잘 난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신앙만큼은 남들에게 뒤지지 마십시다. 그는 왕의 후의와 환대도 거절할 줄 아는 신앙과 용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세상적인 지식과 지혜뿐만이 아니라 느부갓네살이 꾼 꿈을 해몽하는 능력도 있었습니다.
단 6:3 /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은 다니엘이 다른 총리들이나 지방장관들보다도 훨씬 더 일을 잘해 낸다는 것이었다. 이는 그가 사리분별이 분명하고 또 일을 처리하는 데에도 매우 신속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왕은 제국 전체를 다니엘에게 맡겨 일을 보게 하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적(敵)은 늘 가까이 있습니다. 다니엘의 성공과 출세를 다른 총리들과 방백들이 질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6:4을 보면 "아무 틈도, 아무 허물도 찾을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인격과 생활이 깨끗했습니다. 두 눈을 부릅뜨고 찾아도 허물이 보이지 않은 것입니다. 총리 두 사람 방백 120명이 두 눈을 부릅뜨고 허물을 찾고 단점을 찾았으나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단 6:5). 그야말로 위대한 지도자였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지도자들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그러나 그러한 지도자가 없다고 타령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그러한 사람이 되십시다.
2. 그는 악의 협박에도 무릎을 꿇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을 미워하고 시기하던 정적들은 다니엘에게서 단점을 발견하지 못하자 묘책을 꾸몄습니다. 바벨론 왕이 아닌 다른 신이나 대상에게 절하거나 비는 자는 사자굴에 집어 던져 사자밥이 되게 한다는 급조된 법을 만들어 왕의 결제를 받았습니다. 왕의 서명이 끝나자마자 그 법령이 전국에 공포되었습니다(단 6:7). 이러한 왕의 금령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단 6:10 / 다니엘은 그 금지령에 왕의 도장이 찍혀 어명으로 공포되었다는 사실을 알고도 집으로 돌아가서는 이층방으로 올라가 늘 하던 대로 예루살렘 쪽으로 나 있는 창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하루에 세 번씩 하나님께 기도를 올렸다. 그렇게 매일 감사 기도를 드렸다.
우리를 놀라게 하는 구절입니다. 다니엘은 그 당시 수석 총리였기 때문에 정보라인이 다 갖춰져 있었습니다. 사태의 심각성, 적들의 손이 목을 조여 오는 긴박한 상황, 피할 수 없는 위기가 다가오는 것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다 알면서도 전과 같이 하였습니다.
창문을 열고 / 자신이 지금 이렇게 하고 있다고 스스로 공개한 것입니다.
하루 세 번씩 하나님께 기도를 올렸다 / 죽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매일 감사하였더라 / 욥처럼 다니엘은 환란과 핍박 중에서도 낙심치 않고 오히려 바울과 실라처럼 감사 찬양을 올렸습니다.
▶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니엘로서는 얼마든지 타협이 가능했습니다. 꼭 창문을 열어야 하나? 창문 열면 기도가 되고 닫으면 기도가 안 된다는 원리가 있나? 창문 닫고 보는 사람 눈에 띄지 않게 조용한 소리로 입속으로 기도해도 됩니다. 그리고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판국에 한번만 기도해도 됩니다. 세 번씩 티를 낼 이유가 없습니다. 그뿐입니까? "하나님 왜 이러십니까? 제가 뭘 그리 잘못했습니까? 기도를 방해하고 하나님을 부인하는 저 사람들을 사자굴에 집어넣어야 옳지 왜 저를 사자굴에 집어넣으려 하십니까?"라며 원망할 수 있었을 텐데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그때 그 상황과 오늘 우리 입장을 대비시켜 보겠습니다.
① 창문을 열었습니다. / 그것은 만천하에 자신의 입장과 정체를 드러낸 것입니다. "나는 다니엘이다. 나는 바벨론 왕이 아닌 하나님께 기도한다."라고 공개한 것입니다.
롬 10:8-10 / 사실 믿음을 통해 얻는 구원은 먼데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과 입에 있습니다. 9) 만일 여러분이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의 주님이십니다.” 하고 고백하고 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는 것을 마음속에 굳게 믿으면 구원을 얻기 때문입니다. 10) 사람은 마음으로 믿을 때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되고 그 믿음을 다른 사람에게 입으로 고백함으로써 확실하지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마 10:32-33 /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하겠다. 33) 그러나 만일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하겠다.
자기 신앙 자기 입장을 선포해야 합니다. 다니엘처럼 창문을 열어야 합니다. “나는 예수를 믿습니다. 나는 예수 믿고 죄 사함 받았습니다. 나는 죄 사함 받고 구원 받았습니다. 예수는 나의 구주이십니다. 나는 예수의 사람입니다. 주님은 나를 사랑하십니다. 나도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고 선포합시다. 이것이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생명이 달린 것이라도 비겁하게 행동하지 마십시다. 그렇다고 일부로 경찰서에 가서 떠들어 되자는 것은 아닙니다. 베드로처럼 주어진 기회를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부인하는 짓은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② 하루 3번 전에 하던 대로 / 시험에 들었으면 전에 하루 3번 했으면 4-5번 해야 합니다. 주일에 놀러가는 사람은 안가야 하고, 새벽기도 못나오던 사람은 나와야 하고, 오후예배 안 나오던 사람은 나와야 하고, 전도 안하던 사람은 전도해야 하고, 십일조 안하던 사람은 십일조를 해야 합니다. 전에 하던 일을 그만두거나 중단한 사람들은 다시 해야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도 성령충만하였지만 하루에 3번씩 기도하는 일에 전심을 다 했습니다. 그때에 병든 자를 고치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기도해야 할 때에 기도하지 않아 예수님을 잃고, 3번씩이나 부인하는 부끄러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③ 무릎 꿇고 / 국무총리가 무릎 꿇은 대상은 왕 외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살아계신 하나님께 언제나 무릎 꿇고 기도했습니다. 자기를 낮추고 하나님을 높였기 때문입니다. 무서운 시련이 왔어도 하나님을 원망하고 시비하는 사람처럼 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다니엘은 무릎 꿇고 기도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위기에서 건지시고 환난에서 건져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겸손히 무릎 꿇는 사람들을 기뻐하십니다. 좀 더 상세히 살펴보십시다.
■ ‘규장’(2008년 10월 20일)발행, ‘토마스 아 켐피스’ 저, 고용복 옮김 “주인님, 나를 바칩니다”
이 책([주인님, 나를 바칩니다])은 복음서 전체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삶에 대해, 특히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해 깊이 묵상한 책이다. 한국에서는 [그리스도를 본받아]만 많이 알려졌지만, 그에 못지않게 그가 심혈을 기울여 저술한, 복음서를 놓고 그리스도의 생애를 묵상한 ‘그리스도의 삶 묵상’ 시리즈는 한국 기독교에 전혀 소개되지 않았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경건의 훈련을 시킬 때 두 가지 텍스트를 사용하였으니, 하나는 [그리스도를 본받아]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의 삶 묵상’이었다. 규장에서 ‘그리스도의 삶 묵상’ 시리즈 가운데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묵상만을 묶어 [주인님, 나를 바칩니다]로 펴내어 한국 기독교에 처음으로 소개한다.
【그런데 왜 우리가 그리스도의 수난을 깊이 생각(묵상)해야 하는가? 그리스도의 수난 사건은 나의 속죄(贖罪)를 완성하신 사건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함으로써 바른 속죄론 위에 설 수 있다. 우리에게는 ‘바른 교리’(orthodoxy)가 필요하다. 그러나 ‘바른 교리’에만 그치고 말면 ‘죽은 정통’이 되기 쉽다. ‘바른 교리’는 반드시 ‘바른 실천’(ortho-praxis), 곧 ‘바른 삶’으로 우리를 인도해야 한다. 그러므로 오늘 한국 교회의 속죄론은 바른 교리에만 머물면 안 될 것이다. 속죄론은 반드시 자기를 부인(否認)하는 제자도(弟子道)의 삶을 제시해야 한다. 정통의 십자가 교리는 십자가를 지는 정통의 삶의 길로 우리를 인도해야 한다.
막 8:34 / 그러고 나서 제자들과 군중을 불러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기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갈 2:20 / 그리스도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고 계시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여 나를 위해 그 몸을 내어 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은 덕분에 지금 내가 참 생명을 얻었습니다.
갈 5:24-26 /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들은 악한 욕망의 본성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입니다. 25) 만일 우리가 지금 성령의 능력으로 살고 있다면 모든 생활 역시 성령의 인도를 따라야 합니다. 26) 그렇게 하면 명예와 인기를 얻고자 질투하거나 악한 감정을 가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의 이 책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함으로써 주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매일 자기 십자가를 지는, 강력한 자기부인(自己否認)의 삶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렇지만 이 삶이야말로 죽은 자 같으나 ‘사는 자’의 삶이고, 지는 것 같지만 ‘이기는’ 것임을 이 책은 강력히 확증한다.
이 책에서 예수님의 호칭인 ‘주’(主, Lord)를 “주인님”과 “주님”으로 병용했다. 특히 우리가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예수께 절대복종하는 신분에 있음을 잘 표현하기 위해서 “주인님”이라고 표기했다. 실제로 “주인님”으로 표기하는 것에서 오는 유익이 크다(이 책은 그리스도의 ‘Lordship(주권)’을 이해하는 데도 좋다). 우리가 왜 우리 ‘주인님’의 십자가 수난을 깊이 묵상해야 하는가? 우리 주인님의 마음을 본받아 아버지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함이다. 우리의 주인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 하나님께 자신의 몸을 드리는 절대복종을 하셨다. 그렇다면 우리 주인님의 십자가 수난을 묵상하는 우리에게서는 어떤 열매가 나와야 하겠는가? 그리스도를 본받아 내 뜻보다는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며, 나 자신을 매일 십자가의 산 제물로 바쳐야 할 것이다(롬 12:1 참조).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다”(마 10:24)라고 예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우리의 선생이요 주인님이신 예수님이 가시 면류관을 쓰셨으므로 우리도 가시 면류관이나 그보다 천한 것을 쓰기를 갈망해야 되는데, 오늘 우리가 너도나도 황금 면류관, 즉 세상 갈채의 면류관, 인기의 면류관을 탐하는 것은 웬일인가? 그러면서 정통의 교리, 정통의 속죄론을 주장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것은 ‘죽은 정통’이다. 바른 십자가 속죄론은 바른 십자가의 삶, 즉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의 길로 우리를 인도해야 한다. 오늘 우리의 이런 현실에서 토마스 아 켐피스의 [주인님, 나를 바칩니다]는 우리를 우리 주인님께서 원하시는 바른 종의 길, 바른 제자도의 길로 인도해줄 것이다.】
④ 감사하며 / 다니엘 신앙의 절정(絶頂)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때 그 상황에서 감사할게 뭐가 있겠습니까? 죽음의 그늘이 드리우고, 원수의 공격이 에워싸고, 절망과 분노가 앞을 가리는 그 상황에서 어떻게 감사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아니 원망만 안하면 다행이겠지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감사했습니다. 핍박을 받아도 고난을 받아도 죽임을 당해도 드린 감사였습니다.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위대한 신앙은 위대한 감사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3. 그렇게 한 결과 이렇게 되었습니다.
1. 죽지도 상하지도 않았습니다. / 원수들의 소원대로 다니엘을 사자굴에 던졌습니다. 굶주린 사자들이었기 때문에 살아날 희망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23절을 보면 "그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다"고 했고 그 원인을 "그가 자기 하나님을 의뢰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단 6:23 / … 다니엘을 굴에서 끌어올려 보니 정말 어디 하나 상한 곳 없이 멀쩡하였다. 이것은 다니엘이 하나님을 굳게 믿고 의지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24절을 보면 “왕은 명을 내려 다니엘을 고소한 자들을 모두 잡아들이라고 하였다. 다니엘을 고소한 자들뿐 아니라 그들의 아내와 자식들까지도 모조리 잡아들여 사자들이 우굴거리는 굴속에 집어 던지도록 하였다. 그들 몸이 사자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사자들이 그들에게 달려들어 뼈까지 씹어 삼켜 버렸다.”고 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이 보호해 주셨고 그들은 하나님이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고난이 영광이 됩니다. 절망이 희망이 됩니다. 죽음이 부활이 됩니다. 고통이 감사가 됩니다.
2.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 다리오 왕이 전국에 조서를 내렸는데 이렇습니다(단 6:25-27).
요약을 한다면 "하나님은 살아 계신다. 다니엘 사건이 그 증거다. 하나님은 영원히 변치 않으시고 그의 나라는 망하지 않으며 그의 권세는 무궁하시다. 그는 구원도 하시고 건져 내기도 하시고 하늘과 땅에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고 사자의 입에서 다니엘을 구원하셨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왕이 친히 다니엘 사건을 지켜보며 갖게 된 신앙을 고백한 것입니다. 다니엘의 신앙과 삶 그리고 인격이 왕을 감동시켰고 신앙을 갖게 한 것입니다.
▶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고난 때문에 쓰러지는 사람이 있고 고난을 이기고 일어서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그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사람이 있고, 다른 사람에게 절망과 실망을 주고 그 사람을 주님과 교회로부터 떠나가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니엘처럼 왕을 감동시켜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28절은 이 사건의 결론입니다. “다니엘은 다리오왕이 다스리던 시대와 바사 왕 고레스가 다스리던 시대에도 많은 존경을 받으며 살았다.” 느브갓네살이 죽고 다리오가 왕이 된 후 그리고 바벨론이 바사에 의해 멸망한 이후까지 다니엘은 유명정치가로 존경받고 형통했다는 것입니다. 그 기간이 적잖게 60년이나 됩니다. 고난 속에서라도 찬양합시다. 힘들어도 기도합시다. 절망 속에서라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의지합시다. 길이 열릴 것입니다. 영광이 임할 것이며, 그 길이 형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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